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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09:47
원작 떠올려 보니 정석대로 교복 입는 거 본 건 북산에선 치수 준호 달재 정도고
능남은 덕규.. 영수도 한 번 봤나?
해남은 그나마 정환이가 노타이긴 했어도 제일 정석으로 입었던 것 같고
상양은 기억도 안남ㅋ 수겸이나 권혁이가 그나마 가장 정석에 가까웠던가?
쨌든 풀착장보다는 그냥 대충 단추 풀고 자켓 걸치고 다니건 안에 와이셔츠 대신 티셔츠나 생활복같은 피케셔츠 입고 다니건 아예 상의는 농구부 저지 입고 다니건 교복 커스텀해서 입건 다들 교복인 듯 아닌 듯한 자유복장이 더 많았던 것 같던데
저게 다 단추 강탈당하고 멀쩡한 교복이 없어서 그런거면 웃길듯ㅋㅋㅋ
ㅅㅅㅊㅈㅇ ㅌㅈㅈㅇ
컾링있음
오늘도 학교 정문 앞에 버티고 선 길다란 그림자를 확인한 영수가 휘파람을 불며 손가락을 딱 하고 울리자, 대협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둘 사이의 바닥에 놓여 있던 종이봉투를 집어들었다.
"내가 뭐랬어. 서태웅 온댔지? 그럼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까 심부름 잘 부탁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만치 달려간 영수의 뒤를 따라가듯 터덜터덜 교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대협은 태웅의 곁을 지나치며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이럴 거면 그냥 우리 학교 오지 그랬어. 감독님도 좋아하셨을 텐데."
장난 섞인 푸념에 태웅은 뭐래, 라고 작게 대꾸하며 대협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가올 주말의 원온원 약속을 잡기 위해 장소며 시간 등을 결정하느라 한동안 대협의 뒤만 따라오던 태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 걷고 있는 거리 풍경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말 대신 표정으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태웅에게 대협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보여 주었다.
"너 오나 안 오나 내기했는데 내가 졌거든. 영수 심부름 가야 돼."
"흐음-."
윤대협과 심부름이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걷던 태웅은 갑자기 멈춰선 발걸음 덕에 대협의 등에 쿵 부딪히고 나서야 걷기를 멈췄다.
"뭐야."
"어? 아니, 내가 잘못 봤나? 아닌데?"
몇 번 눈을 비비며 길 너머 쪽을 확인한 대협이 입 근처에 두 손을 갖다댔다.
"형! 정환 형!"
뜻밖의 이름에 태웅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니폼 아니면 교복이란 익숙한 차림이 아니라 평범한 맨투맨 셔츠를 걸친 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했는데 돌아본 얼굴은 정환이 확실했다.
정환 또한 윤대협과 서태웅이란 조합에 잠깐 눈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여긴 무슨 일로?"
"영수랑 내기 해서 졌거든요. 형은?"
"난 김수겸에게 받을 게 있어서."
"아아, 그럼 우리 둘 다 목적지는 같다는 거네요?"
어느 새 나란히 서서 걷는 정환과 대협의 등을 잠시 노려보던 태웅은 곧 한숨을 짧게 쉬고 둘의 뒤를 따라갔다.
평소 운동 삼아 귀가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인 데다가, 솔직히 말해 이쪽의 - 상점가를 가로질러 가는 - 길이 지름길이기도 하다.
금요일 저녁의 상점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묘했다.
한 주를 마감하고 주말을 맞이하는 이들의 활기찬 기운과 파장 무렵의 차분함이 한데 뒤섞인 싱숭생숭한 공기.
무심하게 길거리를 훑던 태웅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발까지 멈출까 말까 망설이던 그 때.
"지각이다, 이정환."
단호한 목소리에 눈을 돌리니, 수겸이 보란 듯 손목시계를 톡톡 두들기며 서 있었다.
따라서 제 손목을 흘끗 쳐다본 정환은 어깨를 으쓱 하곤 수겸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 턱하니 손을 올렸다.
"여기서까지 감독님 티 내고 싶냐. 2분 늦은 건데 적당히 하지."
"난 10분 전에 왔거든."
"정시에만 오면 됐지."
"너 나중에 윈터컵 치를 때 꼭 경기 시작 시간에 따악 맞춰서 나타나라. 감독님이 차~암 좋아하시겠다."
"또, 또, 감독 마인드."
두 사람이 친근하게 투닥대는 사이 태웅의 눈은 바로 앞에 선 간판에 꽂혔다.
알 듯 말 듯한 복잡한 한자로 쓰여진 간판은 쉬이 읽을 수가 없었다.
"나... 아니, 라...?"
인상을 쓰고 더듬더듬 간판을 읽으려 노력하는 태웅을 본 대협이 파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옷가게야. 테일러메이드."
"...수트 같은 거 말인가?"
"대충 그런 거지."
"학생이 수트 입을 일이 뭐가 있다고."
나지막한 태웅의 말에 대협이 눈을 둥글게 뜨곤 태웅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난 아직은 해당사항 제외이려나. 그런데 아닌 사람도 의외로 많더라고."
그럼 갈까.
정체모를 봉투를 달랑달랑 흔들던 대협이 가게의 유리문을 열자마자 여전히 투닥대는 중인 정환과 수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아니 그러니까 니가 그게 왜 필요한데."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니까."
"그럼 없는 대로 살던가."
"보기 좀 그렇잖아."
메고 있던 더플백에서 끄집어낸 해남의 블레이저를 본 수겸의 인상이 확 찌푸러드는 걸 본 정환도 맞장구를 치듯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보기에도 아니지 이건?"
"내가 졌다. 교복이 아니고 걸레지 그건. 저 저번에 말씀드린 거 찾아주세요."
수겸의 말에 카운터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서너 개의 큼지막한 지퍼백이었다.
그 내용물은 전부...
"...단추?"
태웅이 본인의 눈을 의심하는 동안 수겸과 정환은 이미 익숙한 듯 지퍼백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블레이저 메인 버튼 500개, 와이셔츠 단추는 15리뉴가 300개, 12가 50개, 스냅 13mm랑 15mm 각각 100개. 네, 맞아요."
수많은 단추 무더기 중 한 움큼을 끄집어낸 수겸이 손바닥 안에서 단추를 굴리며 확인하듯 정환을 흘끗 바라보았다.
"어디 한 번 간 크게 해남 교복에 상양 교표 박힌 버튼 달고 다녀 봐라. 무슨 일이 생기나."
"무슨 일은. 그거 한 줌 정도면 일 주일도 안 돼서 죄다 뜯겨 사라질 텐데. 그래도 일 주일이면 새로 주문한 버튼 도착할 때까지 시간 정도는 벌겠지."
무슨 저희들끼리 만담 하듯 연신 고개를 저으며 대화를 나누던 정환과 수겸의 시선이 동시에 순서를 기다리는 대협을, 그리고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태웅을 향했다.
해남 제왕과 상양 감독이란 나름 무거운 타이틀을 걸머진 것과 달리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차림의 두 사람과, 대충 되는 대로 입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교복의 매무새를 갖춘 두 사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엇나가는 선배가 견실한 후배를 불러 놓고 잡도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수겸이었다.
"그래, 가쿠란이 편하긴 해. 나도 이 꼴 날 줄 알았으면 상양 안 왔는데."
"김수겸 정도면 가쿠란이었어도 난리났을 텐데요."
"그건 단추 한 개 뜯겨도 대충 여밀 수는 있잖아. 나도 중학교 땐 3년 내내 단추 하나 없다 치고 지냈는데, 블레이저는 단추 뜯긴 순간 꼴이 너절해지니 학교에서 바로 양아치 취급이더라."
"에이, 우리도 불편한데."
수겸의 말에 반박하듯 종이 봉투 안에 손을 넣은 대협이 꺼내든 건 능남의 교복 재킷이었다.
역시나 앞섶이 너덜너덜한 재킷을 카운터에 펼친 대협이 손끝으로 찢어진 교복 끝자락을 쓸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단추 뜯긴 사람들 민원이 빗발쳐서 지퍼로 바꿨더니 이젠 공구로 아예 퍼스너를 뜯어 가더라고요. 영수 지퍼만 올해 들어 몇 번째 새로 다는 건지..."
한숨과 함께 교복 수선을 맡기는 대협을 훑어보던 정환이 눈썹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대협의 교복 목깃 근처를 툭 건드렸다.
"네 것도 없잖아."
"스물 몇 번쯤 뜯긴 다음부터는 아예 안 고쳐요."
"그럼 지퍼는 어떻게 올리는데?"
정환의 물음에 대협이 상쾌하게 웃으며 가방 안에서 꺼낸 건 자그마한 니퍼였다.
니퍼로 퍼스너 머리 부분을 꽉 물고는 지퍼를 올려 보이는 대협의 시범에 정환은 기가 차서 눈을 질끈 감았고, 수겸은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막상막하군."
"아니다 이정환, 우리가 좀 더 불쌍하지. 우린 블레이저로 모자라 와이셔츠 단추까지 죄다 강탈당하잖아. 너 올해는 와이셔츠 몇 벌 찢겼지?"
"....18벌."
끄응, 하는 정환의 신음성에 수겸도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손가락을 꼽다 이마를 짚었다.
"이런 건 보험 안 되나 몰라. 너 그 셔츠 죄다 맞춤이잖아. 18벌이면 그게 얼마야."
"뭐, 그쪽 사정도 만만치 않잖아?"
"아아... 현준이도 매일같이 걸레짝이 돼서 오긴 하지. 얘는 지금이 더 심각해. 가쿠란 땐 키 덕에 손이 안 닿아 단추 뺏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건 허리 언저리라 쉽게 뜯을 수 있으니. 블레이저를 안 입고 다니니까 이젠 하다하다 못해 저지 단추까지 뽑아가더라. 꿰매붙인 것도 아니고 박아넣은 스냅 단추를 어떻게 가져가는 거야 대체."
투덜대던 수겸이 걸치고 있던 저지 앞자락의, 원래대로였다면 단추가 있었을 자리에 남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걸 본 태웅의 눈동자는 이제 거의 물음표 모양이 다 되어 있었다.
단추.
교복의, 위에서 두 번째.
무심코 손을 올려 만져 본 자리는 똑같이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분명히 며칠 전에도 지금처럼 빈 자릴 확인하고-.
"저기 그런데, 셔츠는 대체 왜?"
뜬금없는 대협의 질문에 태웅의 생각도 멈추었다.
"저런, 비율 좋은 윤대협은 모르신단다. 비율 안좋은 이정환아."
수겸의 이죽대는 놀림에 정환이 또냐 하는 듯 픽 웃으며 수겸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블레이저는 가쿠란처럼 안쪽이 자유복장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정된 셔츠는 사이즈가 너무 일괄적이고."
"...에?"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정환의 대답에 대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수겸이 부연설명을 붙였다.
"벌크업을 너무 한 관계로 셔츠 단추가 안 잠겨. 그렇다고 몸에 맞추면 소매가 너무 길어지고. 변덕규나 채치수도 그럴 걸?"
제법 품이 넉넉한 가쿠란임에도 가슴이며 어깨가 딱 맞게 떨어지는 두 주장의 교복 핏을 떠올린 태웅과 대협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거리자 정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남말하긴. 상양도 너 빼고는 거의 다 마찬가지면서."
"아아, 우리 애기들은 기성복이 짧아서 못 입지. 시접을 다 뜯어 늘려도 모자란데. 덕분에 부실 가 보면 여기가 농구부인지 수예부인지 알 수가 없어."
수겸이 수많은 단추들 중 셔츠 단추 한 개를 집어서는 사라진 단추 대신 옷핀으로 여며 둔 앞섶에 가져다 댔다.
"옷이 커지니 단추도 커지더라고. 셔츠나 저지에 나랑 같은 사이즈 달면 사람이 치졸해 보여 안 된대. 살다살다 와이셔츠 단추 사이즈 재는 단위까지 알게 될 줄 몰랐다 내가."
한탄을 하며 각자의 단추들을 챙기는 정환과 수겸에 수선예약증을 받아 지갑에 끼워넣는 대협을 앞에 둔 태웅은 이미 딴생각에 잠긴 지 오래였다.
- 야, 여우! 너 또 단추 뺏겼냐? 옷 꼴이 그게 뭐야? 칠칠치 못하게.
쯧쯧 혀를 차며 어깨에 대충 걸쳐 뒀던 가쿠란을 낚아채 간 백호는 지금껏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안쪽의 예비 단추까지 찾아내선 그 자리에서 쓱쓱 단추를 고쳐 달아 주었다.
어울리지 않게 아기자기한 반짇고리를 꺼내더니 라커룸 벽에 등을 기대고 바늘을 몇 번 움직이던 백호는 곧 실을 툭 끊어내곤 어느새 깔끔해진 가쿠란을 태웅의 눈 앞에 쫙 펼쳐 보였다.
- 어떠냐? 역시 천재님은 이런 데서까지 완벽하다니까!!
넌 이런 거 못 하지? 약오르냐? 하며 파하핫 웃는 백호를 멀뚱히 바라보던 태웅은 손을 뻗어 교복을 받아드는 대신 백호의 머리 위에 얹었다.
조금 길어진 까슬한 머리칼의 부드러운 감촉이 병아리나 뭐 그런 생물을 쓰다듬는 것 같아 의외로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사라지는 태웅의 단추를 볼 때마다 백호는 버럭 화를 내면서도 꼬박꼬박 새 단추를 달아 주었고, 태웅은 그때마다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쓰다듬는 태웅이나 쓰다듬을 받는 백호나 한동안 말없이 눈을 마주친 채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단추가 떨어진 교복을 들고 백호의 집을 방문하게 됐고,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머리를 쓰다듬던 스킨십이 키스로 변할 때까지도 둘 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던 중, 키스가 끝나고 정신을 차린 백호가 입술을 벅벅 문대며 삿대질을 했다.
- 이,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야!!
그 때 깨달았다.
- 좋아해.
- 어엉?
- 좋아한다 강백호. 너는. 넌 싫으냐.
단도직입적 고백에 말을 잃고 어버버거리는 백호에게 태웅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키스했고, 그런 태웅을 밀쳐버리거나 주먹질을 하는 대신 눈을 꼭 감아 버린 게 백호의 대답이었다.
"단추가, 그런 뜻이었나."
분명 두 번째 단추를 누군가에게 떼어주는 건 일종의 고백의 의미라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단추를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둑맞는 단추를 계속 달아 주는 백호의 행동은 마치 도둑맞은 마음을 자신의 애정으로 채워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 해? 거기 서서는."
"아아."
어깨를 툭 친 대협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태웅은 고개를 붕붕 휘저으며 눈을 들었다.
어느 새 저만치 앞에 가 있는 정환의 곁에는 호장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수겸의 뒤엔 현준이 있었다.
정환이 주머니에서 꺼내 준 단추 한 개를 받아들고 깔깔대며 웃는 호장과 부원 전원에게 배급할 단추로 묵직해진 수겸의 더플백을 자연스레 받아 메며 수겸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짓는 현준을 본 태웅이 작게 웃음을 흘리곤 대협을 돌아보았다.
"난 저 쪽."
원래 가야 할 방향이 아닌 왔던 방향을 가리키는 태웅의 손가락에 대협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웃는 얼굴로 손인사를 하며 제 갈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몸을 돌린 태웅이 길을 거슬러 돌아온 곳은 아까 전 발길을 멈출까 고민하던 가게였다.
이제 장사 끝물인지 꽤 많이 빈 진열장을 들여다 본 태웅이 손을 들어 주문을 요청했다.
"크림고로케 3개, 감자고로케 3개, 멘치까스 5개요."
갓 튀겨낸 고로케가 담긴 봉투는 뜨끈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인심 좋은 사장님 덕에 진열장에 남아 있던 것들을 전부 덤으로 받았는지라 제법 무거운 봉투를 달랑댄 태웅은 곧 마주칠 백호의 놀란 얼굴을 떠올리며 소리죽여 웃었다.
백호가 반길 게 틀림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핑계로 오늘도 한 번 더 없어진 단추를 달아 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자고 간다고 해 볼까."
사실 진짜 목적은 이쪽이긴 하지만.
손 안의 열기가 식기 전 백호의 집에 도착하려는 생각에 급해진 마음 때문인지 점점 빨라지던 태웅의 발걸음이 뜀박질로 변하기 시작했다.
슬램덩크 태웅백호 루하나
약 대협영수 약 정환호장 약 현준수겸
능남은 덕규.. 영수도 한 번 봤나?
해남은 그나마 정환이가 노타이긴 했어도 제일 정석으로 입었던 것 같고
상양은 기억도 안남ㅋ 수겸이나 권혁이가 그나마 가장 정석에 가까웠던가?
쨌든 풀착장보다는 그냥 대충 단추 풀고 자켓 걸치고 다니건 안에 와이셔츠 대신 티셔츠나 생활복같은 피케셔츠 입고 다니건 아예 상의는 농구부 저지 입고 다니건 교복 커스텀해서 입건 다들 교복인 듯 아닌 듯한 자유복장이 더 많았던 것 같던데
저게 다 단추 강탈당하고 멀쩡한 교복이 없어서 그런거면 웃길듯ㅋㅋㅋ
ㅅㅅㅊㅈㅇ ㅌㅈㅈㅇ
컾링있음
오늘도 학교 정문 앞에 버티고 선 길다란 그림자를 확인한 영수가 휘파람을 불며 손가락을 딱 하고 울리자, 대협은 허탈한 미소와 함께 둘 사이의 바닥에 놓여 있던 종이봉투를 집어들었다.
"내가 뭐랬어. 서태웅 온댔지? 그럼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까 심부름 잘 부탁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저만치 달려간 영수의 뒤를 따라가듯 터덜터덜 교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대협은 태웅의 곁을 지나치며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이럴 거면 그냥 우리 학교 오지 그랬어. 감독님도 좋아하셨을 텐데."
장난 섞인 푸념에 태웅은 뭐래, 라고 작게 대꾸하며 대협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다가올 주말의 원온원 약속을 잡기 위해 장소며 시간 등을 결정하느라 한동안 대협의 뒤만 따라오던 태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지금 걷고 있는 거리 풍경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말 대신 표정으로 이게 무슨 일이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태웅에게 대협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봉투를 보여 주었다.
"너 오나 안 오나 내기했는데 내가 졌거든. 영수 심부름 가야 돼."
"흐음-."
윤대협과 심부름이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걷던 태웅은 갑자기 멈춰선 발걸음 덕에 대협의 등에 쿵 부딪히고 나서야 걷기를 멈췄다.
"뭐야."
"어? 아니, 내가 잘못 봤나? 아닌데?"
몇 번 눈을 비비며 길 너머 쪽을 확인한 대협이 입 근처에 두 손을 갖다댔다.
"형! 정환 형!"
뜻밖의 이름에 태웅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니폼 아니면 교복이란 익숙한 차림이 아니라 평범한 맨투맨 셔츠를 걸친 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했는데 돌아본 얼굴은 정환이 확실했다.
정환 또한 윤대협과 서태웅이란 조합에 잠깐 눈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곧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여긴 무슨 일로?"
"영수랑 내기 해서 졌거든요. 형은?"
"난 김수겸에게 받을 게 있어서."
"아아, 그럼 우리 둘 다 목적지는 같다는 거네요?"
어느 새 나란히 서서 걷는 정환과 대협의 등을 잠시 노려보던 태웅은 곧 한숨을 짧게 쉬고 둘의 뒤를 따라갔다.
평소 운동 삼아 귀가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인 데다가, 솔직히 말해 이쪽의 - 상점가를 가로질러 가는 - 길이 지름길이기도 하다.
금요일 저녁의 상점가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묘했다.
한 주를 마감하고 주말을 맞이하는 이들의 활기찬 기운과 파장 무렵의 차분함이 한데 뒤섞인 싱숭생숭한 공기.
무심하게 길거리를 훑던 태웅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발까지 멈출까 말까 망설이던 그 때.
"지각이다, 이정환."
단호한 목소리에 눈을 돌리니, 수겸이 보란 듯 손목시계를 톡톡 두들기며 서 있었다.
따라서 제 손목을 흘끗 쳐다본 정환은 어깨를 으쓱 하곤 수겸에게 다가가 머리 위에 턱하니 손을 올렸다.
"여기서까지 감독님 티 내고 싶냐. 2분 늦은 건데 적당히 하지."
"난 10분 전에 왔거든."
"정시에만 오면 됐지."
"너 나중에 윈터컵 치를 때 꼭 경기 시작 시간에 따악 맞춰서 나타나라. 감독님이 차~암 좋아하시겠다."
"또, 또, 감독 마인드."
두 사람이 친근하게 투닥대는 사이 태웅의 눈은 바로 앞에 선 간판에 꽂혔다.
알 듯 말 듯한 복잡한 한자로 쓰여진 간판은 쉬이 읽을 수가 없었다.
"나... 아니, 라...?"
인상을 쓰고 더듬더듬 간판을 읽으려 노력하는 태웅을 본 대협이 파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옷가게야. 테일러메이드."
"...수트 같은 거 말인가?"
"대충 그런 거지."
"학생이 수트 입을 일이 뭐가 있다고."
나지막한 태웅의 말에 대협이 눈을 둥글게 뜨곤 태웅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난 아직은 해당사항 제외이려나. 그런데 아닌 사람도 의외로 많더라고."
그럼 갈까.
정체모를 봉투를 달랑달랑 흔들던 대협이 가게의 유리문을 열자마자 여전히 투닥대는 중인 정환과 수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아니 그러니까 니가 그게 왜 필요한데."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니까."
"그럼 없는 대로 살던가."
"보기 좀 그렇잖아."
메고 있던 더플백에서 끄집어낸 해남의 블레이저를 본 수겸의 인상이 확 찌푸러드는 걸 본 정환도 맞장구를 치듯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보기에도 아니지 이건?"
"내가 졌다. 교복이 아니고 걸레지 그건. 저 저번에 말씀드린 거 찾아주세요."
수겸의 말에 카운터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서너 개의 큼지막한 지퍼백이었다.
그 내용물은 전부...
"...단추?"
태웅이 본인의 눈을 의심하는 동안 수겸과 정환은 이미 익숙한 듯 지퍼백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블레이저 메인 버튼 500개, 와이셔츠 단추는 15리뉴가 300개, 12가 50개, 스냅 13mm랑 15mm 각각 100개. 네, 맞아요."
수많은 단추 무더기 중 한 움큼을 끄집어낸 수겸이 손바닥 안에서 단추를 굴리며 확인하듯 정환을 흘끗 바라보았다.
"어디 한 번 간 크게 해남 교복에 상양 교표 박힌 버튼 달고 다녀 봐라. 무슨 일이 생기나."
"무슨 일은. 그거 한 줌 정도면 일 주일도 안 돼서 죄다 뜯겨 사라질 텐데. 그래도 일 주일이면 새로 주문한 버튼 도착할 때까지 시간 정도는 벌겠지."
무슨 저희들끼리 만담 하듯 연신 고개를 저으며 대화를 나누던 정환과 수겸의 시선이 동시에 순서를 기다리는 대협을, 그리고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태웅을 향했다.
해남 제왕과 상양 감독이란 나름 무거운 타이틀을 걸머진 것과 달리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차림의 두 사람과, 대충 되는 대로 입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교복의 매무새를 갖춘 두 사람.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엇나가는 선배가 견실한 후배를 불러 놓고 잡도리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수겸이었다.
"그래, 가쿠란이 편하긴 해. 나도 이 꼴 날 줄 알았으면 상양 안 왔는데."
"김수겸 정도면 가쿠란이었어도 난리났을 텐데요."
"그건 단추 한 개 뜯겨도 대충 여밀 수는 있잖아. 나도 중학교 땐 3년 내내 단추 하나 없다 치고 지냈는데, 블레이저는 단추 뜯긴 순간 꼴이 너절해지니 학교에서 바로 양아치 취급이더라."
"에이, 우리도 불편한데."
수겸의 말에 반박하듯 종이 봉투 안에 손을 넣은 대협이 꺼내든 건 능남의 교복 재킷이었다.
역시나 앞섶이 너덜너덜한 재킷을 카운터에 펼친 대협이 손끝으로 찢어진 교복 끝자락을 쓸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단추 뜯긴 사람들 민원이 빗발쳐서 지퍼로 바꿨더니 이젠 공구로 아예 퍼스너를 뜯어 가더라고요. 영수 지퍼만 올해 들어 몇 번째 새로 다는 건지..."
한숨과 함께 교복 수선을 맡기는 대협을 훑어보던 정환이 눈썹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대협의 교복 목깃 근처를 툭 건드렸다.
"네 것도 없잖아."
"스물 몇 번쯤 뜯긴 다음부터는 아예 안 고쳐요."
"그럼 지퍼는 어떻게 올리는데?"
정환의 물음에 대협이 상쾌하게 웃으며 가방 안에서 꺼낸 건 자그마한 니퍼였다.
니퍼로 퍼스너 머리 부분을 꽉 물고는 지퍼를 올려 보이는 대협의 시범에 정환은 기가 차서 눈을 질끈 감았고, 수겸은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막상막하군."
"아니다 이정환, 우리가 좀 더 불쌍하지. 우린 블레이저로 모자라 와이셔츠 단추까지 죄다 강탈당하잖아. 너 올해는 와이셔츠 몇 벌 찢겼지?"
"....18벌."
끄응, 하는 정환의 신음성에 수겸도 웃음을 멈추고 진지하게 손가락을 꼽다 이마를 짚었다.
"이런 건 보험 안 되나 몰라. 너 그 셔츠 죄다 맞춤이잖아. 18벌이면 그게 얼마야."
"뭐, 그쪽 사정도 만만치 않잖아?"
"아아... 현준이도 매일같이 걸레짝이 돼서 오긴 하지. 얘는 지금이 더 심각해. 가쿠란 땐 키 덕에 손이 안 닿아 단추 뺏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건 허리 언저리라 쉽게 뜯을 수 있으니. 블레이저를 안 입고 다니니까 이젠 하다하다 못해 저지 단추까지 뽑아가더라. 꿰매붙인 것도 아니고 박아넣은 스냅 단추를 어떻게 가져가는 거야 대체."
투덜대던 수겸이 걸치고 있던 저지 앞자락의, 원래대로였다면 단추가 있었을 자리에 남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는 걸 본 태웅의 눈동자는 이제 거의 물음표 모양이 다 되어 있었다.
단추.
교복의, 위에서 두 번째.
무심코 손을 올려 만져 본 자리는 똑같이 텅 비어 있었다.
뭐지?
분명히 며칠 전에도 지금처럼 빈 자릴 확인하고-.
"저기 그런데, 셔츠는 대체 왜?"
뜬금없는 대협의 질문에 태웅의 생각도 멈추었다.
"저런, 비율 좋은 윤대협은 모르신단다. 비율 안좋은 이정환아."
수겸의 이죽대는 놀림에 정환이 또냐 하는 듯 픽 웃으며 수겸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블레이저는 가쿠란처럼 안쪽이 자유복장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정된 셔츠는 사이즈가 너무 일괄적이고."
"...에?"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정환의 대답에 대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수겸이 부연설명을 붙였다.
"벌크업을 너무 한 관계로 셔츠 단추가 안 잠겨. 그렇다고 몸에 맞추면 소매가 너무 길어지고. 변덕규나 채치수도 그럴 걸?"
제법 품이 넉넉한 가쿠란임에도 가슴이며 어깨가 딱 맞게 떨어지는 두 주장의 교복 핏을 떠올린 태웅과 대협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거리자 정환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남말하긴. 상양도 너 빼고는 거의 다 마찬가지면서."
"아아, 우리 애기들은 기성복이 짧아서 못 입지. 시접을 다 뜯어 늘려도 모자란데. 덕분에 부실 가 보면 여기가 농구부인지 수예부인지 알 수가 없어."
수겸이 수많은 단추들 중 셔츠 단추 한 개를 집어서는 사라진 단추 대신 옷핀으로 여며 둔 앞섶에 가져다 댔다.
"옷이 커지니 단추도 커지더라고. 셔츠나 저지에 나랑 같은 사이즈 달면 사람이 치졸해 보여 안 된대. 살다살다 와이셔츠 단추 사이즈 재는 단위까지 알게 될 줄 몰랐다 내가."
한탄을 하며 각자의 단추들을 챙기는 정환과 수겸에 수선예약증을 받아 지갑에 끼워넣는 대협을 앞에 둔 태웅은 이미 딴생각에 잠긴 지 오래였다.
- 야, 여우! 너 또 단추 뺏겼냐? 옷 꼴이 그게 뭐야? 칠칠치 못하게.
쯧쯧 혀를 차며 어깨에 대충 걸쳐 뒀던 가쿠란을 낚아채 간 백호는 지금껏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안쪽의 예비 단추까지 찾아내선 그 자리에서 쓱쓱 단추를 고쳐 달아 주었다.
어울리지 않게 아기자기한 반짇고리를 꺼내더니 라커룸 벽에 등을 기대고 바늘을 몇 번 움직이던 백호는 곧 실을 툭 끊어내곤 어느새 깔끔해진 가쿠란을 태웅의 눈 앞에 쫙 펼쳐 보였다.
- 어떠냐? 역시 천재님은 이런 데서까지 완벽하다니까!!
넌 이런 거 못 하지? 약오르냐? 하며 파하핫 웃는 백호를 멀뚱히 바라보던 태웅은 손을 뻗어 교복을 받아드는 대신 백호의 머리 위에 얹었다.
조금 길어진 까슬한 머리칼의 부드러운 감촉이 병아리나 뭐 그런 생물을 쓰다듬는 것 같아 의외로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틈만 나면 사라지는 태웅의 단추를 볼 때마다 백호는 버럭 화를 내면서도 꼬박꼬박 새 단추를 달아 주었고, 태웅은 그때마다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쓰다듬는 태웅이나 쓰다듬을 받는 백호나 한동안 말없이 눈을 마주친 채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단추가 떨어진 교복을 들고 백호의 집을 방문하게 됐고,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머리를 쓰다듬던 스킨십이 키스로 변할 때까지도 둘 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던 중, 키스가 끝나고 정신을 차린 백호가 입술을 벅벅 문대며 삿대질을 했다.
- 이, 이런 건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야!!
그 때 깨달았다.
- 좋아해.
- 어엉?
- 좋아한다 강백호. 너는. 넌 싫으냐.
단도직입적 고백에 말을 잃고 어버버거리는 백호에게 태웅은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키스했고, 그런 태웅을 밀쳐버리거나 주먹질을 하는 대신 눈을 꼭 감아 버린 게 백호의 대답이었다.
"단추가, 그런 뜻이었나."
분명 두 번째 단추를 누군가에게 떼어주는 건 일종의 고백의 의미라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단추를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둑맞는 단추를 계속 달아 주는 백호의 행동은 마치 도둑맞은 마음을 자신의 애정으로 채워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 해? 거기 서서는."
"아아."
어깨를 툭 친 대협의 말에 퍼뜩 정신이 든 태웅은 고개를 붕붕 휘저으며 눈을 들었다.
어느 새 저만치 앞에 가 있는 정환의 곁에는 호장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수겸의 뒤엔 현준이 있었다.
정환이 주머니에서 꺼내 준 단추 한 개를 받아들고 깔깔대며 웃는 호장과 부원 전원에게 배급할 단추로 묵직해진 수겸의 더플백을 자연스레 받아 메며 수겸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짓는 현준을 본 태웅이 작게 웃음을 흘리곤 대협을 돌아보았다.
"난 저 쪽."
원래 가야 할 방향이 아닌 왔던 방향을 가리키는 태웅의 손가락에 대협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곧 웃는 얼굴로 손인사를 하며 제 갈 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몸을 돌린 태웅이 길을 거슬러 돌아온 곳은 아까 전 발길을 멈출까 고민하던 가게였다.
이제 장사 끝물인지 꽤 많이 빈 진열장을 들여다 본 태웅이 손을 들어 주문을 요청했다.
"크림고로케 3개, 감자고로케 3개, 멘치까스 5개요."
갓 튀겨낸 고로케가 담긴 봉투는 뜨끈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인심 좋은 사장님 덕에 진열장에 남아 있던 것들을 전부 덤으로 받았는지라 제법 무거운 봉투를 달랑댄 태웅은 곧 마주칠 백호의 놀란 얼굴을 떠올리며 소리죽여 웃었다.
백호가 반길 게 틀림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핑계로 오늘도 한 번 더 없어진 단추를 달아 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자고 간다고 해 볼까."
사실 진짜 목적은 이쪽이긴 하지만.
손 안의 열기가 식기 전 백호의 집에 도착하려는 생각에 급해진 마음 때문인지 점점 빨라지던 태웅의 발걸음이 뜀박질로 변하기 시작했다.
슬램덩크 태웅백호 루하나
약 대협영수 약 정환호장 약 현준수겸
[Code: 59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