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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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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면서도 연화한테 홀려서 눈 못뗄 것 같아

그러니까 비성연화로 열받은 적비성 달래주는 이연화 보고싶다



원래는..적비성이 빡치건 말건 내 알 바 1도 아닌 이연화겠지만 적비성 호위무사 양반이 연화 따로 찾아와서 즈그 존상좀 말려달라고 걱정하기에 연화가 나선 거겠지 적비성이 제일 싫어하는 거 음모와 배신, 가만히 있는 약한 애들 괴롭혀서 가오 안 사는 일인 거 뻔히 알면서도 금원맹 내부에서 간 크게 어린애, 노인, 가난한 자, 여자애들 납치하고 잡아다가 뒤가 구린 일을 하던 놈들이 발각되어버린거야. 약마 할배가 금원맹 감옥에서 사람 데려다가 생고문할땐 존상이 신경도 안써서 괜찮을 줄 알았지. 근데 걔네는 무공 할 줄 알고 얘네는 아니잖아.(단순) 암튼 이 일이 평화롭던 적비성 개빡침 스트존에 꽉찬 직구로 전부 꽂혀버려 적비성은 아아주 오랜만에 손속에 자비없고 잔인한 금원맹주로 각성하게 됐을거야.

근데 문제는 이새끼들을 살려야 심문해서 관련인 모두 벌을 주고 뿌리를 뽑는데 벌써 적비성이 두 명째 죽여버려서 잔당들이 깜짝 놀란 바퀴벌레들처럼 꽁꽁 숨어버린 것에 있겠지. 이연화도 마침 이 소식을 전해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실은 열받은 적비성이랑 마주쳐서 귀찮기만 하고 좋을 게 없으니까 괜한 불똥 튈 일 없게 살살 피해다니고 있었단말이야. 근데 어떡해. 우리 존상 개빡쳐서 이러다가 정작 일 도모했던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완벽히 사건 해결이 안될수도 있다는데.. 이연화는 내키지 않았지만, 꽤 입에 맞는 사탕을 뇌물로 들고 몰래 찾아온 무안의 부탁에 '이번 딱 한 번만'이라고 선을 긋고 도와주기로 했음. 흠, 근데 뭘 어쩐다...? 연화가 달달한 사탕을 혀로 굴리면서 화난 적비성을 달랠 방법을 고민해보기 시작하겠지

연화는 한 번 꽂히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적비성의 성미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어. 자신이 그의 평생에 걸친 호적수라며 징그럽게 쫓아다녔던 것만 해도 말 다했지. 적비성의 집념은 본래는 우직하고 단순한 그의 성정과 어울려 매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그건 적비성에게 이성적인 선택과 판단이 가능할 때였을거야. 궁지에 몰려 성난 호랑이보다 차가운 위엄만으로 먹잇감을 압도해버리는 호랑이가 더 멋있는 게 당연하잖아. 이연화는 자신의 호랑이에게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 적비성이 굳이 사흘 째, 잠도 안자고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부하들의 보고를 직접 들으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없었어.

아무튼 적비성은 그 때까지도 가슴 속이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금방이라도 치솟을 것 같은 화를 겨우 억누르고 있던 참이었어. 연관된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뭣보다 목숨이 떨어질까봐 눈치를 보며 아닌척 정체를 숨기고 있는 놈들을 어떻게 색출해내야 하나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들이 되기 위해 만들었던 금원맹이 한낱 시장통 떨거지 소인배 패거리로 전락해버렸으니 어디서부터 물갈이를 해야 썩어빠진 정신머리가 바짝 제자리로 돌아올 지 고민이 됐어. 그런데 그런 적비성의 앞에 기별도 없이 이연화가 찾아온거야. 적비성은 살랑살랑 아닌척 눈치를 보며 나타난 이연화가 무척 반가웠지만 그란 남자는...무시무시하게 직진으로 달리고 있던 방향을 바로 꺾을 수 없는 우직한 인간이였기에..🤦‍♀️ 연화를 보는 둥 마는 둥 뭐냐고 퉁명스럽게 맞아주기나 했겠지. 이연화도 그 쯤은 뭐 예상했다는 듯 신경도 쓰지 않았어.


뭐야? 사람이 왔는데 내다보지도 않고.
...그런 일이 있다.
그래? 바쁘면 다시 갈
그러는 넌 뭐 때문이지?


그럼 어느새 적비성 곁에 다가온 이연화가 숨겨가지고 왔던 술병을 으쓱 하고 들며 고개를 까딱거렸을거야. 적비성이 그걸보고 표정을 굳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그치만 낯짝 두껍기론 적비성에 뒤지지 않는 이연화이기에 연화는 되는대로 술병을 내려놓고 적비성의 단단하고 두꺼운 허벅지 위에 슬며시 걸터앉았을거야. 그리고 금원맹 내부 수사자료를 대충 집어들고 살펴보는 척 했겠지


흐음, 어디보자...어이쿠, 고생이 많네. 적 맹주. 그 자리도 여간 골치 아픈게 아니겠어.
....그거 내려 놔. 그리고 내려와.


적비성은 갑자기 몸을 붙여오는 연화때문에 다른 쪽으로 신경이 확 곤두서는 걸 느꼈어. 체력이 약해진 뒤로 이연화는 심심하면 적비성을 조종해 이동수단으로 썼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보는 눈을 의식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어. 그럼 이연화는 어떤지 몰라도 적비성은 평소보다 열 배는 더 침착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지. 아. 좋은 고기와 약을 보내줬던 것 같은데 그게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먹이는 보람도 없이 제게 걸터앉은 이연화가 지난번보다 별반 차이 없이 가볍기만 해서 적비성은 걱정이 됐어. 이미 말로는 내려오라고 쌀쌀맞게 내뱉었지만 그 사이 이연화가 어디 미끄러져 부딪히기라도 할까봐 적비성은 연화 허리를 슬쩍 감싸서 팔로 받쳐주기까지 할거야.


그래도 내 눈엔 이게 너와 잠깐 좋은 술을 나눠마실 수도 없을 정도의 일처럼 보이지는 않아.


이연화가 탁자에 집어들었던 서류를 눈으로 읽어내려가다 턱 내던져버리더니 적비성을 똑바로 바라봤어. 교태스럽지도, 대답을 빠르게 재촉하는 특별한 표정도 아닌 평온한 얼굴이었으나 적비성은 가장 보통의 이연화를 마주하고 어쩐지 익숙한 스산함을 느꼈어. 주변을 거부하고 포말처럼 부서져내릴 것 같던 과거의 이연화도 딱 저렇게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 적비성은 엄습하는 불안감에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고치며 이연화를 끌어다가 꾹 품 안에 껴안아버렸어. 이연화도 별말 않고 적비성에게 얌전히 붙잡혀 안겨주긴 했는데 적비성의 머릿속은 이제 금원맹의 일이 아닌 이연화로 삽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을거야. 이연화는 신경쓰일텐데도 다행히 제가 붙인 감시를 아직까지 너그럽게 눈감아주고 있었어. 그런데 수틀린 이연화가 훌쩍 사라져버리면 그거야말로 적비성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될 거였지. 물론, 이연화가 또 도망간다면 세상천지 어디에 숨었든 몇 번이라도 찾아내 억지로 다시 제 곁에 묶어둘 요량이긴 했지만.. 연화를 묶어 둘 명분이 없잖아. 적비성 귓가에 들리는 차분한 연화의 심장소리가 연화의 목소리같았어. 아아, 적비성! 난 인생을 마음 편히 즐기고 싶어! 무공만 고강하면 뭐해? 함께 술도 안 마셔주고,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일에만 미쳐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무정한 남자 곁에서 메말라죽느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훌쩍 떠나서 새 인생을...!


...가지 마.
...좋아.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


이연화가 가슴팍에 이마를 부비는 적비성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어. 연화도 팔을 둘러 적비성을 마주 안아주자 적비성이 품 속에서 연화의 체취를 가득 들이마셨어. 포근하고, 향긋하고, 그립고, 항상 목마를 정도로 애틋해 적비성을 금새 달아오르게 만드는 은은한 연화의 살냄새가 적비성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게 만들었지. 적비성은 그제서야 자신이 미간을 계속 찌푸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이연화를 안고 있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느끼는 이 모든 순간이 무척 편안해서 머릿속이 게으르게 멍해졌고 뭔가 모든 일이 몇 발짝 멀게만 느껴졌어. 아...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열이 받았더라? 몰라. 그게 지금 그 정도로 중요한가? 그러고보니 이연화를 얼마만에 안아보는 거지? 그러니까... 어... 이연화가... 뭣 땜에... 날 찾아와서 이렇게...

이연화는 정신없이 제게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적비성이 외출을 마쳤다 돌아오면 반갑다고 달려드는 불여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여튼, 안 그런 것 같아도 덩치랑 안 맞게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지. 연화가 적비성의 머리에 쪽 입맞춰주곤 들러붙은 적비성에게서 살짝 떨어졌어. 적비성이 석상처럼 굳어 홀린듯 연화를 올려다봤어.


내가 약을 사러갔다가 약방 아주머니와 내기를 하나 했어. 은자 닷냥이 걸린 내기라서, 니가 꼭 내 편을 들어줘야 하거든?


연화가 자신에게 무섭게 집중하는 적비성의 눈을 내려다보면서 여우처럼 샐쭉 웃었어. 적비성은 그 웃음만으로도 심상찮던 아래에 거하게 피가 몰려버렸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일부러 이러는 건지 연화는 제대로 불이 붙고 있는 적비성에게 뜨거운 기름을 콸콸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부군이 화가 가득 나 있을 때 하면 효과있는 말이라던데 맞는지 들어봐.


이연화가 보란듯이 한 손으로 제 허리띠를 풀러내렸어. 그것만으로도 기가 차는데 헐렁해진 옷깃 안으로 적비성의 손을 잡고 이끌기까지 했지. 대체 뭔 말을 하려고 뒷감당 생각 않고 이런..깜찍한 짓을 벌이는건지..? 이연화의 도발에 넘어가 줄까 말까 언제 넘어가줄까 적비성이 숨을 쉬는 것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 이연화가 적비성의 귓가에 재밌는 비밀을 몰래 말해주는 것처럼 작게 소근거렸어. 근데 그 내용이란 게


..가슴 만질래?


라서...
적비성은 사람이 좀 고장나고 말았어.


아비? 아비? 괜찮아..? 핫..잠깐만 너 손이 막 떨리는데..? 아니 효과가 있는 건 맞나? 좀 어때?
..너...너..! 윽...!! 제길..!!


적비성이 웃음기를 머금고 눈치없게 물어오는 이연화때문에 체통없이 길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괴로워했어. 이상이가 미친 것 같아. 지금...일부러 그러라고 말한 게 맞지? 가슴..??? 장난하나, 당연한 거 아냐? 말랑하고 따뜻하고 좋은 냄새나서 당장 만지고 깨물고 괴롭히고 싶은데 가슴만 만지고 싶은 줄 아냐고 넌 항상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줄도 모르고 장난처럼...?? 하, 가슴??? 그래 이상이, 오늘... 원하는대로 엄청나게 만져주마. 울고 불고 힘들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해도 소용없어. 오늘은.. 오늘은 분명히 니쪽에서 먼저 시작했으니까...!!!


..이상이. 그래서 어디에 걸었다고?
나? 난 당연히 네가 홀딱 넘어온다에 걸었지.
..다행이네.


이연화는 이를 악 물고 내면의 검은 폭풍을 맞고 있는 적비성이 웃겨서 배가 찢어질 것 같았어. 뭐 이대로 잔뜩 흥분한 적비성을 받아내고나면 며칠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플게 확실하겠지만..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적비성의 모습을 봤으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나쁘진 않았지.

적비성이 마지막 이성을 쥐어 짜내서 연화를 들쳐 안았어. 사실 이연화의 시시콜콜한 답이 뭐가 됐든 별로 중요하진 않았고 적비성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입력되어 온종일 스스로를 새까맣게 불태우던 분노도 뭣도 전부 잊어버리고 머릿속에 딱 한 사람만 남게 되었을거야🤭

적비성이 순식간에 이연화와 함께 금원맹 집무실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어. 적비성 앞으로 금원맹에 터졌던 사건의 최초 보고가 날아든지 3일만이었지. 그리고 그림자처럼 적비성을 호위하던 무안은 적비성에게 매달려 사라지던 이연화가 그의 목덜미에 살짝 입맞추며 제게 눈을 찡긋거리는 걸 똑똑히 보았어. 무안은... 약하게 소름이 돋았어. 그리고 '이번 딱 한번만이에요. 알겠어요?' 이연화가 자신의 부탁을 승낙하면서도 왜 그렇게 딱 잘라 말했는지 알 것 같았어.


아마 매번 이런 식이라면 저 여우같은 이연화가 자신의 존상을 움직여 웬만한 나라 하나쯤은 가볍게 뽑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지..





연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