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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21:43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는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는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사고문의 문주(이연화는 문주라는 호칭이 부적절하다고 거듭 말했으나,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를 문주라고 불렀다), 이상이가 음인이 되었다!
무림이 대차게 시끄러워질 만한 소식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천기산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진위 여부를 묻는 새들이 날아들었다. 천기산장은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침묵은 사실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방다병은 새 발목에 매인 쪽지를 뚱한 얼굴로 읽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어디까지 이야기가 퍼졌는지, 궁내의 소령 공주조차 그게 사실이냐는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정작 이 폭풍의 주인공은, 의자에 앉아 골똘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던 참이었다.
"흠, 잔당들이 한동안 설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일부의 발악일까? 아니면 이들을 규합하는 누군가가 있는 걸까? 이봐, 방다병. 심문하는 사람들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쪽지에 답을 쓰지 않은 채, 방다병은 시무룩해져 푹 한숨을 쉬었다. 이연화를 해독한 것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지만, 형탐이면서 자객을 미리 색출하지 못한 스스로에게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연화의 해독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으니 그리 자책할 일도 아니었으나, 자신이 조금만 더 기민했더라면 이런 골치아픈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이. 어-이. 방 소협? 방다병?"
눈앞에서 흰 손이 흔들렸다. "어?"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가, 방다병은 이연화의 어깨너머 창으로 기웃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방다병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열린 창을 쾅 닫았다. 두어 사람이 힉 소리를 내더니 도망쳤다. 요 며칠 사이, 소문의 중심을 구경하기 위해 서성거리던 자들이 몇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약간 커진 눈으로 바라보던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도련님 심기가 불편해 보이네. 왜 그래?"
"왜 그러냐니, 네 형질이 바뀐 게 만천하에 알려졌잖아."
"그게 뭘. 언젠가는 결국 알려질 일이었잖아."
이연화가 코웃음을 쳤다. 방다병의 입이 더 튀어나왔다.
"그래도 좀, 이렇게 빨리는 아니길 바랐단 말이야!"
"늦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어? 하긴, 하필 너희 이모의 혼례 날이었던 건 좀 그러네. 미안하더라."
이연화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 말에, 방다병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좀 심각하게 생각해. 무림이 벌써 떠들썩하다고. 다들 네가 벽차지독에서 풀려났다는 사실보다, 음인이 된 데에 더 관심이 많다니까!"
"무림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관심 없는데. 난 네 덕에 독에서 풀려났고, 내력을 쓴 다음 피 토하지 않게 됐다고. 나한텐 그게 더 중요하니까, 너도 쓸데없는 데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소문이나 평판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군자의 미덕은 아닐걸?"
이연화가 소매를 가볍게 떨치며 농처럼 건넸다. 하지만 그 눈은 꽤 진지했기에, 방다병은 마음에 얹혔던 무게가 아주 조금 덜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근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그 앞의 찻잔을 채워주었다. 방다병은 차를 단숨에 마시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시무룩한 말이 흘러나왔다.
"널 두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봐 걱정된단 말이야."
"이상한 생각을 하면 뭐 해? 이상한 일이 안 일어날 텐데."
"그냥, 널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어. 넌 내 스승님이잖아."
방다병이 토라진 아이처럼 이야기했다. 이연화는 그 말에 낮게 소리내어 웃더니,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적비성은 왜 며칠 전부터 계속 지박령처럼 내 주변을 떠돌기만 하는 거지? 내가 낫자마자 대결 날짜부터 잡자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시야에 보이나 싶으면 슥 사라지고, 또 보이나 싶으면 슥 사라지고 말이야. 어제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합을 두어 번 주고받고는 사라지더라니까. 예전에도 이상한 친구였지만, 요 며칠은 더 괴상해."
"진짜 왜 그런지 모르겠어?"
괜히 억울한 눈으로 물었다가, 방다병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연화가 드물게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방다병을 보았다. "뭐야, 방소보. 뭔가 알고 있어?" 평소였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더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졌겠으나, 방다병은 승리감보다 좌절감에 사로잡혀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적비성은 아마-."
"냄새 조절 좀 해라, 이상이."
문간에서 조짐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두 남자가 화들짝 돌아보았다. 이연화가 혀를 차며 그를 훑어보았다.
"기척도 없이 다니는 건 손님의 예의가 아니야, 적 맹주. 그리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조절 잘하고 있어, 지금도 안 나잖아."
"내력을 쓸 때 냄새를 풍기지 말란 얘기다."
적비성이 지상 최대의 난적을 만난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어이없게 웃었다.
"이봐,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력을 쓸 때마다 흘러나오는데 어떡해?"
"네가 그런 상태로는, 너와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적비성이 퍽이나 억울한 투로 씹어 뱉었다. 이연화가 결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난 멀쩡한데? 냄새 조절이 좀 안 되고 내력이 아직 덜 돌아오긴 했지만. 문제는 너겠지."
"문제는 너다!"
적비성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부르짖었다. 심정적으로 적비성에게 일부 동의하면서도, 방다병은 금세 엄한 표정을 짓고는 한 팔로 이연화의 앞을 막았다. "그만해. 이연화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이연화가 얄밉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약을 내가 안 먹으면 억지로 먹여주겠다고 한 건 너잖아, 적 맹주. 그리고,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알기로 적 맹주는 음인들의 냄새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정한 양인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강한 음인들을 상대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잖아. 이제 와서 왜 나한테 불평이야? 내가 무슨 형질이라도 상관없다고 떠들어댄 주제에."
"그땐 네가 이런 냄새를 풍길 줄 몰랐다. 이렇게 이상한 음인은 본 적이 없어."
적비성이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비난했다. 이연화가 허 소리를 냈다.
"뻔뻔하네."
"뻔뻔한 건 네놈이다. 어떻게 그런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풍기면서 걸어다닐 수가 있지?"
"연꽃 냄새가 뭐 어때서? 누가 들으면 내가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줄 알겠네."
"차라리 악취인 게 나을 거다. 그 냄새를 맡으면 집중이 안 돼. 어떻게 좀 해라, 이상이."
적비성은 진실로 비열한 수를 만나 분개하는 사람처럼 이연화의 얼굴을 가리키며 요구했다(그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만, 방다병은 역시 그 내용에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이연화는 얼척 없는 눈으로 적비성을 바라보다가, 곧 가벼운 삿대질로 응수했다. "이봐, 적 맹주. 네가 집중을 못하는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코에 종이를 쑤셔넣든, 코를 집게로 막아버리든 알아서 해." 적비성은 부당한 탄압을 받은 듯이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를 갈았다.
"네가 조절에 더 능숙해지거나, 내가 그 냄새에 익숙해지면 해결될 문제겠지. 그때가 되자마자, 난 네게 대결을 신청하겠다."
"금원맹 안 바빠? 거기 지금 누가 운영해? 각려초도 없는데."
이연화가 툴툴거렸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금원맹이 각려초가 없다고 무너질 만큼 만만한 조직으로 보이나? 맹의 속사정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은 뭘, 적당히 가라는 뜻이지...." 이연화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적비성이 눈을 번쩍이며 무슨 말을 쏘아대기 전, 한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자객들의 심문을 진행하던 천기산장 사람이었다.
"소당주, 자객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습니다."
방다병이 미간을 좁혔다. 청년은 자세를 고쳐 앉고는 물었다.
"뭐라 하더냐?"
"아무래도 남윤의 잔당들이 모여 조직을 결성한 듯합니다. 개중에는 남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만성도의 일부와, 금원맹에서 각려초를 따르던 자들도 소수 섞여 있다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동기는 전처럼 건국을 하겠단 야심보다, 좌절된 야심에 대한 복수에 가깝겠군요. 그 대상은 아마도 천기산장이나 백천원, 황궁일 테고. 경비 삼엄한 궁을 뚫고 들어가는 일은 그 정도 세력으로 불가능할 테니, 아마도 강호의 조직들이 더 노리기 수월했겠지요. 이해는 되네요."
이연화가 끄덕끄덕하며 말했다. 적비성이 냉소했다. "패배한 개들의 모임이다. 짖어봤자 잠깐이지. 큰 위협이랄 것도 못 돼." 이연화가 고개를 까딱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네 말대로, 장기적으로 유지될 조직은 아닐 공산이 크지. 세력도 미약한 데다, 이득을 창출하기 어려운 목표를 갖고 있으니. 하지만 악에 받쳐 일시적으로 움직이는 적이라도, 잠깐의 방심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며칠 전의 혼례에서 신랑 신부나, 그 자리에 하객으로 왔던 명사가 크게 다쳤다면 어찌 됐겠어?"
"그게...그들의 목표에 대해서 말입니다."
남자가 잠깐 우물거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남자는 매우 삼가는 얼굴로 이연화를 힐끔거리다가, 곧 쓴 음식을 뱉듯이 말했다.
"결혼식을 습격할 때 그런 목표를 가졌던 것은 맞는데, 그게...이번에 이 선생을 보고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자가 그저 저희를 모욕하고 도발하기 위해 꺼낸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무슨 생각을 했다는데요?"
"그, 이 선생께서 음인이 되셨으니...본인께서 남윤의 계보를 이을 생각이 없으시더라도, 적통을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잡히기 직전, 새를 통해 그 소식을 외부에 전달했다고도 했습니다."
"뭐라고?"
방다병은 세상에서 가장 징그럽고 비인도적인 발상을 목도한 사람답게 메스꺼운 표정을 지었다. 적비성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꿈틀한 눈썹을 보니 꽤 놀란 모양이었다. 이연화가 뺨을 긁적였다. "내가 변한 건 겨우 며칠 전이라,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아, 뭐 없던 기관은 확실히 생긴 것 같긴 하지만." 이연화가 자신의 하반신 쪽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방다병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분노의 탓으로 애써 돌리며 탁자를 탕 내리쳤다. 과히 당황스러운 나머지 혀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미친놈들 아니야! 어떻게 그런-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전설 속의 벌레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던 자들인데, 음인 하나 강제로 임신시키는 게 대수겠어? 그나저나, 내 피가 모동을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잔당들이 있었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모두 제압했다고 생각했는데, 귀찮게 됐군. 역시 소문이란 게 무서워."
이연화가 덤덤하게 말하며 차를 마셨다. 방다병은 어쩐지 억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외쳤다.
"넌 어떻게 그리 침착한 거야! 기분 나쁘지 않아?"
"음, 뭐 내가 음인이 된 건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내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자들이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든, 거기에 기분이 상할 이유가 없지. 그보다, 남윤이 연관된 일이니 황성사에서도 이번 소동을 듣고 정보를 요구할 텐데. 어디까지 어떻게 공유할지 생각해야 할 거야."
이연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가에서 푸드덕 소리가 들려왔다. 방다병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쿵쿵 걸어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 앉았던 두 마리의 새들이 화들짝 방다병을 바라보았다. "방다병, 새한테 화풀이하지 마." 이연화가 대충 핀잔을 주었다. 입이 댓 발쯤 나온 채로도, 방다병은 조심스레 새의 발목에 묶인 쪽지를 풀었다. 하나는 이연화의 말대로 황성사에서 온 문의였기에, 방다병은 하 당주와 의논해야겠다 생각하며 두 번째 쪽지를 열었다. 그 눈썹이 곧 부르르 떨렸다.
"방소보? 왜 그래?"
"백천원의 석 누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
방다병이 먹구름 같은 얼굴로 다가와 이연화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이연화의 눈이 종이를 훑었다. "음. 석 원주는 내가 해독된 걸 축하한다는 얘기부터 하고 있네. 고마운 일이야." 방다병이 팔짱을 끼었다. 물론 그 부분은 방다병도 기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었다. 문주의 형질이 진실로 변화한 것인지 다른 이들처럼 물은 다음, 석수는 최근 백천원에 닿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연화가 중얼중얼 이었다.
"최근 백천원에 문의를 넣은 조정 명사가 하나 있어, 문주께 알립니다. 천기산장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들 중 하나로 보이는데, 문주께 혼담을 제안하려면 어디를 통해야 적절할지 물었습니다...?"
"말도 안 돼!"
방다병이 바락 외쳤다. 바라보는 시선들 가운데, 방다병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닭처럼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말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이상이잖아, 십 년 전이지만 그렇게 맹위를 떨쳤던 천하제일검이라고! 어떻게 음인이 됐다는 걸 알자마자 이렇게-이럴 수가 있어? 이해가 안 돼, 비상식적이야!"
"오히려 그런 과거가 있으니 더욱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말했다시피, 방소보. 무림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봤자 재밌을 거 하나 없다니까."
이연화는 여전히 보는 쪽이 억울할 만큼 태연해 보였다. 그를 넘어, 남자는 무언가를 고심하듯 가만히 쪽지를 바라보면서 턱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한쪽 입가가 못된 장난을 구상하는 아이처럼 슬쩍 올라갔다. 방다병은 어쩐지 강한 오한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손을 뻗어 이연화의 얼굴을 가리켰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경고하고픈 마음이 치밀었다.
"하지 마."
"내가 뭘 할 줄 알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계략을 생각하는 늙은 여우 얼굴이잖아. 불길하다고."
"스승에게 그런 소릴 하다니, 무례하긴."
"무슨 생각이냐, 이상이?"
적비성이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연화의 미소가 조금 더 커졌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사고문의 문주(이연화는 문주라는 호칭이 부적절하다고 거듭 말했으나, 어쨌든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를 문주라고 불렀다), 이상이가 음인이 되었다!
무림이 대차게 시끄러워질 만한 소식이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천기산장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진위 여부를 묻는 새들이 날아들었다. 천기산장은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어떤 해명도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침묵은 사실을 확고하게 만들었다. 방다병은 새 발목에 매인 쪽지를 뚱한 얼굴로 읽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체 어디까지 이야기가 퍼졌는지, 궁내의 소령 공주조차 그게 사실이냐는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정작 이 폭풍의 주인공은, 의자에 앉아 골똘한 얼굴로 턱을 매만지던 참이었다.
"흠, 잔당들이 한동안 설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일부의 발악일까? 아니면 이들을 규합하는 누군가가 있는 걸까? 이봐, 방다병. 심문하는 사람들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쪽지에 답을 쓰지 않은 채, 방다병은 시무룩해져 푹 한숨을 쉬었다. 이연화를 해독한 것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지만, 형탐이면서 자객을 미리 색출하지 못한 스스로에게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연화의 해독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었으니 그리 자책할 일도 아니었으나, 자신이 조금만 더 기민했더라면 이런 골치아픈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이. 어-이. 방 소협? 방다병?"
눈앞에서 흰 손이 흔들렸다. "어?"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가, 방다병은 이연화의 어깨너머 창으로 기웃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방다병은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열린 창을 쾅 닫았다. 두어 사람이 힉 소리를 내더니 도망쳤다. 요 며칠 사이, 소문의 중심을 구경하기 위해 서성거리던 자들이 몇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약간 커진 눈으로 바라보던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도련님 심기가 불편해 보이네. 왜 그래?"
"왜 그러냐니, 네 형질이 바뀐 게 만천하에 알려졌잖아."
"그게 뭘. 언젠가는 결국 알려질 일이었잖아."
이연화가 코웃음을 쳤다. 방다병의 입이 더 튀어나왔다.
"그래도 좀, 이렇게 빨리는 아니길 바랐단 말이야!"
"늦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어? 하긴, 하필 너희 이모의 혼례 날이었던 건 좀 그러네. 미안하더라."
이연화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 말에, 방다병은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좀 심각하게 생각해. 무림이 벌써 떠들썩하다고. 다들 네가 벽차지독에서 풀려났다는 사실보다, 음인이 된 데에 더 관심이 많다니까!"
"무림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관심 없는데. 난 네 덕에 독에서 풀려났고, 내력을 쓴 다음 피 토하지 않게 됐다고. 나한텐 그게 더 중요하니까, 너도 쓸데없는 데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소문이나 평판에 너무 신경 쓰는 것도 군자의 미덕은 아닐걸?"
이연화가 소매를 가볍게 떨치며 농처럼 건넸다. 하지만 그 눈은 꽤 진지했기에, 방다병은 마음에 얹혔던 무게가 아주 조금 덜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근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그 앞의 찻잔을 채워주었다. 방다병은 차를 단숨에 마시고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시무룩한 말이 흘러나왔다.
"널 두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봐 걱정된단 말이야."
"이상한 생각을 하면 뭐 해? 이상한 일이 안 일어날 텐데."
"그냥, 널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어. 넌 내 스승님이잖아."
방다병이 토라진 아이처럼 이야기했다. 이연화는 그 말에 낮게 소리내어 웃더니, 곧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적비성은 왜 며칠 전부터 계속 지박령처럼 내 주변을 떠돌기만 하는 거지? 내가 낫자마자 대결 날짜부터 잡자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시야에 보이나 싶으면 슥 사라지고, 또 보이나 싶으면 슥 사라지고 말이야. 어제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서 합을 두어 번 주고받고는 사라지더라니까. 예전에도 이상한 친구였지만, 요 며칠은 더 괴상해."
"진짜 왜 그런지 모르겠어?"
괜히 억울한 눈으로 물었다가, 방다병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연화가 드물게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방다병을 보았다. "뭐야, 방소보. 뭔가 알고 있어?" 평소였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더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졌겠으나, 방다병은 승리감보다 좌절감에 사로잡혀 이연화를 바라보았다.
"적비성은 아마-."
"냄새 조절 좀 해라, 이상이."
문간에서 조짐도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두 남자가 화들짝 돌아보았다. 이연화가 혀를 차며 그를 훑어보았다.
"기척도 없이 다니는 건 손님의 예의가 아니야, 적 맹주. 그리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조절 잘하고 있어, 지금도 안 나잖아."
"내력을 쓸 때 냄새를 풍기지 말란 얘기다."
적비성이 지상 최대의 난적을 만난 듯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이연화가 어이없게 웃었다.
"이봐,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력을 쓸 때마다 흘러나오는데 어떡해?"
"네가 그런 상태로는, 너와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
적비성이 퍽이나 억울한 투로 씹어 뱉었다. 이연화가 결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난 멀쩡한데? 냄새 조절이 좀 안 되고 내력이 아직 덜 돌아오긴 했지만. 문제는 너겠지."
"문제는 너다!"
적비성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부르짖었다. 심정적으로 적비성에게 일부 동의하면서도, 방다병은 금세 엄한 표정을 짓고는 한 팔로 이연화의 앞을 막았다. "그만해. 이연화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이연화가 얄밉게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약을 내가 안 먹으면 억지로 먹여주겠다고 한 건 너잖아, 적 맹주. 그리고,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알기로 적 맹주는 음인들의 냄새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정한 양인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는데. 강한 음인들을 상대하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잖아. 이제 와서 왜 나한테 불평이야? 내가 무슨 형질이라도 상관없다고 떠들어댄 주제에."
"그땐 네가 이런 냄새를 풍길 줄 몰랐다. 이렇게 이상한 음인은 본 적이 없어."
적비성이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비난했다. 이연화가 허 소리를 냈다.
"뻔뻔하네."
"뻔뻔한 건 네놈이다. 어떻게 그런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풍기면서 걸어다닐 수가 있지?"
"연꽃 냄새가 뭐 어때서? 누가 들으면 내가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줄 알겠네."
"차라리 악취인 게 나을 거다. 그 냄새를 맡으면 집중이 안 돼. 어떻게 좀 해라, 이상이."
적비성은 진실로 비열한 수를 만나 분개하는 사람처럼 이연화의 얼굴을 가리키며 요구했다(그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만, 방다병은 역시 그 내용에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이연화는 얼척 없는 눈으로 적비성을 바라보다가, 곧 가벼운 삿대질로 응수했다. "이봐, 적 맹주. 네가 집중을 못하는 게 내 탓은 아니잖아. 코에 종이를 쑤셔넣든, 코를 집게로 막아버리든 알아서 해." 적비성은 부당한 탄압을 받은 듯이 입술을 꿈틀거렸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를 갈았다.
"네가 조절에 더 능숙해지거나, 내가 그 냄새에 익숙해지면 해결될 문제겠지. 그때가 되자마자, 난 네게 대결을 신청하겠다."
"금원맹 안 바빠? 거기 지금 누가 운영해? 각려초도 없는데."
이연화가 툴툴거렸다. 적비성이 코웃음을 쳤다. "금원맹이 각려초가 없다고 무너질 만큼 만만한 조직으로 보이나? 맹의 속사정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은 뭘, 적당히 가라는 뜻이지...." 이연화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적비성이 눈을 번쩍이며 무슨 말을 쏘아대기 전, 한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자객들의 심문을 진행하던 천기산장 사람이었다.
"소당주, 자객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습니다."
방다병이 미간을 좁혔다. 청년은 자세를 고쳐 앉고는 물었다.
"뭐라 하더냐?"
"아무래도 남윤의 잔당들이 모여 조직을 결성한 듯합니다. 개중에는 남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만성도의 일부와, 금원맹에서 각려초를 따르던 자들도 소수 섞여 있다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동기는 전처럼 건국을 하겠단 야심보다, 좌절된 야심에 대한 복수에 가깝겠군요. 그 대상은 아마도 천기산장이나 백천원, 황궁일 테고. 경비 삼엄한 궁을 뚫고 들어가는 일은 그 정도 세력으로 불가능할 테니, 아마도 강호의 조직들이 더 노리기 수월했겠지요. 이해는 되네요."
이연화가 끄덕끄덕하며 말했다. 적비성이 냉소했다. "패배한 개들의 모임이다. 짖어봤자 잠깐이지. 큰 위협이랄 것도 못 돼." 이연화가 고개를 까딱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네 말대로, 장기적으로 유지될 조직은 아닐 공산이 크지. 세력도 미약한 데다, 이득을 창출하기 어려운 목표를 갖고 있으니. 하지만 악에 받쳐 일시적으로 움직이는 적이라도, 잠깐의 방심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며칠 전의 혼례에서 신랑 신부나, 그 자리에 하객으로 왔던 명사가 크게 다쳤다면 어찌 됐겠어?"
"그게...그들의 목표에 대해서 말입니다."
남자가 잠깐 우물거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남자는 매우 삼가는 얼굴로 이연화를 힐끔거리다가, 곧 쓴 음식을 뱉듯이 말했다.
"결혼식을 습격할 때 그런 목표를 가졌던 것은 맞는데, 그게...이번에 이 선생을 보고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자가 그저 저희를 모욕하고 도발하기 위해 꺼낸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
"무슨 생각을 했다는데요?"
"그, 이 선생께서 음인이 되셨으니...본인께서 남윤의 계보를 이을 생각이 없으시더라도, 적통을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에게 잡히기 직전, 새를 통해 그 소식을 외부에 전달했다고도 했습니다."
"뭐라고?"
방다병은 세상에서 가장 징그럽고 비인도적인 발상을 목도한 사람답게 메스꺼운 표정을 지었다. 적비성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꿈틀한 눈썹을 보니 꽤 놀란 모양이었다. 이연화가 뺨을 긁적였다. "내가 변한 건 겨우 며칠 전이라,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아, 뭐 없던 기관은 확실히 생긴 것 같긴 하지만." 이연화가 자신의 하반신 쪽을 내려다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방다병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분노의 탓으로 애써 돌리며 탁자를 탕 내리쳤다. 과히 당황스러운 나머지 혀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미친놈들 아니야! 어떻게 그런-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전설 속의 벌레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던 자들인데, 음인 하나 강제로 임신시키는 게 대수겠어? 그나저나, 내 피가 모동을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잔당들이 있었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모두 제압했다고 생각했는데, 귀찮게 됐군. 역시 소문이란 게 무서워."
이연화가 덤덤하게 말하며 차를 마셨다. 방다병은 어쩐지 억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외쳤다.
"넌 어떻게 그리 침착한 거야! 기분 나쁘지 않아?"
"음, 뭐 내가 음인이 된 건 이미 일어난 일이고. 내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자들이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든, 거기에 기분이 상할 이유가 없지. 그보다, 남윤이 연관된 일이니 황성사에서도 이번 소동을 듣고 정보를 요구할 텐데. 어디까지 어떻게 공유할지 생각해야 할 거야."
이연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가에서 푸드덕 소리가 들려왔다. 방다병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쿵쿵 걸어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 앉았던 두 마리의 새들이 화들짝 방다병을 바라보았다. "방다병, 새한테 화풀이하지 마." 이연화가 대충 핀잔을 주었다. 입이 댓 발쯤 나온 채로도, 방다병은 조심스레 새의 발목에 묶인 쪽지를 풀었다. 하나는 이연화의 말대로 황성사에서 온 문의였기에, 방다병은 하 당주와 의논해야겠다 생각하며 두 번째 쪽지를 열었다. 그 눈썹이 곧 부르르 떨렸다.
"방소보? 왜 그래?"
"백천원의 석 누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
방다병이 먹구름 같은 얼굴로 다가와 이연화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이연화의 눈이 종이를 훑었다. "음. 석 원주는 내가 해독된 걸 축하한다는 얘기부터 하고 있네. 고마운 일이야." 방다병이 팔짱을 끼었다. 물론 그 부분은 방다병도 기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었다. 문주의 형질이 진실로 변화한 것인지 다른 이들처럼 물은 다음, 석수는 최근 백천원에 닿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연화가 중얼중얼 이었다.
"최근 백천원에 문의를 넣은 조정 명사가 하나 있어, 문주께 알립니다. 천기산장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들 중 하나로 보이는데, 문주께 혼담을 제안하려면 어디를 통해야 적절할지 물었습니다...?"
"말도 안 돼!"
방다병이 바락 외쳤다. 바라보는 시선들 가운데, 방다병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닭처럼 제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말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이상이잖아, 십 년 전이지만 그렇게 맹위를 떨쳤던 천하제일검이라고! 어떻게 음인이 됐다는 걸 알자마자 이렇게-이럴 수가 있어? 이해가 안 돼, 비상식적이야!"
"오히려 그런 과거가 있으니 더욱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말했다시피, 방소보. 무림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봤자 재밌을 거 하나 없다니까."
이연화는 여전히 보는 쪽이 억울할 만큼 태연해 보였다. 그를 넘어, 남자는 무언가를 고심하듯 가만히 쪽지를 바라보면서 턱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한쪽 입가가 못된 장난을 구상하는 아이처럼 슬쩍 올라갔다. 방다병은 어쩐지 강한 오한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손을 뻗어 이연화의 얼굴을 가리켰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경고하고픈 마음이 치밀었다.
"하지 마."
"내가 뭘 할 줄 알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계략을 생각하는 늙은 여우 얼굴이잖아. 불길하다고."
"스승에게 그런 소릴 하다니, 무례하긴."
"무슨 생각이냐, 이상이?"
적비성이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연화의 미소가 조금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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