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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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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찜찜한 기분은 정말 싫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를 당장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초조했다.

그 이후로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공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버릇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놓곤했다.

우리 사이에 내려질 결론은 아직 보류중이다.
다시 만났을 때는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공준을 만나자 그런 생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내 머릿속은 마치 백지장이 된 듯 하얗게 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곳에서 나를 만날 줄 몰랐다는 듯 미간을 올려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중앙계단과는 달리 지상으로 연결되지 않고 창고로 쓰는 지하로만 통하는 계단밖에 없어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잠시 개인적인 전화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대기실 구석 계단에서 누군가 만날 줄은 몰랐기에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공준은 머리를 뒤로 넘겨 훤칠한 이마를 드러내고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다. 그의 탄탄하고 긴 몸을 잘 나타내주는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의상과는 어울리지 않은 그의 왼손에 감긴 하얀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공준은 붕대가 감긴 팔을 등 뒤로 숨겼다.

나를 알아본 그의 스태프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해서 나도 같이 했다. 공준이 고개를 숙여 무언가 말하자 스태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놔두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계단문을 열고 나가는 스태프의 뒷모습을 쫓다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봤다. 그러자 묵직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고작 3m 정도였지만 우리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쉰 후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뭐야, 손이 왜 그래?"

".... 형."

나는 등 뒤에 숨겨진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다시 한번 잘못 본 게 아닌 것을 확인했다.

"별일 아니에요. 좀 다쳤어요. "

"조금 다친 게 아니잖아. 촬영 때 다친 거야?"

내가 계속 그의 손을 쳐다보자 공준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봤다.
붕대는 팔목을 시작으로 그의 긴 손가락 절반까지 올라올 정도로 꽤 두툼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조심하지. 이거 어떡해..."

안타까움에 나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많이 다친거지?"

공준은 상처를 살펴보는 나를 잠시간 내려다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지금 저를 걱정해 주는 거예요?"

"뭐?"

올려다본 그의 표정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정말 의외라는 듯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 속에 작게 기쁨이 어려있었다.


신발 탓인지 평소보다 그가 더 커 보이는 건 그냥 내 느낌인가.

"누구라도 이러고 나타나면 걱정이 되는게 당연하잖아.“

너라면 더더욱.

“다쳤다고 왜 말 안했....”

나는 얼른 입술을 깨물어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말을 끊었다. 공준은 내 뒷말을 기다리는 눈치였지만 계단과 연결된 문을 열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스태프를 보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중에 말하자. 오늘 우리 집에 올 거지?"

대답이 없어 눈을 돌려 쳐다보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뚫어질 것처럼 응시하는 그의 눈과 마주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움찔했다.

"가도 돼요?"

"...물론이지. 여기선 아무말도 못하잖아. 당연한 말을 하지 마. 그리고 난 너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고 싶어. 나는 여기서 나가면 바로 집으로 갈 거야. 넌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면 돼."

공준이 낮은 목소리로 웃더니 고개를 숙이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도 바로 갈게요. "




-------



오늘은 공준이 올 때까지 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에는 먼저 잠이 들어 제대로 이야기도 못했으니까.

나는 거실의 불을 약하게 키고 커피를 진하게 뽑아 소파에 앉았다. 그가 언제올지 모르니 카페인의 힘을 빌렸다. 특별하게 눈을 끄는 방송은 없었다. 정신없이 물건을 파는 방송이나 해외 드라마들을 넘기며 의미 없이 리모콘를 누를 때 도어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게 열리는 문소리를 들으며 내심 긴장한 나는 커피를 흘리지 않게 컵을 고쳐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맞이하는 게 낫나? 나가봐야 하나? 이런 쓸데없는 걸로 고민하는 사이 공준이 거실로 이어지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놀랜 눈으로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고 있어요?"

민망해진 나는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몸을 쭉 피며 말했다.

"네가 오는 소리가 나서 나가볼까... 하고."

공준은 등에 멘 가방을 구석에 내려놓고는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들고 있던 컵을 보며 말했다.

"밤인데 커피 마시는 거예요? 그것도 블랙으로?"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공준은 냉장고 안에서 우유를 꺼내 머그컵에 따르고는 전자레인지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 가져왔다.

그가 컵을 내밀었을 때 그제서야 부상을 떠올렸다.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따뜻한 우유로 대신할래요?"

"아니. 커피가 좋아."

"그럼 컵 줘 봐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커피가 담긴 컵을 앞으로 내밀자 공준은 우유를 조금 부었다.

"이러면 좀 나을 거예요."

"고마워."

공준이 머그컵을 따라 흐르는 우유를 얼른 혀로 핥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나를 쳐다보던 공준과 시선이 얽혔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

"왜요?"

"....우유가 묻었어."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입꼬리에 묻어있는 우유 거품을 닦았다.
내 손길이 닿자 그의 몸이 작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공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지만 몸을 뒤로 빼거나 피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내가 손톱 끝살로 번진 거품을 조심스럽게 긁듯이 닦자 그가 무의식적으로 혀로 입술을 핥았다. 우연인지 따뜻하고 말캉한 그의 혀가 내 손가락에 닿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

갑자기 묘해진 분위기가 어색해져 나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밥은 먹었어?"

공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 좀 먹을래? 냉장고에 음식이 좀 있는데, 앉아있어. 내가...."

냉장고 안에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도록 매니저가 사다놓은 음식들이 있었다.
주방 쪽으로 걸어가려고 하는데 공준이 내 어깨를 잡고는 멈을 돌렸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조용한 거실에 조금 높아진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

"정말 그 사람과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 사람 연락처도 모르고 따로 만난적도 없어요."

"........"

나는 머그컵을 내려놓고는 손바닥에 베어나오는 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런데도 헤어지자고 말할건가요?"

"내가? "

이번엔 공준의 눈이 커졌다.

"지난번에 그랬잖아요. 언제든 끝내고 싶으면 말하라고요. 그 말은 형에게 있어 우리 관계는 언제라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는 뜻인가요?"

아....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이 연애에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연애는 처음이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던 차 때마침 터진 스캔들이었다. 공준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분명 나에게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아프겠지만 이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기서 멈춘다면 나에게도 분명 좋은 거라고...
그래서 쿨한 마음으로 말을 꺼낸 건데 눈 앞에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는 공준을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은... 네가 부담스럽다면 취소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야. 쑤저우에서 있었던 일은 취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고,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하던 행동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술에 취해서 한 말이 아니에요. 그냥 해 본 말도 아니에요. 결국.... 형에게 제 마음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는 거네요."

"그렇지 않아. 네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

"그럼 형은 앞으로도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저를 보낼건가요?"

"그건...아니야."

나는 공준의 눈동자가 천천히 차오르는 눈물에 잠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데 왜 그렇게 쉽게 저를 놓아요? 저는 그럴 수 없는데. 형하고 연락이 안 되는 동안 미치는 줄 알았어요. 거짓말 같고 꿈같고 불안해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공준은 숨을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약속했잖아요. 변하지 않는다고... 형이 말했잖아요."

아...공준의 눈에서 가득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 이상 감정이 깊어진다면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이유를 만들어 여기서 멈추려고 생각했는데...
결국 상처는 공준이 받았다.
그의 눈물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미안해...."

"도망가지 말아요."

공준은 내 눈을 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의 턱에 맺힌 눈물이 창밖의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빛났다.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나의 말에 공준이 고개를 떨어트리며 저었다.

"제가 형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 게 잘못이에요. "

"그렇게 자책하지 마. 그건 사실이 아니야."

"전 두려워요.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형이 사라질까 봐."

"안 그럴게. 약속해. 난 그저 되돌릴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왜 되돌려야 하는데요? 저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공준은 괴로운 얼굴을 했다.
거실 벽에 장식된 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서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내 생각을 읽으려는 듯 나를 살폈다.

"넌...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그대로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움직이지 말고...도망가지도 말고. 그대로."

"너한테 가까이 가지도 말고?"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만들고자 던진 말이었다.

"그건 제가 할게요. 제가 다가갈 테니 거기서 있어주세요. "

공준은 내 손을 끌어다 입술로 꾸욱 누르며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손에 느껴지는 입술의 온도가 마치 낙인을 찍는 듯 뜨겁게 가슴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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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전자레인지 소리가 울렸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공준이 따라 일어났다.

"그냥 앉아있어."

전자레인지를 열자 맛있는 냄새와 동시에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오븐 장갑 따위 집에 둘 리가 없는 나는 두툼한 수건으로 뜨겁게 데워진 워샹러우쓰를 꺼내 종종걸음으로 식탁에 옮겼다.
밥, 접시, 젓가락, 컵, 물을 꺼내 식탁에 옮기는 동안 공준의 시선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접시에 음식을 덜어 담고 그의 앞에 두며 말했다.

"반찬이 이거 밖에 없어. 그냥 먹어."

공준은 얌전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형은요?"

"난 이미 먹었지. 그러니까 이거 네가 다 먹어."

나는 턱을 괴고 식사를 하는 공준을 쳐다봤다. 희고 긴 손가락이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했다. 딱히 둘 곳 없는 시선이 자연스레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젓가락을 따라다녔다.

음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작은 혀가 입술에 묻은 양념을 핥더니 다시 쏘옥 들어갔다.

쟤는 별게 다 예쁘네. 나는 아무생각없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때, 공준이 집었던 피망이 툭 하고 식탁에 떨어졌다.

"......."

그는 얼음같이 굳은 표정으로 피망을 보더니 다시 나를 쳐다봤다.

왜 내 눈치를 보는 건데?

나는 터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억누르며 티슈를 뽑아 떨어진 피망을 집으며 말했다.

"내가 쳐다보고 있어서 먹기가 불편하지? 닌 소파에 가 있을 테니까 먹고..."

"안 불편해요!"

공준은 서둘러 말하며 일어나려는 나를 말렸다.

"가지 말아요. 옆에...있어 주세요."

"아...그럼 그럴게."

그가 너무 절실하게 말해서 나는 어색하게 목 뒤를 긁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욕실에서 목욕물이 준비됐다는 알람 소리가 울렸다. 이 맨션에 설치된 욕조는 일본제였는데 욕조에 물이 차면 알람이 울렸고 욕조의 물이 식으면 가스로 다시 데울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물을 받고도 자주 깜빡하는 나에게 있어 꽤 편리한 기능이었다.

"욕조에 물 받아놨으니까 밥 먹고 씻어."

"네."

공준은 메이크업만 지우고 온 듯 머리는 강한 바람에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왁스로 빳빳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와 달리 이마를 이렇게 드러내니 예뻐 보였다.
나는 손을 뻗어 식사를 하느라 살짝 숙인 그의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내린 머리도 예쁜데 이것도 예쁘네."

그러자 공준은 off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그는 계속 움직이지 않았는데 밥을 뜬 젓가락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틈을 노려 훤칠한 그의 이마에 회심의 딱밤을 날렸다.

"아! 왜...때려요?"

"그만 움직여서 밥 먹으라고. "

공준은 원망하는 표정으로 이마를 감싸며 나를 쳐다봤다.

아, 귀여워. 강아지 같아.







그 후 식사를 끝마친 공준이 그릇을 옮기려고 하길래 나는 그릇을 뺏고는 씻으라며 등을 밀었다.
갈아입을 옷과 바스 타월을 가지고 욕실과 이어진 세면실에 갔을 때 공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작은 셔츠 단추를 힘겹게 풀고 있었다.

"가만있어봐. 내가 해줄게."

나는 얼른 옷을 내려놓고 단추를 풀며 물었다.

"너 씻는 거 도와줄까?"

손이 이런데 아무래도 혼자 씻기에는 힘들어 보여 어떤 의도도 없이 한 말이었다.
공준은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꽤 고민을 하는 듯 얼굴 위로 수많은 표정이 스쳐갔다. 그 사이 나는 속으로 웃으며 단추를 풀고 셔츠를 넓고 각이 진 어깨 뒤로 넘겨벗겼다. 벗은 그의 상반신과 내 팔이 닿았다.

그 다음 바지 벨트에 손을 대자 공준은 놀란 토끼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특별히 내 손을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 후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려고 하자 공준이 얼른 내 손을 잡았다.

"응?"

"여기서부터는 제가 할 수 있어요."

공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욕조에 푹 담그고 쉬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고. 응?"

"네"

“아, 잠깐만.”

나는 얼른 두툼한 비닐봉투를 찾아와 붕대에 감긴 손을 넣고 묶었다.

“물에 젖을까봐. 괜찮지?“

”네.“

이 상황이 재밌는지 공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깁스용 방수커버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 그런게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 씻어.”

나는 그가 벗은 셔츠를 들고 나갔다. 얼마 안 있어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이더니 물소리가 들렸다.
옷걸이에 셔츠를 걸고 설거지를 하려고 할 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손이 저러니 머리감을 때 불편하지 않을까.

나는 서둘러 욕실에 가서 노크를 했다.

"준아, 너 괜찮아?"

대답이 없어 재차 물었지만 욕실 너머로는 물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그의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뿌옇게 서린 김 속에서 공준은 샤워기를 벽에 꽂은 채 한 손으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말랐지만 운동으로 탄탄한 몸이 한눈에 들아왔다. 욕실 문이 열리면서 찬 공기를 느꼈는지 그가 뒤를 돌아봤다. 공준은 얼굴에 묻은 물방울을 손으로 훔쳐내리며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손 불편하잖아. 머리는 내가 감겨줄게."

"아...."

나는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감기지? 이렇게 서서? 얘는 나보다 큰데 내가 까치발을 해야 하나.

"욕조 안에 들어갈래? 그게 쉬울 것 같아."

공준은 순순히 욕조 안에 들어갔다. 우리 집 욕조는 꽤 큰 편인데 공준이 들어가자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뒤로 누워봐."

그는 고분고분 말을 들으며 목을 뒤로 꺾었다.
나는 평소 헤어샵에서 받던 것을 떠올리며 샤워기를 들어 조심스레 그의 머리를 적셨다. 살면서 루피 외에 남의 머리를 감겨본 것은 처음이었다.
야무지지 못한 손으로 딱딱하게 굳은 헤어왁스를 전부 없애기까지 세 번의 샴푸를 해야 했다. 컨디셔너를 바르고 마지막으로 머리를 헹구면서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대답을 못 들었는데. 손은 어떻게 하다가 다쳤어? "

내 질문에 공준이 감았던 눈을 떴다.
젖은 머리를 전부 넘기고 누운 채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어...그러니까. 꽤 섹시했다.

위험한데? 신인 때부터 잡지를 가득 채운 이유가 있었군.

".... 부주의하게 컵을 깨트렸어요."

"컵? 언제? 촬영장에서?"

대체 어떻게 깨트렸길래 손 전체를 붕대로 감고 있는 건지. 나는 욕조 밖에 놓인 그의 손을 쳐다봤다. 마른 수건에 손을 닦고 그의 붕대에 손을 얹자 그가 움찔거리며 손을 빼려고 했다.

"가만있어 봐. 상처가 꽤 큰 거 같은데... 아파?"

"안 아파요. 거의 다 나았어요."

"......"

갑자기 내 시선을 피하는 공준을 보니 석연치 않았다.

이상해.

그 순간 왜인지 모르지만 그와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전화를 끊기 전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때 공준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그 소리가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공준의 표정을 보니 그건 나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그 날밤이야? 나와 전화할 때?"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눈을 피하며 손을 빼려고 했다.

맞네.

"미쳤어?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아...."

나는 흥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다친 그의 손을 힘을 줘 잡고 말았다. 고통에 찡그린 공준의 얼굴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미안."

그러자 공준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괜찮아요."

나는 몸을 일으킨 후 이마에 손을 얹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 없이 한 말에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가 나 때문에 마음도 몸도 다쳤다.
나이가 더 많으면 뭐해. 질투 때문에 철없이 행동한 대가를 왜 그가 치뤄야 하지?

"형...저한테 화났어요?"

"너한테 화나지 않았어. 나한테 화가 났지."

나는 욕조 옆에 놓여있는 죄없는 컨디셔너통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왜요?"

"네가 다친 게 나 때문이라서. 내가 그런 말만 안했.."

"이제 말하지 말아요. 아까 사과했잖아요."

"아냐. 정말."

바보같이 널 의심하고 멍청이같이 널 시험했어.

나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고개를 들자 공준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나머지는 네가 해."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나는 몸을 돌려 욕실 밖으로 나갔다.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손에 흉터나 남느냐 안 남느냐였다.
손바닥이라면 크게 눈에 뜨일 일은 없겠지만 손등이라면?
나는 촬영 중 몇 번 베인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흉터 없이 깨끗하게 나았다. 하지만 상처의 크기가 달랐다. 저 정도로 감싼 거라면 분명 꿰맨 거겠지..

하아... 컵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들끊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는 의사 지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밖으로 나가려고 거실로 이어지는 문을 연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돌려지더니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눈 앞에 공준의 입술이 내려왔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뺐지만 공준의 손이 뒤통수를 누르고 있어 그대로 입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말을 하려고 벌린 입속에 두툼한 그의 혀가 침범했다.
목소리를 누르며 입안을 헤집더니 끈질기게 내 혀를 찾아 엉겨 붙었다.
얼마 동안은 숨이 막히는 것도 모르고 그의 혀가 주는 자극적인 느낌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는 다급했다.

뒤로 넘어가는 느낌에 놀라 그의 어깨를 잡았지만 맺힌 물기에 손이 미끄러졌다.
나는 언제 왔는지도 모른 채 소파 위로 떨어지듯 눕혀졌다. 그 사이에도 공준은 입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놀라 허우적거리는 손이 눈 앞의 벗은 몸을 스쳤다.

그가 잠깐 입술을 뗐을 때 나는 정신없이 헐떡이며 숨을 들이켰다. 쪼그라든 폐에 공기가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공준을 쳐다보자 그가 다시 입술을 부딪혀왔다.

격한 움직임에 옷이 말려 올라갔고 피부에 그의 맨살이 닿았다. 무엇보다 뜨거운 체온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잠깐... 잠... 깐 만.

"야, 공준!"

나는 겨우 입을 떼고 젖은 어깨를 밀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둘 사이에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무릎을 세웠다.

"가지 말아요!"

화가 조금 섞인 목소리로 공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뭐?"

"형 이렇게 등 돌리고 가는 모습. 이젠 보고 싶지 않아요. 정말...나에게는 힘들어요."

내가 등을 돌렸다고? 너에게?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어두웠다.

"난 이제 형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늘 나를 두고 멀리 가버려요. 한걸음 다가가면 두 걸음 멀어지고 결국엔 신기루같이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잠.. 깐만...이 손 좀 놔 봐."

나는 어깨를 눌러오는 그의 손을 두드렸다.
하지만 공준은 몸을 내리더니 더욱 힘을 줘 나를 안았다. 정신없는 사이 세웠던 무릎이 어느 새 양 옆으로 벌어지고 공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흉통에 가해진 압박에 바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안 가, 안 가니까. 너 감기 걸려, 바보야!"

공준은 내 목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커다란 개에게 깔려진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젖고 뜨겁고...발가벗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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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저
지음비
산하령
공준장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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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게 여기까지임. 현생 사느라 이어서 쓰지는 못할거 같다.
지금까지 읽어줘서 고마웠다 지음비들아 언제어디서든 늘 행복해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