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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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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영화 산업의 큰 손 투자자고 마치다는 늦은 나이에 데뷔한 신인 배우였음. 길거리 캐스팅이어서 첫 영화를 찍은 뒤에 길 잃은 양이 되어버린 상태. 회사도 없지 매니저도 없지... 길거리 캐스팅도 회사 차원에서 뽑힌 거라면 그 회사랑 계약하는 게 당연하지만 마치다는 영화 감독한테 픽 당한 케이스라 그 영화 끝나고 나서 길이 딱 막혀버림.


큰 배역도 아니었고 처음 하는 연기라 뭐 박수받을 정도의 존재감도 없어서 그냥 배우는 내 길이 아니구나, 한 번 경험해 본 걸로 족하다. 하며 원래 하던 술집 알바로만 근근히 먹고 살게 될듯. 근데 그 술집에 어느날 노부가 손님으로 온 거야.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길래 마치다는 좀 그런 류의 손님인가 했음. 가끔 남색있는 아저씨들이 자기 꼬시려고 전화번호 주고 술 주고 그러거든. 그래서 최대한 그쪽 테이블 주문 안 받으려 피하는데 대놓고 손으로 콕 찍어서 이리 오라고 하면 좋겠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혹시 배우아니에요?"
"네? 아... 배우는 아니고..."


영화 한 편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말하니 노부 얼굴에 화색이 도는거야. 어쩐지 낯이 익었다면서.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겠지. 투잡하는 신인 배우들을 수두룩하게 봐왔지만 마치다는 뭔가 배우 일에 미련도 없어 보이고 그러다보니 자기한테 잘 보이려 애쓰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을 거임.


"내년에 올릴 영화에 내가 투자하고 있거든요? 거기 오디션 한 번 보지 않을래요? 영화 한 편 찍고 그만두는 거 아깝잖아. 잘생겼는데."


그 말에 마치다는 좀 혹했겠지. 사실 영화 찍을 때 무척 재밌기도 했고 화면 속에 내가 나온다는 게 싫지 않았거든. 다만 길이 만들어지지 않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을뿐. 뭐 역할 하나 안겨 준다는것도 아니고 오디션 보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해서 덥석 승낙하겠지.


자연스럽게 연락처 교환하고 며칠 메신저로 안부 주고받는데 노부가 그 영화 감독이랑 점심 약속이 있다고 같이 먹지 않겠냐고 하는 거... 마치다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는데 어차피 곧 오디션 볼 거 미리 얼굴 튼다 생각하고 같이 먹자고 재차 권유하는 거야. 결국 노부랑 영화감독이랑 마치다랑 셋이 점심 먹게 되는데 얘기가 점점 마치다에게 배역 하나 주는 쪽으로 흐를 것 같다. 노부가 말을 어찌나 잘 하는지 옥장판도 팔 기세였을듯. 얼떨결에 주조연급 배역 하나 얻게 된 마치다인데 연기를 배워본 적이 있나... 뭐 피드백 받을 동료 배우들이 있나... 눈 앞이 깜깜한 거야.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못할 것 같다고 연락했더니 노부가 진짜 바보 같다면서 마치다를 자기 집으로 부르면 좋겠다. 연기 가르쳐주는 지인 소개해준다고.


그렇게 과외 받듯 연기 선생님하고 매일 두 시간씩 대사 연습하면서 시간 보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오디션 권유까진 그렇다 치고, 감독이랑 식사하게 해주고 큰 배역까지 맡게 해주고 이젠 연기 지도까지...? 연기 지도에 대한 비용은?


그래서 마치다가 먼저 넌지시 말을 꺼냈을 거임. 너무 많은 걸 주시는 거 아니냐고. 연기 지도 비용은 지불할테니 금액 알려달라면서. 그리고 이런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근데 노부한테서 꼬박 하루 동안 답장이 없다가 다음날 밤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 거야.


"나 지금 술 마시는데 나올래요? 혼자 먹기 심심하네."
"아... 전 좀 피곤해서요..."
"피곤해도... 당신 배우 앞 길 열어준 사람 술친구는 해줄 수 있지 않아요? 감사하다던 말은 다 거짓말인가보네."


여기서 딱 느꼈겠지. 이사람은 갑, 나는 을이구나. 피할 수 없는 분위기에 결국 마치다는 옷을 주워입고 호텔 펍으로 갈듯. 어색하게 노부가 묻는 말에만 꼬박꼬박 대답이나 하다가 갑자기 허벅지 주무르는 손길에 놀라 다리 확 오므리는 마치다겠지. 노부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음.


"비용 지불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린애 아니니까 굳이 직설적으로 말 안 해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그런... 저는 그런 거라면 하고 싶지 않아요. 영화에서도 빠질게요..."


그 말에 노부가 처음으로 인상 구길 것 같다. 사람이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냐고. 내가 당신 거기에 꽂아줬는데 갑자기 못 하겠다고 내빼면 내가 중간에서 뭐가 되며... 당신 배역을 할 새로운 사람 뽑아서 가르치려면 촬영이 통째로 지연 되는데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생각이냐고. 마치다는 머릿속이 하얘졌을 거임. 아무말 못하고 얼버무리는 사이 노부 손이 다시 허벅지로 올라왔겠지. 이번엔 아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연한 허벅지 안쪽 살을 주무르는 악력에 고개가 숙여짐.


그렇게 노부 따라 호텔방으로 올라가는데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도 아니고 이 사람 이용해서 돈 좀 벌려는 속셈도 아니고 그냥 '여러 사람에게 피해 주기 싫어서'라는 맹한 마음 하나로 깔리는 마치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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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