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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5 12:17
  원래 개 키워야지! 해서 계획적으로 입양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보더콜리 진짜 대형견 중에서도 활동량 많은 개인데 그거 원래 키우던 주인이 못 감당하고 덩치도 자꾸 커지니까 유기한 걸로... 우성이 잠깐 개 산책 시켜주는 아르바이트 하는데 어느날 세 시간 부탁한다고 맡겨놨던 사람이 시간 다 되었는데도 찾으러 안 오는 거지. 우성이는 멀거니 만나기로 했던 공원에서 한참 기다리다가 자기도 계속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공원 관리인한테도 메모 남겨두고 집에 왔는데 태섭은 눈치가 좀 빠르니까 사정 대강 듣고서는 얘한테 버린 거 알고 바로 눈치챔. 그리고 머리 팍팍 침. 아니 본인들도 지금 돈 없고 여유 없는 유학생들인데 이렇게 큰 개를 어떻게 책임져... 근데 보호소에 보내기에는 개가 영리해서 자기 버려진 거 벌써 알고 또 가정에 있을 때도 학대당했는지 주눅들어서 움츠리고 있는 게 영 불쌍함.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녁 되어서 집에 들어온 태웅이랑 백호랑도 의논해서 일단 임보하기로 했겠지. 그래도 오래 키울 생각은 없었음. 그렇잖아 이렇게 큰 개를 어떻게 키워... 손 가는 게 어지간한 수준이 아닐텐데. 거기다가 여기저기 주위에 물어보니까 얘 보더콜리라고 원래는 산에서 양 치면서 사는 종이래. 도무지 남자 넷이 살아서 그렇잖아도 좁아터진 이 도시 좁은 집에서 키울 개가 아닌 거지. 개가 우울증 안 걸리면 다행이게.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보리꼬리가 이 집에서 엄청 행복하게 평생 살게 되는 거임. 
 보더콜리 주인이 멍청하면 그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강아지인데 여기엔 영리한 주인 대신 양떼 한 부대에 버금가는 체력의 농선들이 있어서 대강 보더콜리의 양몰이 욕구를 만족시키는 거임ㅇㅇ 아침에 백호 트레이닝 할 때 뛰고 태웅이 자전거 라이딩 할 때 옆에서 뛰고 점심 먹고 태섭이랑 뛰고 우성이 하교하면 원반? 농구공? 던지기 하면서 뛰고 저녁에 장보러 가면서 또 뛰고... 애들이 바보라서 오히려 강아지를 원없이 뛰어놀게 함 그 어느 누구도 강아지의 적절한 운동량을 알지 못해서 그냥 지들 운동할 때마다 데려가서 같이 뜀 거기다 바보니까 얘네가 개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가 얘네를 양처럼 돌봄... 태웅이 아침에 일어나서 졸고 있으면 화장실에 몰고 가고 백호가 과자 넘 많이 먹고 있으면 짖어서 못 먹게 하고 태섭이가 밥 주는 거 잊으면 밥 달라고 보채고 우성이가 장보러 나갔다가 야외코트에서 한눈 팔고서 농놀하면 마트로 몰고 감. 덕분에 강아지 집에 왔을 때 우울하고 초라하던 꼴은 어디 갔는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밤 되면 매일 꿀잠자는 해피독 됨. 이웃집에 불 났을 때 얘가 왕왕 크게 짖어서 미국조랑 옆집까지 다 깨워서 사람 구한 적도 있고 애들도 정 들어서 이제 어디 보내지도 못함 

 그래서 결국 애들 그대로 미국에서 느바 가고 각자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된 뒤에도 잠깐 양육권 분쟁 일어났다가 누구 한 명이 키우게 된 후에도 강아지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서로 얼굴 보고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강아지가 백호네 이웃집 잘생긴 멈머랑 눈맞아서 새끼 낳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 일어나기도 하고(우성이가 우리 딸 꼬신 놈팽이가 누구냐며 날뛰었을 듯) 새끼들은 또 네 사람이랑 친한 믿을만한 동료 선수들한테 입양되어서 이걸로 이야깃거리가 되어 나중에는 강아지 관련 다큐에도 나왔으면 좋겠고ㅇㅇ 그렇게 행복하게 미국조가 느바 업계 유명한 강아지 집안의 인간 아빠들이 되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