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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00:04


삼각관계인듯 아닌듯 한 그런거?






눈을 뜸과 동시에 후루룩 쏟아지는 기억에 정대만은 자신이 주마등을 겪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처음 농구공을 잡았을 때부터 시작해서 무석중 mvp에 걸쳐 잊고 싶은 기억을 이어 다시 빛나게 된 순간까지. 그 과정에 항상 있었던 송태섭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만나고 싸우고 그러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러다 어쩌다 보니 몸 섞다가 개같이 파멸. 

여기서 영상이 끝나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영상은 어젯밤 자신의 위에서 그르렁거리며 허리를 털어대던 송태섭으로 끝나버렸다. 

깨질 것 같던 머리가 진짜 깨져버린 건지 정대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다 다리가 꼬여 그대로 주저 앉았다. 적나라하게 흔적이 남은 몸에서 주루룩 흐르는 액체에 정대만은 식은땀을 흘렸다.

미쳤구나. 

네 글자로 축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다시 너랑 자면 삭발한다 진짜.
정대만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
언제는 내가 책임 못 질 말을 했냐?

연애지사, 어떻게 이렇게 좋아질 수 있을까가 만연한 만큼 어떻게 저 새끼를 좋아했는지 모를 만큼 갈라서는 일도 만연하다. 그런 일이 정대만이라고 없으랴.

유명해질수록 쏟아지는 주변의 관심과 부모님의 기대. 송태섭의 경우는 어머니랑 특히나 각별한 거 같으니 맞선 자리를 거절 못 하는 것도 이해한다. 오히려 이 상황의 악당은 정대만이었으니까. 화목한 가정 앞의 악당 출현. 평화를 파괴하는 악당은 퇴치되거나 스스로 물러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정대만은 후자를 택했다. 최후의 날은 한 번으로 충분하니까.

그런데 지금 정대만은 또 똑같은 짓을 해버렸다. 집에 가겠다는 송태섭 붙잡아서 강제로 입술 맞추고 허리 붙잡고 넣어 달라고 울고. 술은 잔뜩 마셔서는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는데 그걸 또 송태섭은 받아줬다. 그것도 밤새. 만족할 때까지.

결혼한다는 새끼가 진짜 미쳤나. 

정대만은 이를 악물었다. 이건 받아준 송태섭에게도 어느 정도 죄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술 취해서 그렇다 쳐. 청첩장 가지고 온 놈이 받아주면 어떻게 하냐고. 힘도 센 놈이 이번에는 아랫니 두 개 정도 갈아버리고 나갔어야지. 그걸 왜 받아주냐고. 

한탄과 자괴와 당혹이 섞여 머리가 팽팽 도는 사이 샤워실에서 물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당황한 정대만은 대충 널부러진 옷들은 되는대로 끼워 입고 샤워실 문이 열리기 직전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인생에 좆됐다 싶은 일이 몇 번 있었지만 이건 진짜 좇된 상황이었다. 

*

“후드티 돌려줘요”

송태섭은 자연스레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고 정대만은 혀를 씹었다.

정대만이 코치로 부임하는 해에 송태섭이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태평양이 둘 사이를 갈라둘 때가 좋았지 이제는 둘 사이를 놓인 건 농구 코트와 벤치 사이의 얇은 흰 선 하나뿐이었다. 

“무...큽...무슨 후드티?”
“아~ 이렇게 나오겠다?”

모른 척 해봤더니 송태섭이 피식 웃었다. 만취한 정대만을 받아준 송태섭도 만취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 술 안 마시는 거 알잖아요”

떠오르는 전날 밤 기억에 또 새빨개진 정대만의 귓불을 송태섭이 엄지와 검지로 만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야릇한 느낌에 정대만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자 송태섭은 만족한 듯 소리내어 웃더니 코트로 들어갔다. 

어머니 근처에 있고 싶어서 국내 리그를 선택했다는 놈이 지 엄마 등에 칼 꽂는 짓을 웃으면서 하니 정대만은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주제파악 못 하는 정대만의 심장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서른에도 사춘기가 오는 건가. 송태섭의 정보가 적힌 카르텔로 머리를 몇 번이나 때리고 나서야 정대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송태섭 선수 진짜 섹시하지 않아요?”
“가끔 땀 닦을 때 유니폼 들어 올리는 거 진짜 극악무도해”
“그러면서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는 거까지 진짜 범죄다”
“그러니까요. 살다 살다 경기 영상이 아니라 농구 선수 직캠 영상이 풀로 뜨더라니까요”
“저희 구단 지금 소문났잖아요. 얼굴로 뽑는다고”

점심을 먹던 데스크 직원들의 시선은 송태섭뿐만 아니라 정대만에게도 꽂혔다. 그리고 한 사람 더.

“대만군, 밥 이거밖에 안 먹어요?”
“호여라....”
“왜요? 또 무슨 일 있어요?”

양호열은 살풋 웃으며 정대만 앞자리에 식판을 내렸다. 

백호의 부상 이후 뭐라도 해보겠다던 양호열은 공부에 매진했다. 원래도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었는지 금세 뒤처졌던 공부량을 따라잡더니 대학에 들어가고 물리치료사의 길을 걸었다. 정대만도 맞아봐서 알지만 양호열은 힘도 좋고 요령도 원래 좋다 보니 자격증도 곧잘 따고 경력도 쌓더니만 지금 이 구단에서 1년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  

의료용 가운을 입은 양호열과 단정하게 팀 후드를 입은 정대만은 이 팀의 유명인사였다. 

“정 코치님은 양 선생님이랑 있을 때 귀엽지 않아요?”
“붕 쌤도 그렇게 느꼈어요?”
“와...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잘생긴 외모도 외모지만 둘이 항상 붙어다녀서. 잘생김 + 잘생김이었다. 게다가 항상 듬직하고 멋진 형 느낌의 정대만이 이상하게 양호열 앞에서는 어려졌다. 양호열은 모두에게 다정했지만 미묘하게 선을 긋고 있는 느낌을 주었는데 그 선이 정대만을 대할 때만은 보이지 않았다. 

“아, 대만군 입가에 뭐 묻었어요”
“응? 뭐?”
“이거...”

손을 뻗어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닦더니 그 손을 자기 입으로 쪽 빠는 지금 같은 일들이 많았다는 이 말이다. 식당 곳곳에서 헉 하며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지만 양호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말해주지”
“됐어요. 소시지 먹을래요?”

그러면서 이번엔 친히 소시지를 건넸고 정대만은 그걸 또 아기새처럼 받아먹었다. 

누군가 용감하게 둘의 관계를 물은 적이 있었다. 정대만은 양호열이 같은 고교 출신이기도 하고 지금은 친한 친구라 그런다고 했지만 양호열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직원들의 망상력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왜 어제 회식 안 왔어ㅠ”
“미안해요.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있었어요?”
“뭐...별일은 아니고...”

잠시 고민한 정대만은 말을 돌렸다. 전날 밤 술에 꽐라되어서 본인이 찼던 전 애인이랑 호텔에서 끈적하게 몸을 섞었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도 달려든 쪽이 정대만이니까. 게다가 정대만에게 호열이는 어디까지나 그냥 친구였다. 누구에게나 허물 없이 대하지만 본인 나름의 기준이 있는 정대만이었다. 

“나 이따가 허리 마사지 좀 해줘”
“허리요? 삐었어요?”
“비슷해.”
“그럼 3시쯤에 물리치료실로 와요. 그때 비니까”
“역시 너밖에 없다”

정대만의 입가가 호를 그리며 웃었고 양호열 역시 웃었다. 화기애애하고 단란한 분위기에 식당 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둘에게로 향했다. 물론 그 옆을 지나던 송태섭의 시선 역시. 

*

점심 후 가벼운 스트레칭과 훈련이 끝나고 모의 시합마저 끝내니 3시 10분이었다. 정대만은 끙 소리를 삼키며 허리를 부여잡았다. 위에서 찍어 내렸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정대만의 허리가 두 개로 박살 나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그런 걸 좋다고 재촉하던 자신의 입을 찰싹 소리 나게 한 대 때린 후 정대만은 걸음을 옮겼고 그 움직임에 송태섭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구단 내 물리 치료실을 코치가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정대만은 그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정대만이 선수 생활을 일찍 끝내게 된 이유는 무릎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대만은 그걸 탓하거나 우울해하지는 않았다. 화려한 전성기 내내 단 한 번도 아프지 않고 버텨준 무릎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 뛸 수도 있지만 더 뛰게 되면 다시는 농구공을 잡고 서 있을 수도 없을 거라는 말에 전향했지만 이미 무릎을 한계치까지 사용했는지 여전히 쑤시거나 아픈 날이 있었다. 그럴 때 친구 찬스라며 으레 양호열을 찾아가곤 했다. 

치료실에서 책을 읽다가 웃으며 정대만을 맞이했던 양호열의 웃음기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치료를 위해서 윗옷을 벗은 정대만의 등은 누가 봐도 정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물린 자국이 있는 뒷덜미나 허리에 남아있는 강한 손자국. 양호열이 자신의 등 뒤를 빤히 보자 정대만 역시 시선을 뒤로 했다.

“왜? 뭐 묻었어?”
“아...아뇨. 일단 누워요.”

정대만은 찜찜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웠다. 눕고 나니 더 잘 보이는 흔적들에 양호열은 착잡해졌다. 살살 손을 대니 정대만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제 운동했어요?”

잠시 고민한 정대만은 그렇다고 했다. 뭐 침대에서 한 것도 운동은 운동이니까. 양호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치료실 침대 위로 올라가 정대만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그리고 바지를 살짝 더 내렸다. 

“으아 뭐야?”
“허리 상태 봐야 해서요”

예상대로 엉덩이골 바로 위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양호열은 쓴웃음을 삼켰다. 대신 천천히 몸을 세우고 두 손에 힘을 주며 허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정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는 살짝 쉬어있었다. 그제야 양호열은 오전부터 정대만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져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으으..하는 앓는 소리에 야릇함이 섞인 것 같아 양호열의 귓가가 붉어졌다. 온 정신을 이건 치료다 이건 치료다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송태섭이 물리 치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후드티 언제 줄 건데요”

누워서 앓는 소리를 내던 정대만의 고개가 번쩍 돌아갔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와 벽에 비딱하게 기댄 송태섭은 못마땅한 듯 정대만을 내려다보았다. 

“준다고! 내일 주면 되잖아!”
“오늘 집으로 갈게요. 그때 줘요”
“네가 왜 우리 집에 오는데”
“가면 안돼요? 우리 어제-”

송태섭의 말은 정대만의 비명으로 끊어졌다. 어찌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는지 지나가던 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와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양호열은 괜찮다고 어색하게 웃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직원을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귀청 떨어지겠네. 어제 당한 건 나예요. 엄밀히 말하면”

한 쪽 귀를 손바닥으로 꾸욱 누르며 송태섭이 인상을 썼다. 정대만의 상반신은 눈에 띄게 붉게 물들었다. 

“...아니야”
“네? 뭐가요”
“내가 착각했어.”

정대만의 말에 송태섭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농구에는 항상 진심이면서 사랑 앞에서는 뒤꽁무니를 빼기 일수인 이 남자가 이번에는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뭘 착각했는데요?”

 비딱한 눈썹만큼 말에도 가시가 돋쳤다. 정대만은 그 목소리에 몸을 움츠리더니 주섬주섬 침대에서 내려와 양호열 뒤에 가서 섰다. 

“얘랑 너랑 착각했다고”

양호열과 송태섭 입에서 동시에 “네?!!” 라는 소리가 나왔다. 당황한 양호열의 목덜미가 붉어지는 것을 본 송태섭의 눈에 불이 일었다. 누가 봐도 정대만에게 흑심 품고 있는 놈인데 거기에 불을 지른 게 틀림없었다. 정대만은 말 한마디로 두 명의 심장에 불을 지르는 재주가 있었다.

“나랑 쟤랑 착각해서 나랑 잤다고?”
“그래! 키도 비슷하고! 몸...몸도 비슷하고!”
“장난치지마요. 맞기 싫으면”
“자...장난 아니야!”

정대만은 호기를 부리면서도 무서운지 몸을 움츠렸다. 송태섭의 주먹에 핏줄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정대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상황에 회피로를 만들어야 했다. 다시는 송태섭이 자신에게 미련 갖지 않을 만큼 강한 거...

“나 양호열 좋아한다 됐냐?!”

일순의 정적은 양호열이 딸꾹질을 시작할 때까지 방안을 얼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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