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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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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령 콘서트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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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중 과일로 식사를 하던 장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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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연하남의 플러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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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마셨어?”

친구이자 매니저는 어질러진 테이블을 보고 물었다.

“공준.”

“걔는 체력도 좋아. 젊어서 그런가?”

저기요, 한 살 차이인데요.라는 말은 머릿속에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매니저는 어제 남은 사과를 집어먹으며 테이블을 정리했다.

“사과꽃이네? 이건 누가 준거야? 이것도 공준이야?”

“사과꽃인 건 어떻게 알아? 흔한 꽃이야?”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꽃인가?

“어휴, 너 왜 이렇게 둔해? 사과꽃이 네 탄생화잖아.”

“나?”

“생일 때쯤 네 sns에 날아다니는 꽃이 사과꽃인 거 몰랐어? “

“아.... 그거 벚꽃인 줄 알았어.”

“그럼 우리 직원 실력이 별로네. 옛날부터 생각했는데 왜 안 바꾸는 거지? 역시 낙하산이라 못 바꾸나?”


매니저는 등을 돌려 방을 비우기 위해 짐을 꾸렸다.
오늘 공준은 다른 도시로 떠나지만 나는 광고 촬영차 호텔만 옮기고 며칠 이 지역에 머물기로 했다.

나는 멍한 상태로 사과꽃을 쳐다봤다.


’예쁘죠?‘

’응.....? 어; 무슨 꽃이야?‘

’사과꽃이요.‘

’사과꽃...?특이하네.‘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요.‘



....그런거였나.



잠을 깨기 위해 마시고 있던 커피가 유독 쓰게 느껴졌다.







공준은 새벽녘이 다 돼서야 자기방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몇 번이고 달래서야.
키스를 하고 나서 아니, 일방적으로 당하고 난 후 나는 경계하듯 몸을 뒤로 빼고 입을 가린 채 눈앞의 공준을 쳐다봤다. 입술을 가린건 두번째 공격이 들어올것에 대비해서였다.
손바닥에 닿는 내 입술은 두사람의 타액에 젖어 축축했다.
머릿속에는 누군가 확성기를 들고 사건 발생! 사건 발생! 이게 무슨 일이야?!! 라고 광광 소리를 치고 다녔다.

공준은 말 잘 듣는 유순한 개처럼 두 손을 내 무릎에 얹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순진한 저 눈빛이 발동이 걸리면 제어가 불가능해진다는 걸 이젠 알아서 두려워졌다.

“형, 우리 연애해요.”

나는 입을 막은 채 거절의 뜻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뇌가 흔들릴 정도로 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 빠르게 흔들었다.
그러자 금세 공준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또 울어? 울고싶은 쪽은 난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공준의 한쪽 손이 내 어깨를 잡고 있었다. 내 머릿 속은 코드 레드의 발령음이 시끄럽게 울렸다.

왜, 왜, 또 왜?! 너무 가깝게 붙지 말라고!

“정말 안돼요?”

나는 빠르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너무 빨라 이번엔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내 어깨를 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부러뜨릴거야??? 그래, 차라리 어깨 하나를 내주고 정조를 지킬까.......

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 하냐.

순간 공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나... 싫어요?”

이렇게 눈물이 가득해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다니. 반칙이다. 거기다 이런 질문은.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킬 것이 필요했다.
나는 테이블에 남아있던 와인을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미지근한 와인이 넘어가는 느낌이 묵직했다. 어제 맛있다고 느꼈던 와인은 온통 쓴만맛이 남았다.


널 싫어하냐고?

그 물음에 답을 하자면 사실은 싫지 않다. 그래서 문제였다.
고생스러웠던 한 여름의 촬영은 이 아이와 함께해서 크게 힘들지 않았다.
상대 파트너를 잘못 만나면 케미는 물론 촬영 분위기도 죽어 작품에 영향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공준은 정말 잘 맞는 파트너였다.

이 아이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재미나고 괴롭히고 싶고(응?) 더 같이 놀고 싶다. 둘이 있을 때는 시간이 가는 걸 잊을 정도이다. 그만큼 죽이 잘 맞는다. 그렇다고해서 이것만으로 연애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공준 같은 느낌이 드는 친구를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열 명쯤 나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애들하고 키스를 한다면... 지금처럼 몸에 반응이 올까?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한껏 눈썹을 내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 공준을 쳐다보는 것 밖에.

한꺼번에 위장에 쏟았던 와인의 취기에 몸이 더워졌다.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은 진정이 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만지듯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에 공준이 눈을 감자 맺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눈물을 손으로 훑었다.

그와 나 사이의 일은 오랜만에 마신 술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여자를 좋아해. 지금까지 여자만 사귀어왔고. 공준과는 드라마에서 정이 든 것 뿐이야. 그 뿐이야.

공준의 눈물로 꺾일 것 같은 마음 한 구석에서 정신차리라는 매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짜증이 치솟았다.
내가 이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찝찝할 것 같았다. 그럼 테스트를 해보자.

“미안, 잠깐 확인해 볼게 있어.”

나는 두 손으로 공준의 얼굴을 잡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남은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

말하지만 이것은 실험이었다. 내가 그의 키스에 몸이 반응한 것이 우연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에 성공한다면 공준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안한데 역시 나는 이성애자야. 준아,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존중해. 괜찮아. 취향은 다양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우리 둘 사이에 있던 일은 술이 과했다며 넘겨야지 했는데.

그랬는데....

맞닿은 입술의 감촉이 너무 좋다.

어떡해.

나 얘 좋아하나 봐.

내가 입을 맞추자 놀란 공준의 눈이 번쩍 커졌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눈물을 털어내더니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를 잡고는 확 끌어당겼다.

나는 공준의 따뜻한 입술이 부드럽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닫혀있던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밀고 들어와 내 혀를 감았다.

허? 내가 리드하려고 했는데!
가볍게 하려던 입맞춤이 농밀한 키스가 되어 두 사람의 혀와 뜨거운 숨결이 얽혔다.
공준은 내 허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잡아당겨 틈 없이 몸을 붙여왔다.

키스가 끝났을 때 어느 새 내 몸은 의자에서 내려와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놓지 않을 것처럼 두 팔로 꽉 안고 있었다. 가쁜 숨을 쉬며 그 아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이 냄새는 향수인가... 샴푸? 그의 땀 냄새에 섞여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것이 평소에 신경 쓰지 않은 것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채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래... 연애해보자.”

말을 꺼내고보니 스스로가 우스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대로 미쳤어.

나는 말을 꺼내놓고 그를 똑바로 보기가 부끄러워 얼른 몸을 일으켰다.


좋아. 깔끔하게 인정하자.
내 성격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는 빠르다는 것이다. 평생을 좋아하던 농구를 부상으로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도 좌절하는 건 입원했을 때뿐, 퇴원하고서는 재활치료를 하며 무릎에 부담이 안 가는 스포츠를 찾았고 결국 찾아냈다.
인정을 하지 않으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데 불필요한 시간을 쓰며 스스로가 괴로울 뿐이었다.

그래. 나는 이 아이를 좋아한다.


“형!”

먹구름이 꼈던 하늘에 갑자기 햇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공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이건 목조르기 기술인가?

공준은 등 뒤에서 내 목을 껴안았다.

“정말이죠? 나... 보내려고 하는 말 아니죠?”

떨리는 그 아이의 몸이 생생히 전해져왔다.
나는 몸을 돌려 공준을 쳐다봤다.

“응. 거짓말 아니야.”

곁눈질로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네 방에 가. 너 오늘 샤먼으로 가잖아.”

공준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나는 그의 얼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잘 자고 잘 챙겨 먹어야 탈 안 나. 나도 쉬어야 하고.”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형, 가기 전에 잠깐만요.”

“응?”

공준이 다시 고개를 내려 입을 맞췄다. 벌써 세 번째라고 이 느낌이 익숙해지다니...
한참을 물고 빨고 하는 사이 내 옷 속으로 은근슬쩍 손을 밀어 넣는 공준의 손을 찰싹 때렸다.

“까분다.”

“꿈같아요. 근데 아픈 거 보니 꿈이 아니네요.”

공준은 맞아도 좋은지 빨개진 손을 잡고 헤헤거리며 웃었다. 울다 웃다니. 너 분명 거기에 털이,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꼭 받아요,형.”

“받을게.”

“마음... 안 바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아이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안 바뀌어. 싫어지면 모를까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좋다는 말을 에둘러 했다.
이런 감정 표현은 나에게 있어 발가벗고 공원을 뛰어다니는 것만큼 부끄러웠다.

공준은 환하게 웃으며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나를 껴안더니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룻밤 만에 바뀐 내 인생아....

나는 공준을 보내고 침대로 뛰어올라가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발광을 해댔다.
한참 헛발질을 하고 나서 씩씩대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자자. 우선 자야 돼. 자면 괜찮아.
머릿속에서는 여러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녔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잘한거지.

못한건가?

아냐... 잘한거야.

차라리 물릴까.

아니야, 그럼 또 울 텐데...


“야, 그만해. 나이가 몇인데 꽃점을 치고 있어?”

매니저가 내게 음료를 건네며 타박을 했다.
저 자식이. 내 나이가 모! 너랑 똑같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음이 우왕좌왕 사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데 대체 이걸 누구에게 상의할 수 있겠냐고.

꽃아... 네가 옆에서 커피나 쪽쪽 마시는 놈보다 훨씬 낫다.

나는 매니저의 지적에 그를 노려보고는 세고있던 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꽃에 남아있던 꽃잎을 마음속으로 세어봤다.

사귄다.. 안 사귄다.. 사귄다.. 안 사귄다..

안 사귄다.

음? 안 사귄다고...?

나는 얼른 마지막 꽃잎을 손으로 만져봤다. 혹시 꽃잎끼리 겹쳐있을까 싶었지만 마지막 꽃잎이었다.



...안 사귄다.


꽃점이 안 사귄다고 나왔다.

“피곤해서 정신이 나갔냐? 왜 애꿎은 꽃잎을 찢어?”

나는 소파 위에 올려있던 쿠션을 매니저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너 때문에 짜증나서! 화통을 삶아먹었어? 좀 조용히 해.”






[형, 뭐해요?]

[식사했어요?]

[난 아직 촬영 중이에요.]

촬영 현장으로 돌아간 공준은 틈이 날 때마다 문자를 보냈고 나는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답했다.

[휴식.]

[먹었어.]

[힘내.]


우연히 누가 보게 되더라도 평범한 대화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내가 문자를 입력하는 속도가 요즘 세대 젊은이(?) 답지 않게 현저히 늦어 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남자와의 연애. 그런 거 어떻게 하는 거지?

확실히 밖에서는 이성과 사귈 때보다는 편할지 모른다. 주변에서 우리를 보는 눈은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사이좋게 지내는 친한 선후배로 보겠지.

그리고 조심은 하겠지만 집에 오가기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공준과 나는 산하령의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스케줄이 서로의 집 근처에 있으면 호텔 대신 거기에 머물렀다.
나중에 공준은 자기가 스케줄 때문에 집을 비워도 그냥 쓰라며 도어록 비밀번호도 알려줬고, 나는 사양하지 않고 간간이 주인 없는 집에서 지낸 적도 몇 번 있었다.

물론 고마운 마음에 나도 공준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줬지만 그는 내가 있을 때만 머물렀고 아직 혼자 머문 적이 없었다.


이런 내용은 인터뷰 때도 흘렸던 이야기라 팬들도 알고 있었다. 마치 이런 걸 예상한 것처럼 미리 밑밥을 깔아놓은 것 같잖아!


지금 생각해 보면 공준은 그때 당시 이미 나를 좋아했을까?
나는 공준의 집에 머물 때 그가 편하다고 느껴 씻고 거의 알몸 상태로 나오거나 대충 가볍게 입고 편하게 돌아다녔는데.
알지 못한 사이 죄를 지었군.

그 때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울렸다.

[형, 너무 보고 싶어요.]

나는 그래,라고 입력하다가 지우고는 다시 썼다.

[나도.]

지금만큼은 나도 공준이 보고싶은게 사실이었다.






그 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얼마 후 명품 브랜드 쇼에서였다.


포토월에서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고 있는 공준을 봤다. 감색 테일러드 재킷을 걸친 그는 제법 멋있었다. 공준은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쉬에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빽빽한 군중들 사이를 지나면서 나는 그의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뒤통수가 뜨거웠다. 며칠 만에 우리들의 사정은 180도로 바뀌어서 그런지 왠지 그를 보기가 어색했다.
그를 보자마자 뛰는 심장이 좋아서인지 낯설어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때마침 말을 걸어준 관계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돈잔치로 범벅된 화려한 쇼에 초대된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와인을 들고 의미 없는 수다를 떨었다.
쇼에 머물기로 한 시간은 2시간쯤이니 금세 지나가겠지. 제공되는 와인이 꽤 맛있어서 내내 들고 다니며 홀짝홀짝 마셨다. 나중에 와인 브랜드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쇼장이 커서인지 그 아이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가끔 사람들 사이로 머리 하나 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쪽으로 오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를 보며 일부러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드라마 성공으로 공준은 요즘 핫한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열심히 일해. 웃으라고. 큰 집을 사고 싶다며!

그런데 그의 옆에 여자가 신경 쓰였다. 아찔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유명한 왕홍으로 그녀가 광고하는 상품은 엄청난 매출을 자랑한다는 걸 기사로 본 적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왜 공준의 팔에 매달려 있지..?
다음에 팔 물건이 공준인가? 그리고 너는 그걸 왜 가만히 두는 건데?
내가 어떤 표정으로 그 여자를 봤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보고 다시 공준 쪽을 쳐다봤을 때 그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마냥 부정하듯 작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내가 이렇게나 속이 좁은 인간이라는걸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수선한 시간이 지나면 공준이나 나나 조금은 한가해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대화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파티 내내 그와 이야기라도 해볼까 다가가려고 하면 걸음마다 사람들에게 잡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눠야 했다. 나는 이미 이 바닥에서는 경력이 길었고 그만큼 아는 사람도 많았다. 이 곳에 초대를 받았다는 건 기본 유명세와 재력이 있다는 것이니 언제 어디서든 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몸에 벤 프로다운 태도로 말을 걸어온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곁눈질로 훔쳐보니 공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관계자와 건배를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왕홍도 눈꼬리를 접어 예쁘게 웃으며 공준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여우네. 여우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둘이 시종일관 웃는 것 보니 분위기가 꽤 좋아 보이는군.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공준에게 가는걸 포기했다.
시간에 딱 맞춰 온 매니저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하라는 말을 했다. 관심 없는 이야기에 예의를 갖춰 듣는 척하는 시간도 이젠 끝이다. 남은 와인을 한 번에 삼키고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나왔다.

쇼장을 떠나기 전에 들린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조명이 어둡고 현란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을 씻고 돌아보니 공준이 문에 등을 대고 서 있었다.
서로가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보다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잘 지냈...”

"지금 안아봐도 돼요?"

여전하네. 모든 순서를 건너뛰는 그의 직진에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행여나 내가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저 눈빛이 안쓰럽다.
내가 그렇게나 믿음이 없나?
나는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가 안았다. 넓직한 등에 팔을 두르고 팡팡 등을 쳐줬다.

“술 마셨어요?”

“응, 와인 조금. 어떻게 알았어?“

“얼굴이 살짝 붉어요.”

그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만졌다. 커다란 손은 따뜻하고 조심스러웠다.

“왜?”

“키스하고 싶어요.”

“여기서?”

“네.”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건 들어올 때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공준은 내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었는지 손을 뻗어 문을 잠궜다. 찰칵,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 등 뒤로 손을 두르고는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왔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에 놀라 작게 몸을 움찔거렸다.
연애하기로는 했지만 몸이 아직은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다. 상대가 적극적인 것도, 또 상대가 동성이라는 낯선 사실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위축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공준과 입술이 닿자마자 마법처럼 그날 호텔에서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가슴을 누르는 그의 단단한 몸과 아른한 체향에 심장이 두근거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문 밖은 귀를 찌르는 듯한 음악소리가 흐르고 있지만 이 곳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키스를 끝내고 공준은 두 팔로 나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넌 안 마셨네?”

“네.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는 내 목에 얼굴을 묻고 깊게 숨을 쉬었다.
목덜미에 그의 숨결이 닿아 간질거렸다. 나도, 란 말을 할까 생각하는데 제멋대로 그 여자는 아는 사람이야? 라는 물음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나는 얼른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제 나가봐야지. 사람들이 기다릴 거야”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볍게 말했다.

“오늘 형 집에서 자도 돼요?"

속으로는 좀 놀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뭘 새삼스럽게 물어. 비밀번호 알지?”

“네.”

공준은 다시 한번 나를 꼭 껴안고는 놓아줬다. 나는 재킷의 주름을 대충 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저 문 밖으로 나갔다.








준저
지음비
산하령
공준장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