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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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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https://hygall.com/571002163



2 내 나이에 너 만나면...
10 나중에 너 나이 들어보면 나 좋아했던 거 후회한다





"퇴근하고 나오는 데 폰을 놓고 나온 걸 알아서 다시 돌아갔다가 와서 좀 늦었어요. 많이 기다렸죠? 죄송해요. 아저씨."

노부가 재빨리 내뱉은 변명에 아저씨의 얼굴은 한층 더 편안해졌다. 아마도 아저씨도 노부가 전날 아저씨의 말에 상처를 입고 마중하러 나오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노부가 9년간 지켜온 마음을 버릴까 봐 무섭기도 했을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노부는 아저씨가 노부 때문에 불안해하고 외로워하길 바라지 않았다. 노부를 절망 속에서 구해 준 사람이었다. 노부가 그런 아저씨를 절망 속에 밀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됐다. 그래서 노부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뭐 9년이나 간직해 온 마음인데 1년 더 기다려서 10년쯤 돼도 좋겠지. 

"오늘 파티셰 형이 치즈케이크 싸 주셨어요."
"치즈케이크?"
"응. 우리 오늘 디저트 치즈케이크였는데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라고 했더니 파티셰 형이 특별히 한 판 더 구워서 줬어요."
"고맙네."
"응. 맛있어서 안 그래도 부탁해 볼까 했는데 먼저 챙겨주더라구."

노부는 파티셰 형이 뛰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잘 고정해 준 케이크 상자를 들어보이며 웃었다. 아저씨는 지하철 역 앞에 노부가 안 보이는 걸 알고 놀랐던 게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이 창백한 상태였는데 하얘진 얼굴에 홍조가 떠오를 정도로 좋아했다. 아저씨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본인이 먹는 것보다 노부를 먹이는 걸 더 좋아했다. 실제로 노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연명했다는 아저씨가 노부 때문에 요리하는 법을 배우고 싸고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법에 익숙해졌다. 아저씨의 일상이 번잡스러워진 것을 노부가 미안해하면 아저씨는 '내가 널 만나서 사람답게 산다'고 웃어줬다. 그리고 아저씨는 노부가 감기에 걸릴 때마다 죽을 끓이는 솜씨와 배숙을 끓이는 솜씨가 좋아졌고 간병에 능숙해졌다. 그런 사람이지만 치즈케이크만은 좋아해서 치즈케이크를 살 때는 늘 커다란 홀케이크를 사 왔다. 많이 먹는 노부에게 충분히 주고 아저씨도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실컷 먹으려고. 

치즈케이크를 먹으면 행복해져.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었다. 아저씨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아저씨의 유년기도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했지만 부모님의 기일을 챙기지는 않았다. 아저씨가 챙기는 기일은 1년에 단 하루. 아저씨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의 기일뿐이지만 친할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저씨를 따라 묘소에 참배하러 갔을 때 묘비에 쓰인 이름이 달랐다. 게다가 노부가 그 할아버지의 기일에 아저씨를 따라서 같이 그 할아버지의 묘소에 가면 늘 누군가 다녀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거나 여러 사람이 뒤늦게 와서 묘소 앞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전부 다 성이 달랐고, 전부 그분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아저씨에겐 '우리 막내'라고 불렀고. 아저씨와 20년지기라는 아마미야 사장님은 아저씨의 과거를 알고 있는 듯, 어느 해에 노부가 아저씨와 함께 할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러 가기 위해 조퇴를 신청했을 때, 사장님은 '아, 그날인가'라고 하더니 노부를 데리고 꽃집에 가서 꽃다발을 한 아름 사 안겨주고, 할아버님에게 내 인사도 전해 드려 달라고 했었다. 

아저씨가 할아버지 묘에 참배를 하고 오는 날엔 늘 치즈케이크를 사는 걸 보면 아마도 할아버지라는 사람이 아저씨에게 치즈케이크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노부는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사진 한 장 안 남아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를 질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부도 이제 많이 자라서! 질투하는 대신 친구들에게 치즈케이크가 맛있다는 가게의 이야기를 들으면 꼭 가서 사오고, 종종 인터넷에서 치즈케이크 맛집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오늘 파티셰 형이 치즈케이크를 디저트로 내놓은 것도 얼마 전 노부가 치즈케이크를 검색하는 걸 보고 그런 데보다 자기가 더 잘 만들 수 있다며 만들어준 것이었다. 우리 아저씨는 제일 큰 크기의 치즈케이크를 홀케이크로 사요라고 은근히 옆에 붙어서 애교를 부리자 노부와 아저씨용으로는 제일 큰 사이즈의 케이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어렸던 노부와 달리 이제 노부는 아저씨를 행복하게 해 주는 치즈케이크의 추억에 노부가 담아준 행복한 추억도 함께하길 바랄 뿐이었다. 노부가 그런 것처럼 아저씨도 노부와 함께하는 시간 곳곳에 행복한 추억을 새겨가기를. 





노부는 1년을 더 기다릴 각오도 했지만 아무래도 아저씨는 그날 노부가 없는 텅 빈 지하철역을 보면서 아저씨에게도 노부가 그저 소중하게 기르고 지켜온 아이가 아닌 더 소중한 어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저씨의 행동이 특별히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저씨를 오랫동안 혼자 마음에 품어온 노부에게는 아저씨가 가끔 말없이 쳐다보거나 노부에게 웃어주는 얼굴이나 아무렇지 않게 툭 건네는 퉁명스러운 말투에서도 아저씨의 마음을 간간이 느꼈다. 그러나 아저씨는 그 마음을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뭐가 무서운 걸까? 역시 사장님이 말했던 대로 모럴이 강하기 때문인가. 아저씨의 도덕심이 아저씨가 직접 거둬 키운 아이와 연인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막아서는 걸까. 

아마미야 사장님은 아저씨는 예전부터 그랬다고 말했다.

"마치다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빡빡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럴 만해. 나는 열 살 넘게 차이나는 꼬맹이도 좋은데."

아저씨와 동갑인 사장님이 노부를 보고 웃으며 그렇게 말해서 노부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나는 우리 아저씨를 좋아한다고 소리 지르자, 사장님은 포복절도했다. 

"난 너보다 훨씬 귀엽고 훨씬 잘 생긴 애인이 있으니까 안심해."

아마미야 사장님의 애인이 노부보다 한 살 어린 타카토군이라는 것은 그 며칠 후에야 알았다. 그래서 타카토군에게 사장님을 어떻게 꼬셨냐고 물어봤지만, 이번에도 사장님이 대신 끼어들어서 대답했다. 

"유감이네. 내가 우리 타카토 꼬셨거든?"

뭐, 괜찮아. 아저씨도 이제 날 좋아하니까. 





그 후로도 파티셰 형은 종종 치즈케이크를 만들어서 퇴근하는 노부에게 들려 주었다. 노부는 그동안 아저씨를 위해서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많이 찾아다녔지만 치즈케이크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다는 걸 파티셰 형 덕분에 알게 되었다. 파티셰인 류세이 형은 정말로 실력이 좋아서 자기도 처음 도전해 본다는 특이한 치즈케이크를 만들 때도 하나같이 맛이 훌륭해서 노부는 아저씨가 웃는 얼굴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그날도 노부는 류세이 형이 싸 준 치즈케이크를 들고 지하철 역에서 아저씨를 기다렸다.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피곤한 얼굴로 계단을 올라왔지만 빠르게 지하철 역 주변을 훑다가 노부를 발견하는 순간, 피곤한 얼굴에 작게 안심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아저씨는 노부가 늦게 와서 아저씨를 기다리게 한 날 이후로 늘 저랬다. 

진짜 스즈키 노부유키 넌 반성해야 된다. 왜 아저씨를 불안하게 만들었어.

노부도 아저씨의 한결같은 거부 때문에 상처받아서 잠깐 (하루)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뛰어오지 않았던 거지만 그 짧은 방황이 아저씨에게 남긴 충격과 상처가 너무 큰 것 같아서, 아저씨가 지하철 역을 빠르게 훌는 얼굴을, 그리고 노부를 발견하는 순간 안심하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이젠 아저씨가 더 불안해하지 않게 해 줘야 할 때였다. 

그날도 아저씨와 저녁을 먹고 디저트로 치즈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우리 레스토랑이 디저트 메뉴는 매일 바뀌잖아요."
"응. 그렇지. 파티셰가 실력이 좋더라."
"맞아요. 아키야마 상이랑 류세이 형이랑 다 실력 좋죠."
"그렇지. 아마미야가 사람을 잘 봐."
"사람을 잘 보니까 아저씨랑 20년 넘게 친구하죠. 우리 아저씨 좋은 사람이라."

아저씨는 왜 비행기를 태우냐며 웃었지만 치즈케이크를 먹는 손은 쉬지 않았다. 

"파티셰 형이 아저씨 우리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올 때 미리 예약하면 그날 디저트 치즈케이크로 해 준다고. 꼭 예약하고 와 달래요."
"고마운 이야기네."
"다 내가 사람들한테 사랑받은 덕분이에요. 나 너무 인기쟁이야."

아저씨는 픽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노부. 인기 많지."
"그러니까 인기 많은 연하 애인 어때요?"
"노부."

아저씨는 텅 빈 케이크 접시를 밀어놓고 쥬스를 마시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저씨가 케이크를 먹다가 체할까 봐 포크를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말을 꺼냈던 노부는 턱 아래에 양 손을 받쳐 꽃받침을 하고는 눈을 깜박였다. 

"나 진짜 인기 많다니까요? 얼른 잡아요."

아저씨는 눈을 깜박깜박거리고 있는 노부의 얼굴을 밀어냈다. 

"내 나이에 너 만나면..."
"신나죠."

아마도 사람들이 욕한다거나 이런 말을 하려고 했을 아저씨는 노부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미간을 더 찌푸렸다. 

"노부."
"당연히 신나지. 생각해 봐요. 어디의 고귀하고 선량하고 다정한 아저씨가 주워서 곱게곱게 정성들여서 잘 키워준 덕분에 아주 성실하고 싹싹하고 착하고 튼튼하게 잘 컸다고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는 기가 찬지 고귀하고 선량... 이러고 되뇌며 어이없어했지만 곧 힘없이 웃었다. 

"그래, 네가 성실하고 싹싹하고 착하고 튼튼하게 잘 커서 그런 거야."
"뭐가 그런데요?"
"네가 너무 잘 자라서, 너무 좋은 남자가 돼서 내 옆에 묶어놓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왜요? 잘 자라서 예쁘고 귀엽고 야하고 다정한 아저씨한테 딱 어울리게 잘 자랐구만. 아깝긴 뭐가 아까워."

예쁘... 귀엽고 야하다니... 아저씨는 또 한숨을 쉬며 잠깐 되뇌더니 노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너 나이 들어보면 나 좋아했던 거 후회한다. 네가 날 좋아한 과거를 후회할 거야."
"아니요."

아저씨는 또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노부가 더 빨랐다. 

"난 아저씨를 좋아했던 과거가, 그 모든 시간이 다 아름다웠고, 아저씨를 좋아하는 현재도 여전히 행복해요. 그리고 계속 아저씨를 좋아할 미래도 분명히 찬란할 거예요. 아저씨가 내 옆에 있어주면 난 한순간도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아저씨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쳐다봤지만 더 이상 노부를 말리려 하지는 않았다. 그날 아저씨의 집에서 씻고 난 뒤에도 노부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저씨의 침대에 냉큼 올라온 노부에게 허튼짓하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노부가 아저씨를 안고 자는 것까지는 허락해 줬다. 모른 척해줬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아저씨는 사귀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노부는 그날을 1일로 새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그날부터 노부를 밀어내지 않게 됐으니까. 데이트라는 말에도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게 됐고, 가끔 자기도 모르게 데이트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호수와 숲과 산책로와 밤하늘이 아주 예쁜 팬션에 놀러갔을 때 첫키스를 하기도 했으니까!

아저씨와의 첫키스는 노부가 첫 몽정을 했을 때 꿈에서 봤던 것 이상으로 달콤하고 달콤하고 달콤했다. 아저씨는 노부와 짧은 여행을 가기 위해 일을 미리 끝내놓느라고 무리했는지 입술이 조금 까칠했는데 그 조금 건조하고 까칠한 입술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첫키스를 한 후에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하는 얼굴에 피어난 홍조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얼굴 가득 기쁨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게 너무 좋아서 계속 키스를 하다가 아저씨가 입술 따갑다고 밀어냈을 정도로. 그만큼. 그만큼 좋았다.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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