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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07:22
기분이 뭔가... 이상함
상황 설명을 하자면 나는 해커고 그룹에 소속돼서 의뢰를 받음
보통은 의뢰를 받기 전에 대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이상하게 이 의뢰는 수락하기 전까지 정보를 주지 않았음
그저 익명의 어려움에 처한 개인을 크게 돕기 위해 미심쩍은 행위들을 기꺼이 담당할 외부 요원을 찾는다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일을 받았거든
그랬더니 그제야 자세한 것들을 알려주는데 내용은 이랬음


[해커,

이것은 정상적인 요청이 아니며, 우리는 이를 그렇게 취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안락사를 요청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이에 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사람을 몇 명 보냈고(의심을 사지 않으려 외부 단체에서도 보냈습니다.), 대체로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문제의 인물인 '엘리엇 위트'는 상당한 고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고, 그의 바람과는 달리 죽음에 대한 선택권을 거부당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이전에 실패하였기에 한 회원이 이 옵션을 제안할 때까지 후속 노력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부착한 심박조율기는 적절한 인증이 있다면 원격 엑세스가 가능하며, 그들은 이것이 이 요청을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 요청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귀하가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귀하가 답장으로 "거부"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귀하를 프로젝트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만일 이 문제에서 우리를 돕기로 결정하신다면, 우리가 아는 한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어느 정도의 조사와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대상의 의료 기록부터 시작하여 칩을 식별하고 제조업체를 찾아 거기서부터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CSEC 관리자]


가족들이 죽고 싶어 하는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한 의뢰인데 일단 난 이미 내용을 들어놓고도 거절할 수 있어서 놀랐고 내용을 보니까 그럴만해서 납득함
본인이 원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내 손으로 누굴 죽이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민감한 문제지
그래도 고통뿐인 삶보단 죽음이 낫다고 생각해 병원 의료 기록을 해킹해서 환자가 쓰고 있는 심박조율기의 노드로 접속했음
정말 의뢰 내용대로 원격으로 어떻게 할 수 있겠더라
다만 특수한 보안 체계를 사용하는지 당장은 뚫을 수 있는 툴이 없길래 의료기기 고객 서비스 서버부터 해킹해서 털기 시작했음
그래서 알아낸 정보로는 심박조율기를 조정하려면 해킹을 하고도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필요하며 다른 인증된 펌웨어로 활성화를 해줘야 했음
그럼 포트 뚫을 툴도 필요하고 관리자 정보도 알아야 하고 교체할 펌웨어도 구해야 하네?
할 일이 정해졌으니 우선 소프트웨어 업체의 생산 서버부터 해킹해서 시험 테스트용 펌웨어도 찾아내고 관리자 비밀번호도 구해냄
이젠 툴만 구하면 되는 상황이라 의료기기 업체의 자산 서버도 털어서 툴과 사용법을 알아냄
다시 환자의 심박조율기에 접속해서 툴을 이용해 해킹하니 심박수와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떴음
어쨋든 목적은 분명하니 환자의 기기에 아까 얻어낸 펌웨어도 설치하고 관리자 로그인하고 이제 펌웨어를 대체할 일만 남았는데 이게 환자를 죽일 마지막 단계라 쉽게 못 누르겠더라
좀 망설이다가 결국 눌렀는데 새로운 펌웨어로 바뀌기까지 시간은 또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펌웨어 업데이트가 완료되자마자 심박수가 느려졌다 빨라졌다 바뀌더니 위험 표시가 뜨고 심전도 그래프가 점점 빨라지고 다른 수치도 불안정하게 널뜀
어느새 배경 음악도 사라졌고 심박조율기의 빠르게 삑삑거리는 불길한 경고음만 이어지더니 이내 심박수가 0이 되고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삐뚤빼뚤했던 그래프가 정직한 실선을 그리는데 와 정말 그 기분이...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
단순히 기계가 꺼지고 끝나는 게 아니고 환자가 겪는 일을 심박조율기를 통해 그대로 보여주니까 한동안 그 화면에서 나갈 수가 없더라
심박조율기가 빠르게 불안정해지는 순간부터 내가 정말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멍해진 거지
근데 막상 다 끝내놓고 보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만약 그의 가족이 다른 목적으로 그의 죽음을 바라서 의뢰를 했다면?
난 안락사 시킨 사람에 관해 실제로 아는 게 없고 의뢰도 가족들이 한 얘기였으니 지어내서 말했어도 모르는 거잖아
CSEC에서 조사를 했다고는 했지만 전에도 의뢰인이 정보를 숨기고 의뢰하는 경우가 있었거든
이젠 끝나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겠지만 윤리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음
과연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건 옳은 일일까?


핵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