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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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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이스는 꿈을 꿨다. 자신은 항모 위에 서 있었는데 머리 위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함재기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을 무력하게 바라보다 잠에서 깨어났다. 찝찝했다.





1.
아이스, 토네이도에 관사가 무너졌어.

윙맨 선언 이후 두 번째 통화였다. 너는 꼭 나를 필요할 때만 찾더라,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갈 곳이 없다는 매버릭을 내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통제불능의 녀석과 한동안 같이 지내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쓰였다. 새벽에 꾼 밍밍한 악몽의 찝찝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는 방이 하나 있어.

아이스의 제안을 우물쭈물 수락한 매버릭은 천천히 짐을 쌌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필요한 것만 챙기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 깊게 묻혀버린 구스와 찍은 사진, 벽돌과 함께 떨어져 깨진 액자 속 가족사진, 흙이 잔뜩 묻은 교본 따위를 챙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검정색 세단이 캐리어 두개를 쥔 매버릭의 앞에 멈춰섰다. 선글라스를 쓴 매버릭은 차에서 내리는 아이스의 표정을 읽었다. 어딘가 짜증스럽고, 굳은 표정이었다.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고?


무미건조하게 물으면서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상이 있는지 스캔하는 아이스의 눈길을 피해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은 날씨가 펼쳐졌다. 꿈속의 회색 하늘과는 전혀 다른.






2.
매버릭과의 생활은 전혀 맞지 않았다. 티비 프로그램 취향이라던가, 영화 취향 같은게. 답지 않게 복잡한 소설을 읽는 매버릭의 모습 같은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의 윙맨이 되어주겠다고 했던가. 짜릿했던 성공의 순간을 머릿속에 상영시키며 소파에 앉아 소설책을 읽는 매버릭의 모습을 바라봤다. 일정을 마치면 부엌에만 불을 켜고 어두운 거실을 바라보며 이인용 식탁에 앉아 얼음을 한 개 띄운 위스키를 마시는게 루틴이었던 아이스는 이제 밝아진 거실을 바라봤다.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정갈하게 정돈된 게스트룸에 들어가는 매버릭에게 고개를 끄덕이곤 거실의 불을 껐다.


그로부터 며칠 뒤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생각보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국제 정세, 전시 상황에 대한 대비, 훈련에 대한 불만같은 것들을 나눴다. 생사를 함께한 사이에서 어색할거라는 생각을 하다니. 아이스는 자조했다.





3.

매버릭의 관사 복구가 늦춰졌다. 그에 따라 부대 재배치를 받았는데, 임시 거주지의 주소를 아이스의 관사로 적은 탓에 같은 부대로 배정됐다. 아이스는 매버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왔어.

부쩍 친해진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너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가도 묘하게 통하는 구석이 있다. 반짝이는 초록색 눈, 씻고 나면 묘하게 풀리는 눈꼬리, 구스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을 매버릭의 풀어진 모습같은 그런 네 모습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꽤나 인상적이었다. 자기 속을 잘 꺼내놓지 않으면서 솔직하고 자주 우울했다. 불안은 덤이었다. 행복해지면 어쩌지.

너는 내 관사에서 있는 듯 없는듯 조용히 살았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매버릭에게 부대 내 식당의 위치를 알려줬다. 뉴페이스를 반기는 동료들의 눈이 반짝였다. 예쁘고 작은데 당차고 골때리는 매버릭. 소문의 그 문제아를 보는 호기심의 눈길이 거슬렸다. 원래 친한 친구였던 척 슬며시 어깨동무를 해가며 복도를 걸었다. 싫었고, 좋았다. 후식으로 나온 코코넛 케이크를 양보하는 것은 익숙했다. 어차피 너무 달아서 혀가 아릴게 뻔했다.


매버릭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거리에서 둘이 무슨 사이냐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 사이도 아냐.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그 아이스맨이 그럴 리가 없지. 아이스는 그런 말들을 귓등으로 흘렸다.






4.
매버릭, 우리 무슨 사이야?

나른한 토요일 오전, 냉장고에서 오랜지 주스를 꺼내던 아이스가 물었다.

비즈니스 관계지.

그렇구나.

어느새 매버릭의 취향대로 달콤한 케이크와 음료들이 가득 찬 냉장고에 머리를 밀어넣으며 아침 뭐 먹을래? 와 같이 평범한 말을 건네듯 대답했다. 일에서 만났으니까. 비즈니스 관계가 맞지. 아이스는 그렇게 생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잘 안맞는 사이잖아.

냉장고 문을 닫던 아이스가 팬케이크에 메이플시럽을 뿌리던 매버릭을 바라봤다.

그런가.

건조한 대답에 매버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스키 대신 주스를, 샐러드와 닭가슴살 말고 팬케이크를 먹게된 아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5.
어디 가.

찰리 만나러.

아직 안 헤어졌구나. 생각보다 오래가네, 하는 말은 머릿속으로만 했다. 저녁 먼저 먹어. 아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매버릭이 제 관사에서 지낸지 한 달이 넘었으며 왜 그동안은 찰리를 만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고싶어졌다. 자연스레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고 필요할 때 부르는 사이. 서로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붙어있을 수 밖에 없는- 아, 정말 비즈니스네. 아이스는 자조했다.


그날 매버릭은 아주 늦은 새벽에 들어왔다. 그날은 마치 오래된 미래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가지고 노는, 친구도 지인도 아닌 비즈니스 관계라는 이름 하에서.


관사의 현관문이 열리고, 매버릭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야 아이스는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둘은 아주 늦게까지 잠을 잤다. 머리가 아팠다.






6.
가끔은 너로 태어나고 싶다.





7.
왜?





8.
같이 볼래?

모처럼 훈련이 일찍 끝난 날이었다. 찰리가 줬다는 영화 테이프를 들고 온 매버릭은 성인 남성 둘이 앉기에는 좁아보이는 카우치를 가리켰다. 방금 튀긴 팝콘 탓에 관사 내에 버터향이 가득했다. 남은 서류 작업을 하려던 아이스는 홀린듯 고개를 끄덕였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둘은 작은 카우치에 구겨앉아 한쪽 어깨가 맞닿은 채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남녀가 흔한 이유로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로맨스 영화였다.

거실 불이 꺼진 와중에 티비의 빛에 의존해 영화의 몰입한 매버릭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너를 밖에 두면 불안하다. 너는 종속되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의 두 남녀는 뜬금없이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따가운 시선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매버릭과 눈이 마주친다. 충동적으로 입술을 부딪힌다. 매버릭은 반항한다. 반항하다가도 카잔스키의 리드에 맞춰 따라왔다. 짐승같은 키스가 끝나자마자 매버릭은 카잔스키, 너 미쳤어? 뺨이라도 한 대 칠것 같은 기세로 소리친다.

마냥 나쁘지만 않았다는 것이 매버릭에게 혼란을 줬다.


너, 나 좋아해?


좋아하기보단 싫어하는 감정에 더 가깝다는 것을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이리저리 흩어진 팝콘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네가 질려. 위험한 비행도 복잡한 인물관계를 가지고 있는 소설책도 자막이 있는 영화도. 너는 꼭 필요하지 않을 때 나타나서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카우치에 몸을 웅크린 피트 미첼이 보인다.


미안해.


회색 눈빛의 톰 카잔스키가 쥐어짜낸 사과를 한다.

필요해 의해 맺어진 관계는 혐오를 수반했고 최소한의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되어가고 있었다.





9.
매버릭이 관사에 찰리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늦은 밤 거실에 나갔다가 물을 마시던 그녀와 어색하게 인사했다. 내일 아침에 떠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이 밝았다. 찰리는 흔적도 없이 떠났다. 어제 그녀와 인사했던건 꿈이었나 싶었을 정도였다. 매버릭의 목에 옅게 남은 키스마크만 아니었으면.






10.
그날 저녁은 혼란스러웠다. 해가 떠있는 동안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던 매버릭이 아이스의 방문을 열었다. 매버릭이 아이스에 관사에 살게되고 나서 최초의 일이었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있던 아이스의 위에 앉아 충동적으로 키스했다. 공허하고 무의미한 숨소리로 가득찬 방 밖으로는 먹구름이 잔뜩이었다. 피트 미첼은 울었다. 이제 어떡하지. 바닷물처럼 짠 맛이 났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매버릭의 관사는 다 수리된지 오래였다. 돌아가는 법을 모르겠다며 울었다. 구스의 기일이었고, 찰리에게서는 두 번째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고, 꿈에서는 어린 브래들리가 항모 위에서 함재기들로 뒤덮인 잿빛 하늘을 보고 울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고.


나도 같은 꿈을 꿔. 톰 카잔스키는 대답했다.


증명되지 않은 공식을 본 적이 없는 카잔스키는 너무 간단해서 너무도 복잡한 이론 앞에서 혐오를 느낀다.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을 고른다.

잘 지내자, 우리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처럼 잠에 빠져들었다. 두 명이 눕기에는 좁은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혼곤한 수면상태로 이끌렸다.


꿈을 꾸지 않고 일어났을 때 세상은 정상처럼 돌아갔다. 꿈을 꾸고 일어나 정상으로 돌아온건가.





11.
회색빛 꿈에서 너 하나만 선명했다.
















아이스매브
킬머탐찌
탑건
재업
2023.10.29 23:40
ㅇㅇ
모바일
내 센세가 재업을 해주셨다ㅠㅠㅠㅠㅠㅠㅠ
[Code: ad3f]
2023.10.29 23:55
ㅇㅇ
모바일
센세 이건 문학이야 ㅠㅠㅠㅠㅠㅠ분위기 미쳤다 ㅠㅠㅠㅠ건조한듯 끈적이고 담담한 듯 아슬아슬해ㅠㅠ 결국 둘은 함께 잠들면서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던거잖아 그렇게 서로를 붙잡고 같이 잘 지내 서로 사랑하잖아 ㅠㅠㅠㅠ
[Code: dee6]
2023.10.29 23:57
ㅇㅇ
어딘가 아련하고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이 불완전해보이는 관계였지만 둘이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하고, 정상적이고, 아름답고, 더는 슬프지 않아졌을 것 같아서 눈물나면서도 행복하다......ㅠㅠㅠㅠㅠㅠㅠㅠ아맵 영원히 행복해
[Code: 20e9]
2023.10.29 23:58
ㅇㅇ
모바일
세상에....문학이다..
[Code: d3c1]
2023.10.30 00:10
ㅇㅇ
모바일
눈물에 잠겨 죽을것같으면서도 서로에게 기대서 또 살아가는 아맵은 사랑만 해라....
[Code: 10ac]
2023.12.19 06:39
ㅇㅇ
모바일
아이스한테 안겨 자면서 아이스 꿈을 꾼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회색빛꿈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fa79]
2023.12.19 06:40
ㅇㅇ
모바일
센세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고 찢어질거같아요 너무 좋으니까 빨리 제 지하실로 와서 책임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ㅠㅠ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ode: fa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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