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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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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https://hygall.com/570186790


14 니 또래에도 나보다 좋은 애들 많다 걔들 만나라
16 너 이러는 거 얼마 못 간다 대학 가 봐 풋풋한 애들 차고 넘쳐



푹푹 찌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학교는 여름방학을 맞았다. 학교를 나갈 필요가 없는 방학 때는 매번 마트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을 늘려서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방학 때는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래도 아저씨는 여전히 노부가 돈을 못 쓰게 했다. 놔뒀다가 대학 등록금으로 써. 늘 그렇게 말했다. 대학 안 갈 건데.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아저씨 맞은편에서 공부하다 보면 성적이 기대 이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아저씨는 아까운 모양이었다. 노부도 아저씨의 가족이 되고 싶긴 했다. 하지만 노부는 아저씨의 애인이 되고 싶고 아저씨와 부부가 되고 싶은 거지 아저씨의 아들이 되고 싶은 건 아닌데, 아무래도 아저씨는 노부를 아빠의 마음으로 보살피는 모양이라.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저씨는 노부가 되도록 돈을 못 쓰게 하기 때문에 노부의 통장은 나날이, 아니 다달이 두둑해지고 있어서 노부는 가끔 통장을 열어보며 아저씨를 호강시켜 줄 날을 꿈꾸곤 했다. 아저씨는 맨날 꿈 깨라는 둥 못된 소리만 하지만. 

아무리 아저씨가 노부가 지갑을 못 열게 한다고 해도 노부가 옷을 산다거나 DVD를 빌려온다거나 하는 소소한 소비까지 옥죄지는 않았기 때문에 노부는 여름방학의 어느 날에 아저씨 몰래 놀이공원 표를 사 버렸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퇴근하는 아저씨를 맞이하기 위해 신나서 달려간 노부는 오늘도 고로케를 사 온 아저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근거리며 물었다. 

"아저씨, 내일 출근 안 하죠?"
"안 하지."

블랙기업이긴 해도 주말엔 확실히 쉬는 아저씨는 피곤한지 작게 하품을 하고 덧붙였다. 

"하루 종일 잘 거야."
"그러지 말고 나랑 놀러가요."

아저씨가 노는 날은 노부도 놀았다. 보통 주말에는 청소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했지만 내일은 중요한 날이니까!

"잘 거야."
"곰도 여름에는 하루 종일 안 자요. 아저씨는 곰보다 게으름뱅이야."
"또 무슨 헛소리인지."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노부는 휴대폰에 받아뒀던 놀이공원 표를 띄웠다. 

"놀이공원 같이 가요."
"놀이공원? 애냐?"
"나 애라면서요. 그러니까 같이 가요."
"이럴 때만 애라지."

아저씨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지만 노부는 친아버지의 얼굴은 아예 기억도 못할 정도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뒤에는 아저씨가 구해줄 때까지 내내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느라 놀이공원 같은 곳은 가 보지도 못했다는 걸, 그리고 아저씨의 도움으로 새아버지를 감옥에 보낸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변변히 놀아본 적도 없다는 걸 아저씨도 알았다. 아니, 아저씨가 제일 잘 알았다. 그래서 아저씨는 싫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노부는 다음 날 모처럼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고 설쳐댔지만 새아버지와 같이 살 때는 내내 새아버지 몰래 숨어서 컵라면 같은 걸 허겁지겁 먹으며 살았고 아저씨가 돌봐준게 된 이후로는 아저씨가 내내 밥을 챙겨줬기 때문에 요리를 잘 못했다. 덕분에 늦잠을 잘 거라고 선언했던 아저씨가 부엌의 소란에 퉁퉁 부은 눈으로 나와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주먹밥을 만들고 유부초밥과 햄버거 스테이크도 만들어서 도시락을 차곡차곡 채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도시락통을 들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노부는 학교 친구들한테 들은 대로 영리하게 코스를 짜서 인기 어트랙션도 제법 타고 거울의 집에도 아저씨와 같이 들어가 봤다.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놀이기구도 있었고 그렇게까지 짜릿하지 않은 놀이기구들도 있었지만 뭐든 좋았다. 놀이기구가 바람을 가르고 쏜살같이 움직이거나 마구 뒤집히고 곡예를 할 때마다 옆에 앉은 아저씨와 손을 꼭 쥐고 소리를 지르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재미있었다. 게다가 귀신의 집은 절대로 싫다는 아저씨 때문에 대신 들어간 거울의 집에선 서로 흩어져선 안 된다는 핑계로 아저씨의 팔짱을 꼭 끼고 내내 붙어다녀야 해서 그저 신났다. 사방이 거울이라 예쁜 아저씨가 사방에 보이는 것도 좋더라. 그리고 두 사람은 나오기 직전에 이 놀이공원의 핵심이라는 레이저쇼를 보기도 했다. 집에 일찍 돌아갈까도 했지만 친구들이 꼭 보라고 권해 준 거라 남았는데 정말 옳은 선택이었다. 블랙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피곤한 표정이 디폴트인 아저씨가 눈을 반짝거리며 감탄하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집중하면서 레이저쇼를 보고 있었는지 노부가 슬쩍 손을 잡는 것도 모르는 눈치여서 노부는 아저씨의 손을 꼭 쥐고 아저씨를 바라봤다. 흘긋흘긋 본 레이저쇼가 정말 장관이긴 했는데 그 레이저쇼보다 한껏 들떠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훨씬 더 예뻤으니까, 그 얼굴에서 눈을 떼는 건 정말로 불가능했으니까. 

아저씨는 레이저쇼가 끝나고도 노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노부의 손을 놓아 버렸다. 

좋았는데...





그날 집에 돌아온 노부는 미리 예약해 놨다가 아침에 일찌감치 나가서 찾아온 뒤 노부의 집 냉장고에 넣어뒀던 케이크를 가지고 오면서 미리 사다 두었던 스키야키 재료들도 챙겨왔다. 노부는 정말로 요리를 못하지만 스키야키를 좋아해서 아저씨가 자주 해 주는 데다가 요리법도 간단해서 스키야키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 아저씨는 케이크 상자를 보고서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달력을 바라봤다. 

"또 1년이 간 거야?"
"자기 생일 정도는 좀 기억하라고요."

노부가 타박을 했지만 아저씨는 피식 웃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좋다고."

아저씨는 매년 이런 말을 했지만 노부의 생일은 매년 잊지 않고 꼭 챙겨줬다. 매년 생일마다 예쁜 케이크를 사 오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준비해 주었다. 노부의 어머니는 노부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셔서 그때 생일 케이크를 받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새아버지는 생일 케이크 같은 걸 사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노부가 제대로 기억하는 생일은 아저씨가 준비해 준 생일밖에 없었다. 새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난 뒤에 처음 맞은 생일에 아저씨는 케이크에 초를 꽂아주고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두툼한 스테이크와 껍질을 벌리고 있는 조개들이 예쁘게 올라가 있는 파스타를 준비해 주었다. 노부는 실제로 스테이크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조개가 들어간 파스타도 그날 처음 봤다. 그때까지는 아저씨가 케첩을 넣고 두꺼운 베이컨을 큼직하게 잘라 같이 넣어준 나폴리탄만 먹어봐서 파스타는 다 빨간 줄 알았는데. 아직 어렸던 노부가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의 음식들과 생전 처음 받아 보는 것 같은 케이크를 보고 울어 버렸기 때문에 아저씨는 당황했을 텐데. 그때도 어른이었던 아저씨는 당황한 와중에도 노부를 안아주며 노부의 우는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파묻어서 가려 주었다. 

역시 그때 노부가 너무 어리고 불쌍한 아이였던 게 아저씨 공략이 힘든 이유란 말이야. 

노부는 고개를 저어 떠오르는 기억을 지워내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진심으로 아저씨의 생일을 축하하며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었다.

"생일 축하해요, 아저씨!"
"고맙다. 너밖에 없네."

그 말에 또 가슴이 콩콩 뛰어서 노부는 괜히 코 끝을 한 번 문지르고 어서 소원을 빌라고 했다. 아저씨는 소원을 빌라고 다그치는 노부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소원을 비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라고 했으면서도 잠깐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스키야키를 먹고 케이크까지 잘라 먹고 난 뒤였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영화의 DVD도 빌려놨기 때문에 아저씨와 나란히 영화도 봤다. 

"오늘 데이트 좋았죠?"

그러나 한껏 기분이 좋아진 노부가 그렇게 묻자, 아저씨는 영화를 보기 전에 목욕을 해서 포슬포슬해진 노부의 머리를 슥 스다듬고는 무심하게 말했다.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야? 데이트는 네 또래 애들이랑 해야지. 왜 나 같은 아저씨랑 해?"
"아저씨가 좋으니까요."
"네 또래에도 좋은 애들 많다. 걔들 만나라."
"싫어요. 난 아저씨가 좋아요."
"너 이러는 거 얼마 못 간다. 대학 가 봐 풋풋한 애들 차고 넘쳐"

그러니까 대학 안 간다니까! 그렇지만 아저씨는 노부가 대학에 가길 원한다는 걸 알고 있고, 아저씨의 생일에 아저씨가 싫어할 말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노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물론 그렇다고 입을 다문 건 아니었다. 

"아저씨가 안 풋풋해도 난 아저씨가 좋아요."
"난 어린애 싫다."
"아저씨!"

영화를 다 보자마자 어서 집에 가서 자라고 휙휙 내쫓는 아저씨에게 밀려나갈 때는 이렇게 서러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러웠는데. 

"선물 고맙다, 노부."

비싼 선물을 사면 아저씨가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아저씨가 주로 입는 수트 스타일과도, 아저씨의 피부색과도 잘 어울리는 색과 패턴으로 고른 넥타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선물을 개봉했을 때도 좋아했던 아저씨는 다시 케이스에 잘 담아둔 넥타이를 살짝 흔들며 웃었다. 

"잘 하고 다닐게, 고마워."

웃어주면 안 되는데 또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는 무심한 척 굴어도 섬세한 사람이니까 넥타이를 고르고 맬 때마다 노부 생각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기분이 좋아져서 결국 못 참고 웃자, 아저씨는 웃는 노부의 뺨을 살짝 톡톡 두드렸다.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라."
"아저씨도 잘 자요."
"오늘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재미있었다. 노부. 고마워."

도시락도 아저씨가 싸고 스키야키도 결국 아저씨가 했기 때문에 노부는 놀이공원표를 사고 케이크를 사고 놀이공원 코스를 짠 것뿐이지만 아저씨가 네 덕분에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자 또 어깨가 숙숙 솟았다. 아저씨가 너도 피곤할 텐데 얼른 가서 자라며 노부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기 때문에 노부는 어쩔 수 없이 쫓겨나서 바로 옆집인 노부의 집으로 향했지만 계속 입꼬리가 올라갔다. 

집에 돌아온 노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누운 채로 아저씨의 손을 잡았던 오른손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레이저쇼를 볼 때 노부가 멋대로 손을 잡긴 했는데 아저씨도 분명히 금방 노부의 손을 꼭 잡아왔었다. 그때 노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손의 악력과 체온이 선명하게 느껴졌었다. 

노부는 이제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거니까 이제 아이가 아닌데! 하지만 노부의 손을 잡아줬던 아저씨의 손에서 전해지던 체온이나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웃던 아저씨의 얼굴과 고맙다고 말하던 다정한 목소리가 계속 떠오르고 심장은 계속 콩콩 뛰었다. 노부는 이제 짝사랑하는 상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심장 콩콩하는 어린애가 아닌데. 하지만 아저씨의 체온과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가 계속 반복적으로 떠올라서.

아직 18살 생일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있던 노부는 노부의 아저씨가 20대의 마지막 생일인 29살 생일을 맞이한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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