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hygall.com/569647703













윌리엄.

분명히 윌리엄이라고 했어.

너붕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윌리엄을 떠올렸음.
잠을 푹 자고 일어나 말짱한 정신으로 곰곰 생각하니 차곡차곡 쌓인 정보가 점점 구체적으로 머릿속을 맴돌았지.

그의 반짝이며 귀티나는 모습.
누구에게나 편하게 말하는 태도.
햇살처럼 미소짓는 얼굴......
모든 걸 하나하나 종합해보면 퍼즐이 맞춰졌음.
그래, 그가 누구인지 말이야.
왜 진작에 몰랐을까?
그간 너붕이 쌓아온 데이터에 의하면 그의 행동은 모두 하나의 정답만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너붕은 벌떡 일어나 사용인들의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야무지게 챙겨먹은 다음, 앨버트를 찾아나섰지.
윌리엄이 누군지 알겠으니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음.
하지만...


-앨버트를 찾는다면 그는 회의중이야.
-아... 응.


앨버트로 향하는 길은 대공저에서 3년 일한 하인, 티모시에게 막혔어.
어차피 티모시가 막지 않았더라도 앨버트가 있는 곳이 집무실이라면 너붕이 갈 수 없는 곳이었음.
하인인데 특이한 성을 가진 티모시.
그는 몰락 귀족의 아들이라는 설을 갖고 있었음.
너붕은 그런 티모시의 불행을 가십거리로 삼는 것에 합류하고 싶지 않아 하녀들이 그를 화두에 올릴 때마다 자리를 피했기 때문에 그에 관해 자세히는 몰랐지.
하지만 하녀들이 그의 하얀 얼굴을 자주 힐끗거리는 건 봐왔음.
그 시선들이 꼭 개인사때문만은 아닌듯했지만.


-끝나려면 한참 멀었으니 다른 일 먼저 하는 건 어때.
-...그러려고.


티모시는 창백한 외모만큼이나 지나치게 차갑게 말한다는 인상이었음.
너붕의 옆을 스치며 계단을 쌩하니 내려가는 것도.
어쩌면 너붕이 소문 좋아하는 하녀로 비춰졌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난 들어온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너붕은 일단 티모시의 태도를 잊고 앨버트에게 알리려던 내용을 기억해두기로 했음.
그리고 과연 티모시의 말대로 할 얘기가 많았는지 앨버트가 방에서 나온 건 두 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어.
앨버트는 밖으로 나와 너붕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짓했어. 


-허니양. 들어가보게.
-네?


집무실은 아직 너붕에겐 출입금지인 곳인데.
갸우뚱하는 너붕에게 앨버트가 윙크했음.


-내가 따끔하게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했잖나.
-아... 네. 그거 말인데요.
-미안하지만 내가 좀 바쁘니 대화한 뒤에 알려줄 수 있겠지?
-...네.


앨버트는 왠지 너붕과 윌리엄이 둘이서 해결하길 원하는 눈치였음.
그럼 그렇게 하지 뭐.
너붕은 앨버트가 자신을 두고 총총 사라지는 걸 보며 슬쩍 집무실의 문을 열었음.
그리고 안에는 예상했던대로 윌리엄이 있었지.


-앨버트, 두고 간 거라도 있나?


그는 문을 등지고 있어서 너붕이 들어온 줄 몰랐음.
윌리엄은 청명한 가을 하늘과 정원이 한 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문 옆에 서서 뭔가를 읽고 있었지.
아름답게 장식된 가구들과 책장 옆에 선 남자에겐 아무 위화감이 없었음.
마치 원래 이 자리의 주인으로 타고난 것 같은 귀족적인 모습.
너붕은 그가 보통 하인이 아니라는 건 눈치채고 있었어.
집사 허락도 없이 집사 행세를 할 정도면 대공의 빽이 있단 얘기겠지.
그러니 그의 정체는 바로...


-앨버트는 나갔어요.
-......허니?


그는 이제껏 앨버트인줄 알았던 기척이 너붕이란 걸 눈치채자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키웠어.
너붕은 아주 야무진 걸음걸이로 다가가 그를 노려보았음.


-저 이제 다 알아요. 못되신 나리.
-...아하.
-절 그렇게 놀려먹고 즐거우셨나요?


너붕의 말에 그는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었어.





재생다운로드207cbc2a5df6dd7b8f3596d341530406.gif






-작고 무서운 아가씨. 맹세코,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어.
-그래도 집사가 아니라고 말할 시간은 있었잖아요.
-그래. 그 점은 내가...
-어떻게 당신이 영주님인 걸 계속 숨길 수 있어요?
-....응?


너붕은 씩씩대며 일갈했어.


-영주님을 집사로 착각했다면 알려줬어야죠. 말을 안 하니 나 혼자 계속 바보같이 모르고 있었잖아요! 그렇다고 바쁜 당신을 불러다 앉혀놓을 신분을 가진 사람도 없고.
-...허니. 그...
-아무리 귀족이어도 대공저의 임시 주인이시지 진짜 주인은 아니시잖아요. 저도 하녀지만 이렇게 놀림받는 건 싫어요.
-......
-제가 지금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건 사과 안 할게요. 먼저 말 안한 건 당신이니까.
-.....


그는 무안한건지, 미안한건지 아무 말이 없었어.

너붕은 귀족 저택 짬밥을 꽤 먹어서 알 수 있었음.
특히나 공작저에서는 이따금 공작 행세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영주놈들이 꼭 겪었지.
윌리엄, 이름이 딱 귀족이 쓰는 이름이잖아.
그를 대공이라고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토록 하녀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대공이 있다고는 들은 적 없어.
그러니 그는 대공이 일을 맡겨둔 귀족이자 영주일 거야.
영주 자리에는 주로 친척을 앉혀놓으니 성은 당연히 구드겠지. 그래서 너붕에게 알려주지 않은 걸 테고.
그런 사람이면 너붕이 이렇게 무엄하게 대든다 해도 당장 자를 수는 없을 것임.
결국 최종 결재는 대공이 해야 할 테고.
사실 애초에 윌리엄이 너붕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걸 보면 그럴 생각도 않는 사람일 거야.
그래서 너붕은 추론을 끝내고 정정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한 거였음.

윌리엄은 가만히 고개를 돌리려다 솟아오르는 부끄러움일지 무엇일지 알 수 없는 감정을 간신히 참는 얼굴이 되었어.
어떤 표정이든 잘생기긴해서 더 짜증나네.
너붕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마음의 소리를 지울 생각도 없었음.
그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너붕에게 말했지.


-미안해, 허니양.


깔끔하고 진정성있는 사과였음.
여전히 얼굴에 장난기는 가득한 남자였지만 그 말 이후로 그는 변명을 덧붙이지도 않았지.
마침내 모든 의문을 해결하고 만족한 너붕이었음.


-...새로 하녀가 들어온다면 다음엔 그러지 마세요.
-응.
-약속이에요.
-약속하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의 확답을 받아내고 너붕은 뿌듯한 맘으로 홱 돌아서서 집무실을 나섰음.
해냈다, 허니비.
이제 그에게는 더 볼 일 없으니까 다시 원래의 하녀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지.
사과도 받아냈겠다, 이제 앨버트에게 오늘 일을 얘기해주기만 하면 끝인 것임.


-잠깐만, 허니.


당당하게 밖으로 나오려던 와중에 그가 붙잡지만 않았다면 이걸로 끝이었을 거야.
너붕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은 손은 크고 안정감이 있었음.
그래서였는지 너붕이 오히려 얌전히 그의 손에 손목을 맡기고 있을 정도로.

그런데 왜 나를?

너붕은 혹시나 윌리엄이 하녀 주제에 대들었다고 뒤늦게 화를 낼까 살짝 긴장했어.
그간 윌리엄의 행실로 보아서 그럴 것 같진 않았지만...
귀족 나리들의 변심이야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윌리엄은 화를 내지 않았음.
대신 너붕에게 물었어.


-언제 일이 끝나지?
-...보통 9시쯤 방으로 돌아가요.
-그렇군. 그럼 쉬기 전에 이곳으로 다시 잠깐 와주겠어?


이런 식으로 부탁하는 말투는 한 번도 귀족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었음.
그의 정체가 뭔지 알게 된 지금에도 너붕은 다정한 저 모습엔 귀족 특유의 오만함이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


-어떤 일에 제가 필요하신가요? 말씀하신다면 준비해오겠습니다.


그러나 너붕은 애써 사무적인 하녀의 입장에서 되물었음.
하녀는 필요에 의해서만 존재해.
그러니 윌리엄이 너붕을 찾는 데엔 하녀에게 일을 시키려는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그의 다음 말에 너붕은 의아해졌어.


-음? 아니, 아니야. 일은 없어.
-그럼 왜...
-저녁에 온다면 그때 얘기할게. 와주겠어?


어차피 너붕에게 선택지는 없었음.
영주가 오라고 하는데 명확한 이유는 없어도 하녀인 너붕이 거절할 수 없잖아.
그래서 명령조가 아닌 부탁인 게 황당했지만 너붕은 고개를 끄덕였음.
얼른 손목이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빨리 끄덕인 것도 있었지.
잡힌 곳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그가 알아차릴까봐 걱정되었거든.


-고마워. 그럼 이따 저녁에 만나지.


고맙다니...
너붕은 살며시 손목을 놔주는 그에게서 벗어나 밖으로 나왔어.
어쩐지 당황스럽고, 이상하고, 가슴이 뛰는 기분이 들어 너붕은 계단을 뛰어내려가듯이 다급히 내려왔음.
그가 잡은 손목이 계속해서 달궈지는 느낌이었지.

이건 뭔가 잘못됐어.

너붕은 애써 이 묘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그 이후 일에만 집중했어.
하녀들끼리 수다 떠는 것도 들리지 않고 멍하니 일만 했지.
어찌나 열중했는지 그래도 밥은 먹고 일해야지, 하며 아가사가 빵을 갖다주기 전까지 너붕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빨래를 두들기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러다 보니 일이 오히려 금방 끝났고.
약속한 저녁 시간은 여유있게 다가왔음.

어떡하지? 옷을 갈아입고 가야 하나.

너붕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실로 오랜만이었음.
아직 1시간 남짓 남은 시간.
너붕은 작은 옷장을 뒤지며 다 똑같은 하녀옷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
쭉 하녀로 일해왔으니 그거 말고는 입을 게 없었음.
그밖에 필요한 옷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귀족 나리 앞이니까 일하고 더러워진 옷으로 가는 건 좀 그런가?
그렇다고 이 시간에 새 옷으로 갈아입기도 뭐하고.
너붕은 한참을 갈팡질팡 고민하다 결국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도록 옷을 잘 정돈하고 계단을 올랐어.

똑똑.
노크를 하자마자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에 너붕은 잠깐 사고가 정지했음.
문이 벌컥 열리고 자신을 이끄는 키 큰 남자에게 더 놀란 건 물론이었지.


-왔군. 어서 들어와. 빨리!


원래라면 하녀가 문을 열어야 정석인데.
윌리엄은 급하다는 듯 너붕을 이끌며 창문 쪽으로 손짓했어.


-지금이 아니면 못 볼지도 모르니까.
-대체 무슨...
-쉿!


그는 자연스럽게 너붕을 창문 앞으로 조심스럽게 세웠어.
대체 뭘 보라고 이러는 걸까.
그는 조용히 해야 한다며 랜턴을 조심스럽게 들어 창문쪽으로 옮겼지.
너붕은 오늘따라 지나치게 심장이 많이 뛴다고 여기며 그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살금살금, 창문 앞에 다가가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봤어.
그리고 과연, 창문 밖 구석진 곳에 무엇인가 있었음.
너붕은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눈이 커졌어.
나뭇가지가 촘촘하게 얽힌 새 둥지.
귀하신 대공저 창밖 한 귀퉁이에 무허가로 집을 지은 작은 새가 있었음.
둥지 위에 앉은 작은 새 아래로, 더 작은 보송보송한 솜털의 새끼들까지 보였음.
너붕은 숨죽이고 그 움직임을 관찰했어.
미세하게 삐, 삐, 하는 울음이 들려왔지.
작은 새끼들이 어미가 움직일 때마다 파드득 떨며 밥을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리다 추위에 다시 웅크렸음.
어미새는 저녁이 되어 온기를 유지하려는지 부리로 둥지 주위의 털을 끌어모았어.

세상에.

어느새 너붕은 그 작은 생명체들에 완전히 몰두해 중얼거렸어. 너무 귀엽다...


-좋아할 줄 알았어.


그때 너붕의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어.
장난기 가득한, 소년같은 말투로.
너붕은 그제야 윌리엄이 바싹 붙어 너붕의 어깨를 감싸쥐고 뒤에서 함께 새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지나치게 가까웠지.
은은한 담배향이 너붕의 주위를 감쌌어.


-짝짓기가 늦어졌는지 알을 늦게 낳더군. 그래도 덕분에 내가 볼 수 있었어. 아니었더라면 자리를 비웠을 때 이미 다 사라졌겠지...
-......


너붕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어.
하지만 어색해지지 않으려면 뭐라고 말은 해야 할 것 같았지.


-...추워지기 전에 잘 크면 좋겠네요.
-응. 아마 내가 또 자리를 비울 쯤엔 다 커서 날아갈 거야.


또라니?
너붕은 뒤돌아 윌리엄의 얼굴을 바라봤어.
자연스럽게 그의 손이 떨어지고 그는 어깨를 으쓱했음.


-조만간 수도에 다시 가야 해. 처리할 게 있어서.
-일이 많으신가봐요.
-...그래.


윌리엄은 그렇게 말하고 어쩐지 조금 씁쓸하게 미소지었어.


-결혼식 준비를 해야 하니까.














매튜좋은너붕붕
2023.10.26 21:59
ㅇㅇ
모바일
결혼식이라니이이유ㅠ
[Code: 4da2]
2023.10.26 21:59
ㅇㅇ
모바일
매튜좋은 매튜윌리엄구드 본명 ㄹㅇ 귀족같ටㅏ
[Code: 4da2]
2023.10.26 22:02
ㅇㅇ
모바일
헉 결혼(*꒦ິ³꒦ີ)
[Code: d2c3]
2023.10.26 22:13
ㅇㅇ
모바일
ㄴㅇㅁㅇㄱ 매튜 결혼해??
[Code: 7113]
2023.10.26 22:45
ㅇㅇ
모바일
센세 너무 재밌다… 어나더
[Code: 5839]
2023.10.26 22:53
ㅇㅇ
모바일
결혼하지마༼;´༎ຶ۝ ༎ຶ༽ 허니 두고 결혼하지마༼;´༎ຶ۝ ༎ຶ༽ 
[Code: fa86]
2023.10.26 23:50
ㅇㅇ
모바일
아니? 난 알고 있어 그 결혼..사실은 허니랑 결혼이잖아 맞잖으아악
[Code: dc56]
2023.10.26 23:52
ㅇㅇ
모바일
허니처럼 엄청 설레어 하다가 마지막 말을 보고 너무 슬퍼서...... 그 결혼 허니랑 하면 안돼냐구요ㅠㅠㅠ 티모시가 나온거 보니깐 티모시가 서브남이나 아니면 둘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되어주나? 뭐가됐든 둘이 영사해(˘̩̩̩ε˘̩ƪ)
[Code: 1429]
2023.10.27 00:08
ㅇㅇ
모바일
당차다 허니!!!
[Code: ab4c]
2023.10.27 01:52
ㅇㅇ
모바일
매튜ㅠㅠㅠㅠㅠ결혼하냐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4b6c]
2023.10.27 04:16
ㅇㅇ
모바일
않이...결혼식..!
[Code: 9bc2]
2023.10.27 13:07
ㅇㅇ
모바일
결혼식이라니..!
[Code: c435]
2023.10.30 20:12
ㅇㅇ
모바일
허니 또 헛다리 짚었어ㅋㅋㅋㅋㅋㅋ 근데 결혼식이 웬 말?
[Code: 4da8]
2024.05.23 20:00
ㅇㅇ
모바일
결혼이라니ㅠㅠㅠㅠㅠ
[Code: c461]
2024.05.28 08:34
ㅇㅇ
모바일
너무 재밌다 ㅋㅋㅋㅋㅋㅋㅋ결혼식 안 돼!!!!
[Code: 1583]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