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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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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키요이 맇쿠유세이 앎그






 
히라랑 키요이는 학교는 같지만 각각 3학년 2학년으로 학년 차이가 있는 데다가 각자 살아가는 세계가 전혀 달랐으면 좋겠다. 히라는 킹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학교의 알파 메일이고, 키요이는 1학기 말에 전학 와 제대로 된 친구도 없이 공부도 유흥도 그럭저럭인 아웃사이더였으면. 유달리 예쁜 것 외에는 눈에 띌 일 없이 홀로 학교 생활을 조용하게 이어나갈 뿐인.
재력도 교우도 성적도 준수한 데다가 전교회장까지 맡고 있는 히라를 모르는 사람은 교내에 아무도 없었음. 키요이도 전학 직후부터 같은 반 학생들이 히라 카즈나리라는 이름만 나와도 호들갑을 떨었던 터라 그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음. 다만 얽힐 일이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지. 키요이는 그렇게 매사에 무관심하거나 심드렁한 상태로 학교를 들락거렸어. 그의 미모에 분명 관심을 보인 학생들도 있었긴 했지만 키요이의 성격이 외모처럼 고분고분하지는 않다는 걸 깨달은 후 다들 멀어지고는 했지. 차라리 다행이었어. 가뜩이나 스스로 이복동생들과 행복한 부모님 사이에 낀 이물질 같다고 느끼고 있었던 키요이에게 가정사 이상의 사건과 사고는 피로로 다가올 뿐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청소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오메가로서의 형질이 발현되고 있던 터라 바깥 세계의 자극을 최대한 제거하는 게 키요이에게는 중요했어. 아직까지는 바깥에서 곤란한 일이 터진 적은 없었지만 신경을 늦출 수는 없었어.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겨야 하는 것이 오메가로서의 정체성이었지. 정체를 들킨 오메가들은 대개 차별과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밑바닥의 진창을 기게 되는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었어.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외딴 섬처럼 전학 이후의 학창 생활을 보내고 있던 키요이였어.

그렇게 한 달 가량 시간이 흘러 여름방학이 가까워지고 있었지. 키요이는 인적을 피해 아무도 없는 교실 사물함에 드러누워 두 눈을 감은 채 늦여름의 뜨끈한 햇빛을 쬐고 있었어. 순간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지. "예쁘다." 그림자보다도 어두컴컴한 목소리. 키요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떴어. 히라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지.
'기분 나쁜데.'
싱긋 웃는 히라의 얼굴에 대고 내뱉을 수는 없는 말이었기에 속으로만 삼켰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누웠던 몸을 일으켜 앉았어. 
"키요이 소?"
새까만 눈동자는 흥미와 관심으로 번들거렸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명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히라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발바닥부터 아랫배와 가슴께를 지나 머리 끝까지 간질거리고 저릿한 느낌이 타고 올라왔어. 키요이의 귓바퀴는 발그레해졌고. 뒷목을 만지작대며 고개를 끄덕거렸지. 히라는 만족스럽게 '으응' 대답하며,
"그럼 또 보자. 키요이 군."
키요이로부터 등을 돌려 돌아갔어. 


그날부터 키요이는 히라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어.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바라보기 시작한 히라는 생각보다 더더욱 매력적인 사람이었지.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빼어나서 멋진 것이 아니라, 다만 따뜻하고 상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지. 히라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래 키요이는 벌써 여러 차례 히라의 선행을 목격해왔어. 누구나 좋아할만 한 선배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특히 지저분한 개천에 떠내려가는 고무 오리를 심혈을 기울여 카메라에 담아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난 뒤로는 히라라는 사람이 키요의 가슴 속에 더더욱 묵직하게 자리잡게 되었지.
오직 히라 한 명 때문에 교내 사진부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고백을 받는다는 소문이 따랐지. 키요이는 유치한 놀음이라고 비웃으면서도 히라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갈 용기도 자신도 없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어. 오늘도 저 멀리서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웃고 떠드는 히라를 힐끔대기만 할 뿐. 히라가 그날처럼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고 남모를 욕심을 품기만 했지.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1학기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 방학식을 마치고 노을이 질 무렵 강변을 따라 하교하고 있던 키요이의 옆에 자전거 한 대가 멈춰섰어.
"키요이 군. 집에 혼자 가?"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히라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어. 히라의 등 뒤로 펼쳐진 강물은 지는 해를 받아 반짝거려 키요이의 눈을 부시게 했고. 나긋한 목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도 키요이는 담담한 척을 하기 위해 몹시 애를 썼어. '예, 뭐...' 애매하게 대답했지. 혼자라는 사실을 들켜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그냥 키요이, 라고 부르세요. 키요이 군이라니. 같은 남자끼리 누가 그렇게 부른다고." 
분명 동경하는 상대인데도 말은 곱게 나가지를 않았어. 키요이는 자신의 올곧지 못한 천성이 일을 그르치는 것만 같아 더 속이 상했지. 키요이가 걸음을 늦추자 히라도 자전거를 천천히 끌고 가기 시작했어. 그렇게 걸음을 맞춰가는 히라를 키요이는 참으로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발끝만 봐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어. 감정의 진폭이 커질수록 페로몬의 조절도 쉬워지지 않는다는 걸 아직 미성년자인 키요이는 알지 못했지. 히라는 키요이 옆에서 묵묵히 자전거를 끌고 가며 엷은 미소를 지었어. "그럼 그럴게. 키요이." 한동안 침묵과 함께 걸음이 이어졌어. "예쁘다." 키요이가 고개를 들어 히라 쪽을 보니, 히라는 강가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대고 있었어. 얼굴이 확 붉어진 키요이는 '그러게요' 따위의 말을 덧붙이면서 괜히 제 머리카락을 흐트렸지.

히라와 갈림길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키요이는 침대에 드러누워 뜨끈해진 이마에 손등을 얹었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그때야 자신의 몸에서 페로몬이 스물스물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평소 이런 적이 없어 크게 당황하고는 약을 한 주먹 털어넣었어. 설마 히라가 알파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 알파와 오메가는 극소수만 존재하기도 하거니와, 만에 하나 히라가 알파였다면 무방비하게 새어나오는 키요이의 페로몬을 걱정하며 도움을 주고도 남았을 작자이니까. 그 와중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걸 보니 히라도 평범한 베타 중 하나겠구나 싶었어. 그래도 요즘 들어 점점 컨트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던 터라, 앞으로는 조금 무리하더라도 외출할 때는 약을 과복용하기로 마음 먹었지. 오메가인 걸 들키면 좋을 게 하나 없으니.


키요이의 여름방학은 다소 험난했어. 날이 갈수록 온몸에 열이 들끓는 일이 잦았고, 약이 없으면 외출 자체가 불가한 날도 많았어. 낮에도 밤에도 열대야에 앓는 사람처럼, 뒤척거리고 끙끙거렸지. 참다 못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성인기가 가까워지면서 찾아오게 된 일종의 과도기처럼 보인다면서, 가능한 걸맞은 알파를 파트너 삼아 페로몬을 공유하며 안정되는 편이 좋겠다고 진단했지. 키요이는 의사의 면전에 웃기는 소리라며 쏘아붙이고는 터덜거리며 병원을 빠져나왔어.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키요이는 어둠이 내려앉는 거리를 바라보며 병원 앞 계단에 주저앉아 소매로 얼굴을 마구 문질렀지. 가당치도 않은 얘기라고 생각했어. 파트너, 라는 단어에 단박에 히라의 얼굴을 떠올리고 만 자신에게 쌉쌀한 혐오감까지 들 정도였지.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열감에 짜증이 솟구쳐,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 한 줌을 단숨에 삼켜냈어. 최근 들어 약을 덥석덥석 삼켜냈다보니 몸이 가뜩이나 쇠약해져 있었는데, 단번에 기준치보다 훨씬 높은 복용량을 집어삼키게 되니 약 기운은 삽시간에 퍼져들었고, 키요이의 시야는 빠르게 선명도를 잃어갔어. 


키요이는 분명 집에 돌아가려고 했어. 그러나 희미한 의식 속에서 몸이 따르는 향기를 좇다보니 어느새 그의 발길은 유흥가로 향하고 있었지.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이면서,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 앳된 얼굴로 술집과 업소가 즐비한 거리를 휘청대고 있는 키요이의 존재는 좋지 못한 시선을 끌기 충분했어. 번쩍거리는 불빛, 화려하고 시끄러운 사람들, 지저분한 간판과 건물. 버티다 못한 키요이는 으슥한 골목 아무데나 몸을 숨기고 한 구석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어. 과연 이런 음지에는 알파도, 오메가도 바깥 세상보다는 훨씬 많았기에 사방에서 끼쳐오는 페로몬에 정신은 더더욱 아득해졌지. 앉아 있을 힘마저 부족해진 키요이는 그대로 드러눕고 말았지. 그때, 골목 안쪽 어두운 데서 사람 하나의 인기척이 느껴졌어. 발소리가 가까워졌지만 키요이는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지. 충분히 어두운 골목이라고 생각했으나, 가까이 다가온 그로 인해 키요이의 얼굴 위로 더더욱 짙은 그림자가 졌지.
"키요이."
꿈인가 싶을 만큼 아득한 목소리. 그러나 애타게 바라고 있던 목소리. "...선배?" 키요이는 눈살을 좁히며 그의 얼굴을 바로 보려 애쓰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어. "히라 선배?" 정말로 그는 히라였어. 키요이를 바라보며 싱긋거리고 웃고 있었지. 언제나 그래왔듯이. "키요이" "...네?" 아까부터 주변에 맴돌던 낯선 페로몬이 더더욱 짙어지는 걸 느낀 키요이는 헛기침을 했어. "그렇게 무방비하면 금방 잡아먹혀." 히라는 손을 뻗어 키요이의 머리카락을 살살 정리해줬어. 히라의 손끝이 귓가에 툭 툭 닿을 때마다 키요이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지. "아무 데서나 드러눕고, 방심하고... 웬만하면 그러지 마." 히라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가에 물었어. 담뱃불을 당기며 덧붙였지. "너 진짜 위험해." 키요이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지. 히라는 라이터 끝에서 일렁거리는 불빛을 한동안 동공에 가득 담았다가,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면서 키요이를 바로 보았어. 먼 발치에서 바라봤던 히라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어. 그러나 키요이에게는 눈 앞에 히라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꼭 구원처럼 느껴졌어. 알파들이 어슬렁대는 이런 골목가에 방치된다면 정말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공포스러웠지만, 사려 깊은 히라가 나타난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다 싶었지. "키요이 군은 왜 이렇게 됐을까."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키요이의 머릿속이 녹아내리는 것도 같았지. 또 키요이 군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이 열이 올랐고. "...열이 좀 나는 것뿐예요." 그 와중에도 쉬이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키요이였지. 히라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빨며 그런 키요이를 바라봤어. 그런데 히라 선배는 왜 이런 곳에 있었던 걸까. 일말의 의문이 키요이의 머릿속을 스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재고 따질 겨를이 없이, 오직 히라만이 그의 동앗줄이었어. 자신이 역겨운 오메가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을 베타에게 죄책감마저 드는 키요이였지.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은 키요이인데도.




사실 히라는 학교에서만 평판을 관리했다 뿐이지 밤거리에서는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 나쁜 알파였으면 좋겠다... 사실 인근 유흥가를 꽉 잡고 있는 집안의 외동아들인데다가 얽혀서는 좋을 게 없는 음침한 놈이었으면... 실제로 히라 때문에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진 이들도 여럿 있었겠지. 학교에서도 히라와 가까운 소수의 측근들만이 이러한 이중성을 알고 그와 어울리고 있었는데, 키요이는 착해빠진 히라 선배 동경하면서 남몰래 맘 키워가고 있던 거였으면... 그렇게 약 기운에 얼레벌레 흘러들어간 거리에서 양의 탈을 쓰고 키요이를 눈독 들이고 있떤 히라 눈에 딱 띄어서 몽롱한 정신 속에 첫 경험 뺏기고 그날 일로 히라한테 저당 비슷한 거 잡혀갖고 그 뒤로 학교 곳곳에서 이렇게 저렇게 먹음직스럽게 굴려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