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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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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불꽃같은 만남을 한 후 일주일 뒤, 히라가 우리 병원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일주일을 또 미친듯이 바쁘게 살았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아무 일 없다고 했다. 



히라는 정신과였고, 나는 일반외과였다. 딱히 마주칠 일이 없어서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과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출근을 했다.



사실은, 내가 잘못한것 마냥 필사적으로 히라를 피해다녔다. 정말로 단 한순간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3일만에 헛수고로 돌아갔다. 출근길에 만원이 된 엘레베이터를 먼저 보냈는데, 그새 그 앞에서 마주쳐버렸다.



어색한 침묵만이 흐른다. 그리고 히라가 먼저 말을 건넨다.



잘지냈어?

으응..



바보처럼 말했다. 아마 히라 눈에는 내 표정도 바보 같았을 것이다. 엘레베이터가 도착할 때 까지 다시 침묵만이 흐른다.



이제서야 잘 지냈냐고 묻는 니가 괘씸하지만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 때보다 행복해졌나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니가 행복하다고 하면 진짜 짜증날 것 같아서. 잠이라도 깨려고 1층에서 내려 커피 두 잔에 각각 투샷을 넣은 커피를 샀다. 그런데 언제 내 뒤에 왔는지,



키요이, 여전히 그렇게 먹구나. 몸에 안좋아.



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말에 예전 기억이 떠올라 대답하지 않고 빠르게 피해 방으로 돌아왔다. 옛날에 연인 사이일 때도 히라는 내가 커피를 진하게 먹는 것을 걱정했다. 잠을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히라를 따라갈 수 없었기에 먹었던 커피인줄을 히라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그렇게 습관이 된 커피였다.



커피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우리집은 평범한 집이고, 히라의 집은 대대로 의사 집안이다. 6년을 만난 만큼 히라의 어머니를 만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아니, 겉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히라에게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불평하다기 보다는, 그에게 더 알맞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커피를 평소보다 조금 더 마시고 공부하다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실려갔었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일을 히라가 알게되었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혹시나 어머니 때문인가 싶었지만, 우리 둘 사이에 어머니는 관련이 없다고 히라가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헤어지던 날은 비가 많이 왔다. 그리고 정말 많이 울었다. 평생 살면서 이렇게 울어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히라가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고, 나는 끝까지 따라가 잡았다. 그리고 히라의 몸을 돌려세웠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헤어지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 더 슬프게 울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목소리가 끊어지는 와중에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남자를 무슨 수로 잡는지,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빗속에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당연하게도 나는 감기에 걸렸고, 습관처럼 히라에게 아프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 때 실감이 났다.



아, 우리 헤어졌구나.



오기였다. 자존심 따위는 이미 버린지 오래여서 그런지, 히라가 연락을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번을 전화했을까, 드디어 히라가 전화를 받았다. 받으면 욕이라도 해주려고 했지만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만 오갔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히라가 입을 뗀다.



키요이, 우리 헤어졌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말은 내가 들어본 히라의 목소리 중에 가장 차가웠고, 연인으로 6년을 지내던, 내 것이었던 히라가 아니었다.





히라키요이 맇쿠유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