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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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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잘 맞는 편임에도 함께 살지 않는 이유는 노부가 늦둥이 동생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유우는 도쿄에 있는 대학교 입학을 꿈꾸며 시골에서 상경했다. 졸업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학교를 옮기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진작 도시로 나가 큰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부를 가족들은 자랑스러워했다. 시골 학교에선 1등을 밥 먹듯이 했지만 도시로 전학온 후 유우는 전처럼 높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치다가 노부를 통해 맛있는 간식을 몇 번 사주기도 했다. 집안 내력이라고 해야 할까, 유우는 또래 여자애들에 비해 키가 크고 먹성이 좋았다.

"오빠 내가 온 뒤로 식비 많이 늘었지?"
"뭘 그런 걸 걱정해."
"그래도... 내가 많이 먹기는 하니까. 나 주말에라도 아르바이트할까? 반 친구가 주말마다 샐러드집에서 일하거든."
"됐어. 고3이 무슨 아르바이트야. 공부나 해."

유우의 고민이 아주 쓸데없는 고민은 아니었다. 대리 월급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성과금이니 이런저런 수당이니 나온다고 쳐도, 도쿄의 비싼 생활비와 자동차, 집 유지비를 감당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밤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래도 1년 정도만 버티면 유우가 대학에 가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그럼 그땐 마치다와 동거를 하며 생활비를 아낄 수 있겠지, 하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영업1] 마치다 과장: 나 10시에 먼저 나갈테니까. 15분 뒤에 너도 나와.
[영업1] 스즈키 대리: 외근 결재 못 받았는데요.
[영업1] 마치다 과장: 그거 어차피 내가 하는 거잖아.
[영업1] 스즈키 대리: 아무리 몰래 데이트하러 나가는 거라지만 할 건 해야죠. 그래야 의심 안 받아요.
[영업1] 마치다 과장: 아 그럼 갖고 오던가. 빨리 가져와.
[영업1] 스즈키 대리: 하던 일 마무리 하고요.
[영업1] 마치다 과장: 그냥 내가 작성하고 결재도 내가 할게.
[영업1] 스즈키 대리: 나랑 필체가 다른데 어떻게 그래요.



"저기... 스즈키 대리. 오늘 외근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예. 곧 결재 올리겠습니다."
"그래요..."



[영업1] 스즈키 대리: 방금 그 어색한 말투 뭐예요?
[영업1] 마치다 과장: 나 지금 나갈 거니까 15분 뒤에 나와. 외근 일지는 이따 다녀와서 하자.
[영업1] 스즈키 대리: 가끔 보면 케이 진짜 막무가내인 거 알아요?




"나는... 과장들하고 회의가 있어서... 그럼 ..."

등 뒤로 지나가는 마치다의 발자국 소리마저 어색하게 느껴졌다. 노부는 남몰래 눈썹을 들썩이며 작게 한숨 쉬었다.

"외근 갔다가 점심 먹고 들어올게."
"대리님 외근 어디로 가세요? 저 인쇄소 다녀와야 하는데 가는 길에 저 좀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그, 그래."

졸지에 사원 하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평소 말이 없던 사원이 사무실 밖으로 나오니 답지 않게 수다스러워졌고 노부는 조금 피로했다. 늦지 않게 인쇄소 앞에 내려주고, 서둘러 차를 몰았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으려면 속도를 내야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둘만의 비밀 장소에 도착하니 마치다가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고 테이블 위엔 마카롱 상자가 놓여있었다. 유우를 위한 것이었다.

"갑자기 짐이 하나 생겨서. 인쇄소 들렀다 오느라 늦었어요."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이거 유우 먹으라고 줘."
"고마워요. 매번 이렇게 안 챙겨줘도 되는데."
"아냐. 나도 유우 꺼 사면서 겸사겸사 하나씩 먹으니까 좋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계산서도 함께 왔다. 계산서가 테이블로 올라오자마자 마치다는 그 안에 자기 카드를 끼워 직원에게 들려 보냈다. 내가 사겠다고 하기엔 솔직히 이번 달 월급이 빠듯했다. 노부는 멋쩍게 웃으며 잘 먹겠다고 말했다.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두사람은 식당 근처에 있는 공원을 찾았다. 작지 않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예쁜 공원이어서 운동하는 사람들과 피크닉을 나온 가족, 연인들이 많았다. 시커먼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대낮부터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는 게 여간 수상해 보이는 게 아니었지만 나름 데이트 중이었다. 손을 잡을 수도, 허리를 껴안을 수도 없지만.

"저기 봐, 강아지 있다."
"그러네요. 귀엽다. 강아지 키우고 싶지 않아요?"
"키우고 싶지. 근데 혼자 살면 키우지 말라더라고."
"나중에 우리 같이 살면, 그때 키울까요?"
"누가 같이 살아준대?"

장난인 줄 알면서도 요즘은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 한 구석에 돌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며 벤치에서 일어났을 때, 마치다가 습관적으로 따라 일어나며 노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놓았다.

"낮에 데이트하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적응이 안 된다. 미안해."
"사과하지 마요. 미안해 할 일 아닌 거 알잖아요."
"차 막힐 수도 있으니 얼른 가자. 아, 나 기름도 넣어야 하는데."
"먼저 들어가서 외근 일지 책상에 올려둘게요."
"응. 사무실에서 봐."

주차장에서 각자 차에 오른 뒤 약간의 시간 텀을 두고 출발했다. 시간이 조금 남은 노부가 집에 들러 마카롱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시 회사로 향하는 사이 마치다는 신경 안정제를 처방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3년째 신경 안정제를 복용중인 걸 노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숨길 의도는 없었지만 굳이 먼저 말할 필요성도 못 느꼈다.

[노부, 나 예정보다 더 늦어질 것 같아. 누가 나 찾으면 거래처랑 미팅 있어서 나갔다고 좀 둘러대줘.]
[알겠어요. 3시 전엔 들어와야 돼요. 회의.]
[응. 그 전엔 갈 거야.]

회의가 있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안정제를 장기 복용 하면서 기억력이 나빠졌다. 기분탓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뭔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기분은 결코 유쾌하지 못했다. 예약한 내원일 보다 며칠이나 늦게 간 것이라 약을 며칠째 못 먹고 있었기 때문에 처방 받은 약을 병원 대기실에서 바로 삼켰다. 약기운이 돌기 전에 어서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향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운전석에 올랐지만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케이, 정신이 들어요? 괜찮아요?"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낮에 갔던 정신의학과가 아니라 응급실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파왔다. 꼼짝도 할 수 없는 와중에 회의가 떠올랐다.

"지금 5시인 거지? 회, 회의는 어떻게 됐어...?"
"뭐라고요? 죽다 살아난 사람이 지금 회의가 문제예요?"

답지 않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노부 때문에 간호사가 달려왔다. 덕분에 마치다의 의식이 돌아온 걸 알게 돼 의사도 곧장 차트를 들고 왔다. 가방에서 나온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 수트 주머니에서 나온 진료비 영수증으로 보아 약을 먹고 바로 운전대를 잡은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며 의사가 덤덤하게 말했다. 최근에 스트레스가 심했느냐 과로했느냐 잠을 잘 못잤느냐 하는 물음에 마치다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잔뜩 지친 상태에서 며칠 동안 본의 아니게 끊었던 약을 갑자기 다시 먹게 된 게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조느라 아슬아슬하게 차가 휘청였고, 그 때문에 옆 차선에 있던 차들까지 줄줄이 사고가 났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다른 피해자들은 마치다 보다 덜 다친 상태였다.

"내가 회사에 다 얘기 해놨으니까 푹 쉬어요. 제발 회사 생각은 하지 말고요. 알겠어요?""
"응... 회사 사람들도 나 사고난 거 알아?"
"네. 내일 아침에 부장님이 잠깐 들르실 거예요. 알고 있어요."
"고마워 노부... 그리고 미안해. 걱정 시켜서..."

그제야 노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케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이런 식으로 깨닫고 싶지 않아요."
"응... 미안해."

마치다는 힘 없는 손을 꼬물꼬물 움직여 노부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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