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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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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 음인 차별없는 세계관
(정욕 편 2)

션 교수의 연구실을 수색하며 이것 저것들을 찾던 그들은 오래 되지 않아 한껏 성이 난 듯한 처장의 몰골을 보고서 슬슬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처장이 열 받으면 시시때때로 얻어 맞거나 발로 까이기 일쑤였으니까. 맨 처음 자리를 비운 것은 가장 몸집이 작은 다칭이었다. 


우선 결계를 치기 위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며 어포 타령을 하며 사라져 버린 뚱보 고양이를 시작으로 추수즈는 궈창청에게 결계 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을 핑계로 궈창청을 끌고 사라졌다. 새로 나타난 "수상한 연적" 때문에 추홍은 화장을 고치겠다며 눈을 흘기며 사라졌다. 연구실에 두 사람만 남자, 션웨이는 의식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연구실 문 앞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샤오웨이."
"자오 처장."
"둘밖에 없잖아. 반말하고 싶어."
"공적인 일입니다. 어디까지나 수사 중이니 지금의 상황에서는 경어를 쓰는 게 옳습니다."
"공적인 일은 개뿔. 지금 나 화 엄청 많이 났거든? 또 피하면 아마 난 스트레스로 피를 토하고 쓰러질 거야. 아니다. 그걸로 모자라지. 샤오웨이야. 진짜로 난 지금 당장 피 토하고 죽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
"...말을 해도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약을...!!!!!!"
"찾았다."

윈란의 주제넘은 비약에 욱한 션웨이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윈란은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션웨이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자신에게 이끌려 올 리가 없어 결국 윈란이 스스로 그 곁으로 가야 했다. 제 속을 얼떨결에 내보이게 된 션웨이는 말이 없었다. 윈란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그가 션웨이에게 말했다.

"우리 화해하자. 내가 성질 부린 건 잘못했지만 너도 엄청 열 받는 짓을 했어."
"......미안해."
"사과하지 마. 화해하자고 했잖아."
"...미안해."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였고, 당연히 그 말은 화를 부추겼다. 윈란은 오히려 싸우는 것보다 저 한 마디가 자신의 심장을 더 아프게 할퀸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고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를 보면 자기 자신까지 같이 비참해지는 기분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비참하고 처절한 얼굴로 사과를 하는 션웨이의 모습이 자오윈란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보기 힘들고 화가 나는 것이다. 

윈란은 분노의 불꽃으로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상대를 쳐다보았다.션웨이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듯이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가 핏줄 선 얼굴로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을 보고 윈란은 사뭇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 도대체 저 안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져 있는 걸까. 언제나 단정해 보이는 저 얼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걸까.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감추고 있는 걸까. 윈란은 션웨이의 감춰진 그것마저도 질투가 나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렇게 말하면 더 화나는 건 알아?"

그 말을 들은 션웨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쉴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도, 마음도, 하다 못해 온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자오윈란에 의해 흔들리고 떨리는 듯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에게 수천 가지의 말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나오는 말은 그 한 마디 뿐이었다.

"왜, 자꾸 사과만 해?"
"미안하니까."

너는 모른다. 욕망을 감춘 내 본질을 전혀 모르고 있다. 나는 끊임없이 인내하고 네 범주를 침범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내 마음을 결코 알지 못한다. 션웨이는 자신의 음습한 본성을 생각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 동시에 소유하고 싶어한다. 너를 파괴할 지도 모르는 그 사랑이 절절하여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한다. 너를 상처입히기 싫어하면서도 나는 동시에 네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

"그만하자. 더 화날 것 같아."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가. 누군가의 손을 꺾어버리다 못해 조각을 내어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을 너는 알기나 할까. 명백하게 화가 난 윈란의 목소리가 들리자 션웨이는 다시 한 번 억누르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자기 자신의 광기를 꺾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구실 밖으로 나간 그가 뒤따라 나온 윈란을 보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다. 그렇게 하면 윈란이 분노해서 자신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 할 테니까.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문 앞에 왜 책상이 있어. 이건 다 뭔데?"

그러나 자오윈란이 먼저 선수를 쳐 그의 공격을 막았다. 윈란이 연구실 문 앞에 있는 책상과 그 위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가르켰다. 바구니 안에는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실 윈란은 그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알고 있었다. 다만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다.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던 션웨이 때문에 가뜩이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저 상자의 정체까지 알게 되면 정말로 돌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편지들이야. 익명으로 보낸 편지들이 너무 많아서 바구니에 넣어 놓았어."

그러나 션웨이는 굳이 자신에게 직접 확인사살을 해 주었다. 러브레터라고. 자오윈란의 가슴이 아프게 찢겨졌다. 저 정도로 잘난 사내가 그런 걸 받을 만도 하지. 그러나 머리와 심장은 다르다. 가슴으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션웨이에 대한 독점욕 때문에 자신이 질투심에 사로잡힌 줄도 모르고 윈란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없이 바구니를 들여다 보았다. 바구니 중앙에 있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앞으로는 이 바구니에 편지를 넣었으면 합니다. 저는 불순한 제자들의 마음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 마음을 담은 서사를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편지들은 모두 일절 읽지 않았으니 바구니 내에서 편지를 가져가실 분은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션웨이]

그리고 그 팻말에 적힌 션웨이의 촘촘하고 단정한 글씨체를 보고서 윈란은 조금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화가 났다. 이 남자가 이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속에서부터 깊숙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윈란은 더는 참지 못했다. 션웨이에게 성질을 부려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저 혐오스러운 바구니를 통째로 엎어버리려 했다.

"비켜!"

그러나 그 순간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멈칫하기가 무섭게 션웨이가 윈란에게 몸을 날렸다. 자오윈란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까맣게 불타고 있는 한 편지가 눈에 보였다. 편지는 날고 있었다. 잽싸게 그것을 낚아채며 황급히 윈란을 뒤로 밀쳐낸 션웨이는 비틀거렸다. 윈란은 즉시 편지의 정체를 알아채고 부적을 날리며 소리를 질렀다. 음마의 조각이다. 분노 따위는 이미 두려움에 잠식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샤오웨이! 그 손 놔!"

편지를 손에 쥔 션웨이는 자신이 무언가에 빙의되는 듯한 큰 충격을 느꼈다. 손 안에서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발버둥치는 편지가 느껴졌다. 빨리 손 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윈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발버둥치는 편지를 그는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정신을 차리려 애썼으나 차릴 수 없었다. 그가 그대로 타들어가는 편지 안에 깃든 수마로 빠져들면서 정신을 잃었다. 쿵 쓰러지는 션웨이의 육신을 윈란이 가까스로 부축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몹시 무거웠으나 어쨌거나 뇌진탕 같은 것을 일으키는 불상사는 없었다.

쓰러지는 션웨이와 함께 편지는 션웨이의 손을 떠나 허공에 붕 하고 날았다. 윈란은 본능적으로 부적을 꺼낸 뒤 힘겹게 한 손으로 주머니 안에 있는 커터를 꺼내 제 손등을 그어내렸다. 진혼령주의 피를 묻힌 부적에서 불길이 일다가 까맣게 그을린 편지에 닿았다. 진혼령 채찍은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봉인을 해야 했지만 결계가 갖춰지지 않은 데다가 조각뿐인 음마인 주제에 그 파괴력이 생각보다 훨씬 끈질기고 강력했다. 그리고 이 편지에서 느껴지는 음기가 생각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자기 힘을 숨겨두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사이트에 있겠지. 씨발, 자오윈란은 속으로 쌍욕을 뱉었다.

이놈은 보통 요괴나 음마가 아니다. 그는 새삼 션웨이가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자신은 삼혼칠백 중 반쪽 짜리인 몸, 아마 션웨이가 자신을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빙의되거나 이용당했을 것이다.

[나를 막지 마라. 반쪽 짜리 진혼령주 주제에!]

무언가로 긁어내리는 듯이 째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편지의 조각인 음마의 원귀였다. 목소리가 제 머리를 어지럽혔지만 윈란은 음마와의 사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봉인은 불가능하니 우선적으로 편지를 잠재워야 한다. 윈란이 입술을 깨문 순간, 갑자기 편지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빌어먹을, 자각하지도 못한 망할 천룡이, 감히...!]

째지는 비명을 제대로 들을 틈도 없이 윈란은 다시 한 번 제 손등을 커터날로 박아내렸다. 진혼령주의 피가 편지에 투두둑 떨어져 내리자 마침내 편지가 잠잠히 가라앉았다. 윈란은 영력을 쓴 후유증으로 몸을 한 번 떨었다가, 기절한 듯 보이는 션웨이를 보았다. 자신을 위해 저렇게까지 한 션웨이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다시금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션웨이였으니까.

몸은 상당히 무거웠다. 윈란은 션웨이를 연구실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뒤, 그의 단단한 몸을 부축해 연구실로 천천히 걸었다. 단단한 몸은 자신의 것과 좀 다른 것 같았다.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워서, 자신을 흥분시키는 대신 부축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간신히 션웨이를 소파에 간신히 옮기는 데에 성공한 윈란은 이윽고 션웨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고 즉시 그를 불렀다. 샤오웨이. 애칭을 부르자 션웨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란."
"정신이 좀 들어? 괜찮아?"

제 아무리 분노에 차오른 이라 하나 자오윈란은 지금 단 하나의 분노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자신을 보는 션웨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왜 그러지? 음마는 잠재웠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되묻던 순간, 션웨이가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렀다.

"아란."

그 말을 끝으로 션웨이는 윈란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속절없이 당한 윈란은 그의 품에 안겼다. 아란, 션웨이가 자신의 애칭을 한 번 더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절절한 사랑의 조각들이 담겨 있었다. 조금 아플 정도로 자신을 끌어안은 팔은 단단했다. 윈란은 그의 품 안에서 무언의 안도감을 느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마음이 이상하고 간질거렸다. 그가 몸을 날려 자신을 구했고,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애칭을 불렀고, 그리고 자신을... 윈란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채 숨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안고 있었다. 션웨이는 윈란을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고, 윈란은 션웨이에게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잠시 동안 있었다. 윈란은 언뜻 그의 손이 잡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 같아서 자신을 끌어안은 션웨이의 손을 잡아 쥐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순식간에 얼어버린 듯 굳은 상대를 보고 윈란이 의아해져 그를 바라보는 순간, 션웨이는 파르르 몸을 떨며 그에게서 벗어났다. 그는 몹시 공포에 질린 듯한 얼굴로 자오윈란을 보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자 곧 표정이 자리를 찾았지만 그 얼굴은 매우 암울해 보였다.


"션웨이..."
"잊어버려. 아무것도 아니야."

난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션웨이의 얼굴은 몹시 차갑고 서늘해 보였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자신의 손을 잡은 윈란의 손을 보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얼어버렸다. 혹시 방금 쓰러진 것에 대한 건가. 후유증이 있는 건가 싶어 걱정스러웠던 윈란이 션웨이를 내려다 보았다.

"샤오웨이. 괜찮은 거야...?"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고 괜찮냐는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던 찰나 두 사람의 눈이 맞물리자 윈란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션웨이가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자기 심장을 칼로 도려내고 파낼 것만 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받은 게 명백한 두 눈이 자신의 심장까지 함께 도려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입을 움직였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션, 그 목소리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내뱉었을 때. 윈란은 션웨이의 손을 잡고야 말았다. 지금 이 순간, 그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찬 손을 쥐고 있으면 달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

그러나 션웨이는 기어이 윈란이 쥐던 손을 놓아버렸다. 션웨이가 자신의 손을 놓자 윈란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자오윈란이 자신의 손을 뿌리친 것에 대한 충격에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가 매우 낮은 목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시허옇게 질린 그의 안색은 어딜 봐도 멀쩡하지가 않았다. 윈란은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는 그 말은 마치 자기암시 같았다. 창백한 혈색부터 사람들을 모조리 물어뜯어 버릴 것 같은 눈빛까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오윈란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션웨이가 자신의 손을 뿌리쳤기 때문이다. 윈란은 션웨이의 무언가를 읽었지만, 이제 더 성질을 부릴 만한 힘도 없었다.

"음마의 정체를 알았다. 당장 튀어와."

지친 표정을 한 자오윈란이 그대로 특조처에 전화를 걸어 소집하며 션웨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처절해 보였다.
자신의 마음까지 같이 아파올 정도로.

가장 화가 났던 건 윈란이 또 다시 션웨이의 단단한 육신을 만져본 것만으로 서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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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백 웨이란 진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