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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7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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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긴치다 슈가하이_Moment.jpg


붉은 보석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크기와 순도를 볼 때부터 이럴 거라고 기대하긴 했지만 그동안 전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오른손의 상처가 빠르게 회복돼 가고 있었다. 각인의 복구도 무척 빨랐다. 여전히 마치다는 밤에만 와서 봐 주고 낮에는 츠지무라나 미야무라가 중점적으로 돌봐주고 있었고 가끔 고토가 몰래 잠입하면 류세이가 잡으러 오곤 했었는데 츠지무라와 미야무라도 상처가 나아가는 속도를 보며 놀란 듯했다. 그리고 고토는 노부의 손에 커다란 붉은 보석이 쥐어져 있는 걸 본 첫 날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입을 양 손으로 가린 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맛치 형이 만들어 준 거죠, 이거?"
"네."
"만들어 줄 줄 알았어. 히힛."

맛치 형이 말은 무섭게 해도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재잘거리면서 히힛 웃는 고토를 보고 있던 노부는 불현듯 이 웃음을 몇 년 전에 봤던 것을 떠올렸다. 10년 전쯤, 노부가 아직 A급 소환사였을 때였다. 도심에서 몬스터가 출몰해서 급히 토벌에 나갔다가 몬스터들에게 쫓기면서 울고 있는 아이를 봤었다. 꽤 어린 아이라고 기억했는데. 그 아이는 노부가 구해주자 너무 무서웠다면서 노부의 품에서 엉엉 울다가 곧 히힛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 왔었다. 형 마중 나왔다가 몬스터를 만나서 너무 무서웠다고 했던가. 

"고토 상은 키가 늦게 크신 편입니까?"

고토가 얼굴은 앳되 보여도 키는 마치다와 비슷할 정도로 컸기 때문에 그렇게 물어보자, 고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에 갑자기 확 컸어요. 그때 너무 한꺼번에 크는 바람에 뼈가 갑자기 자라서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그랬죠."
"...아..."
"그래도 커서 다행이에요. 맛치 형이 제가 키가 안 큰다고 매일 우유를 잔뜩 먹였거든요. 몇 년 전에 키가 안 컸으면 저는 우유가 돼 버렸을지도 몰라요."

진짜 우유인간이 돼 버리고 말았을 거라며 울상을 짓는 얼굴이 참 귀여웠다. 목숨값이고 뭐고를 떠나서 이 사람을 구했던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고 맑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때 이야기를 묻자니 생색내는 것 같아서 묻지 못하고 이런저런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늘도 여전히 고토를 잡으러 온 야오토메 류세이는 고토와 달리 노부가 쥐고 있는 붉은보석을 보고 인상이 확 굳었었다. 

노부가 잘못되면 S급 화염의 소환사가 될 가능성이 제일 큰 자라더니 그래서인가 싶었었다. 그러나 고토가 맛치 형이 붉은 보석 만들어줬다며 히히거리고 웃을 때, 류세이가 한 말은 결이 조금 달랐다. 

"그래, 그래서 지금 마치다가 반 시체 상태지."

고토가 어려 보이긴 해도 엄연히 A급 소환사고 능력도 꽤 뛰어나다고 들었다. 그러니 붉은 보석이나 푸른 보석, 하얀 보석을 만드는 게 얼마나 소환사에게 부담이 되는지를 모르는 건 아닌지 시무룩해졌다. 류세이는 그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는 고토의 등을 툭툭 쳤다. 

"네 탓 아니야."
"내가 만들어달라 해서..."
"지 몸 갈리는 거 다 알면서 덤빈 마치다 자식 탓이지."
"..."
"걱정되면 가서 치즈케이크나 한 판 사 오든가."
"그럴까?"
"그래."
"큰 거 사 와도 돼?"
"그래."

고토가 신나서 일어나자 야오토메가 고토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치지 말고 케이크만 사서 바로 와, 사고뭉치 꼬맹이."
"꼬맹이 아니야!"
"그래, 사고뭉치 안 꼬맹이. 사고치지 마."
"사고뭉치도 아니야!"
"그래, 안 사고뭉치 안 꼬맹이. 얌전히 케이크만 사서 와."
"알았어!"

노부와 야오토메 사이에는 침묵만 흘렀다. 츠지무라와 미야무라는 노부에게 환자 이상의 관심이 없었다. 친절했지만 직업상의 친절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고토는 노부를 아주 좋아했고, 가끔 밥을 가져다주는 아마미야는 미야무라나 츠지무라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노부에 대한 흥미를 보이기는 했다. 마치다는... 여전히 까칠하게 굴긴 하지만 때때로 아니 그보다 더 자주 노부를 향한 걱정과 염려가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야오토메 류세이는 마치다나 츠지무라, 미야무라가 없을 때 노부의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주고 노부의 몸을 닦아주고 환자복을 갈아입혀주고 붕대도 꼼꼼히 잘 갈아주지만 굉장히 적대적인 게 그냥 느껴졌다. 노부가 죽어서 자기가 S급이 되길 바라는 건가 하기에는 노부를 돌봐주는 손길이 너무 꼼꼼했다. 죽기를 바라는 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왜지?

"마치다 상은 괜찮으십니까?"
"아니요."

노부가 민망함에 입을 다물자, 야오토메는 노부의 자세를 바꿔 주고 욕창 방지 매트의 공기를 조절해서 편안하게 해 준 다음에 다시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꺼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붉은 보석은 소환사가 가진 본연의 힘을 끌어내서 만들어야 합니다. 소환수의 힘을 쓸 수가 없죠. 마치다는 자기 힘을 다 끌어내서 보석을 만드느라고 기운을 소진했는데, 그쪽이 여기 있고 마치다가 그쪽을 치료하느라 힘을 빼고 있다는 걸 외부에서 알게 해선 안 되니. 마치다는 그쪽이 여기 오고 난 뒤에 토벌전도 두 번이나 나갔었습니다."
"토벌전을 두 번이나 나갔다고요?"
"네. 그러니 지금 살아 있는 게 기적이죠."
"제가 여기 오고 열흘 정도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S급 소환사가 필요한 토벌전이 두 번이나 있었다고요?"

몬스터들이 갑자기 출몰하기 시작한 건 노부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처음에 인류는 이 몬스터들에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고 인류의 피해가 극심했었다. 그래서 노부의 세대는 고아들이 매우 많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많이 죽어나갔고, 그 상황에도 아이들만은 지키려 했던 부모들이 많았기 때문에. 노부도 그렇게 고아가 됐다가 돌아가신 스승님이 거둬서 기르고 가르쳐 주셨었다. 하지만 소환사들이 대거 등장하고 인류는 몬스터들에 대응하게 됐고, 인류가 점점 더 체계를 갖춰서 몬스터들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 

최근에는 열흘 사이에 S급 소환사가 두 번이나 나가야 할 정도로 몬스터 출몰이 잦지 않았는데. 

"일단 S급 화염의 소환사가 실종된 상태고 S급 질풍의 소환사는 사망, 전격의 소환사는 부상당한 상태라 다른 S급 소환사들의 출동이 잦아지기도 했고."
"아..."

노부는 그때 살아남기 위해서 전 약혼자의 각인을 공격했다. 그 외에는 크게 공격을 할 수 있는 여력도 없었지만 그 자도 각인을 공격당해서 훼손됐으니 전격의 푸른 늑대를 소환하지 못해서 곤란해하고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그 자에겐 푸른 보석이 있으니 각인의 복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어쨌든 둘이나, 그것도 기본 속성 S급 소환사가 둘이나 빠졌으니 마치다의 출동이 잦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열흘 사이에 두 번이면 많은 거 아닙니까?"
"최근 몬스터들의 출몰이 잦아졌습니다."
"뭐라고요?"

야오토메는 태블릿에 몬스터 출몰 기록을 띄워서 보여주었다. 확실히 이전에 비하면 너무 잦아졌다. 

"아직 이유는 모릅니다. 소환사 협회도 협회장이 다쳐서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고. 그러게 왜 협회장을 공격해서 이 사달을 만들었습니까?"
"안 그랬으면 내가 죽었을 테니까요."
"이... 그건 그렇지. 그럼 공격해야지."

그러니까 야오토메 류세이는 노부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적의를 숨기지를 않냐고. 그러나 누워 있으면 온갖 쓸데없는 생각만 떠오르고 그래봐야 도움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눈을 감았다. 야오토메도 별 관심이 없는지 태블릿으로 뭔가 보고 있기만 했고. 





그날 밤 자다가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서 눈을 뜨자 마치다가 침대 옆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을 끌어다놓고 케이크를 부지런히 먹고 있었다. 저렇게 조금씩 입 안에 넣으면 맛이나 느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조금씩 먹고 있는데 맛이 제대로 나기는 하는지 마치다는 노부가 여기 와서 본 얼굴들과 달리 몇 년 전 늘 노부에게 상냥하던 때처럼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너무 좋아서 잠에서 깬 티를 내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마지막 한 조각을 행복하게 접시에 덜던 마치다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어? 언제 일어났어?"
"아까 일어났습니다."

마치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남은 한 조각의 케이크를 자기 접시로 옮기다가 다시 고개를 번쩍 들고 노부를 바라봤다. 

"먹고 싶어?"

자다가 일어났고, 붉은 보석 때문에 회복이 빨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피닉스는 노부의 머릿속에서 날뛰며 노부를 채근하고 있었고 많이 다쳤던 몸은 여전히 여기저기가 힘들고 아팠다. 그런 몸과 정신 상태로 자다 일어나서 케이크 같은 게 당길 리 없어서 노부가 고개를 젓자, 마치다는 행복한 얼굴로 케이크를 작게 잘라서 입에 넣었다. '안 사고뭉치 안 꼬맹이'가 사 왔을 그 치즈케이크는 표면이 눈처럼 하얀 게 예쁘긴 했지만 평범해 보였는데 마치다가 정말로 행복한 얼굴로 먹고 있어서였다. 너무 행복해 보여서 노부는 케이크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도 침이 넘어가긴 했다. 그 소리가 들렸는지 마치다는 다시 퍼뜩 고개를 들고 노부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넌 케이크 먹으면 안 될 텐데."

그러더니 다시 중얼거렸다. 

"뭐, 내장을 다친 것도 아니고 상관 없나."

마치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침대 발치에 있는 버튼을 눌러서 침대 상부를 일으켰다. 노부가 얼떨떨하게 같이 일어나 앉자 마치다는 케이크를 자기가 먹던 만큼,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떠서 노부의 입가에 댔다. 

"입 벌려."

노부가 여전히 얼떨떨하게 입을 벌리자 마치다는 입가에 케이크가 묻지 않게 요령껏 노부의 입 안에 케이크를 넣어 주었다. 케이크를 한 입 먹고 깨달은 건 예상과 달리 그렇게 조금만 먹어도 맛을 느낄 수는 있다는 것과 예상대로 정말 감질난다는 것이었다. 노부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케이크에 무심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자, 마치다는 혀를 차고는 남은 케이크의 반 정도, 그러니까 보통 사람의 한 입 정도를 잘라서 다시 노부의 입가에 가져왔다. 

"입 커서 좋겠다."

새침한 말투에 노부가 무심코 웃자, 마치다는 웃느라 벌어진 입 안으로 다시 케이크를 쏙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다시 앉으며 새침하게 덧붙였다. 

"이제 안 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노부가 더 먹고 싶다고 하면 남은 걸 다 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케이크의 달콤한 맛보다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마치다의 얼굴을 보는 쪽이 더 좋았기 때문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 케이크를 즐기는 마치다를 구경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아직 입 안에 남아 있는 케이크의 맛보다 그 행복한 얼굴이 몇 배는 더 달콤했다. 





#소환사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