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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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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 잠을 설치느라 늦게 일어나고야 말았어. 넌지시 윤대협의 행방을 물어보니 영수에겐 다행히도 황궁에서 일이 있어 나갔다고 했지. 밤 늦게 올거란 소식에 영수는 도리어 안심했어. 그 추태를 보여주고도 윤대협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어. 간단히 점심을 먹었는데 뭘 많이 먹지도 않고도 속이 체한것처럼 답답했어. 소화를 시킬 겸 윤대협이 없는 틈을 타 정원으로 나왔는데 저 멀리서 왕녀가 다가왔어. 

 드릴 말씀이 있어요. 왜 품위유지비를 주지 못한다는 거죠?

 왕녀의 말에 영수가 하, 하고 헛웃음을 터트렸어. 가뜩이나 몸상태도 마뜩잖은데 왕녀는 품위유지비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 온듯했어. 영수가 쏘아붙였어.


 그 나라는 시녀에게도 품위유지비를 주나보지?
 
 패전국의 왕녀임을 꼬집는 말이었지. 영수의 말에 왕녀가 기분이 나쁜지 씩씩거렸어.

 제가 그냥 시녀였던가요? 저에게 이렇게 나오시는건, 혹시 질투하시는건가요?

 왕녀의 말에 영수는 안그래도 얹혔던 속이 더 울렁거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한척 했어. 이 왕녀 앞에서 만큼은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어. 

 왕녀는 여기서 내쫓긴다면 신분도 재산도 없지. 그리고 시녀를 내쫓는건 주인의 몫이고. 

 드레스가 사고싶다면 그이에게 부탁하게. 영수가 먼저 자리를 피했어. 뒤에서 화가난 왕녀가 소리를 지르는게 들렸지만, 더 있다간 토악질을 참을 수 없을것만 같아서. 



 그 날 밤, 뒤늦게 퇴궐한 윤대협이 영수의 방 문을 두드렸지만 영수는 애써 자는 척 했어. 윤대협은 몇분동안이나 영수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 방을 빠져나갔어. 윤대협이 너무나도 미웠어. 일말의 기대라도 있었건만 낮에 있던 왕녀와의 일로 그 기대마저 다 무너진 심정이었어.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다시피하고 일어났어. 간단히 씻고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하녀장이 들어왔어. 하녀장이 영수의 눈치를 살폈어.  

무슨 일 있어? 
간밤에… 손님이 주인님 침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하녀들이 봤다고 합니다.

 자신이 나서서 사용인들 입단속을 하고는 있지만, 영수가 아는건 시간 문제 일 것 같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 영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있다가 겨우 알겠다고 대답했어. 내가 윤대협에게 뭐라고 했었지, 후계자를 낳아준다고 했던가? 그때는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아니었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연인이 생긴걸 알고도 아이를 갖고 싶겠어. 윤대협의 얼굴을 차마 어떻게 봐야할지도 모르는데.

 오후에 시간을 내어달라 시종을 보내 전하고, 영수는 그때 찢어져버린 서류를 다시금 준비했어. 













응접실에 윤대협이 이미 앉아있었어. 영수는 모든 시종들을 멀리 물리고 둘만 남게했어. 영수는 속이 말이 아닌데 윤대협의 얼굴은 멀쩡해보여서 더 억울했어. 

영수야, 내가 할 말이…
내 이야기부터 들어. 윤대협.

...아무리 생각해도, 너랑 더 못살겠어. 이혼해주라. 부탁이야. 서류를 테이블 위로 내민 영수가 윤대협의 시선을 피했어. 수척해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어. 

 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왜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윤대협의 말에 영수가 허, 코웃음을 쳤어. 하고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았어. 결혼 직전 나를 좋아하냐고 물었을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대답하던 윤대협, 사랑한단 표현 한 번 한 적 없는 윤대협, 전쟁에 나가 있을때 편지에 답장 한 번 쓰지 않던 윤대협, 몇년간의 전쟁 후 여자를 데려와 시녀로 삼겠다던 윤대협….

그 왕녀는 아무 사이 아냐. 
듣기싫어. 넌 나를 얼마나 더 비참하게 만들거야?
그 말에 윤대협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 이미 눈물이 한가득 차있는 영수의 얼굴이 너무나도 수척했어. 어디서부터 영수가 이렇게 된거지? 





*




 어린 후계자였던 윤대협에게 안영수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어. 영수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지만, 윤대협이 가진 것 중에 제일 소중한 것이었어. 결혼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는 어릴때 약혼하게 되어 거의 평생을 함께 살아왔어. 그러니까 윤대협에게 안영수는 사랑해야 당연한 것이었어.

 그걸 입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굳이 말을 해야 통하는 건 아니잖아.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 당연해지는 서로의 사소한 습관, 책장 한 구석에 늘어나는 서로가 한 선물. 이런것들로도 충분히 사랑이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어. 

 어릴적부터 약혼한 사이였던 만큼 영수는 이 집안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윤대협은 집안일에 대해서는 무조건 영수에게 일임하는 편이었어. 그래서 영수가 그 왕녀를 어떻게 대접했는지, 시종들이 그 왕녀를 어떻게 알고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 애초에 윤대협에게 다른사랑이란 없었으니까.
 
 ...저를 데려가주세요. 시녀나 하녀라도 좋아요.

 저를 거둬주시지 않는다면 전 망국의 왕녀가 되어 사창가나 노예로 팔리겠죠. 그렇게 살고싶지는 않아요. 전쟁 한복판에서 만난 왕녀가 윤대협에게 빌었어. 망국의 왕녀 사정따윈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무릎꿇고 빌고있는 그 머리를 보자니 묘하게 영수가 떠올라 윤대협은 즉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어차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어. 전리품 한 둘 더 챙긴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어. 자기 입으로 시녀나 하녀도 괜찮다고 했으니, 영수가 부리는 사람으로 써도 좋겠단 생각이었지.

 그렇게 저택에 데려온 후, 맹세코 윤대협은 그 왕녀를 찾아간적도 본적도 없었어. 갑작스레 방으로 들이닥쳐온 왕녀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윤대협은 단호한 태도로 내쫓았어. 그런 의미로 데려온것이 아님을, 왕녀가 더 잘알텐데. 서슬퍼런 말에 왕녀는 차마 말대꾸조차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어. 
 
 윤대협은 그제서야 영수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어.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이 데려온 여자. 좋은 의미일 수가 없구나. 한편으로는 자기를 믿지 못한 영수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어. 나에게 한 번쯤은, 왜 데려왔는지 물어봤어도 됐던 거잖아. 

 차라리 어떻게 나를 두고 정부를 만들 수 있냐고 화를 내고 멱살을 잡으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해.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지 못하고, 자신을 욕심내지도 않는 안영수라니. 윤대협에게 너무나도 최악이었어.

 








 

 영수야. 사랑해. 어릴적부터 쭉. 널 사랑해왔어.
 
 
 이혼서류를 내미는 아내 앞에서 사랑 고백하는 남편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봐도 진심을 의심할거야. 근데 그게 윤대협이고 안영수라면? 어릴적부터 서로밖에 보지못했던 두 사람이라면. 안영수는 그런 윤대협의 표정을 태어나서 처음봤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더 독한 말을 한참 퍼부어주고 싶은데, 목에 가시가 걸린듯 잘 나오지 않았어. 

 윤대협이 안영수 앞에 무릎 꿇었어. 나 한번만 믿어주면 안돼? 

그건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어. 내 앞에서 무릎꿇고 사랑을 속삭이는 윤대협, 자신의 사랑을 믿어달라 애원하는 윤대협을 보는건. 안영수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조급해진 윤대협이 영수의 손을 붙잡고 얼굴을 묻었어.

 널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적이 없어. 영수야….

 ...너 울어? 윤대협이 얼굴을 묻은 손이 점점 축축해졌어. 그제서야 안영수는 진실로 당황했어. 윤대협이 우는건 아주 어릴적을 빼고 보지못했어. 아마 5살 이후 처음일거야. 

 너가 원한다면 몇번이고 해명할게. 네가 믿을때까지 내가 빌게. 나 떠나지마 영수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때로 어리석어진다고 하지. 안영수도 그 중 하나였어. 마음고생한게 무색하게도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윤대협을 보자니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어. 어쩌면 거짓일지도 모르지만, 믿어보고 싶어지는걸 어떡해. 그럼에도, 이 지경이 되서야 자기한테 사랑을 고백하는 윤대협이 너무나 야속해서 안영수도 울고말았어.

 넌 진짜 나쁜새끼야. 알아?
 응. 맞아. 미안해.
 ...엄청 때릴거야.
 영수가 화 풀릴때까지 때려도 돼.
 ...짜증나, 윤대협.

 안영수가 무릎 위로 얼굴을 파묻고 나서야 윤대협이 몸을 일으켜 안영수를 끌어안았어.


 
 























후일담


1.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영수야 = 안사랑하는데 결혼을 왜해?

2. 왕녀는 진짜 시녀노릇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대협영수 사이를 보고, 자기를 시녀로 부리지도 않는 모습을 보고 윤대협 꼬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 맞음.

3. 영수 데려다 준 모브남은 진짜 선의로 했다

4. 편지는 몇장은 윤대협이 답장 쓰는거 까먹어서, 몇장은 전장이라 가다가 분실되서, 몇장은 적국이 가져가서. 등의 이유로 한 번도 답장이 온적이 없었다

5. 부제가 있다면 익숙함에 속아 안영수를 잃지말자ㅎㅎ

6. 윤대협은 사랑한다고 말할때도 나한텐 영수밖에 없지~하는 식이라 안영수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7. 반대로 영수는 온몸으로 티냈기에 윤대협도 안영수가 자기 사랑하는 건 알고 있었을 것

8. 왕녀는 쫓겨나고, 대협영수는 애낳고 잘 살겠지. 로판은 원래 그렇게 끝나는 거임. 아무튼 그럼.


 



내가뭘쓴건지모르겟다 ㅅㅂ... 
그 동안 똥글 읽어줘서 고마웠다! 


대협영수 (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