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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3:19
전편 : https://hygall.com/560548224


"몸 상태도 상태지만 지금 가장 심각한 곳은 자궁입니다. 유산을 두 번이나 했으니 더 이상 임신하기는 힘들겠군요."

우성이 데려온 의사가 태섭을 진맥하고 말한 첫 마디였음. 우성은 눈을 느리게 깜박, 깜박거렸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음. 물에 빠진 것처럼 귀가 멍멍했음.

".........유산이요?"

낙태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의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음. 의사는 태섭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그를 치료했던 의사기도 했음.

"차라리 인공적인 낙태였다면 몸에 부담이라도 덜 갔겠지요. 지금처럼 임신이 어려운 상태까지 가지도 않았을 거고요."

심지어 쌍둥이를 유산한 거였으니...온 방바닥이 피바다였는데, 쯧.

머리를 꽝꽝 때려대는 것 같은 의사의 말에 우성의 고개가 절로 떨구어졌음. 바닥을 헤매던 우성의 눈길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었음.

태섭의 허벅지에 선명한 찢기고 긁힌 흉터들.

분명 이전에- 태섭이 가문에서 사라지기 전 날에는 없던 상처들이었음. 옅게 빛나는 것이 최근에 생긴 상처는 아니었음. 비탈에서 구르고 찢길 때 생기는 상처들과 똑 닮은 흉터들.

우성과 명헌의 본가 주변에는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져 있었음. 아름답지만, 그만큼 험한 산. 남쪽 바닷가에서 평생을 보내던 태섭이 별 준비도 없이 무사히 넘을 수 있는 산이 아니었음.

무사히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었음.

우성의 얼굴이 희게 질렸음. 의원이 나가고 난 뒤 우성은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에 마루에 머리를 박았음. 꽤 큰 소리가 울렸지만 딱히 아프지는 않았음. 아니, 오히려 아팠으면 했음. 몇 번 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 그래서 피가 흐르면 차라리 가슴을 꽉 메우고 있는 괴로움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았음.

그러다가 우성은 태섭을 보았음. 자기와 나란히 누워 잠든 태섭은 역설적이게도 편안해보였음. 다시 만나 본 모습 중에 가장 편하고 두려워보이지도, 슬퍼보이지도, 화나보이지도 않았음.

이런 상황인데도, 우성은 옛날의 일이 떠올랐음. 태섭과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직 태섭이 순진하게 착각을 하고 있었을 때. 숲 속에서 한참 이야기하고 놀다가, 햇빛이 들어오는 들판에서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태섭이 먼저 잠들어버렸던 적이 있었음. 그때도 우성은 태섭이 자는 얼굴을 훔쳐봤었음. 날을 세울 때는 삐딱하게 올라가는 눈썹이 순하게 내려가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보였음.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음. 기분이 이상해졌었음. 태섭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자신의 입술에 말캉하고 뜨거운 감촉이 닿았음. 자기가 해놓고 지레 놀라 번쩍 고개를 든 우성이었지만 태섭은 곤하게 잠들어있을 뿐이었음. 살짝 벌린 입술이 아까 전보다 더 윤기가 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태섭의 얼굴을 보면 자신이 뭔가,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알아버릴 것만 같아서 우성은 잠든 태섭을 업어 명헌의 방에 데려다 놓았었음.

그리고, 지금.

우성은 태섭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맞추며, 지금에서야 그때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음.




나는 너를 연모해왔구나.

그때. 잠든 네 얼굴을 보고 네 입술에 입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최악의 상황에서의 최악의 자각이었음.




툭, 툭 우성의 뜨거운 눈물이 계속 떨어져 태섭의 입술을 적셨지만 입맞춤을 몇 번이고 계속해도 태섭의 입술은 옛날과는 달리 차갑게 식어 미지근했음. 그게 우성을 더 서럽게 했음.

결국 우성은 울음을 터트렸음. 오열하며 태섭에게 사과하고, 제발 일어나 자신을 한 번만 보아달라 애원했음.

계속되는 울음소리에도 태섭의 눈꺼풀은 굳게 닫힌 채였음.




이번 편에는 명헌이는 안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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