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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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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게 경염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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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염은 몹시 어정쩡한 자세로 품안의 아기를 안고 얼렀어. 태후전에 문안을 들자마자 두달전에 출산을 한 연사공주가 아이와 함께 입궁을 한것을 보고 자리를 뜨려다가 공주와 태후의 거듭된 권유로 아이를 품에 안았음. 태후가 태어난지 겨우 두어달된 아기의 이목구비가 어찌나 뚜렷한지 장성하면 여인들을 꽤나 울리겠다며 소리를 내어 웃다가 경염을 보더니 뭔가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한숨을 쉼. 경염은 태후가 한숨을 쉬는 이유가 뭔지 알것 같아 고개를 푹 숙였음. 연사공주는 혼인한지 일년만에 후계자를 낳았는데 저는 혼인한지 사년이 넘도록 태기가 없으니 못마땅할수 밖에. 황후 자리는 비어있은지 이미 오래이고 황제가 다른 후궁들은 도통 찾지 않으니 그들중에 회임 가능성이 있는건 저뿐이라 태후가 저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는걸 잘알고 있어서 더 송구스러웠음.


"귀비, 애가가 보낸 탕약을 잘들고 있겠지."
"예에, 매끼니때마다 거르지 않고 들고 있사옵니다."


태후가 얼마전부터 회임에 좋다는 약재로 만든 탕약을 보내서 매끼니마다 거르지 않고 들고 있었음. 태의는 몸이 건강하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거라고 했지만 얼마전의 일을 생각하면 회임이 어려울것만 같았어. 폐하께선 아이를 원치 않으시는건가? 설마 제 출신 성분때문에 제게서 황손을 얻는것을 꺼려하시는건가. 경염은 계속 드는 의문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해짐. 경염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자 품안에 아기가 칭얼거렸어. 어설프게 아이를 몇번 어르다가 유모에게 넘겨주었고 연사공주와 담소를 나누다가 자신의 궁으로 돌아왔음.



경염은 돌아오는 길에 화원에 들려서 꽃을 꺾어왔는데 육궁에선 달리 즐길거리가 없어서 꽃꽂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꺾어온 것이었음. 십수년을 전장에서 보내다가 궁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으려니 온몸이 쑤셨음. 남성 음인 까닭에 다른 후궁들과도 가까이 하기 힘들었고 궁내에 말동무를 해줄만한 이도 없어서 주로 제 궁에서 필사를 하거나 서책을 읽거나 하며 시간을 보냄. 한참동안 꽃꽂이에 열중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궁인 건네준 자수틀을 붙잡고 한참동안 바늘이랑 씨름을 함. 황제가 다 낡은 영견을 가지고 다니는것을 보고 직접 자수를 놓아 만들어 선물을 해주고 싶었거든. 한때는 장수였던 사내가 내궁에 틀어박혀 바느질을 한다는게 우습긴 했지만 그래도 연모하는 이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 바느질에 열중했음.



그날 늦은 밤에 예고도 없이 황제가 곤녕궁을 방문했을때 경염은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에 머리를 풀어서 비단끈 하나로 단정히 묶은 상태였어. 경염은 서책을 읽다가 황제가 들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문앞으로 향했음. 며칠전에 다녀가셨으니 한동안은 방문을 안하실줄 알았는데 무슨 일인가하여 보니 만취하였는지 걸음이 심상치 않았음.


"귀비, 짐이 왔소. 짐이 보고 싶었소?"
"폐하, 어찌 이리 취하셨습니까."
"짐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지. 짐이 보고 싶었소?"
"예..그러하옵니다."


경염은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지는 황제를 안아서 일으켜 세움. 제가 여인이 아닌 사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그를 받아내지 못할뻔 했음. 경염은 대답을 재촉하기에 대답은 했지만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 함. 황제가 많이 취한것 같아서 침상으로 데리고 가서 앉히고 신을 벗기고 의복 수발을 들려고 했어.


"으음. 경녕 그대가 좋아하는 개암다식이요. 그대에게 주려고 몰래 소매에...숨겨왔지."
"폐하?"
"왜 그리 부르시오. 내 이름을 잊기라도 한 사람처럼. 예전처럼 연성이라 불러주시오."


경염은 요대를 풀려고 손을 가져다댔다가 황제가 소매에서 영견에 싼 다식을 꺼내는것을 보고 놀라 손을 멈춤. 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누이가 싫어하는 다식을 주길래 당혹스러웠어. 경녕은 개암을 먹으면 크게 탈이 나고는 해서 개암을 입에 대지 않는데 어찌 그 아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신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기에 감히 황제의 존함을 부를수가 없어서 머뭇거렸더니 거의 울것 같은 표정이기에 마지못해 이름을 불러주었음.


"연성. 혹 저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그날 무슨 색의 옷을 입고 있었는지 기억하시는지요."
"자주색에 모란문 금박을 수놓은 옷을 입었지 않소. 연자색 면사로 얼굴을 가렸었음에도 선녀가 하강한것처럼 자태가 아름다워서 첫눈에 반하고야 말았지."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연성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경염은 황제가 연모하는 경녕이 제가 아는 경녕이 아니란걸 알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뻔함. 오랑캐와는 혼인하기 싫다며 우는 누이를 달래다가 하루만 자신인척 해달라는 말에 우스운 꼴인걸 알면서도 여인처럼 입고 나갔었던 적이 있었음. 그때 만난 이가 연성이었고 한번의 연으로 끝날줄 알았음. 후에 누이가 북연 황제의 황후가 되고 양이 패망하여 볼모로 끌려왔을때 태자가 경녕을 연모한다는 것을 알고 크게 상심했었음. 하필이면 경녕일까. 죽은 누이가 원망스러울때도 있었는데 원망을 할 상대가 잘못됐다는것을 지금에야 알았어.


"북연에 온 그대가 내게 차갑게 굴어서 마음이 아파서 힘들었소. 정녕 내가 미운게요? 그런게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날 당신이 만난 경녕은...단 한번도 당신을 미워한적이 없습니다."


경염은 제 얼굴을 쓰다듬는 연성의 손을 겹쳐잡으며 말했음. 미워하지 않노라. 당신이 내 나라를 멸망케하고 누이를 연모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도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 말하고 싶었음. 그 말에 흡족한듯 끌어안고 연모한다 그리 말하기에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날 당신이 만난 이는 경녕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 오랜 세월 착각과 오해속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머리속이 복잡해졌음.


경염은 심란한 마음에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녘부터 제 궁에 딸린 주방에서 궁인들의 도움을 받아 숙취 해소에 좋은 음식을 손수 만들었음. 황제가 기침해서 궁인들이 소세 시중을 드는 동안에 음식을 들이고 의복 시중을 들었음. 연성은 뭔가 할말이 있는것처럼 경염은 빤히 쳐다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음. 식사 시중을 드는 동안에도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하다가 조회때문에 궁을 나서는 길에 경염을 보고 입을 열었음.


"간밤에 짐이 그대에게 실언을 하거나 하진 않았소?"
"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 그대가 그리 말하니 믿어야지. 귀비 그대는 돌아가신 황후를 많이 닮았구려. 이렇게 손으로 입만 가리면 꼭...짐이 괜한 소리를 했군. 이만 가보겠소."


경염은 갑자기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을 보고 불안해져서 눈을 내리 깔았음. 간밤의 일을 기억을 하고 있는건가. 그 생각에 연성이 누이를 황후라고 칭했다는것을 깨닫지 못했음. 경염 앞에서는 항상 그대의 누이라고 하거나 경녕의 봉호를 부르곤 했었는데 말이야. 경염은 황제를 배웅하고 돌아서서 침상을 정리하다가 황제가 놓고 간 영견을 보았음. 비단이 아닌 명주로 만든것이었음. 경염은 이 영견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헛웃음을 터뜨림. 오래되어 낡아빠진 것을 오랫동안 지니기에 누이가 준 정표인가 했었지. 하지만 아니었음. 그래 맺지 못한 마음의 향방은 다른곳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북연태자정왕
류연성소경염
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