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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오ㅈㅇ
1부 입양편 완
22
“제 생각엔…한동안 제 집에서 지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비는 굳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막상 원하는 걸 쥐어주면 놀라서 던지고 보는 성격이라는 것쯤은 이미 파악한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바비의 입에선 브랫이 정확히 예상한 물음이 튀어나왔다.
“…정말이야?”
농담 아니고? 바비가 불안감 가득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브랫은 코웃음을 쳤다.
“제가 농담이나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해보입니까?”
“…그, 진짜 장난치는 거 아니지?”
“싫으면 말고요.” 브랫의 말에 바비가 펄쩍 뛰며 손사레를 쳤다.
“아아니, 누가 싫대? 사람 말을 그렇게 곡해하고 그래. 난, 그냥 조금…”
놀라서 그렇지-말꼬리를 늘리며 중얼거리던 바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머뭇대는 기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럼…음, 조건은 뭐야?”
“…예?”
“아니, 그, 나 지내게 해주는 대신…중사가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 바비가 애써 밝은 척 어색하게 웃었다. “나 그렇게 상도덕없는 사람 아니야.”
브랫은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렸다. 여기까진 예상을 못한 터였다. 잠시의 의심 후엔 무르지 말라며 냉큼 달라붙을 줄 알았는데.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톡 두드렸다. 어쩌면 이 사람은…대가없는 선의를 받아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고작 한 움큼의 온기에도 반드시 값을 치뤄야 하는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브랫은 바비가 벌인 기행-거래를 제안한다거나, 부모님을 무단으로 초대한다거나 하는-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뭘 하면 될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 집안일도 엄청 잘하고…그, 나중에 내가 돈을 조금 찾으면 사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바비가 초조한 기색으로 횡설수설 자기 PR을 늘어놓았지만, 죄다 오답뿐이었다. 브랫이 바비에게 원하는 건 그저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찾을 때까지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지낸다’ 뿐이었으니까.
브랫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답을 말해줘봐야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걸 믿으라고? 하는 표정을 지은 채 머릿속으로 또 쓸 데 없는 궁리를 할 게 뻔했다.
바비를 향한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는 별개로, 파병 후 얻은 황금같은 휴가였다. 더 이상의 기행은 사양이었다. 그렇다면…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혹시 중사, 주식 투자같은 건 관심 없어? 내가 아는 정보가 좀 있-“
“그런 건 됐고요.”
브랫은 바비의 말을 가차없이 자르곤 식탁 위에 팔꿈치를 대며 몸을 조금 기울였다. 자석처럼 그에 맞춰 몸을 뒤로 조금 물린 바비가 또 다시 입술을 말아문 채 입을 꾹꾹대며 브랫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은 하나뿐입니다.”
“뭔데? 말해봐, 뭐든 내가-“
“당신 몸이요.”
바비가 입을 멈췄다. 부자연스럽던 웃음도 사라졌다. 초조한 듯 약간 흔들리던 몸도 멈췄다. 움직이는 건 빠르게 깜빡이는 눈꺼풀과 지진난 듯 흔들리는 시선 뿐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으로 오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슨 오해를 하는 중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나 브랫은 그 오해를 당장 정정해주진 않았다. 잠깐 심술이 돋은 탓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궁지에 몰린 사람 목숨줄 가지고 흥정할 인간으로 보였다 이거지.
얼마 후, 하얀 얼굴에 단념의 기색이 비치더니 바비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언제부터 하면 되는데?”
“뭐, 이왕이면 지금부터 시작하죠.”
바비가 헉, 작게 숨을 삼키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랫이 의자를 밀며 몸을 일으켰다. 끼익-울려퍼진 소리에 다시금 어깨를 움찔했던 바비 역시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브랫은 바비의 앞에 섰다. 바비는 시선 둘 곳을 몰라하며 애꿎은 스스로의 소매를 괴롭히더니, 이내 겁먹은 눈망울로 브랫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바비가 결심하듯 한번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버, 벗을까?”
“뭐, 여기서 할 일은 아니고.”
브랫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옷은 벗는 게 좋겠네요.”
* * *
“꼭…이런 걸 입어야 돼?”
바비가 불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늘 한 점없이 햇빛이 드리워진 잔디 위에서, 썬캡 아래로 눈살을 찌푸린 채였다.
“옷에 다 풀물 들일 일 있습니까? 당신 옷도 아닌데.”
“이 모자는 뭔데?”
“타고 싶으면 벗으시던가요.”
끙, 바비가 언짢은 소리를 내며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때묻은 썬캡과 군데군데 헤지고 기워진 목 늘어난 티셔츠, 무릎이 30cm 쯤 나온 고무줄 바지와 낡은 장화 차림이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물론 브랫은 바비가 고개를 숙인 틈을 타 입술에 힘을 주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건 너무…아저씨같잖아!”
바비가 다시 고개를 들어 반항의 눈빛을 보내자, 브랫은 얼른 입술 힘을 풀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 응수했다.
“중위님 나이면 아저씨 맞습니다.” 바비의 얼굴에 ‘어떻게 그런 말을’이란 표정이 서렸다.
“누구더러 아저씨라는 거야, 중사야말로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그러니까요. 저도 아저씨고, 중위님도 아저씨라는 거죠.”
“아저ㅆ…하,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바비가 씩씩거렸다. 브랫은 다시금 치솟으려는 웃음을 꾹 참고 옆에 세워둔 제초기를 향해 턱짓했다.
“됐고 빨리 시작이나 하시죠. 날 다 가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자, 어떻게 하라고 했죠?”
브랫의 물음에 잠시 도끼눈을 한 바비는 곧 조금 전 들은 설명을 읊기 시작했다.
“배터리 체크하고, 수평으로 세운 다음에 레버 돌려서 높이 맞추고, 안전장치부터 제거하고, 손잡이 잡고, 약간 기울여서 민다.”
“뭘 주의하라고 했죠?”
“손잡이 안 놓치게 주의하고, 풀받이 상태 계속 확인하고, 돌 있는 데 조심하고. ”
“좋습니다.”
브랫이 다시금 턱짓하자 바비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중사, 저기…진짜 나 이거 해야돼? 내가 다른 건 진짜 다 잘하는데, 주택에 살아보질 않았어가지고 이런 건 진짜 해본 적이 없거든. 그리고 지금 날씨도 너무 덥구…”
“제 조건 잊었습니까?”
“몸이라며!”
“맞잖아요, 몸. 노동력.”
“아니, 내 말은…”
“됐고 빨리 시작하시죠. 이따 지붕 수리도 해야하니까.”
지붕…바비는 기절할 것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곧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설명해준 순서대로 제초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이내 제초기가 켜지는 소리와 바비의 경악이 함께 터져나왔다. 중사! 이거, 이거 소리가 너무 큰데 이렇게 하는거 맞아? 그래도 겁먹은 것 치곤 제법 안정적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기에, 브랫은 바비의 애원하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눈썹 하나 꿈틀대지 않은 채 훠이훠이 가라는 손짓을 했다. 결국 바비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조금 후, 브랫은 지붕 그늘 아래서 썬베드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책을 읽으며, 손에는 시원한 맥주까지 한 캔 든 채였다. 흘끗 본 바비는 맥아리없이 제초기를 밀면서도 여전히 입으로는 뭔가를 한참 궁시렁대고 있었다. 들리진 않았지만 브랫을 향한 욕이리란 사실은 분명했다. 브랫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진짜로 책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브랫은 자신이 아직 바비를 잘 모른다-파병까지 함께 했음에도-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며칠 간의 일로 확실히 알게 된 점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비가 기브앤테이크를 어떤 신조처럼 따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구하는 게 아니라,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상식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그의 행동 대부분이 바로 그 생각에서 뻗어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그의 생각을 당장에 고칠 수 없다면…답은 별 수 없이 하나 뿐이었다. 그가 받은만큼 갚고 있다고, 뭔가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브랫이 알기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엔 육체노동만한 것이 없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붙들고 있던 책장을 멋대로 넘겼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브랫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을 향해 있었으니까. 그는 다시 한 번 흘끗 바비를 바라보았다. 조금 익숙해졌는지 뽈뽈뽈 마당을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브랫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있자면 복장이 터지는데, 그래도 시야 안에 두는 게 훨씬 낫다는 걸.
브랫의 입가로 참지 못한 웃음이 슬며시 배어나왔다.
#브랫바비 #슼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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