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62992942
view 2021
2023.09.08 12:14

https://hygall.com/562810365


태섭은 테이블 위에 놓인 까만 귤봉지만 노려봤음. 이명헌이 요즘 왜 이러는 걸까. 내가 당신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사적으로 간섭할 사람이 아닌데, 당신은. 

그렇다면. 당신이, 혹시, 나를?


태섭은 생각하길 그만뒀음. 또 내가 착각하는 거겠지. 그 사람은 아무 생각도 없겠지. 이명헌을 피해 이혼하고 이사까지 헀음에도 여전히 그 사람이 건네는 한 방울의 다정함도 기쁘게 느껴온 본인을 다시 한 번 다잡았음. 이전에 있었던 일을 되풀이할 순 없었기에. 이제 송태섭이 감당해야할 건, 송태섭 하나 뿐만이 아니라 뱃속의 아이까지 있으니까. 

가만히 귤을 보고 있자니 금방 입안에 침이 고였음.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기에 배도 고팠음. 태섭은 고민 않고 귤을 까먹기 시작했음. 이젠 알이 큰 것도 나오나 보네.
태섭은 의식하지 못 했음. 본인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녀도 찾길 실패했던 다디 단 귤이 어떻게 단 몇 분 만에 집 앞에 놓여있을 수 있었는지.


-


당신은 아빠 자격 없어요.

이명헌은 송태섭을 만나고 온 이후부터 그 말만을 되새기고 있었음. 며칠이 지나 송태섭에게 달고 알이 큰 귤을 사다바친 지금도.

우리 애가 잘 크고 있는지, 검사 결과는 어떤지, 심지어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그것 조차 궁금해한 적 없었죠. 그리고 지금도. 아이 들먹이면서 정작 아기에 관한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했잖아요.

그래, 그랬었지. 그렇지만 아이 좀 봐달라 말하는 네게 아기보다 송태섭 네가 더 궁금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나. 결혼 생활 내내 조용히 자기 의견도 없이, 하잔 대로만 하고 살던 네가. 이사 나가기 전날 평소완 다른 폭 내린 머리로 평소완 다른 모습을 보였을 때부터. 그래, 그때부터.

나 원래 재밌게 사는 것따위 별 생각 없었거든. 재미있게 살아야만 인생인가. 그런 것따위 없어도, 적당히 일 잘하고 적당히 결혼해서 평온하고 안온하게 눈 감고 싶었거든. 그게 쉬워보여도 어려운 일이어서. 그게 내 인생 흐름에 맞다고 생각해왔는데. 네가 이혼하자고 할 때부터 깨지기 시작해서 좀 심기 불편하기도 했지. 가만히 나랑 살면 너한테도 안 좋을 거 없는데 굳이 나를 벗어나겠다고. 근데 너는 나 놓았으면서 왜 나는 널 못 놓게 만들었나.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지.


현철아, 네가 송태섭이 나 사랑한단 말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묘한 승리감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송태섭 내가 찔러보고 흔들어도 봤어. 매번 그렇게 상처받은 표정 지으면서도 안 꺾이고 꼬박꼬박 되받아치는 거 보니까 재밌긴 하더라. 왜 사람들이 인생 재밌게 산다는지 알겠더라고.

근데 그거 다 내가 몰라서 병신같은 짓 한 거다. 네가 그랬지. 이혼하고 나니까 와이프한테 흥미 생겼냐고. 신경쓰이냐고. 그땐 몰랐거든. 송태섭 보면 짜증나고 걔가 원하는 대답 같은 거 알고 있는데도 해주기 싫었으니까. 그거 그냥 내가 심술 부린 거였어. 너는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나를 피하고 나를 거부하는지. 네가 원하는 거 나한테 똑바로 얘기하라고. 나를 사랑해주세요. 그럼 나는 못이기는 척 걔가 원하는 거 다 해줬을 테니까.

근데 이상하게 걔는 매번 나를 기다렸던 것처럼 굴다가도 휙 돌아서더라. 이게 몇 번 반복되니까 나도 정확히 알겠더라고. 
걔가 먼저 말해주길 내가 더 기다리고 있다는 거.

나 정말 좆같은 취미 있는 거 맞나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놓아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 놓아줬으면 내가 이런 거 깨달을 일 조차 없었겠지. 너는 송태섭만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 나도 몰랐는데 이젠 알겠다. 인정해야겠다. 

나도 송태섭 좋아해.

이젠 니가 좆같은 취미 고치라고 한 거, 이해해. 아기 태어나기 전에 바로잡아야겠지. 근데 나도 이렇게 꼬인 상황은 처음이라. 어디부터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걔는 내가 해주는 거 다 싫어하던데.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명헌태섭

이제야 본인 마음 자각한 이명헌. 그런 이명헌이 하는 거 전부 또 자기가 착각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송태섭.

내가봐도 개연성 없어서 웃긴데,, ㅋㅋㅋ 걍 쓰고 싶으니까 쓴다 마인드로 킵고잉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