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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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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꾹 닫고 눈물 뚝뚝 흘리는 태섭에게 다가선 명헌이 힘 없는 손목을 툭 건드렸다가 잡아당겼음.

타고 가.

뒷자리에 먼저 태섭을 태우고, 빙 돌아 옆으로 올라탄 명헌이 비서에게 눈짓해 차를 출발시켰고, 말없는 태섭을 흘긋 쳐다봤음.
태섭의 예상대로 명헌은 태섭이 힘들게 터덜터덜 것던 것부터, 지갑을 주우며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한 것까지 다 봤음. 당장 차에서 내리려다, 내가 지금 다가가도 되려나. 싫어하려나. 두어번은 제동이 걸렸겠지. 그래도 우는 사람을, 그것도 몸 무거운 사람을 혼자 보낼 순 없어서 먼저 다가간 건데, 태섭은. 얼굴도 보기 싫다는 듯 눈도 마주치지 않았음. 도와준다는데, 내가 너 좀 챙겨주겠다는데. 짜증나도록 미련한 건지 뭔지, 또 거절부터 하는 태섭이 답답했음. 힘들 땐 한 번쯤 모른 척 도움 받아도 돠는 거잖아. 태섭은 그런 마음같은 건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음.

그래서 명헌이 귀찮게 하지 말라며 태섭을 재촉한 건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함이었음. 내가 널 챙기는 건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라고. 이러면 조금 더 홀가분하게, 고집부리지 않고 도움 받겠지. 명헌 예상대로 그 말에 태섭은 조용히 명헌을 따랐고, 얌전히 차에 태울 수 있었겠지.

평소에도 저런 일이 몇 번 있었던 건가. 오늘은 왜 여기까지 나와있지. 그래도 집에선 거리가 좀 있는데. 옷 차림도 가볍게 해선... 태섭을 보며 비웃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표정이 싹 굳었음. 평소에 비해 많이 잠겨있는 태섭에게 다시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조용히 태섭의 집 앞까지 이동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겠지. 

... 아기는 정상이에요.
...?
우리 아기 그렇게 안 크다구요. 배가 나온 건... 당신이 오랜만에 봐서 그렇게 느끼는 거고요.

그 말 이후로 태섭은 다시 입을 다물었음. 마지막이라더니. 대답 잘만 하네.

이젠 익숙한 태섭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가 멈췄음. 당연히 내리려던 태섭을 저지한 명헌이 안까지 들어가라 일렀음. 태섭은 당연히 거절했음.

여기서 걸어가면 금방인데요.
어차피 여기까지 타고 온 거 그 조금 더 탄다고 문제가 되나.

할 말 없어진 태섭이 입을 다물었겠지. 오늘 있던 일들에 힘이 다 빠져버려, 더 이상 누군가와 대치하긴 지친 상태이기도 했음. 차는 안으로 더 들어가 태섭의 집 앞에 섰고, 그때가 돼서야 태섭은 다시 문고리를 잡아 열었음.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먼저 내리던 태섭의 발을 빤히 보던 명헌이, 한숨 푹 내쉬며 본인도 내려 태섭의 앞에 섰음. 그러곤 다시 자리에 앉히더니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음. 놀란 태섭이 그런 명헌을 일으키려고 했겠지. 별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태섭의 손짓은 무시한 채 명헌이 자신의 한 쪽 무릎에 태섭의 오른발을 올리고 풀린 신발끈을 묶어줬음. 아마 꽤 나온 배 때문에 눈치 못 챈 모양이었음.

그것보다, 태섭은 갑자기 바뀐 명헌의 태도에 당황했겠지. 신발 끈이 풀렸다고 말해줬음 말해줬지, 이렇게 무릎까지 꿇고 앉아 대신 묶어줄 위인이 아닌데. 내가 아는 이명헌은 그렇던데.

명헌도 그걸 알았음. 낯설게 본인을 쳐다보는 눈빛. 또 경계어린 눈빛. 나는 너를 도와주기만 했는데, 너는 왜 자꾸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야.

넘어지면 곤란한 거 아닌가?
... 고마어요.

아래서 고개를 든 명헌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자 태섭이 급하게 고갤 숙이며 인사했음. 얼른 집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아 괜히 바닥을 툭툭 차며 신발을 한 번 확인해본 태섭이 가볍게 목례했음. 

갈게요. 태워줘서 감사해요.

차가 단지 안을 빠져 나가고 나서야 태섭은 걸음을 움직였음. 꽉 조여 매진 오른발의 느낌이 이상했음. 신발이 발에 너무 딱 붙은 것 같아... 
신발이 발을 받치고 날라갈 것 같이 붕 뜨는 기분이었음. 이게, 무슨... 일이지...

멍하니 집안으로 들어간 태섭은 소파에 앉아 둥그런 배만 쓰다듬었음. 네가... 좀 큰 걸까. 아닌데, 아기 크기는 보통이랬는데. 그새 좀 더 컸던 걸까...

초인종이 울려 나가 보면 사람은 없음. 초인종 아래 작은 공간에 허리춤까지 쌓인 빈 박스들과, 가장 위에 봉지째 올려져있는 노란 귤. 그 위 영수증 뒤에 휘갈긴 듯한 쪽지.

바닥에 놓으면 배 때문에 들기 힘들다며
귤만 가져가
박스는 알아서 치울 테니

당신은 정말 약았어. 왜 항상 내가 힘들 때 눈 앞에 나타나는 거야. 대체 나를 왜 가만 두질 않는 거야. 그렇게 차갑게 굴더니, 딱딱하게 굴더니. 왜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러는 걸까, 당신은.

명헌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