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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7 04:51



마치다 side. 

노부의 품에서 잠을 깬 마치다는 아직 창 밖이 어두운 걸 보고 다시 편하게 노부의 팔에 머리를 뉘였다. 회임한 이후로는 잠이 늘어서 새벽에 눈을 뜨는 게 힘들어진 탓에 해가 뜨고 나서 일어나서 아침마다 당황스러웠는데 다시 제 흐름을 찾아가는 건가. 배가 이제 제법 나오긴 했지만 아직 배가 산만하게 부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산달이 되기 전까지 점점 커지다가 결국은 산만해지겠지. 아기를 낳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노부를 닮은 아기라면 정말 예쁠 것 같고 어서 만나고 싶기도 했다. 문제는 회임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수시로 배가 고프고 수시로 먹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자랄 때 배가 고픈 적은 많았지만 특정한 뭔가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계속 먹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아직 많이 어리던 아기 노보루가 작은 손으로 바구니를 낑낑대며 들고 와서 챙겨주던 떡이나 다과들이 생각날 때도 있었지만 주로 노부가 챙겨주던 다과들이 생각났다. 형님에게 스즈키 집안에 혼인 명령서를 보냈다는 서신을 받고 전쟁에서 돌아와 도성에 들어오자마자 스즈키 집안을 찾아갔을 때 노부가 내 주었던 설기. 등왕궁을 처음 방문했던 노부가 가져다 주었던 곶감단지. 큰 형수의 부족에서 준 건락 그리고 건락을 이용한 다양한 다과들. 그 외에도 노부가 가져다 주었던 수많은 다과들. 그런 것들만 생각났다. 

게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먹고 싶은 걸 당장 못 먹게 되면 왜 고작 그런 게 그렇게 서러운지. 본인도 이게 이렇게 서러울 일인가 이해가 안 되는데도 그렇게 서러웠다. 덕분에 다과를 당장 먹기 힘들겠다는 말에 눈물을 보여서 노부가 당황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밤중엔 당연히 궁의 문을 걸어잠그는데 갑자기 자다 깨서 둘째 형수가 만들어 준 다과를 찾아서 노부를 당황하게 한 일도 있었다. 마치다도 당연히 알았다. 밤에 궁의 문이 닫히면 날이 밝을 때까지는 궁을 나설 수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당장 둘째 형수님이 만들어주는 전병을 못 먹는다는 생각에 서러워져서 노부의 품에 안긴 채 울었다. 노부는 바로 다음 날 쿄스케 형님에게 가서 마치다의 입덧이 가라앉을 때까지 스즈키 본가에서 지내고 싶다고 청했다. 쿄스케 형님은 처음엔 불허했지만 마치다가 전병이 먹고 싶어서 밤새 울었다는 말을 듣고는 궁을 나가서 사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마치다는 한 번도 궁 밖으로 나가서 살 생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 밖에 왕부가 없어서 스즈키가에서 지내기로 했고, 노부의 형들은 둘 다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형 부부와 아이들, 둘째 형 부부와 아이들의 방까지 따로 두고 있어서 마치다와 노부가 쓸 수 있는 방은 노부가 혼인 전에 쓰던 방밖에 없었다. 마치다가 진국과의 전쟁이 힘들어질 거라는 말을 듣고 거기서 전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파혼해줄 수도 있다고 말하러 왔던 그 밤에 한 번 들어와 봤던 방이었다. 그 방은 방 주인의 성품을 닮아서 수수한데도 어딘가 따뜻하고 상냥한 분위기였다. 마치다는 이 방에 다시 들어온 날 감격스러운 기분으로 노부의 침상에 앉았었다. 

"그날 밤에도 사실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노부는 '그날 밤'이 마치다가 파혼해도 좋다고 했었던 '그날 밤'이라는 걸 알아들었는지 마치다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었다.

"그냥 여기서 둘이 계속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물론 안 되는 건 알았지만."
"케이를 여기서 지내게 하기에는 집이 좁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고작 도둑이나 막을까 말까 할 정도의 방비밖에 안 갖춰진 집이라 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겁니다. 단 몇 달이면 몰라도."

형님은 방어가 철저히 갖춰진 집이 아니며 물론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다. 마치다의 호위들도 지금은 대문 옆의 작은 전각에서 함께 지내고 있지만 그 많은 호위가 지내기엔 좁은 곳이니 답답할 테고. 그 모든 걸 당연히 알고 있는데도 또 감정이 날뛰는지 우울해지려고 하자, 노부는 마치다의 입술에 입을 촉 맞춰주며 웃었다. 

"케이가 원하면 제가 황제 폐하께 왕부를 내어달라 청하겠습니다."
"... 왕부?"
"등왕부를 얻어 궁 안에는 심을 수 없는 나무들을 정원에 심어두고 그 아래 커다란 연못을 만들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케이는 이제 낚시를 잘하시니까."

딱히 낚시 시합을 하는 건 아니지만 둘이 같이 낚시를 하면 케이가 더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노부가 늘 봐 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노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해가 뜨거운 날 낚시를 하면 더워서 힘들어하지 않으십니까. 연못 옆에 큰 나무를 심으면 천막을 치지 않아도 시원할 겁니다. 라고 하면서. 

"하긴 우리 아이들이 낚시를 배울 때도 그늘이 있어야 하니까."
"네. 아이들이 낚시하다 연못에 빠지지 않게 아이들의 허리를 묶어 놓을 나무도 있어야 하고."

노부와 마치다의 허리에도 안 올 정도로 작은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 않게 허리에 끈을 묶은 채 옆에서 작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생각을 하니 아직 연못은커녕 연못을 넣을 왕부도 만들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노부는 케이와 함께 쿄스케 형님을 뵈러 가서 정말로 왕부를 청했고 형님은 마치다가 궁을 나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긴 했지만 스즈키 가족의 다관과 가까운 곳에 넓은 왕부를 지어 주었다. 물론 공사가 완료되는 것은 아이를 낳고 난 다음일 거라 그동안은 계속 노부의 본가, 노부의 방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노부는 아침에 약해서 원래도 마치다보다 아침이 느렸는데 요즘은 회임하고 기분도 오락가락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 마치다를 보살피느라 바쁘고, 배가 불러오는데도 아침마다 검술 수련을 하는 걸 빼먹지 않는 마치다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옆에서 챙기느라고 더 바빠진 탓에 피곤했는지, 눈을 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다는 노부보다 일찍 일어나는 많은 날에 늘 그랬듯 노부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자 마치다가 베고 있는 단단한 팔의 감촉이 기분 좋아서 머리를 조금 부벼보기도 했다. 마치다가 매일 팔을 베고 자니까 힘들 텐데 노부는 늘 싫은 내색없이 마치다에게 팔을 내어 주고 마치다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잤다. 그걸 떠올리니 또 기분이 좋아서 머리를 부비면서 작게 웃자, 노부가 마치다를 더 끌어안으며 눈을 떴다. 

"배 고픕니까, 케이?"

마치다는 그 말에 또 웃었다. 전에는 항상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잘 주무셨습니까?' 이런 인사로 아침을 열었는데 마치다가 둘째 형수가 만들어 준 절편을 먹고 싶은데 궁을 나갈 수 없어서 내내 울었던 밤 이후로는 늘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배가 고픈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 그래도 엄격한 면이 있어서 다과를 먹기 전에 늘 식사부터 조금이라도 하게 하지만. 

"노부는 배 안 고픕니까?"
"음. 저도 배 고픕니다."
"그럼 밥 먹고..."
"밥 먹고?"

오늘은 무슨 다과를 먹고 싶은지 말하길 기다리며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마주보면서 케이는 작게 속삭였다. 

"설기."
"설기."

노부는 마치다가 노부와 함께 먹었던 다과를 말할 때마다 그 다과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늘 좋아했다. 노부도 마치다가 처음 스즈키가를 방문해서 노부를 만났던 날을 떠올리는지 환하게 웃으며 마치다를 꼭 끌어안았다. 





쿄스케 형님은 회임했을 때 허리나 다리가 종종 아팠고, 속이 메슥거리거나 두통도 심해서 고생했었다고 했는데 마치다는 평생을 수련하며 살아온 사람이라서인지 초반에 입덧을 하며 먹고 싶은 게 많고 감정변화가 잦아서 혼란스러웠던 것 말고는 별달리 힘든 건 없었다. 다만, 회임하고 5개월쯤 지나자 마치다를 깨지기 쉬운 도자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대하기만 하는 노부가 서운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부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자기가 바라는 것도 조금씩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해도 회임 중에도 색사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기는 민망했다. 너무 밝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태의에게도 묻지 못하고 끙끙 앓던 마치다는 형님을 만나러 갔을 때, 노부가 황자녀들에게 다과를 전달하는 동안 슬쩍 형님에게 다가가서 작게 물었다. 

"폐하."
"음?"
"회임했을 때..."
"회임했을 때?"
"... 해도 됩니까?"

형님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냐는 듯한 얼굴로 휙 마치다를 돌아보더니 마치다의 얼굴에서 민망함과 간절함을 읽었는지 피식 웃었다. 

"해도 된다. 산달 직전에는 안 된다더군."
"... 정말입니까?"
"그래, 나도 했다."

마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형님은 황자녀들을 만나고 코타로 형님과 함께 돌아오는 노부를 보고 비아냥거렸다. 

"등왕비, 잘 좀 해라."
"... 네?"

노부가 당황해서 마치다를 바라봤지만 마치다는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불타는 느낌이라서 뺨에 손을 대고 있자, 노부가 서둘러 다가와서 마치다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몸이 안 좋습니까, 케이?"

마치다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마치다를 부축하는 노부의 등 뒤로 형님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도 없는 놈."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