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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4 20:47

궁중 관련 지식 전무
생각의 흐름 캐붕 미안 전개 급발진 주의




어두운 방안에서 등불하나만 켜두고 처녀 단자를 확인하던 이명헌은 또다시 찾아오는 두통에 손가락으로 미간을 꾸욱 눌렀다. 어린 시절에는 배동이었다가 그 후에는 일찌감치 문과에 급제하여 지금은 세자의 스승 중 하나가 된 이명헌 인생에 이렇게나 고민이 깊어진 적이 없었다. 

'스승님 혼인은 남자끼리는 할 수 없는 겁니까?'

다소 감정적인 면모가 있긴 해도 똑똑하고 특히 무과쪽으로는 특출나 제법 남자답게 자라난 황제의 입에서 실없는 소리가 흘러나온건 오늘 오전 서책을 함께 읽고 있을 때였다. 이제는 즉위하셨으니 자신의 역할은 다 했기에 원래의 직위로 돌아가려 해도 황제는 모든 스승을 물리면서도 이명헌만큼은 놔주질 않았다. 

'황제면 뭐든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뭐든이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듬고 답변하자 댓번에 입술이 불뚝 튀어나왔다. 조금만 불만이 생기면 저렇게 온몸으로 티를 내는 것이 약관을 넘은 나이에도 아이같아 이명헌은 절로 피식 웃었다가 얼른 웃음을 거두고 자신의 입술을 꾹 눌러보이며 황제에게 입술을 집어 넣으라 일렀다. 

'스승님은 여자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럼 남자는요?'

'책 다 읽으셨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저는요?'

책을 모아들어 불쾌한 티를 조금이라도 내기 위해 탁자에 소리내어 책 모서리를 부딪혀 탁탁 소리를 내며 일어서는 이명헌의 소맷자락이 강하게 붙잡혔다.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기우뚱하며 넘어질뻔한 이명헌은 책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앞으로 허리를 숙여 중심을 잡았고 눈앞에는 현재는 황제라 불리는, 어린시절 우성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마주했다. 

우성이 이런식으로 이명헌에게 대놓고 호감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먼저 약관이 지난 이명헌에게 혼담이 오갈 무렵이었다. 따로 둔 정인이 없어 집안에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그 혼담에 따를 예정이었던 이명헌이지만, 대부분은 상대 규슈와 얼굴을 마주하기도 전에 끝이 났다. 어찌된 일인지 이명헌과 혼담이 나오기라도 하면 황실에서 귀신같이 간택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세 네번 엎어진 혼담, 그렇다고 황실에서 성사된 결혼 또한 없었다. 간택을 택한 처녀들을 태자는 온갖 트집을 잡아 만류했기 때문이다. 본인들이 파기한 혼담이니 민망해져 다시 이명헌 가문에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규슈들은 제각기 다른 가문과 혼인을 맺었다. 이명헌은 그 혼인마다 찾아가 행복하시라며 한마디 얹는 것으로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일이 고작이었다. 

우성이 약관을 지날 무렵에는 자신에게 오는 간택들을 모조리 거절하는 터라, 황실에서는 우성이 잘 따르는 이명헌에게 황후될 자의 간택을 부탁하였다. 고르고 골라 제일 괜찮아 보이는 처녀단자를 추려 우성을 찾아갔고, 우성은 이 사람은 입술이 얇아서 싫다, 이 사람은 키가 작아서 싫다, 이 사람은 덩치가 작아서 싫다며 전부 퇴짜를 놓았다. 

'스승님은 제가 이런 사람들과 결혼하길 바라시나요?'

저가 우성의 취향을 잘못파악해서 가지고 온 단자가 마음에 안든다는 건지, 아니면 우성이 국혼을 올리는 것을 만류해 달라는 뜻인지 고민하던 이명헌은 전자를 택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읊조렸다. 

'제가 배움이 짧아 제대로 된 황후감을 고르기에 부족한가 봅니다'

'저를 잘 관찰하시고 다시 생각해 보세요. 스승님은 전체를 보시는 능력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명헌은 나라 전체를 뒤져 명문가의 여식들의 단자를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었다. 하나같이 부족함 없는 여식들인데 이도 싫다 저도 싫다 하는데 황실에서는 왜 아직도 국혼 얘기가 없냐며 팔자에도 없이 중매쟁이가 된 이명헌을 달달 볶으니 두통이 심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스승님은 어떤 사람이 좋습니까?'

'제가 황제가 되어 좋지 않으십니까?'

'마음에 품은 정인이 있으십니까?'

모른척 하려 해도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우성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편이었다. 감정을 숨기는데 도가 튼 이명헌이 황제는 그리해서는 안된다며 그렇게 주의를 줘도 감정면에서 정우성은 아직도 서툴렀다. 특히 이명헌에 대한 감정에서는 더더욱. 

정우성은 이명헌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 그 감정은 막연한 학우사이의 감정이 아닌 연인사이의 감정이었다. 이명헌이 애써 주의를 돌려도 따라붙는 눈빛과 손길은 절대 학우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공부시간에 매번 모든 시종을 물리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손바닥을 겹쳐본다거나 물어보는 척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몸을 붙여오는 모습들 저가 아닌 혼인 얘기가 오가는 아가씨들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매번 기도했다. 애초에 이명헌이 남자인 이상 맺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닌데, 정우성은 그 이상을 바랐다. 

"예전부터 고집 불통인 점은 그대로네..."

이명헌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처녀 단자 중 자신과 닮아 보이는 이를 몇 추려 정리했다. 



-



"스승님은 재밌으십니까?"

재미없는데...이명헌은 말을 삼키고 발치에 우수수 떨어지는 처녀 단자들에 시선을 옮겼다. 이명헌을 보고 헤실헤실 웃던 우성은 처녀 단자 속 얼굴을 확인하자 크게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기준이었습니까? 저한테 말하실 수 있으십니까?"

말을 하려다 이명헌은 다시 단어들을 삼켰다. 저를 닮은이들로 골랐다. 이는 결국 황제가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그 마음에 대한 답변을 해야하는 것도 당연했고, 이명헌은 아직 그 답변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지금 스승님이 이 초상화들을 보고 골라온 이유를 묻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 단자까지 데구르르 굴러 다른 단자들 위에 쌓였다. 이명헌은 현기증이 나는 기분에 발바닥에 힘을 두고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해야했다. 답변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자 우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명헌의 앞으로 걸어내려왔다. 황실의 법도가 있으니 이명헌은 잽싸게 무릎을 꿇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로 잔인하십니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이명헌은 목끝까지 차오르는 불만을 열심히 누르며 다른 말을 꺼냈다.

"제가 많이 부족하니 스승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다른 이에게-"

"스승님"

빠르게 말을 건네는 이명헌의 말을 정우성의 낮은 목소리가 잘랐다. 그 목소리가 항상 웃으며 말을 걸던 목소리와 달리 위압감이 있어 이명헌은 입술을 깨물고 말을 거두며 말씀하십시오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스승님에게 누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속 바닥만 향하던 이명헌의 고개가 확 올라갔다. 

"저는 누이가..없..."

"있지 않습니까. 약관을 지난. 제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겁니까?"

형제가 없는 이명헌을 잘 아는 정우성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이게 무슨 말이지 머리를 굴리던 이명헌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그 누이와 혼인을 하겠으니, 스승님은 어디 먼 곳으로 유학가신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잠...잠시만 전하, 아니 우.."

뭐라 말을 잇기도 전에 입에 제갈이 물려졌고 발버둥치는 이명헌을 장정 둘이 붙잡았다. 

"좋은 집안의 자식과 혼인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정우성은 그렇게 차게 말을 뱉고 손짓하자 장정 둘은 이명헌을 끌고 나갔다. 



-



그 누구도 들은 적 없던 이가의 여식이 황제의 후궁으로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물론 이가의 사람들 조차 의문 투성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인사도 없이 갑자기 유학길에 오른 것도 모자라 있지도 않은 여식이 후궁이 되었다. 다들 자초지종을 물으려 이가의 문턱을 밟았으나 그때마다 있는 황제의 호위가 선물을 잔뜩 들고 나타나서는

"여식이 있는 것을 황제가 아는데 숨긴 것입니까? 아니면 지금 황제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것입니까?"

이런 식으로 칼을 들고 협박조로 말하니 의문을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한채 모두 수궁할 수밖에 없었다. 

"혼인식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재정을 걱정하여 그런 것이니 괜한 소문은 그대들의 안위에 위험이 될 것입니다"

이명헌의 부모조차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유학을 가고 싶어하던 아들이 편지 한 장만 남기고 간 것이 이상했지만, 성군으로 자자한 현 황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은 모함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존재하지도 않는 이가의 딸이 어찌나 사랑받는지 황제가 후궁전에서 떠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정체불명의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다.

한편 이명헌은 후궁전 탁자 앞 의자에 앉아 허리를 주므르고 있었다. 항상 입던 남성이 옷이 아닌 여성의 옷이 강제로 입혀진 채 화장만은 거부하여 머리는 그대로 상투를 올린 상태였다. 못하게 하면 억지로라도 시킬 것 같아 몸을 떨던 이명헌과는 달리 정우성은 그럼 그대로도 괜찮다며 웃어보이기만 했었다. 

초야라서 떨린다며 부끄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과는 달리 바삐 움직이는 손에 이명헌은 저항도 못하고 안겼다. 상대를 다치지 않게 저지할만한 힘이 이명헌에게는 없었기에 정우성이 빨리 만족하고 스스로 몸을 물리게 하는 것만이 답이라 생각했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밤새 스스로의 허리를 작살내고 말았다. 안된다고 의미 없는 행위는 그만두라고 몇번을 말해도 그렇게 남자의 목소리를 내면 시종들이 눈치 챈다며 솥뚜껑만한 손으로 강하게 덮어버린 입술 주변은 붉게 멍자국 비슷한 것이 남았다. 

"부인!!"

체통없이 뛰어들어와 이명헌을 꽉 껴안은 정우성이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부르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는지 모릅니다"

꽉 껴안고 놔주지도 않을 모양으로 목이며 귓가며 입을 쪽쪽 맞추던 정우성은 이명헌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두 어깨를 잡고 뒤로 몸을 물렸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제가 이리 가르쳤습니까?"

"그렇게 혼인하길 바라신건 스승님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에 따랐을 뿐입니다. 마음에 품은 정인과 혼인하길 바라신다면서요"

"저는 남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정인이라고 가르치실 때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한 것이니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며칠새 수척해진 이명헌은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말했다. 정우성은 튀어나온 힘줄을 가만 보다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이명헌에게 혼담이 오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정우성은 어떻게 하면 그를 자신의 옆에 묶어둘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황실의 법도라는 것이 완벽한듯 허술한듯 하여 제 아비도 후궁 중 몇은 남자인 것을 두 눈으로 봤었다. 그걸 제 어미가 눈감아준 이유는 딱 하나, 그들은 후사를 만들어 우성에게 위협을 할 수 없기 때문. 어린 우성은 후궁전 처소에 앉아 살풋 웃는 남자들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저는 아이도 만들지 못합니다"

정우성의 한숨에 따라 한숨을 쉰 이명헌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뱉었다. 그 때문에 이명헌을 황후로 바로 올리지 못한 것이라 정우성도 아쉬운 일이었다. 어떻게 엄청 많이 하면 생기지 않으려나 싶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야 어디서 가져오면 그만입니다"

"황실의 핏줄을 끊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황실의 핏줄보다는 가르침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스승님이, 아니지 부인이 잘 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명헌은 이제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체계적이고 집요했다. 이명헌의 말은 듣지도 않고 강인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가는 것이 이 모든 일이 한두해 생각한 일이 아님을 자명하게 했다. 

"제발 정신차리세요"

대낮부터 옷속으로 파고 들어와 허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커다란 손을 이명헌은 붙잡으며 인상을 썼다. 

"어제는 좋아죽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우성은 자신의 손을 잡은 이명헌의 손 위로 반대쪽 손을 허리 뒤로 돌려 겹쳐 잡았다. 이명헌의 얼굴이 금새 홧홧하게 달아올랐고, 그런 틈을 정우성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것보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합방일을 잡았습니다! 부인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니 시종들은 아무도 들지 말라 똑똑이 명해두었습니다"

"무...무슨..."

"시종들이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저에게 집중 못하실거 아닙니까"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인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 것인지 이명헌은 가슴이 턱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이명헌의 눈가에 입술을 쪽 소리 나게 맞춘 정우성의 입가에 호가 그려졌다. 

"뭐든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임신한 것처럼 배에 천을 두르고 산달이 되면 별장에 가서 아이를 낳고 왔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조금 사내다운 여인이라 생각할 뿐 감히 제게 의문을 품겠습니까?"

천천히 침대까지 뒷걸음치게 만든 정우성은 허리를 받치고 있는 손에 힘을 주어 이명헌을 눕혔다. 어이가 없어 두눈을 마주하니 정우성은 아이처럼 웃으며 이명헌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그리고 혹시 모릅니다. 계속 안에 쏟아 붓다 보면 기적이 일어날지도요"

고개를 들어 또랑또랑 빛을 내보이는 정우성은 그대로 이명헌의 가슴팍 속에 입술을 묻었다. 





같은 이명헌 한정 미친사랑을 하는 황제 정우성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