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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2 04:58



노부와 케이타가 갑작스럽게 란유족을 방문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케이타와 함께 다관을 방문했을 때, 다관 주방에서 나와서 잠시 대화를 나누던 큰 형수가 한 말 때문이었다. 아직 케이타가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은 퍼뜨리지 말라는 황제의 엄포가 있었기 때문에 그저 한 몇 달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아서 노부의 조부모님 댁이 있던 곳에 한 번 다녀올 거란 말만 했을 때 큰 형수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몇 달 정도 여유가 있으면 제 고향에도 한 번 가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형수님 고향이요?"

케이타가 얌전히 눈만 깜박거리고 있어서 노부가 대신 묻자, 큰 형수는 마침 오늘 케이타가 다관에서 주문했던 건락과 과일이 들어간 다과를 살짝 가리켰다. 

"이런 건락은 몇 달 동안 보관이 가능하니까 가지고 나올 수 있지만, 오래 보관할 수 없는 건락도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하긴 소젖이나 양젖, 염소젖도 며칠만 두면 상하니 그걸 발효한 건락도 오래 두지 못하는 것도 있을 법해서 노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큰 형수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 건락도 맛있을 것 같긴 한데 아예 먹어보지 못한 것이니 어떤 맛일지 상상도 안 되고, 대화제국에 가지고 들어와서 먹는 건락과 얼마나 다를지 사실 모르겠고. 큰 형수는 노부의 그런 시큰둥한 기색을 읽었는지 몸을 케이타 쪽으로 반쯤 틀어서 조근조근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드린 건락과 달리 우리 고향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건락은 겉은 살짝 단단한 느낌이지만 안쪽은 정말 부드럽습니다. 도성에서 드시는 건락과 달리 식감이 정말로 입에서 사르륵 녹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 향도 무척 강한데 또 그 강한 향이 정말 입맛을 자극합니다. 게다가 고소하고 짭짜름한 맛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생과일과도 잘 어울리지만 달콤한 건과일이나 꿀, 밀떡, 고기와 같이 먹으면 정말 잘 어울립니다."

작정하고 꼭 케이타를 꼬이고야 말겠다는 듯 자기 고향에서만 맛볼 수 있는 건락이 얼마나 맛있고 근사한지 온 정성을 들여서 설명하는 큰 형수를 보면서 케이타가 안 넘어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노부가 케이타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케이타 쪽으로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노부의 손을 꽉 쥐는 따뜻한 손이 느껴졌다. 케이타에게 고개를 돌리자 케이타가 노부의 손을 꼭 쥐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노부를 돌아봤다. 

진짜로 사람 눈이 이렇게까지 반짝거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노부를 볼 때도 저렇게까지 반짝반짝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케이타가 아직 못 먹본! 그런데 정말로 맛있는! 건락이 있다는 말에 저렇게 애타하는 걸 보니 서운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게 미치도록 귀여운 건 사실이라서 노부는 큰 형수에게 큰 형수의 가족들이 봄철을 보낸다는 곳으로 가는 길을 상세하게 안내받았다.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사이를 잇는 길을 통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여정의 대부분이라서 역참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고 노숙을 많이 해야 할 거라고 해서 걱정되긴 했지만 케이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은 많이 해 봤으니까 괜찮습니다."

노부는 전쟁터에 나가 본 적이 없어서 전쟁이라고 하면 케이타가 장졸들을 이끌고 말을 타고 달려가서 싸우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엔 노숙을 많이 해 봤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케이타는 병법을 배웠고 직접 전술을 짜기 때문에 사람을 보내서 지형을 파악하고 적국의 상황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몰래 몸을 숨긴 뒤 적진에 잠입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지형이나 기후를 파악하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노숙을 해도 그대가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내가 잘 준비해 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랑스럽게 웃는 케이타는 정말로 귀여웠고 정말로 안타까웠다. 





형수의 가족들이 여름이 되면 더 깊은 산 속으로 이동한다고 했기 떄문에 노부와 케이타는 황제의 허가를 받자마자 바로 소수의 호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처음 이틀은 역참에서 지냈고 3일째 되는 날 본격적으로 길을 벗어나서 산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던 날 밤이었다. 호위들이 반으로 나뉘어서 반은 사냥을 하러 가고, 반은 주변에서 천막을 치고 불을 피우고 있었다. 노부는 밖에서 노숙을 하거나 야영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눈치껏 호위들을 따라서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었는데 케이타가 다가오더니 어느새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피워 둔 모닥불 앞에 노부를 앉혔다. 

"나나 내 수하들이나 이런 건 금방 하니까 앉아 계십시오."
"그래도 어떻게 앉아 있기만 합니까?"
"수하들이 멧돼지나 토끼 같은 걸 잡아와도 손질하고 익히면 시간이 좀 걸리니 식사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 그동안 건락 좀 끓여주시겠습니까? 다들 천막 치고 덫을 놓고 난 다음에 차나 한 잔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럼."

케이타가 데리고 다니는 호위들은 케이타가 노부의 본가를 방문할 때도 늘 함께 다니는 이들이라 노부의 본가 입구 쪽에 있는 호위들을 위한 작은 전각에는 건락차도 늘 준비돼 있었다. 그래서 노부가 모두를 위해 건락차를 준비하기 위해 건락을 끓이고 있자, 어느새 나뭇가지를 잔뜩 주워 온 케이타가 모닥불 옆에 장작들을 쌓아두고 노부의 어깨 위로 피풍의를 두른 뒤 끈을 묶어 주었다. 건락을 끓이다 내려다보자, 황제가 케이타와 노부의 혼례를 앞두고 노부의 집으로 보낸 예물에 있던 그 피풍의였다. 케이타가 진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자신이 살아돌아오지 못할까 봐 노부가 혼례를 치르고 단 며칠만에 홀몸이 돼 버릴까 봐 두려워서 파혼할 기회를 주겠다고 찾아왔던 그 밤에 노부가 케이타의 어깨에 둘러 주었던 그 피풍의. 

"봄이라도 밤에는 춥습니다."

그렇게 속삭이는 케이타의 귀가 조금 발그레해진 건 모닥불의 불빛이 비춰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케이타도 그날 밤을 떠올리는지 노부의 피풍의를 묶어주는 손가락 움직임이 유달리 굼떴으니까. 노부는 다 녹은 건락을 뜨겁게 끓인 차 위에 곱게 부어서 케이타의 손에 먼저 들려주고 천막들 주위로 산짐승과 산적들을 막기 위한 덫을 쭉 깔아두고 온 호위들에게도 찻잔을 하나씩 들려 주었다. 그리고 노부는 얼른 케이타가 천막 안에 들여놓은 짐을 풀어 케이타의 어깨 위에도 노부가 예물로 준비했었던 피풍의를 꺼내 걸쳐 주었다. 노부의 손가락이 피풍의의 끈을 묶어주며 케이타의 가슴 앞쪽을 자꾸 스치자, 케이타의 뺨은 계속 조금씩 발그레해졌다. 

케이타는 새로운 맛의 건락을 먹으러 가는 것도 신나고, 전쟁이 아닌 여행으로 이렇게 노부와 함께 다니는 것도 신나고, 노부와 노는 기분으로 노숙을 하는 것도 몹시 신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노부도 기분이 들뜨고 설레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귀엽고 예쁜 사람한테 한동안은 손도 못 대는 건 조금... 그런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냥을 나갔던 호위들은 멧돼지를 한 마리 잡아왔고 익숙한 듯 멧돼지를 착착 해체하더니 고기로 구워 먹을 부분만 남기고 뼈와 내장을 비롯한 나머지 부분은 전부 싸서 천막에서 아주 먼 숲에다가 다시 묻어두고 돌아왔다. 

"근처에 버리면 고기 냄새와 피 냄새가 나서 곰이나 범이 접근할 수도 있어서 멀리 버립니다."

케이타가 담담하게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케이타나 호위들이 다 담담했기 때문에 노부도 담담한 낯을 꾸며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고작 향신료 몇 가지만 뿌렸을 뿐인 멧돼지가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다들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남은 고기도 전부 멀리에 버리고 온 다음에는 호위들은 호위들대로 조를 나눠 불침번을 서거나 잠을 잤고 노부는 모닥불 앞에서 케이타와 앉아서 소곤소곤 잡담을 나눴다. 그러다 배도 꺼지고 이젠 자야 할 시간이 됐을 때였다. 케이타가 제법 큰 장작으로 모닥불 안에서 잔불이 남은 작은 나뭇가지들을 슬슬 밀어내더니 짐에서 두꺼운 가죽 장갑을 꺼내 끼더니 작은 나뭇가지들 아래에 깔려 있던 납작하고 넓은 돌을 꺼냈다. 케이타가 모닥불을 만들 때 노부는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었기 때문에 모닥불 아래에 그런 돌이 있는 것도 몰랐는데 케이타는 돌이 뜨겁거나 무겁지도 않은지 돌을 들고 노부와 함께 잘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미리 파 놓은 땅에 돌을 내려놨다. 그렇게 모닥불 아래에서 세 개의 크고 넓은 돌을 더 파 낸 케이타는 두 사람의 간이 침상을 만들 자리 아래에 돌을 네 개 깔고 흙을 덮은 다음 그 위에 짚을 덮어서 평평하게 만들고나서야 동물털로 만든 요를 깔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노부가 가지고 온 짐에서 역시 동물털로 만든 이불을 꺼내 요 위에 덮어 두자, 천막의 입구 쪽, 두 사람이 이불 속에 누우면 발치 아래가 될 자리에 다시 모닥불을 만든 케이타는 물을 가득 담은 주전자를 모닥불 위에 걸어둔 뒤, 갑옷만 벗어 둔 채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노부가 그 옆에 누워서 케이타를 품으로 끌어당겨 안자, 케이타가 생글생글 웃으며 노부를 바라봤다. 

"따뜻하지 않습니까?"

노부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닥불 아래에서 몇 시간 동안 데워뒀던 돌이 흙 너머로 전해주는 온기는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따뜻했다. 

"정말 따뜻합니다. 전하 덕분에 떨지 않고 포근하게 자겠습니다."

그러자 케이타는 정말로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은 항상 그대가 어리숙한 나를 챙겨주느라 분주했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내가 그대가 추위에 떨거나 배를 곯는 일 없이 잘 챙겨 줄 테니까 걱정말고 느긋하게 지내십시오."

나만 믿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얼굴은 두말할 것 없이 귀여웠지만 노부를 챙겨줄 수 있어서 신나고 기쁜 게 역력하게 보였기 때문에 노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전하만 믿겠습니다."

그날 밤 뿌듯한 얼굴로 동물털 이불 가장자리를 꾹꾹 눌러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한 다음에야 노부의 품에서 잠들었던 케이타는 전날 밤 장담한 대로 큰 형수의 고향까지 가는 길에 내내 노부를 부지런히 챙겼다. 아침은 전날 오후 마지막으로 마을을 지날 때 노점에서 사 온 찐빵을 살짝 데운 것과 물을 끓인 다음 작게 자른 육포를 넣어서 푹 끓여 죽처럼 만든 것을 함께 먹었다. 죽을 끓인 건 놀랍게도 호위들이 아닌 케이타였다. 소수로 정찰을 다닐 때 사냥을 하거나 덫을 놓는 건 전부 호위들이나 장졸들의 일이라 간단히 할 수 있는 아침밥 준비 정도는 원래도 늘 케이타가 자원해서 했었다고. 그리고 케이타는 먹어도 안전하고, 맛있는 야생 과일나무들을 발견하면 제일 맛있고 예쁘게 잘 익은 것을 따서 노부에게 먼저 권했다.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독버섯도 구분할 줄 알아서 잔뜩 딴 버섯을 일부는 호위들이 잡아온 야생오리와 함께 진흙구이를 해 먹고, 일부는 큰 형수의 가족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잘 챙겨 두었다. 

덕분에 케이타가 장담한 대로 란유족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내내 맛있고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란유족을 만났을 때 란유족이 대접해 준 건락은 큰 형수가 장담했던 것 이상으로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짭짤한 맛이 일품이었다. 란유족이 구운 감자와 고구마에 치즈를 얹어주는 것도 아주 맛있었고, 건락차를 만들 때처럼 건락을 끓여서 감자나 고기, 말린 과일을 찍어먹는 것도 아주 일품이었다. 그리고 노부와 케이타 일행이 떠날 준비를 하자 란유족은 먼 거리를 가져갈 수 있는 건락과 양털, 훈제 고기를 잔뜩 챙겨 주었다. 노부와 케이타도 물론 염치없이 받기만 한 건 아니라서 큰형이 챙겨준 여러 가지 약재들과 둘째 형수가 싸 주 다과들, 오다가 딴 버섯과 귀한 산나물들을 건넸고 노부와 케이타가 준비해 온 방한용 털가죽들, 곡식과 찻잎, 향신료 등을 건넸다. 

그리고 노부와 케이타, 호위들은 다시 같은 길을 밟아서 도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케이타가 노부의 식사와 잠자리, 안전을 부지런히 챙겨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산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노숙을 하던 밤이었다. 첫날 노숙을 할 때처럼 케이타가 따뜻하게 달궈 둔 돌을 깔고 그 위에 흙과 짚을 덮어서 따뜻한 침상을 만든 뒤 이불 속에서 꼭 끌어안고 누워 있을 때, 노부는 지친 기색도 없는 케이타를 다독이며 물었다. 

"란유족을 방문한 건 기대만큼 즐거우셨습니까?"
"네. 형수님이 말씀하신 것보다 더 맛있고 더 근사한 건락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여유가 된다면 또 가 보고 싶습니다."

노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쉬이 상해서 란유족의 거처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그 건락은 큰 형수가 도성에 가지고 온 것보다 더 향이 강했는데도 덜 부담스럽고 확실히 아주 당기는 맛이었다. 

"그대도 괜찮았습니까?"
"네, 건락도 맛있었고 오가는 길의 풍경이나 란유족이 거주하는 곳의 풍경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란유족 사람들의 환대도 기꺼웠습니다만..."

노부는 눈을 동글동글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케이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전하가 계속 저를 아껴주시고 챙겨주셔서 좋았습니다."

케이타는 노부의 말이 기쁜지 뺨을 발그레하게 만들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도 그대를 챙겨줄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았습니다."

노부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즐겁게 여정을 즐길 수 있도록 케이타가 부지런히 노부를 챙겨주는 건 정말 고맙고 기쁘고 좋았다. 하지만 먼 거리를 오가고, 란유족의 거처에서 지내는 며칠까지 해서 많은 나날을 꼭 안고 자기만 했던 건 역시나 아쉬웠기 때문에 노부는 여전히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있는 케이타의 따끈해진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래도 이제 궁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호위들이 천막 안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지 않다는 걸 알지만. 노부는 케이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전하와 단 둘이서만 잘 수 잇는 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케이타는 온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우리 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애가 타는 게 노부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