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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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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2층에 있는 부인을 찾아갔다. 침대도 없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신경이 쓰였다. 걱정이 되기도 했고 굳이 이랬어야 하는지 솔직히 화도 났다. 문을 열고 멀뚱히 서 있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에 애정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건 조금 충격적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아침 약 먹어야 하니 내려와요. 식사하게." 별 미동 없이 누워 눈만 꿈뻑거리더니,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았다. 마치다는 차갑게 식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고 위태로워 보였어도 항상 온기는 있던 사람인데 이젠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나랑 영원히 말 안 할 거예요? 난 당신이 한낱 고용인과 불순한 관계였던 것에 대한 사과도 못 받았는데."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말이 비뚤게 나갔다. 평생 남들이 자신에게 맞춰주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 잘못한 것이 있어도 제대로 사과할 일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면 희한하게 모든 게 괜찮아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인은 자기 부하가 아님을, 이러다 이혼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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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목욕물 좀 받아. 레나는 오늘 부엌일로 바쁘니까 네가 해야겠다." 사치코는 사모님이 불편했다. 싸늘해진 태도도, 자신을 쳐다볼 때 묘하게 경멸하는 듯한 분위기도. 물론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었다. "사모님 무릎에 멍이 드셨네요..." 물 밖에 내놓은 종아리를 문질러 닦으면서 사치코는 조용히 물었다. "무릎에만 들었겠어? 며칠을 나체로 묶여 있었는데. 꼭 모르는 일처럼 말하네." 사타구니 쪽에서 멈칫 손이 멈췄다. "나 유산한 거 알았을 때... 기분 어땠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씀이냐는 말이 치아 안쪽에 부딪혀 나오지도 않았다. "애 잃고 완전히 망가져서 다시 골방에 처박히고, 네가 저 사람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욕조 밖으로 팔을 뻗어 사치코의 뺨을 잡았다. 잡티 하나 없는 어린 피부가 그리 부럽지는 않았다. 아무리 어려도 어린 맛 그 이상의 맛은 없을 게 뻔했다. "우리 부부가 널 밤마다 침실로 불러 노리개처럼 쓸 수도 있어. 근데 내가 안 하는 거야. 그런 쪽으론 영 취미가 없어서. 다행으로 여겨." 그러니까 넌 내 남편과 동등하게 엮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걸, 겨우 몇 번의 정사로 이 집 안방이라도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걸 아주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아직 세상의 쓴맛을 보지 못한 고용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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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노부가 소금이를 안고 2층 방에 들어왔다. 아침엔 모진 말로 찌르더니 저녁엔 달래 볼 모양이었다. 마치다 눈에 훤히 보이는 의도였다. "당신 없는 동안 사료를 잘 안 먹어서 이 녀석 살이 좀 빠졌어요." 자신의 품에서 소금이를 빼앗아 가려는 부인을 잽싸게 붙잡았다. 그래, 사실 소금이는 미끼였다. 이 녀석을 안고 있으면 적어도 곁에 한 번은 다가올 테니까. "이런 바보 같은 짓 그만하고 안방에서 편하게 자요. 원한다면 내가 이 방에서 잘 테니." 소금이가 불편함을 감지하고 멀리 뛰어내려 도망갔다. 마치다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내가 없는 동안이 아니라 당신이 날 없앤 동안이죠. 그리고 그 방에서 다시 잘 일은 없어요." 쥐덫에 씹힌 꼬리처럼 손목이 하얘질 만큼 세게 붙잡힌 채로, 허공을 응시하는 얼굴이 안쓰러우면서도 묘하게 성질을 긁었다. 제 부인이 자기 통제를 벗어나려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곧 부서질 것 같은 몸을 벽에 밀어붙이고 가슴이며 옆구리며 여린 살을 마구 주물렀다. 뽀얀 살결에 울긋불긋 손자국이 나기 시작했다.

키스를 하려고 목덜미에서부터 도장을 찍으며 올라오는 입술이 가소로웠다. "왜 그 방에서 다시는 안 자려고 하는지 안 물어봐요?" 아이를 잃은 지 며칠 되지 않은 몸에 차마 삽입은 하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피부에 손자국만 내고 있는 남편의 귓가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사치코를 범한 더러운 방에서는 숨도 쉬고 싶지 않아요. 불순한 관계라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그 애가 임신이라도 하면 이 집에서 키울 생각이었어요? 피임했을 리는 없고." 모든 행동이 멈췄다. "임신했대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한다는 말이, 참. "당신 부인이 당신이 한 더러운 짓을 알았을 땐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게 먼저예요. 진심이든 아니든." 흐트러진 옷을 정갈하게 여미며 마치다는 눈물을 참았다. 문밖에 비치는 작은 실루엣이 너무 사치코의 것이라 금방 눈물이 말랐다. "나가 보세요. 밖에 당신 애인이 기다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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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숨죽여 울었다. 미닫이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늦은 밤의 불청객이 남편이 아니란 것쯤은 발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사모님... 울지 마세요..." 이불 속으로 들어와 허리를 껴안는 온기가 자신의 온기와 딱 맞아 편안했다. "진정되실 때까지만 이렇게 있을게요. 쫓아내지 마세요." 마치다는 부스럭 소리조차 나지 않게 천천히 몸을 돌려 레나와 눈을 맞췄다. 자기보다 작은 품에 얼굴을 묻고, 재갈을 물듯 레나의 옷깃을 깨문 채로 한참이나 울었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