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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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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태섭에게 털어놓고 약간 후련해진 대만은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잠에 들었음.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제 혼을 붙들고 멋대로 뒤흔드는 녀석의 뻔뻔한 낯짝을 보게 되었지. 아니, 사실 보기만 한 건 아니었어.

 

 

분명 간만에 숙면을 취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 위에 똑- 똑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들어서 대만은 잠에서 깨어났어. 뭐야. 천장에서 물이라도 새나?

그리고 잠에 취해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린 대만의 시야에 펼쳐진 것은 침대 위에 널부러진 자신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낯선 이의 모습이었어. 이런 미친! 속으로 짓씹은 욕을 입 밖으로도 내뱉고 어른들을 부르고 싶었던 대만의 의지와는 달리 목에서는 뻐끔거리는 숨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못했어.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지 못하는 감각. 왼쪽 무릎을 다쳤을 때 다리에서 느꼈던 무기력함인데, 이번엔 그 감각이 마치 온 몸에 퍼진 듯 해. 백 프로다. 이 새끼가 바로 그 새끼야. 지 멋대로 나랑 결혼했다고 날뛰는 내 '서방'. 

 

귀신의 외적인 생김새는 대만의 또래 정도로 보였어. 소년기의 끝 무렵과 청년기의 초입 그 사이 어딘가에 걸친 듯한. 앙다문 턱이며 골격이 아직 성장기의 막바지임을 입증하듯 덜 여문 티가 났지. 그런데 딱 하나, 표정 만큼은 다 늙은 노인처럼 어딘가 공허하고 서글퍼서.. 어떻게 보면 대만보다 훨씬 나이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어쨌든 적어도 대만이 가슴에 고작 못다 한 풋사랑 좀 품었다고 해서 그 무릎을 박살내기까지 할 정도의 못된 인상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에 대만은 이 와중에도 깨달음을 하나 얻었지. 이야... 이래서 보이는 겉 모습만 보고 사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 거구나.

 

 

[...─ㅅ, 안ㄷ..]

 

뭐라는 거, 읏! 이 손, 치우라고...!

 

 

제 위에 올라타 옷가지를 파헤치는 손길이 소름 끼치게 차가웠어. 놀란 대만은 발버둥 치고 싶었지만 몸이 지독한 가위에라도 눌린 듯 옴짝달싹 할 수 없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반항은 조금도 없었지. 대만의 심장깨에 손을 올린 귀신 녀석이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그 내용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어 대만은 표정을 찡그렸음. 그리고 그런 대만의 얼굴을 슬픈 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귀신은 이내 고개를 내려 대만의 입술에 제 입을 포개었어. 그 순간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한기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듯한 섬찟한 감각에 대만이 질끈 눈을 감았어. 

 

 

그리고 한참을 파들파들 떨던 대만이 겨우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제 몸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졌음을 자각하자 그제서야 긴장했던 몸이 삽시간에 풀어지며 저도 모르게 맺힌 눈물이 꼬리를 타고 흘러내렸어. 꿈인가. 제발 꿈이어야 하는데. 

어슴푸레한 새벽 빛에 푸르게 물든 방 안이 새삼스레 이질적으로 느껴졌어. 마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누워있는 듯한 감각이었지. 이상한 일이잖아. 이 곳은 평생 지내왔던 내 방이고 매일 밤 잠들던 내 침대 위인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제발 꿈이게 해달라고. 그냥 한바탕 악몽 꾼 셈으로 치자고. 정신 착란이든 뭐든지간에 아무튼 실존이 아니라 뇌의 착각일 뿐이니, 두 번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그런 대만의 자기세뇌를 비웃기라도 하듯 반려혼은 사라지기는 커녕 매일 밤 점차 더 영향력을 키워나갔어. 고작 손 좀 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귀엽게 느껴질 만큼, 접촉의 강도 또한 점점 심해졌어. 

 

 

어느 날은 정말이지...

이곳 저곳 제 멋대로 만지고 입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기어코 하반신에 살덩이를 삽입해 오는데, 꾸득꾸득 장기를 벌리고 들어오는 부피감에 온기가 전혀 없어서 무서웠어. 뱃속이 마치 뭉툭한 냉동 고기로 쑤셔지는 느낌이어서 구역질이 올라왔어. 그러나 신체적으로 느껴지는 토기보다 더 괴로운건, 잔뜩 만져지고 유린당하는 그 모든 과정 내내 무력하게 누워서 할딱거리기만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비참함이었지.

 

 

[... 각시야.]

싫어. 그따위로 부르지 마.

[사랑해]

개소리하지 마. 제발, 제발 듣기 싫으니까 차라리 할 꺼 빨리 하고 꺼지기나 해.

[─.. - 불러줘. 내 이름. 알잖아. 응?]

몰라, 몰라, 몰라, 모른다고!!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처음 이 녀석의 존재를 볼 수 있게 된 날엔 분명 모습만 보일 뿐 이 녀석이 하는 말 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어. 그 입에서 나온 소리라는 게 도저히 인간의 말이 아닌 기묘한 음성이었어서.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을 내뱉는 녀석을 보며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어. 이 녀석과 소통하면 할수록, 이 녀석이 하는 말을 더 자세히 알아들으면 들을 수록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들려서는 안될 게 들리고, 보여서는 안될 게 보인다면... 이제 앞으로 남은 게 뭐겠어. 서서히 저 귀신의 영향력 아래에 온 몸이 잠식되는 것 밖에 더 있겠냐고. 아, 혹시 이게 저 녀석이 바라는 거였나. 서로 얽혀 하나가 되는 뭐 그런 거.

 

 

[예쁘다. 내 색시]

아윽, 아, ㅍ

[응. 여기가 좋은 거구나? 귀여워...]

아파, 이 시발 아- 아아...!

 

 

이 좆같은 귀신 새끼의 더더욱 좆같은 부분은, 개미친 조루새끼라는 점이었음. 성욕 보다 산 사람의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 그 자체에 더 취해 있어서, 일단 한 번 (지 멋대로) 대만의 구멍을 열고 나면 어지간 해서는 쉽게 끝내주지 않고 밤 새도록 내벽을 마구 탐했으니까. 가끔은 교성보다는 애원 내지 흐느낌에 가까운 울먹임만 쏟아내는 정대만이 야속한지 그를 엎어놓고 엉덩이만 치켜 올려들어 박을 때도 있었는데 안그래도 밭게 숨쉬느라 모자란 산소가 처박힌 베개 때문에 바닥이 날 때 쯤 대만의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타이밍에 맞춰 사정하곤 했음. 그럴 때마다 대만은 제 몸 깊숙한 곳에 퍼져나가는 찬기운이 혹시 나중에 무슨 영향이라도 행사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수치스러운 자세로 처박히는 중이라는 사실 정도는 잊곤 했어.  

 

며칠 째 반복되는 귀접은 회를 거듭할수록 대만의 몸에 눈에 띄는 자욱을 남겼음.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정사의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지. 시발 진짜 딱 죽을 것 같다. 후들후들 떨려서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애써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을 본 대만은 실소했어. 하... 누가봐도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네. 어떡하냐 이거.

윈터컵이 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어.

 

 

 

-

 

 

"치수야, 집에 안가?"

수업 다 끝났는데. 오늘도 남아서 자습 더 하다 갈꺼니?

 

하교종이 울린 것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있던 치수에게 준호가 말을 걸었어. 아니, 오늘은 바로 집에 갈거다. 준호의 부름 덕에 상념에서 깨어난 치수는 집에서 살펴볼 문제집들을 대강 선별해 가방에 쑤셔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음.

 

"올해 센터시험은 지리가 좀 까다로울 것 같다더라."

 

그리곤 준호와 함께 하교하는 도중에도 내내 정신이 반쯤 빠져있던 터라 옆에서 재잘거리는 준호의 말은 대부분 치수의 귀에 들어오지 못하고 흩어졌어. 이제 고작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센터 시험, 은퇴는 했지만 내심 신경 쓰이는 농구부의 상황 등등 채치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소재는 여럿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한 것은... 아무래도 정대만이었지. 그 날. 그러니까 정대만과 송태섭이 나누는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됐던 날, 치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어.

 

사실은 말야 1학년 시절의 아슬아슬했던 그 텐션을 채치수도 모르지는 않았어. 자신을 질투하던 사슴같은 소년이 어느 새 부턴가 욕망 섞인 시선을 보내오는 걸. 사실 그로 인해 약간의 우월감과 설명할 수 없는 충족감마저 느꼈던 치수야. 그런데 그 아이는 부상이 재발한 이후로 사라져버렸고 이후 다시는.. 다시는 치수 앞에 모습을 보이질 않았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으로 부대끼고 살면서 이렇게까지 못 만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철저히. 언젠가는 그 녀석을 보러 일부러 반 앞에서 기웃거린 적도 있었던 것 같아. 한참을 얼쩡거려도 정대만의 머리카락 한 올 볼 수 없었던 채치수가 결국 지나가던 대만의 반 아이를 붙잡고 그에 대해 묻고 나서야, 그가 최근 들어 불량 학생들과 어울리며 학교를 자주 빠진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지. 양아치...? 그 정대만이? 엘리트 체육인의 정도만 걸어온 것 같은 게 티가 나는 그 도련님이...

누가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텐데. 저 녀석은 양아치와는 결이 다르다고. 분명 맞지 않는 옷일 텐데 그런 무리에서 받아들여줄 리가.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만날 수 없게 되자 그녀석을 향한 기묘한 마음은 커져나갔고 급기야 꿈도 꾸게 되었어. 꿈 속의 정대만은 야실야실한 미소를 지으며 양아치 무리의 누군가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키스하고 있었어. 천박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꿈에서 깬 채치수는 제 아랫도리를 내려다 본 뒤 깊은 한숨을 내쉬었어. 더 천박한 건 내 쪽이었나. 왜 이렇게 속이 뒤틀리는지 본인도 본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서 불쾌했지. 이게 다 그 녀석이 제 멋대로 왔다가 제 멋대로 사라져버려서...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기분은 일상 생활에선 조금 번거로운 장애물이지만 코트 위에선 리스크였어. 따라서 그 날 이후로 채치수는 의식적으로 정대만의 존재를 지우려 노력했어. 이런 와중에도 제출되진 않은 듯한 퇴부서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며. 물론 그 희망은 시간이 갈 수록 흐려졌고, 채치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했지. 정대만이 없는 농구부로 전국에 진출해야 한다는.

 

 

그러나 세상 일이라는 게 언제나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듯 홀연히 사라졌던 정대만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거한 신고식 끝에 다시 농구부로 복귀했어. 난동 부리는 녀석에게 손찌검을 하면서도 내심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펑펑 울면서 그래도 농구가 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모습을 마주하니 이것도 저것도 다 됐으니 이젠 저 녀석이 하고싶은 거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그 '정대만이 하고 싶은 것'에 이런 것 까지 포함되는 줄은 채치수도 미처 몰랐었거든. 저 녀석이 날 좋아했었다고? 그래서 농구를 그만 둬야 했다고? 말이 안 되잖아. 정대만 저 녀석, 아무리 태섭이와 격 없는 사이라고는 해도 후배에게 너무 질 나쁜 장난질인 게 아닌가.

 

 

 

-

 

 

 

두 3학년들이 각자의 사정에 심란해 하던 와중에 송태섭은 뭘하고 있었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한 캡틴의 이름에 굳어버려 그 날은 그대로 정대만을 놓쳤지만 집에 와서 혼자 곰곰히 생각해보니 뭔가 아다리가 맞는 것 같은 거임. 정대만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아직 한나도 입학 전이었을 당시의 북산고 농구부에 정대만이 연정을 품을 만한 사람이라 하면, 그래. 치수 선배인 게 아주 말이 안되는 소리는 아닐 수 있겠다 싶은거지. 아니, 어쩌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적어도 남자를 좋아하는 데 거부감은 없단 소리잖아. 아 그런데 선배 취향이 단나같이 크고 거대한 타입이면.... 젠장. 나는 그야말로 정 반대인데.

 

 

이런 와중에도 윈터컵은 착실히 다가오고 있었기에 새 주장으로서 송태섭은 할 일이 많았음. 당장 오늘만 해도 타교에서 북산고로 원정 연습 경기를 왔는데, 본격적으로 윈터컵 예선이 시작되기 전에 강백호와 서태웅이 부재한 현 상황에 적용한 새 전략을 시연해 볼 소중한 기회라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어.

 

아직 본 게임 시작 전, 감독들은 감독 끼리 다른 곳에서 서로 말씀 나누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고 선수들은 각자 편한 자리에서 몸이나 풀고 있었지. 태섭이도 본인 몸 풀면서 스타팅으로 뛰게 된 1학년 후배들의 스트레칭 자세를 봐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석에서 쿠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림. 뭐지? 싶어서 돌아보니 아직 경기 시작도 전인데 다리가 풀린 건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정대만이 보여.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혼자 자빠지고 그럴 나이는 아니지 않아요?"

이제 막 걸음마 배우는 꼬마도 아니고. 자─ 얼른 일어나요.

 

에고고, 고맙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는 정대만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던 송태섭의 눈에 이상한 게 포착됐어. 오늘의 정대만은 평소 입던 유니폼 안에 이너를 껴 입고 온 상태라 몰랐었는데, 방금 일어서면서 펄럭인 하의 때문에 보게 된거야. 허벅지 안쪽에 잔뜩 새겨진 멍자국을. 시발 저게 뭐지?

 

저놈이 멍이 허벅지에만 있는 게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이 든 송태섭. 정대만 일으켜 세우자마자 상의도 살짝 거들떠 보는데, 역시나 온 몸이 잇자국으로 얼룩덜룩했음. 뭐야. 몸이 왜이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정대만!"

"...."

"선배. 이제 내가 캡틴이에요. 주장은 팀원들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핸들링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요. 부디 제가 제 몫 하나 다하지 못하는 그런 덜떨어진 주장이 되도록 만들지 마요."

"야, 네가 무슨... 너 같은 호랑이 주장이 어딨다고 덜떨어졌대."

 

에효. 내가 쟤 고집을 어떻게 이기냐...

 

 

잠시 자리 좀 비울 테니 후배들 마저 살펴봐달라고 달재에게 권한을 위임한 태섭은 필요 없다고 뻐팅기는 대만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며 기어코 선배를 부축한 뒤 락커룸으로 자리를 옮겼어. 그리고 둘만 있는 공간에서 한참을 쭈뼛거리다 상의를 벗은 대만이 드러낸 반라를 본 태섭은...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차마 삼킬 수가 없었어. 거의 폭력에 가까운 울혈과 손자국으로 온 몸이 멍들어 있었으니까. 개 중 심한 상처들에서는 아직도 멎지 않은 피가 스믈스믈 흘러 나오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아파보였지. 앉아요. 약 발라줄 테니까. 약 바르면 끈적거리잖아.. 경기할 때 거슬릴 것 같은데. 그럼 지금 그런 너덜너덜한 몸 상태로 코트에 서겠다는 거예요? 시간 없어요. 고집 그만 부리고 빨리 앉아. 태섭은 마치 제 몸에 난 상처라도 되는 것 마냥 표정을 구기며 연고를 발랐고, 서포트가 필요하겠다 싶은 부분에는 꼼꼼히 테이핑도 했어. 이 상처들, 그 새끼 짓이에요? 그 귀신인가 뭔가 하는 놈. 어...음. 아마도?

 

 

"언제부터 이랬어요?"

"3일 전부터."

"거짓말하지 말고요. 최소 생긴 지 일주일은 더 돼보이는 오래된 상처들도 있는 게 뻔히 다 보이는데."

"그럼 일주일."

"진짜 말 징하게 안듣는다 정대만. 아무튼 보아하니 대략 그때부터네요. 선배가 단나 좋아한다고 고백한 날."

"야. 왜 현재 진행형인 것처럼 말하냐? 나 지금은 걔 안 좋아해. 옛날에 잠깐... 아주 잠깐 그랬었다는 거지."

 

 

거짓말.

 

 

"오늘,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몸도 좀 사리면서 하고. 평소 하던 쪼가 있으니 답답하기야 하겠지만... 하여튼 선배는 평소에도 너무 자기 몸을 신경 안 써. 그렇게 산화하듯 플레이하는 농구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살 날이 창창하고 갈 길이 구만리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뛰지 좀 말아요. 몸도 결국 소모품인데.

 

"나 졸업하기 전에 북산 우승시켜야잖냐. 그게 목표라 어쩔 수 없어."

 

"...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대요? 지금 이 자리에도 있어요?"

평소엔 느낄 수 없댔으니 모르려나.

 

"글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보고 있을껄? 근데 나도 걔가 무슨 생각 하는 건지를 모르겠어.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찾아보기는 했는데, 귀신의 논리는 산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다르대. 그래서 내가 뭘 해야 걔가 기뻐하고 어떻게 해야 분노하는지 그 지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면 좀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누구보다 명확하잖아요. 그 새끼가 좋아하는 건 선배고 싫어하는 건 선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래.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 말이지. 

 

 

해쓱해보이는 대만의 얼굴과 상처투성이인 그의 몸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 태섭은, 이제 그만 체육관으로 돌아가자며 일어서 뒤도는 대만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의 몸을 돌려 세웠어. 보고 있냐? 귀신 새끼. 

그리곤 선포하듯 대만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을 맞췄어. 내가 거슬려? 그러면 나한테 화내.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고. 이 광경을 보고 열이라도 받는다면, 오늘 밤에는 어디 한 번 내 앞에 직접 나타나보라고.





슬램덩크
모브대만
치수대만
태섭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