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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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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싶은 그런 날이였다. 며칠은 굶주린 위장은 신 위액만 토해냈고, 정신은 흐려지고 눈앞은 핑핑 돌았다. 자신을 납치한 이들의 손에서 탈출하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이 오사카에서 도쿄에 있는 황궁까지 돌아갈 방도가 없었다. 돌아간다하더라도, 저는 살아남을수 있을까. 권력을 위해서라면 어린애를, 조카를 납치하는것도 마다않는 잔인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제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기엔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오느라 흙과 쓰레기들, 얼룩과 상처들로 엉망이 된 얼굴과 눈을 전부 가리는 머리카락, 옷은, 그 누구도 황족이라고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한 메구로를, 많은 이들은 그저 어린 노숙자로 치부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스쳐지나쳐갔다.

점점 감겨가는 눈꺼풀을 느끼며 메구로는 조소했다. 이렇게 길바닥에서 죽든, 탈출하지 못해 납치범 손에 죽었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구나.

"여기서 모해?"

그런 메구로의 정신을 깨우는 맑고 통통 튀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들자 오동통한 하얀 뺨에 붉게 물들어있는 홍조가 복숭아를 연상케하는 어린 아이가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랑 놀래??"

아이의 해맑은 제안에 메구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길거리 골목들을 전전하며 제게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과 노숙자들은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이젠 하다하다 별 어린애가....

"가, 나한테 가까이 오지마."

제가 생각해도 좀 심했나싶을 정도로 차가운 음성이 튀어나왔으나 아이는 이제 쪼그려앉아 시선을 제 눈높이에 맞춰왔다.

"그러지말고 나랑 놀아줘!! 응??응??"

메구로는 제 더러운 손을 덥썩 붙잡고 가만가만 흔들며 조르는 아이에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꼬맹아...

"나같은 사람이랑 놀면 부모님한테 혼나."
"왜애???형아는 나쁜 사람이야???"
"지금 나 봐. 몇일간 씻지도못해서 냄새나고 옷도 더럽고 손발도 더럽잖아."
"웅...그러면...씻으면 착한 사람되는거야??"

나랑 우리 집에 같이 가자! 그대로 제 손을 잡아끄는 메구로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아이는 울먹였다.

"왜애...나랑 가치 가기시러???"

아니...너...

"내가 누군지알고 집에 같이 가자고하는거야."
"우웅...형아!"

해맑기 짝이 없는 대답에 메구로는 맥이 빠져버렸다. 꼬맹아, 너 정말 경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나.

"저리 가라고 했지."
"히잉...왜애...나랑 손 계속 잡고 가자아-"

어지러워...토할것같아. 근데 꼬맹아...

"형아아아아 죽지마아아아아-"

너 왜 그렇게 울어. 너 나 처음 보잖아. 왜 그렇게 날 끌어안아. 넌 나 더럽지도 않아? 냄새도 날텐데. 희미하게 들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메구로는 점점 의식이 꺼져가는것이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죽어도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건 다행이야.

"....으음...."

포근하고 따뜻했다. 주변은 상쾌한 향이 감싸안아서, 천국이라면, 이대로 깨어나고싶지 않았다.

"형아는요?!!!"
"쉬잇, 슌. 조용히 하기로 했잖니."
"우웅...쉬잇..."

저를 깨우는 소란이 아니였다면 말이다. 눈을 뜬 메구로는 몇번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여긴...나는 어떻게...

"깨어나셨습니까."

메구로는 별안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간 살아온 세월을 보여주듯 하얗게 샌 머리칼의 노인이 메구로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태자전하를 뵙습니다."

제 정체를 알고있는듯 익숙하게 황족에 대한 예를 갖추는 노인에 메구로는 대번에 경계의 눈빛을 갖추었다. 혹시 저 사람도 귀비와 대군쪽의 사람인가? 저를 다시 납치범들에게 넘길 생각인가?! 메구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인을 노려보았으나 그런 메구로를 향해 노인은 온화하게 웃어보였다.

"황제폐하께서 왕세제전하이시고 태자전하께서 대군마마이셨을 적에 저를 보셨을테니,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는것도 당연합니다. 미치에다 코타로라고 합니다. 황실 주치의를 담당했습니다."

아...조부님의 벗이셨다던....갑자기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이런곳에 계실줄이야. 메구로는 뒤늦게 제대로 예를 갖추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했으나 코타로가 그를 말렸다.

"아직 휴식이 더 필요하신 옥체입니다."

그때였다.

"하라부지이이...형아!!!"

메구로는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전에 제품에 와락 달려들어 안기는 작은 몸을 얼떨결에 받아 안았다.

"슌!"

코타로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으로 어린 손자를 메구로에게서 떼어내려고했으나 메구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송구합니다. 느즈막이 얻은 하나뿐인 손주라 어리광을 다 받아주며 오냐오냐 키웠더니..."

제가 쓰러기 직전까지 반짝거린다고 생각했던 두 눈동자가 메구로를 가득 담아냈다.

"형아 괜차나????"
"응, 괜찮아."

다행이다! 저를 꼭 껴안으며 베시시 웃는 얼굴을 보니, 살아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하신 분이 오셨는데, 마땅히 대접할만한 것이 없어 송구합니다."

식사를 차리는 코타로의 말에 메구로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충분히...과분합니다. 코타로는 연신 송구스러워했지만 메구로는 진심이였다.
메구로의 몫의 그릇에 카레를 덜어내던 코타로는 아까부터저를 빤히 쳐다보는 메구로와 눈을 마주쳤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신기해서요. 황궁에서는 한번도 같은 식기에서 음식을 나눠먹은적이 없었으니까요."
"아...혹시 불편하셨다면..."
"...아니요, 좋습니다 저는."

진짜...가족같아서요. 메구로의 말에 코타로는 씩 웃었다.

"선황폐하의 손자면 제 손자나 마찬가지죠."

형아...우러???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슌스케에게 메구로는 차마 아니라는 대답을 할수가 없었고, 코타로는 조용히 웃으며 메구로의 앞으로 물컵을 내려놓았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제 앞에서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젓가락질을 하는 이 작은 아이는, 국본, 미래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아직은 어리고 또 여린 소년이였으니까.

"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 황실엔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제 무릎 위에서 잠든 어린 손자의 등을 토닥이며 코타로는 그렇게 말했다.

"원하시는만큼 이 곳에서 쉬어가세요."
"...아무것도 안물어보시나요?"
"물어보길 원하십니까?"

메구로는 대답할수 없었다. 코타로는 싱긋 웃었다.

"세상엔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것도 있으니까요. 저에게도, 태자전하에게도."

그럴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않는게 오히려 답이 될수도 있는 법이지요. 메구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 드시겠습니까?"

하라부지 나도...!나도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소리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슌스케에 코타로는 제법 엄한 표정을 지으며 씁!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하나씩이라고 했지, 슌. 넌 아까 먹었잖아."
"히잉...."

눈썹을 축 늘어뜨리는 슌스케의 모습을 보며 웃던 메구로가 슌스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럼 내 아이스크림 같이 먹어줄래, 슌? 난 단거 많이 못먹으니까 슌이 도와주면 좋겠는데."
"진짜?!!!"

제 말에 한순간에 환해지는 슌스케의 얼굴에 메구로는 코타로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요."

전하께서 슌한테 한없이 약해지시는게 오늘 하루로 끝날게 아닐것같아 그렇지요...작게 한숨을 쉬던 코타로는 해사하게 웃는 손자의 얼굴과 덩달아 환하게 피어난 메구로의 미소에 결국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저도 마찬가지이니 어쩔수없지만 말입니다.

콰르릉

쾅-

번쩍- 섬광이 번쩍일때마다 저를 납치한 이들이 깔깔 소리내어 웃는 끔찍한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눈을 감고있는 메구로의 미간이 찡그려지며 눈꼬리에는 눈물이 고였다.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흐윽...'

살려주세요, 내보내주세요, 어머니, 아버지.... 구해주세요. 어두워, 추워, 무서워....

"흐윽....흑...."

흐느끼던 메구로는 눈을 스르륵 떴다. 식은땀이 흘렀다. 허억....또...또 그 꿈....나...괜찮은줄 알았는데...아니였구나.

"우응..."

그때였다. 메구로는 제게 안겨드는 온기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제 몸을 꼭 안고있는 슌스케의 작은 몸에 메구로는 너무 놀라 악몽도 잊었다. 왜...이 애가 여기....있지? 할아버님이랑 같이 자는거 아니였나.

"추어...."

잠꼬대를 웅얼거리며 제 품에 파고드는 아이의 춥다는 작은 투정에 화들짝 놀라 그 몸을 끌어안아당긴 메구로는 다시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악몽은 꾸지않았다.

"이건....뭔가요? 황실의 문양이 찍혀있는데요."

메구로의 손에서 작은 상자를 발견한 코타로는 웃었다. 아 그거 말이죠.

"선황폐하의 주치의를 담당했을 때, 선황폐하께 받은 것입니다. 각자 자식이 태어나고, 형질 상으로도 상응하면, 서로 정혼을 시키자고 했었거든요. ...저도,선황폐하 부부도 아들을 낳고, 서로 형질 상으로도 맞지않은 탓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요."

그러고보니 선황폐하께 돌려드린다고 생각해놓고는 그대로 잊고 있었네요. 추억에 젖어있는 코타로의 등에 업혀 잠들어있는 슌스케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은 메구로는 섬세하게 공예된 나무상자를 손안에서 굴리다가 서랍 속으로 집어넣었다.

"형아 근데 이름이 모야??"
"말할수없어, 아직은."
"왜애????"
"말하면, 내가 위험해지거든."

그리고 너도, 네 할아버지도.

"....내일이군요. 떠나시는 날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때였다. 도도도 소리를 내며 달려온 슌스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구로를 올려다보았다. 어디가아?!

"형아, 여기서 계속 같이 살면 안돼???"
"응, 안돼. 형은 가야해."
"히잉....형아랑 계속계속 같이 놀고싶은데..."

입을 삐죽이는 슌스케에 메구로가 싱긋 웃으며 그 앞에 눈높이를 맞춰 쪼그려앉고는 입을 열었다.

"아주 나중에 슌이 어른이 돼서 나한테 시집 오면 평생 같이 살수 있는데."
"진짜?!! 그럼 형아가 나랑 맨날 같이 있어줄수있어??그럼 나 시집갈래!!!!"
"약속한거다, 슌?"

으아아앙- 슌스케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메구로는 심장이 욱씬거렸다.

"가지마아아아-"

솔직히 말하자면, 가고싶지않았다.

"슌, 태ㅈ...아니 형은 이제 가야해. 할아버지한테 오련."

저도 마음같아선, 슌스케와, 코타로와 계속 함께 있고싶었으나, 그럴수없었다.

그들의 손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했다. 힘을 기르고, 언젠가는 제 자리를 되찾으러 와야했다. 그래야 저도, 황실도, ...슌스케와 코타로도, 온전히 제 힘으로 지킬수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슌스케의 손을 붙잡은 메구로가 입을 열었다. ...슌.

"꼭 다시 올게, 약속해."
"흐으...흑..."

메구로는 슌스케의 몸을 품에 안았다.

"반드시 다시 만나러 올게. 널 데리러 올게. 널 절대 잊지않을게. 그러니까 너도 날 잊지말아줘, 슌. 내 이름은...."

...연꽃이야.

"꼭 다시 올게. 그때, 내 이름을 불러줘."
"나중에 꼭 다시 만나러 와야해, 알았지?"

그렇게 메구로는 미치에다 가를 떠나갔다.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