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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9 00:25

가만히 있으면 꽤 멀끔한 얼굴을 와하학, 구겨가며 웃는 정대만을 보며 최가 말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뭐... 
예전이요? 
거의 최고참이잖냐. 
아... 

정대만은 자기 얘기하는 걸 귀신같이 알았는지 힐끗 쳐다보고 무어라 말을 했지만, 아쉽게도 잘 들리지는 않았다. 최는 담배를 비벼 끄면서 이어 말했다.

예전에 진짜 잘 나갔어. 현장에서도 에이스였고.  
저 사람이요? 
안 믿기냐? 

호열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되물었다. 저 사람이요? 최는 정대만이 한때 순수 완력으로도 센티넬들과 맞먹었다고 말했다. 팔씨름 내기하면 보는 사람이 아주 손에 땀을 쥐었다고. 점심시간에 공놀이라도 하면 늘 이기는 쪽은 정대만이 있는 쪽이었다고. 현장에서 기관총 들고 다녔다고. 딱 그렇게 생기지 않았냐? 호열은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는 정대만을 봤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 호열은 고개를 돌렸다. 한때 잘나갔으면 뭐 해. 지금은 완전... 


야! 양호열 이리 와 봐! 


한량인데. 요즘 핫한 센티넬 양호열은 80% 매칭가이드 정대만을 그렇게 정의했다. 

사실 양호열도 처음 봤을 때는 센티넬인줄 알았다. 큰 키에 그에 알맞게 붙어있는 잔근육, 그리고 존나 불같은 성격같은 것들이. 이상하게도 센티넬들은 95퍼센트가 성격이 급했고, 성격 급해서 컵라면 물 붓고 2분만에 열어보는 정대만이 그 편견에 딱 들어맞았다. 아침마다 체력단련실 출석하는 것도 센티넬, 최소 현장 백업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손 올리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나시티 한 장 걸치고 하체 근육을 키우는 모습은 영락없는 센티넬이었다. 양호열은 가끔 눈인사나 하던 정대만이 가이드라는 것을 알고서는 기함했다. 


-

 

80퍼센트는 참 애매한 수치.

 

보통 89퍼센트가 넘어가야 매칭 가이드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런데 애초에 안 맞는 센티넬과 가이드끼리 50퍼센트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정대만과 양호열은 아주 잘 맞지도, 그렇다고 아예 안 맞는다고 할 수도 없는 수치인 것이다. 애매한 상황에 간부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양호열은 센터 온 지 1년 내내 짝이 없었고, 입소 시기 비슷한 가이드를 물색했지만 30퍼센트를 넘는 가이드가 없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지나가다가 검사에 붙들려간. 정대만을 찾게 되었다. 사실 양호열 입장에서는 무조건 땡큐였다. 문제는 정대만이었지만. 정대만은 현장에 안 나간지 오래였고, 가이딩의 효율 문제도 있었다. 80퍼센트는 여러모로 참 애매했다. 9퍼센트만 높았어도. 

들어온 지 1년 간당한 신참 센티넬과 이제 현장에 나가지 않는 10년 차 가이드. 

힘 두 배로 들여서 완충해줄 바엔 그냥 다른 센티넬을 찾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은퇴가 이른 직군 특성상 정대만은 고참 중에서도 거의 최고참이었기 때문에. 굳이 힘 뺄 이유가 없었다. 양호열도 처음엔 반쯤 포기했었다. 애초에 저 사람 은퇴 생각까지 했었다며. 지금 한창 때인 양호열 가이딩 해주려면 현장 따라다녀야 하는데 해 주겠어? 호열의 주치의는 그렇게 말했다. 


아 진짜요? 해야죠. 


그리고 정대만은 쿨하게 해 줬다. 검사 결과를 받아든 다음날 서명에 인감까지 찍었다. 잘 부탁한다며 내미는 손이 생각보다 매끈했다. 그럼 나중에 봐. 주위에 대충 고개를 까닥이며 가는 정대만의 뒷모습을 조금 오래 쳐다봤던 것 같다. 

양호열은 센터에 늦게 들어온 축에 속했다. 대부분의 센티넬과 가이드들은 열대여섯에 발현해서 중등교육을 센터에서 받는다. 양호열은 평범하게 재수. 알바하면서 대학 다니다가 교양관에서 학생회관으로 이동하던 중에 발현했다. 그나마 양호열이 중앙광장 한 가운데에 서 있어서 다행이었다. 자이로키네시스 능력자 양호열은 순식간에 온 바닥을 다 깨부수고 아연실색했다. 좆됐다. 이건 분명 휴학하고 공사판 나가야 한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센터에 전화했다. 요원들은 양호열을 끌어냈다. 아 제발요. 저 쪽지시험만 보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양호열은 싹싹 빌었다. 그리고 정말 요원들의 감시 아래 쪽지시험 보고 얌전히 수송차에 탔다. 


몰랐는데 처음 발현하고 바로 능력을 감추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했다. 당연히 감춰야지. 양호열은 재수해서 겨우 대학 들어가서 졸업장 하나 따려고 아등바등 사는 삶이 뭔지 아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어쨌든, 체육대회 시즌이면 쟤는 운동선수 안 한게 아깝다는 소리를 100번쯤 들었던 양호열은 센터에 꽤 잘 적응했다. 자이로는 드물어서 위에서 아꼈다. 양호열은 그 기대와 아낌에 부응하듯 착실히 훈련했고, 1년만에 S급 달았다. 심지어 양호열은 얼굴도 꽤 오밀조밀 잘 생긴편이어서 소장은 마스코트 삼고 싶어 안달이었다. 신체 능력 우수에 나름 머리 잘 굴러가고, 능력 좋고 성실한 센티넬은 정말 드물었다. 문제는 가이드였다. 센티넬보다 가이드 숫자가 배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양호열하고 맞는 가이들을 찾을 수 없었다. 센터의 가이드하고 한 번씩 기계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수십 번 반복하고 나서, 정대만을 만났다. 


80퍼센트는 참 애매한 수치. 


사실 양호열은 어딜 잘 다치지도 않았고, 힘을 그렇게 많이 쓰지도 않았다. 늘 적당히. 하루 이틀 누워있으면 다시 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대만도 좋아했다. 


야 너 진짜 좋은 애구나.
왜요?
일할게 없잖아.

그래도 정대만은 늘 손을 잡아줬다. 괜찮은데. 나도 괜찮아. 양호열은 회복실에서 한 손을 정대만에게 맡겼다. 사실 30퍼, 40퍼 뭐 이런 가이딩만 받아오다가 80퍼센트가 가이딩 해 주니까 신세계였다. 48시간 정도 기절하고 싶었는데 그냥 밥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은 그런...


무슨 생각해.
그냥요.
나 나갈까?
잠깐만요.


무심코 꽉 붙잡은 손에 양호열이 지레 더 놀랐다. 정대만은 그냥 웃으면서 한 손으로는 만화책을 넘겼다. 무슨 내용이에요? 여기 너 같은애 나온다. 동문서답. 양호열은 대충 고개를 돌려 봤지만 웬 눈 땡그란 캐릭터가 있었다. 할 말이 없어서 다시 천장이나 봤다. 


-


맨날 실없는 소리나 하면서 가끔은 커피 내기를 했다. 구기종목은 거의 정대만이 이겼고, 힘 쓰는 종목은 양호열이 많이 이겼다. 

아니, 그거 반칙 아니에요?
진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치사해.
커피나 사.

말은 그렇게 해도 양호열이 커피 사면 밥은 정대만이 샀다. 돈 많냐고 물어보면 10년 차 연봉 무시하지 말랬다. 2년 차 양호열은 얌전히 입 다물었다. 밥 열심히 먹는 정대만을 보면 기분이 참 묘했다. 나이 차는 얼마 나지 않는데 살아온 날들은 달랐다.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전쟁터로 차출이 되었다고 한다. 4년 전에 종전이 되었다고. 호열은 티비에서 그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양호열에게 전쟁은 아주 먼 나라 얘기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고. 

그럼 정대만은? 정대만이 더이상 현장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호열의 숟가락질이 느려졌다. 정대만이 고개를 들었다. 

왜? 별로야? 
아 아뇨. 그냥 티비 보느라.

정대만이 흘긋 화면을 돌아봤다. 재미없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정대만은 자기도 교양있는 사람이라서 저기 비행기 타고 14시간 걸리는 나라의 수도 이름도 안다고 말했다. 거기는 바다가 참 예쁘고 밥이 맛있었다고. 바다가 예쁘고 밥이 맛있다. 참 정대만같은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양호열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마저 먹었다. 너 지금 대충 듣고 있지. 정대만이 궁시렁거려서 양호열은 대충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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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였다.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경찰하고 합동 작전을 했는데, 잘 안 됐다. 몇몇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후퇴 명령이 없어 일단 깡패 새끼들 소굴로 들어간 양호열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영화 같다. 양호열은 다리를 억지로 옮겼다. 쓰러진 동료들을 버려두고 후퇴할 성격은 못 되었다. 양호열은 자신이 자이로라는 것에 하늘에 감사 인사를 했다. 눈 앞에 나타나는 잔챙이들을 퍽퍽 벽에 처박았다. 파편처럼 튀는 피가 비현실적이었다. 

유치한 이름을 가진 조직의 우두머리를 기어이 마주하고야 말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양호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센티넬이라도 결국 한낱 인간이었다. 심지어 양호열은 무슨 땅에 묻힌 폭탄이니 약이니 찾는다고 쉴 새 없이 능력을 쓴 뒤였다. 힘이 죽죽 빠졌다. 상대편은 이미 쓰러진 동료들을 짓밟으며 인질극까지 벌였다. 양호열은 머리를 굴렸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 16층에서 건물을 무너뜨리면 나만 사는 걸까? 일단 살아서 나가는 게 정답일까? 그렇지만 1층에도 몇 명 쓰러져 있는데. 우리 편인데. 상대는 양호열의 힘이 죄다 빠진 것을 알았는지 비열하게 웃으면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양호열은 다급해져서 능력을 썼는데, 탕! 눈을 깜빡였다. 머리가 터진 건? 피가 튀었다. 탕. 탕. 총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괜찮아? 야 너 배에 피가. 


정대만이었다. 


양호열은 정말 몸에 힘이 다 빠졌다. 울고 싶기도 했고, 웃고 싶기도 했다. 

현장 안 나온다면서요.
보통은.
그런데 왜 왔어요...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꽤나 로맨틱했다. 양호열은 이 상황이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정대만이 급한 대로 손을 잡아 가이딩을 했다. 기분 좋은 기운이 감돌았다. 가자. 정대만이 능숙하게 깡패들 총까지 수거하며 말했다. 쓰러진 요원들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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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과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2주 간 안정을 취하세요. 온 몸이 흐물흐물했다. 양호열은 회복실에서 눈을 감았다. 자꾸 피 터지던 광경이 재생됐다.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대량으로 본 건 또 처음이라. 2년 차 양호열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정대만이 문 열고 들어왔다. 걸터앉아 손을 잡았다. 양호열은 돌아누워 두 손으로 정대만의 손을 잡았다. 정대만은 그런 양호열을 잠시 보다가 손을 뺐다. 양호열을 똑바로 눕혔다. 하나도 안 추은데 이불까지 꼭꼭 덮어줬다. 그리고 다시 양호열의 손을 잡았다. 좀 자. 양호열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지나 일어나서 옆을 보니, 정대만이 불편한 자세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손은 놓지 않은 채로. 


-


정대만은 스케일이 큰 일에만 양호열을 따라 현장에 나섰다. 시간이 지날 수록 스케일은 점점 커져서, 거의 모든 현장에 정대만이 가야만 했다. 양호열은 가끔 폭주 직전까지 갔고, 타인의 피에 뒤덮여 거친 숨을 내뱉는 양호열을 붙잡아 앉히는 것은 정대만의 몫이었다. 그제야 양호열은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대만은 얕게 경련하는 양호열의 어깨를 붙잡았다. 양호열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정대만은 그 손을 잡지 않았고, 대신 깊게 끌어안았다. 고른 숨소리. 양호열은 정대만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피부 너머로 심장 소리가 함께 넘어왔다. 


너 또 차출되면 소장실 엎을거야.
하극상이네요.
그래도 안 잘리더라. 


그렇게 말하는 정대만의 몸도 떨려왔다. 호열은 정대만을 좀 더 가까이 안았다. 현장 나가려고 방탄복을 입고 있으면 항상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 정대만이 잃었던 것은 무엇일까. 호열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늘 운동을 하는 정대만. 그러면서도 한참이나 현장에 나가지 않았던 정대만. 몇 년 동안 매칭 센티넬이 없었던 정대만. 그의 과거. 양호열 이전의 역사. 공백처럼 느껴지는 시간들. 양호열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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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 빠르고, 양호열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정대만은 체력단련실 사물함에 출입증을 놓고 왔다며 호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피? 콜. 코칭을 받던 양호열은 커피 하나에 넘어가 14번 사물함 문을 열었다. 목걸이에 걸려 있는 앳된 모습의 정대만. 선배, 양심이 없는 편이구나. 이제 사진 새로 찍을 때 된 것 같은데. 호열은 정신없이 찍느라 눈이 반쯤 감긴 자신의 출입증 사진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음 오프때 같이 찍으러 가자고 말할까. 호열은 무심코 출입증의 뒷면을 보았다. 투명한 케이스는 뒷면의 사진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센터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 이래서 알고 싶지 않았는데. 호열은 어떻게 하면 평소와 다름없어 보일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출입증을 만들어 오냐는 정대만의 전화를 받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정대만은 끊임없이 호열의 손을 잡았다. 호열은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썼고, 살짝 슬펐다. 손만 잡고 싶지 않은 관계. 호열은 그랬고 정대만의 속마음은 몰랐다. 정대만은 아주 투명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더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마음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고. 호열은 생각했다. 어쩌면 처음으로 손을 잡았을때부터?

정대만은 항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호열의 손을 잡았다. 생각보다 거칠고, 생각보다 굳은살이 많이 배긴 양호열의 손과 생각보다 길고 매끈한 정대만의 손.

이제 호열은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정대만에게 한쪽 손을 내미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손을 잡고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은 꽤 즐거웠다. 때로는 상사 욕을, 때로는 그날의 날씨를. 가끔은 호열과 정대만이 함께 겪었던 일들을. 아주 가끔은 정대만이 먼 옛날 가봤던 타국의 바다 이야기를. 호열은 이런 관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이. 어쩌면 평생. 어쩌면, 어쩌면...


-


어, 뒤에도.


눈도 감지 못한 사람의 머리가 날아갔다. 폭음이 들렸다. 호열은 능력을 한계치까지 사용했지만 모두를 지킬 수는 없었다. 폭발의 반동으로 몸이 튕겼다. 흙바닥을 굴렀다.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최소 4주. 갈비뼈도 나간것이 분명했다. 한 쪽 눈으로 피가 흘러 시야가 흐려졌다. 머리가 아파왔다. 죽겠다. 은퇴하고 싶다. 정대만이랑. 양호열은 다시 한 번 능력을 끌어올렸다. 이러니까 평균 재직 기간이 10년도 안 되지. 호열은 은퇴하면 카페를 차리겠다고 말했었다. 정대만은 바리스타를 시켜달랬다. 선배 커피 탈 줄 알아요? 아니. 뭐야... 양호열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

이게 주마등인가? 양호열은 은퇴를 하고 싶었지 죽고 싶지는 않았다. 폭음이 가까이에서 들렸다. 총탄이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다. 호열은 정대만을 생각했다. 헬기 소리가 들렸다. 



-



정대만은 양호열이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내내 가이딩을 했다고. 정대만이 지쳐서 잠에 든 사이 주치의가 말해주었다. 다행히도 센티넬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내구성이 좋았고, 가이딩으로 빠르게 회복이 가능했다. 정대만은 양호열의 손을 놓지 않았다. 호열은 정대만이 깰까봐 굳이 손을 빼지는 않았다. 늘 미간에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인데. 눈을 감은 모습은 부드러운 인상으로 보였다. 양호열이 움직이자 정대만이 손을 꽉 붙잡아 왔다. 반쯤 감긴 눈에서 피곤이 흘러넘쳤다. 한숨을 내쉬듯 살짝 웃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 이어진 침묵. 정대만은 양호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선배.
응.
진짜 아팠는데.
알아.
선배 울었죠.
아니.


목이 잠겨 짧게 내뱉는 단어가 흐렸다. 정대만은 머쓱하게 웃었다. 


거짓말.
더 자. 

호열은 손을 놓고 일어서려는 정대만을 보았다.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선배.
응.
이제 손 말고... 다른 방법으로 가이딩 해 주면 안 돼요?
양호열.
나는 항상 그렇게 하고 싶었어, 선배.


입을 맞추면 감각이 이어지지. 80퍼센트라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80퍼센트는 참, 애매하니까.


호열아, 나는...
싫구나.
...
알겠어요. 어쩔 수 없지.
그게 아니고. 
그럼요?
호열아 나는, 너까지 잃으면 정말 안 될 것 같아.


정대만은 맞잡은 손에 얼굴을 묻은 채 내내 울었다. 호열은 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모른채, 정대만이 이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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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열대만

타싸에 타컾으로 비슷한 내용 쓴 적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