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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7 00:48
* 이것저것 날조주의 약빻음주의?


송태섭은 남쪽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의 왕자임. 원래는 왕위계승과 전혀 상관 없는 둘째로 태어나서 형을 보필하면서 평안하게 살 운명이었음.
그런데 어느 날 우성알파로 태어난 형 송준섭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함. 후계자를 잃은 왕국은 송태섭을 왕위계승자로 앉힘. 송태섭은 비록 오메가로 태어났지만 능력이 매우 좋았고 여동생인 송아라는 많이 어렸기 때문임.
그래서 송태섭은 형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하루 아침에 달라진 상황에 흔들리기 바빴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송태섭은 끊임 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음. 헛구역질이 일며 토가 치밀면 눌러삼키는 나날이 반복됨.
그러던 어느 날 제국에서 사자가 옴.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넓음. 어느 정도냐면 송태섭의 나라 정도는 힘 들이지 않고 지도에서 지울 수 있음. 그래서 처음에 제국에서 사람이 왔을 때 송태섭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음. 혹시나 제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힘없는 남쪽 왕국은 순응해야 했기 때문임.
송태섭은 그리 크지 않은 왕궁의 홀에서 제국의 사자를 만남. 그는 왕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묘하게 송태섭을 내려보는 듯한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송태섭은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음.
제국의 사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요지는 그것이었음. 왕족 중에서 제국의 북부인 산왕의 대공비가 될 오메가를 바치라는 것.
송태섭은 속이 끓는 듯 했음. 아무리 힘이 없고 작은 왕국이라지만 제국의 요구는 남쪽 왕국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이었음. 심지어 왕족 중 오메가는 송태섭과 송아라 단 둘 뿐이었음. 송태섭은 죽으면 죽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여동생을 비참한 운명에 밀어넣고 싶진 않았음.
하지만 이 상황에서 오메가를 바치지 않으면 이 작은 왕국이 제국의 아래에서 짓이겨질 것은 불 보듯 뻔했음.
그래서 송태섭은 자신이 산왕으로 가기로 함.



말을 타고 끊임없이 달리다 보면 파랗던 하늘이 회색빛으로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산왕이라고 불렀음.
산왕은 북부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었는데, 산왕의 대공 정우성은 황제의 배 다른 동생이자 뛰어난 검사였음. 그는 어렸을 때 부터 비상한 머리와 검술에 있어서 특출난 재능을 보였음.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사고로 사망한 뒤, 본인도 낙마하는 사고를 겪었는데, 심신의 충격이 컸는지 그 뒤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림. 주색을 가까이 하고 이지가 흐려졌다는 소문이 나돌게 됨.

-멀쩡한 결혼일 거라곤 생각 안했어도 말이야...

정우성에 대해 들리는 소문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옴
송태섭이 산왕으로 가는 마차에 실린 지도 벌써 엿새가 지남. 송태섭이 남쪽 왕국을 떠나올 때 그의 여동생 송아라는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음.

-왜 오빠가 산왕으로 가? 싫어!

그 모습만 생각하면 가슴에 묵직한 돌이 얹힌듯 답답했음. 그래도 어쩌겠음... 송태섭은 고개를 한 번 저어 감정을 털어냄.
그 순간, 마차가 덜컹하는 소리를 내더니 멈춰섬. 송태섭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차 문을 쏘아봄.
마차 문이 열리더니, 찬 바람이 쏟아져 들어옴.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송태섭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림.
문 앞에 서 있는 건 키가 크고 매우 훤칠한 남성이었음.

-저는 대공의 집사인 최동오라고 합니다. 대공비의 안내를 맡게 되었습니다.

최동오가 군더더기 없는 걸음걸이로 좁은 마차 안에 들어옴. 그가 손을 뻗자 순간 찬 기운이 확 끼쳐서 송태섭은 자기도 모르게 물러남.

-북부에서는 결혼 전까지 오메가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이 관습입니다.

송태섭의 머리 위로 북부의 전통 문양을 수놓은 베일이 씌워짐. 베일의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자신의 두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웠음.

-이게 무슨...!
-또한, 혼례 전까지 말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송태섭이 황당해하며 반박하려고 하자, 최동오가 말꼬리를 잘랐음. 그리고는 송태섭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마차에서 나가버림. 마차 안은 다시 고요하게 훈훈한 기운만 감돌았음.



마차는 이틀 정도 더 달렸음. 송태섭이 베일을 찢어던지거나 엉덩이에 욕창이 생기기 직전, 마차는 드디어 산왕에 도착함.
송태섭은 마차에 난 작은 창을 열어 바깥을 내다봄.
산왕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혀 있었는데, 칼바람이 부는 소리가 마차 안까지 들려올 지경이었음. 그러나 거리는 활발했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음.
하지만 송태섭이 탄 마차를 보는 그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음.

-뭣 같아도 주인이라 이건가?

사실 송태섭이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음. 자신들의 주인이 어디 출신인지도 모를 작은 왕국의 오메가와 결혼한다니, 충분히 탐탁치않아 할 법 했음. 하지만 한 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음...

-누군 좋아서 결혼하나...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 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느껴질 때 쯤, 송태섭은 대공저에 도착함.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송태섭은 추위와 익숙하지 않았음. 그가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주섬주섬 털 옷을 챙기고 있는데, 덜컥! 하고 마차 문이 열림
송태섭은 당황해서 자신도 모르게 베일을 뒤집어 쓰고(오는 길 내내 이어진 최동오의 잔소리 때문에 버릇이 되어버림) 뒤를 돌아봄.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 그 순간, 송태섭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무언가 차갑고 단단한 것이 송태섭을 안아 들었음.


-남쪽에서는 오메가를 잘 안 먹이나?


해맑은 목소리가 송태섭의 위에서 들려왔음.


-아 맞다, 말 시키지 말라고 했지. 명헌이 형! 남쪽에서는 원래 밥을 잘 안 먹여요?


밝은 목소리가 송태섭의 속을 긁었음. 송태섭은 얼굴을 본 적없는 이 녀석을 싫어하게 될 거란 확신이 들었음.



우성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