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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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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별이 번쩍 튀었다. 밀린 힘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나오토는 벽에 부딪힌 뒤통수의 얼얼함보다 틀어 잡힌 멱살부터 해결해보기로 한다. 과연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캑캑-기관지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이것 좀. 나오토는 멱살을 틀어쥔 커다란 손을 떼어내다가 방법을 바꿔 찰싹찰싹 내려쳤다. 숨 막혀! 놓고 말하래도. 목소리를 쥐어짜고 싶었지만, 꽉 눌린 울대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미쳤어?”

다짜고짜 멱살부터 쥐더니 미쳤냐고?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게다가 난 너보다 한 학년 위라고! 나오토는 생리적인 눈물이 찔끔 맺힌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자기의 짝사랑 상대 코바야시 나오키를. 

“..놔아.”

간신히 쥐어짠 목소리는 눌려버린 울대 탓에 우습게 들렸다. 나오토는 벽에 눌린 몸, 쥐어 잡힌 멱살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데!

“적당한 말로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알아..알아듣게 얘기해.”

두 손으로 멱살을 쥔 손목을 움켜쥐고서야 가까스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오토보다 머리 하나는 커다란 나오키가 미간을 좁혔다. 한 뼘도 안 될 만큼 가까운 거리. 내려다보는 얼굴의 음영이 진하고 또렷해 나오토는 잠시 잠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무서워.

“내 동생한테 고백받았잖아.”
“..뭐?”

말할 수 있을 만큼 숨통 정도는 틔워줄 작정인지 멱살을 쥔 나오키의 손에 힘이 약해졌다. 나오토는 연신 눈을 끔벅거렸다. 네 동생은 누구고, 고백? 멍청한 얼굴로 기억을 더듬는 나오토를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나오키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억 못 한다고?”

아니, 너 동생 있었어? 그리고, 그 애 분명 1학년이었는데? 나오토는 불과 며칠 전 자기에게 고백했던 여학생을 떠올렸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고, 도망치듯 달아난 탓에 기억에도 희미했던 그녀가 코바야시 나오키의 동생이라고? 아니, 분명 성도 달랐어!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나오토는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잔뜩 화가 난 얼굴. 미쳤구나, 카타오카. 그러니까 지금. 코바야시가 자기 동생이라 주장하는 애에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난감해 죽을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데 멱살을 쥔 나오키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꼴깍. 긴장한 탓에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그러니까, 나 그 애한테. ‘미안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정중하게 거절했었는데. 그랬더니 그 애가 뭐라고 했더라. 그게 누군데요! 맞아. 그랬던 것 같아. 그 기백이 너무 대단해서 멍청하게 이야기하고 말았지. 내 오랜 짝사랑 상대. 코바야시 나오키라고. 망했다. 자기에게 고백한 나오키의 동생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난 네 오빠를 좋아해-하고 털어놓고 말았으니. 나오토는 제 이마를 한 대 치고 싶어졌다. 아니, 적당히 거절만 하지 그랬어. 이 멍청아. 왜 거기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냐고. 하지만 그 애 너무 저돌적이라 덜컥 튀어나오고 말았어. 아아아-어떡하면 좋아. 근데 얘는 어떤 거에 화가 난 거야? 내가 동생을 거절한 것? 아니면 내가 널 좋아하는 것? 

“네 동생인 줄은 몰랐어. 그치만 일학년에 성도 달랐는걸.”

모를 만도 했다. 이종사촌이고, 며칠 차이가 나지 않는 동갑내기임에도 어른들은 꼭 먼저 난 나오키 쪽을 오빠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으니. 나오키는 눈썹을 잠시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고는 풀었던 손에 도로 힘을 주어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아파! 작게 신음하는 소리를 낸 나오토가 다시 나오키의 손을 찰싹찰싹 내려쳤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캑...이것 좀, 놓..놓고 말해.”
“입 조심해. 네가 누굴 좋아하는지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고. 그게 더더군다나 나라는 거.”

아, 후자구나. 내가 자길 좋아하는 거에 화가 난 거였어. 하긴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으니까. 남학생. 그것도 한 학년 위의 선배가 좋아한다는 거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해지겠지. 입조심 못한 건 맞아. 맞는데 이 거절 굉장히 아프네. 따끔따끔.

“입 잘못 놀린 건 미안하게 됐어. 근데..”
“좋아하지도 말고 표시 내지도 마. 다신 보지 맙시다, 네?”

잡고 있던 멱살을 와락 놓은 바람에 다시 한번 뒤통수가 벽에 부딪혔다. 아야. 나오토는 줄줄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을 붙들고 엎드렸다. 웩-구역질이 올라왔다. 나, 급식 많이 먹어서. 그래서 그래.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며 나오토가 애써 핑계를 댔다. 손으로 꼭 쥔 흙바닥이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다. 

*

어스름 속에서도 확신했다.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했고. 나오키는 여럿과 함께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하는, 아니 붙들려가는 나오토의 겁먹은 눈을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게다가 이번 한 번만 더 싸우는 일로 집에 전화가 가면 용돈이 끊길 테다. 엄마가 단단히 일렀던 생각이 났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스포츠 백을 옆으로 맨 나오키가 등을 돌렸다. 학생회라고는 하지만 질 나쁜 녀석이 몇 섞여 있는 게 영 께름했다. 

어? 눈이 분명 마주쳤는데. 나쁘지 않은 시력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뒤돌아서는 나오키의 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서운함도 밀려들었다. 하지만 잠시였다. 저를 소몰 듯 모는 무리가 심문하듯 묻는 말에 머리가 팽팽 돌 것 같았다. 좋아하지도, 표시도 내지 말라는 나오키의 말이 아프게 찔러왔지만 그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디서 새어 나간 건지-물론 자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오키도 아닐 텐데. 어디서 들었는지, 그 사건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무리를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장난으로 시작된 말을 적당히 걷어내려고 했는데 집요해지는 무리의 말과 행동이 도를 넘었다. 그 커다란 일학년이 싫다고 했다며. 그럼 이 형님은 어떠냐? 목에 두른 팔의 감촉이 징그러워 표시나게 싫은 얼굴로 밀어냈다. 장난이 장난 같아야지. 빈정상할만큼 강하게 떼어낸 손에 녀석의 얼굴에도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적당히 하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멱살을 붙들 모양인지 솥뚜껑만한 손이 가슴께로 다가왔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해? 나오키에게 붙들렸던 걸 떠올리며 빠르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녀석 역시 나오토의 멱살 대신 교복 셔츠를 붙들었다. 당기는 힘과 빼는 힘으로 붙들린 연약한 교복 셔츠가 무사하긴 힘들었다. 단추 몇 개가 뜯어지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가슴팍이 반쯤 보이는 교복을 붙들고 나오토가 씨근거렸다. 이젠 나도 못 참아. 안 참아! 왁-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고, 덩치가 넘어지며 엎치락뒤치락 싸움판이 벌어졌다. 악악 소리를 질렀더니 사람들이 모일까 무서웠던 모양인지 한 녀석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 바람이 왈칵 겁이 났다. 입을 벌려 손가락을 깨물자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세게 잡아당긴 탓에 벌러덩 몸이 뒤로 넘어졌다. 불공평해. 너네는 여럿이잖아! 눈물이 나면 지는 건데. 나오토는 이를 꽉 깨물었다. 

“거, 적당히들 좀 해요. 학교 앞에서 뭐 하나 몰라. 여럿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타인의 개입에 녀석들도 주섬주섬 옷을 털고 일어서며 별일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별거 아니기는! 단추가 몽땅 달아난 교복이며, 산발이 된 머리카락. 여기저기 꼬집히고 부딪친 내 얼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아는 얼굴이 보인다고, 짓궂게 굴던 녀석들이 물러난다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고 해도 싸운 녀석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긴 싫어 뒤로 물러나 고개를 팩 돌렸다. 더러워진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야 감출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훌쩍이는 소리까지는 무리였다. 

“괜찮아?”

비틀어 돌린 얼굴 앞으로 커다란 손을 내민다. 

“괜찮냐고?”

꽥 소리를 지르며 손을 쳐내자 나오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플 테다. 쳐낸 제 손바닥까지 얼얼한 걸 보면.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도와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도와주러 왔다고? 너 분명 아까 전에 골목 어귀에서 눈 마주쳤잖아! 두 번 생각도 않고 뒤돌아갔으면서. 뭐, 도와줘?”
“그건..”
“그냥 양심이 찔려서 온 것뿐이잖아. 날 도우려던 게 아니고.”
“말을 말지. 됐고, 일어서기나..”

다시 한번 내민 손을 있는 힘껏 쳐냈다. 더는 못 참겠던 모양인지 마음대로 해-소리친 나오키를 노려봤다. 어차피 눈물범벅에 우스운 얼굴이겠지만, 나오토 역시 화가 났다. 분명 질 나쁜 녀석들인걸 알면서 뒤돌아간 것도 서운했고. 도와주러왔다고 이야기하는 뻔뻔함도 싫었다. 일학년인 주제에 선배에게 반말하는 꼴도 못됐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바보 같은 건 그런 그가 밉지 않은 저였다. 나오토는 씩씩거리고 일어나 손등으로 눈가를 북북 문질렀다. 앞섶이 휑해진 교복을 꾹 쥐고 나오키를 비켜 골목길을 나섰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건 나오키도 마찬가지였다. 나오토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어서.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쁜건지도 몰랐다. 귀찮았으니까 모르는 척 등을 돌려놓고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화를 낸다고 되레 큰소릴 쳤으니. 나오키는 떨어진 스포츠 백을 도로 메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나오토가 앞선 길을 느릿하게 걸어 나갔다. 하지만 기다란 보폭 탓에 금방 나오토의 조그만, 평소와는 다르게 부스스한 머리통을 발견하고야 만다. 

나오토와 마주 오던 사람들의 눈이 나오토의 몰골을. 앞이 온통 터진 교복을 보고 수군댔다. 아, 저 꼴통. 양심에 찔려 온 게 맞았다. 질 나쁜 녀석들도 있었고 그래도 다치면 안 되니까. 씨근거리고 자기 손을 거절한 나오토를 끝까지 돕는 편이 맞았다. 나오키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안을 뒤적거렸다. 

“뭐...뭐야?”

동물을 포획하듯 체육복을 뒤집어씌우자 놀란 나오토가 커다란 옷 안에서 소리쳤다. 뭐긴 뭐야. 옷이지. 나오키는 나오토가 더 놀라기 전에 머리를 빼내고 척척 팔까지 꿰어 제 체육복을 입혔다. 뭐가 그렇게 속이 상했는지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기에 손을 붙들어 앞장섰다. 그러지 않으면 아까처럼 빽 소리를 지르고 도망칠 것 같아서였다. 맞는 보기였던 모양이다. 강하게 잡아끄는 손을 뿌리치지 않은 나오토가 훌쩍이며 자기 뒤를 따라왔으니까. 

학교에서 벗어나 얼마나 걸었을까. 나오토의 집으로 가야하는데 자기가 앞장서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늦게서야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 때쯤에야 붙든 손이 꽤나 조그맣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오키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박박 긁었다. 집이 어딘지 묻고 나오토를 앞세우자니 뽀르르 도망칠 것 같아서 훌쩍거리는 나오토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소리를 지른다거나 됐다는 이야기 대신 코맹맹이 소리를 해가지곤 집으로 가는 길을 등 뒤에 대고 이야기한다. 

어? 나오토가 이야기한 대로 찾아온 곳은 오피스텔이었다. 주택가로 빠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혼자 산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아지트로 삼으려 종종 노린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저는 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얼핏 드는 것 같기도 했다. 

“혼자 살아?”

이제와 존대를 하는 것도 우스워 뒤를 뭉개며 물었다. 커다란 포댓자루를 뒤집어쓴 것 같은 나오토가 잡혔던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 이미 붉어진 눈가를 북북 문지르더니 응. 부모님은 지방에-하고 말을 줄였다. 

“..고마워.”
“집 앞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괜찮다는 나오토를 오피스텔 입구로 몰았다. 자꾸 뒤를 돌아다보며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나오토의 말이 무슨 열쇠라도 된 것처럼. 꼭 집 앞. 아니 집 안까지 들여놔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오키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제..괜찮으니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굴도 다 깨지고 꼬집히고.”

문고리를 잡고 선 나오토의 등을 툭 떠밀자 주춤 걸음을 멈추더니 이제 됐다고 가보라며 축객령을 내린다. 뭔지 모를 오기가 나서 따라 들어서자 나오토가 울상을 했다. 아, 사춘기 다 지나지 않았어? 이렇게 청개구리처럼 굴건 뭐람.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나오키는 짧게 혀를 차고 입고 있던 옷을 도로 머리 위로 벗겨냈다. 잠깐만-당황하는 목소리는 아까 전처럼 옷 안에서 맴돌았다. 

“안 들어가? 씻고 약이라도..”
“싫다는데 왜 그래. 가라고 했잖아!”

간신히 멈춘 눈물이 다시 뚝뚝 떨어졌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또 울어. 나오키는 멋쩍은 표정을 잠시. 뒤통수를 북북 긁고 나오토의 운동화를 붙들었다. 

“벗고 들어..”
“야! 코바야시!”
“귀 안 먹었어. 소리 안 질러도..”
“진짜 싫어!”

으아아-꼭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을 터트린 나오토가 신발을 걷어차 벗어던지더니 성큼성큼 좁은 거실로 들어갔다. 원룸 형태의 방안. 침대 겸 소파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 털썩 안더니 무릎을 모으고는 엉엉 소릴 키웠다. 난처한 얼굴의 나오키는 무릎을 꽉 끌어안고 우는 나오토의 앞을 서성거렸다. 도대체 왜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달랠 수도 없고. 너무 억지를 부렸나 싶어 도로 뒤돌아 나가야 하나 고민이 섰다. 한참 엉엉 소리 내어 울던 나오토가 훌쩍거리더니 조용했다. 

“선배?”

순식간에 조용해진 나오토가 불안해 조심스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나오토의 어깨를 슬며시 흔들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톡-나오토가 옆으로 쓰러졌다. 

“허, 진짜로?”

조마조마했던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하긴 기절하듯 잠들 만도 했다. 조그마해서 그 덩치들이랑 붙들고 싸우고 엉엉 울기까지 했으니. 좀 씻고 자면 좋을 텐데. 온갖 먼지에 눈물 자국으로 엉망이 된, 작은 점이 찍힌 뺨을 콕 찔렀다. 그리고 나오키는 후다닥 긴 손가락을 접었다. 생각보다 훨씬 보드랍고 말랑한 감촉이 낯설었다. 무슨 고등학교 남자애 얼굴이 이래. 손끝까지 저릿한 것 같아 잼잼 손을 쥐었다가 펴길 여러 번. 촘촘하게 둘러진 기다란 속눈썹 아래로 마르지 않은 눈물이 뚝 떨어짐과 동시에 나오키의 심장 역시 아래로 쿵-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래.”

나오키는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는 순식간. 엄마, 나 친구 집에서 자고 가. 어쩐지 혼자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오키는 긴 한숨을 내쉬며 침대 아래에 몸을 기댔다가 고개를 돌렸다. 크지 않은 눈매가 선명하다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이 길고 진해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한참 눈물이며 흙먼지로 지저분해진 얼굴을 쳐다보던 나오키 역시 졸기 시작했다. 

“엄마..야.”

잠에서 깨나자마자 보인 커다란 등짝에 나오토가 소리를 죽였다. 한참만에야 그 등의 주인공이 나오키인 걸 알았다. 그러니까, 얘가 여기 왜. 웅크려 불편하게 잠이 든 탓에 팔이 저렸다. 끙끙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나오키 역시 침대 아래서 기대어 편치 않은 모양으로 잠이 들어있었다. 나오토는 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잠이 든 나오키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도와주러 온 것도 고마웠고, 데려다준 것도 고마웠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건 싫었다. 울고불고한 것도 창피했고 자존심도 상했다. 

“좋아하지도 말라며. 표시도 내지 말라며 왜 잘해줘, 잘해 주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나오토가 누워있던 자리에 곱게 개어진 이불을 끌어당겼다. 깨지 않게 조심조심 나오키의 몸 위에 둘러준다. 발소리를 죽여 화장실로 들어간 나오토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꾀죄죄한 몰골에 퉁퉁 부은 눈두덩이. 할퀸 상처에 멍까지. 진짜 못생겼다, 카타오카. 울상을 한 나오토가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침대에 기대앉았던 나오키가 부스스 눈을 떴다. 저가 잠이 든 줄 알고 중얼거린 나오토의 속마음을 알고 나니 미안해졌다. 그저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게 싫어서 강하게 굴었던 건데. 누가 저를 좋아한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다만 생일이라고 며칠 차이도 나지 않는 이종사촌이 고백했다가 대차게 차였다며, 너 때문이라고 놀리는 바람에 그만 욱하고 말았다. 유치하긴. 이제 자기도 제법 성인에 가까워진 나이라고 으쓱했던 게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어? 일어났어?”

군데군데 상처가 남았지만 씻고나와 말개진 얼굴로 나오토가 물었다. 나오키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다른 곳에 주다 말고 벌떡 일어섰다. 

“가려고?”

가려던 건 아닌데. 어색한 공기에 짓눌려 일어났다가 쫓겨나게 생겼다. 나오키는 고갤 다시 끄덕이고 가방을 찾았다. 나오토 역시 조금 무안한 모양인지 상처가 난 쪽의 뺨을 문지르며 오늘 고마웠어,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운동화 끈을 고쳐매는데 나오토가 아! 작게 소리치더니 방안으로 부리나케 달려들어 갔다. 그러더니 입혔다가 벗겨놓은 체육복을 들고나왔다. 

“이거...어?”

나오토는 체육복을 주인에게 돌려주려다 말고 머뭇거렸다. 뒤집어 입힐 때 그런건지. 아니면 벗기다 그런 건지. 옷에 묻은 핏자국에 난처한 얼굴을 했다. 

“미안. 피가...세탁해서 돌려줄게.”
“어차피 빨거였는데, 됐어요.”
“아냐. 그래도 내가. 나 때문에 그런거니까 세탁해서 줄게.”
“됐대도.”

체육복을 붙들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힘의 차이는 확연해서 잡아당긴 체육복에 나오토까지 휩쓸렸다. 혹시라도 넘어질까 나오키가 얼른 가슴팍으로 쏟아지는 나오키의 허릴 붙들었다. 

어어, 어어. 나오토야말로 갑자기 몸의 축이 기우는 바람에 놀랄노자였다. 게다가 그 쏟아진 품이 나오키의 가슴팍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체육복을 꼭 붙들 뿐이었다. 일어나야하는데 멍해진 머릿속에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심장 엄청 빨리 뛰네.”
“으악.”

나오키의 말에 불에 댄 것처럼 나오토라 물러섰다. 두발세발 뒤로 물러나며 가슴팍을 밀쳐냈지만, 돌처럼 단단해서 나오키는 흔들림조차 없었다. 나오키의 말대로 쿵쾅쿵쾅거리는 심박이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나 엄청 좋아하나봐요. 선배.”
“아...아니거든!”

나오토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귀여운 얼굴. 나오키가 작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니긴. 지금 얼굴 새빨간데.”

으아아-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나오토가 들고 있던 체육복에 얼굴을 묻었다. 덕분에 수그린 목덜미도 새빨갛게 변한 걸 보고 말았다. 어쩐지 근지러운 기분에 눈썹을 문지른 나오키가 급하게 신발을 고쳐 신었다. 

“갈게요.”

체육복 속에 얼굴을 묻었던 나오토가 빼꼼 눈만 내밀며 응-뭉개지는 소릴 냈다. 나오키가 문밖으로 나섰고 얼른 나오토가 문고릴 붙들었다. 잠가야지, 온통 머릿속엔 그 생각뿐이라. 하지만 거의 닫혔던 문이 도로 힘으로 열렸고, 문고리를 붙들었던 나오토가 쏟아지듯 문밖까지 끌려 나왔다. 

“뭐..뭐야?”
“세탁해서 꼭 돌려줘요. 아, 나 1학년 3반..”
“알아. 알고 있으니까 얼른 가!”

나오키의 등을 떠민 나오토가 얼른 문을 걸어 잠그고는 헉헉거리며 등을 기댔다. 바깥에서 나오키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오토는 빨개진 얼굴을 들고 있던 체육복에 도로 묻었다. 어쩐지 햇빛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오키나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