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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6:53
정우성인거 어떤데
이명헌 프로팀 입단후 십 년쯤 되었을 때 새로 들어온 스무살 에이스 정우성..

이명헌은 입단 뒤 육년차쯤 어깨 부상이 있어서 재활을 했던 참이었음. 서른을 넘어가니 이제 얼마나 더 농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구단 의료진이 아니라 담당 서전이랑 상담하는 일이 늘었지. 은퇴하면 수술할 자리들을 미리 짚어보느라..

그럼에도 농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날이 깊어지기만 해서 괴로우면서도 체념하게 되는데 감사하게도 기량은 유지하고 있는 몸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음. 그렇게 마지막을 불태워보자고 다짐했던 해에 마주친 건 새파랗게 어린 스무 살의 얼굴

말갛고 예쁜 얼굴이지. 포말을 가로지르는 돌고래 같은 몸은 탄력적이고 어딘가 빛나 보이기까지 함. 고2땐 185-6정도였다가 그해 말부터 십 센티가 컸대. 이미터에 육박하는 키에다 서글한 미남인데 훈련-경기-집 루트만 돌고 돌아. 어딘가 순하면서도 강한 눈이 마음에 들어. 매 순간 농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생기 넘치는 어린 에이스. 환영식 술상을 앞에 두고 이명헌은 아무도 모르게 살짝 웃었지. 너도 오랫동안 이 판을 달리겠구나.

첫 경기를 같이 뛰었어. 역전승이었고, 마지막 점수는 그 애의 손끝이 만들었어. 자기가 넘긴 공을 받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질주하다 상대의 림에 가차없이 덩크를 꽂아내. 그러고서 명헌이 형! 하고 달려와선 가슴을 부딪혀. 환한 얼굴이 말해. 형 타이밍 진짜 죽여줬어요. 이명헌은 신에게 선택받은 그 어린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관중석의 환호가 귀를 때리고 심장이 미친듯이 곤두박질쳐 부서지는 것 같아.

미니바스 때부터 뛰었으니 선수생활만 장장 26년째야. 미친듯이 긴 세월 동안 포지션을 바꾼 일은 없어. 포인트가드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포인트가드 하고 있습니다. 중학에선, 고등에선 포인트가드로 뛰었습니다. 팀이 승리하기 위해 뭐든 했고 공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그 순간의 판단만큼은 자신있어.
그런데 한 경기 뛰어 보고 알았어. 그 애는 어떤 상황에서도 득점을 가능케 상황을 뒤집어버리는 괴물이지. 자신의 포인트가드로서의 판단마저 뒤흔들 지 모르는 전무후무한 에이스. 스스로 마지막 해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담그고 있던 물에서 반쯤 발을 빼자마자 덮쳐온 해일. 이명헌은 어깨의 테이핑을 떼어내면서 생각해. 휩쓸릴 수밖에 없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꺼이 휩쓸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하지.

그 애는 붙임성이 좋아서 금방 팀에 녹아들었어. 팀 성적도 거침없이 상승했음. 경기 마치면 대형견마냥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혀엉-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게 귀엽지. 강아지 대하듯 턱을 쓸어주면 큰 몸을 접어가며 씩 웃는데 어떻게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

우성, 키 더 큰 것 같네 뿅.
진짜요??
좀 나눠줘라 뿅
안돼요. 나는 이게 밑천이에요!

그래도 명헌이 형이니까 갖고싶은만큼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덧붙이는데 사뭇 진지해 보여서 웃겨.

어느 날 팀 전담 물리치료사랑 얘길 하는데 그 애 이야기가 나와. 우성 군 말이에요. 천성이 서글한데 어딘가 얇디얇은 벽이 있다고 할까요.깍듯하고 활달한데 깊은 속은 잘 안 보이는...아니 뭐, 뒷담화 하자는 건 절대 아니고요. 사회생활 하기에 그것만큼 멋진 성격이 어디 있겠어요.

벽?

벽이 있는 인간이었던가? 이명헌이 보기엔 전혀 아닌데. 아마 그 치료사에 한한 경우일 수도 있지. 그도 그럴 게, 지금도 봐. 치료실 문 열고 나오자마자 자기랑 눈이 마주치는데 잠잠하던 얼굴이 화사해지잖아. 저게 벽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곤 못 하지. 같은 팀이 되자마자 친해져서 가끔 같이 놀러다니기도 하고, 밥도 곧잘 먹고...친동생같은 애인데.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커다란 게 다가와서는 쥐고 있던 음료 캔을 건네.

형, 이거.
그래, 고맙다뿅.

따뜻하다못해 뜨거운 블랙커피야. 자신이 매일 선수용 온장고에서 전세내고 마시는 유일한 메뉴. 자고로 한여름에도 커피는 뜨거워야..

어깨는 어때요?
늘 똑같다뿅. 그래서 다행이지만.
우리 팀 형 어깨 없으면 우승 못해요.

그러니까 건강해야 해~명헌이 형 어깨야~하면서 자신의 오른 어깨를 살짝 두드리는 손.

웃으면서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넘겨. 어라, 정우성 뺨에 땀이 맺혀 있어. 에어컨은 나오고 있는데.
그제서야 깨달아. 사흘 전에 고장나 내일에서야 고쳐진다던 온장고. 덕분에 죄다 미지근해진 채 폐기된 음료들. 근처의 편의점은 걸어서 십 분, 뛰어서 2분.




이명헌은 소년 티를 벗어나지 못한 얼굴을 올려다 봐. 눈이 마주치자 왜요? 하고 웃어.
왜냐니. 이 미친 어린애야. 네 귀 끝이 빨갛잖아.








어린애의 파도에 휩쓸려버리는 서른넷 이명헌이 좋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