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https://hygall.com/548542971



"7일 동안 집계된 객 수가 만 명이 넘고 그것이 매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관객은 늘어가는데 객석이 모자라 더 수용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기는 만큼 백성들에게는 더 귀한 경험으로 간주되어 나날이 연극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어림잡아 반각은 지난 듯 하다. 타카노는 자신이 무어라 떠드는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채 보고를 이어갔다. 하문을 받으면 받는대로 두서없이 고해올린 보고는, 동문서답만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었다.


황제는 진땀 흘리는 타카노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긴 문답을 이어가고 있었다.


"객석의 값은 어떻게 책정하였느냐."
"좌석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으나 소액만 지불하면 누구나 연극구경을 할 수 있도록 가장 싼 자리는 구리전 1개에 팔고......"


아무리 신임받는 황실군 장수라 하여도 장군으로 발탁된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다. 청문회장 같은 압박질문에 타카노의 입술은 하얗게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다. 사실, 사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엔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처음은 분명 그리 시작하였다. 공공장소에서 음행중인 민폐 객이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던 것. 그 때는 별 일 아니라 여겼다. 관리소홀을 탓하며 쏘아붙이는 신고자의 진술도 대강 흘려들었다. 이미 유사한 사고가 여러 번 일어난 장소였다. 대처법도 다 있었다. 그러니까 타카노가, 어느 몰지각한 관객의 소행이겠거니 가벼이 여긴 건, 과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임시로 덧댄 천막을 뜯어냈더니 거기에서 뵐 리 없는 용안이 대뜸 나타나리라고는... 얼마나 대경실색하였는지 모른다. 


타카노는 또한, 허겁지겁 요란한 기생치마를 정돈하고 있는 인영이 귀비마마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고 싶었다. 뒷모습 밖에 뵈지 않았지만, 앞모습이든 뒷모습이든 그런 비밀스런 행위의 끝자락은 부하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고귀한 신분에 덧입혀진 민망한 치장은 대체... 눈을 어디에 둬야 할는지. 


사시나무가 된 두 사람과 우두망찰해 있는 한 사람을 무심하게 지나친 황제는 요기를 해야겠으니 따라오라고 명했다. 무슨 정신으로 주막까지 걸음했는지 타카노는 아직도 기억이 새하얬다. 또한 그는, 타니도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타니의 얼굴은 실로 백짓장 같았다. 고의는 아닐지언정 말 그대로 황상과 귀비마마를 면전에서 모욕하였으니 그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할지. 혹시라도 이 사건으로 타니가 징벌을 받으면, 억지로 그를 사업에 끌어들인 타카노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도 내심 지금의 위기가 해소될 것이란 희망을 가져보는 이유는, 당장에 죄를 물으실 것 같았던 황상께서 성과보고를 더 원하셨기 때문이다. 타카노는 필사적으로 연극의 현황과 분석을 말씀드렸다. 기왕이면 유리하게, 자신들의 공로가 잘 드러나도록. 비록 정말 그리 전달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보고가 끝나갈 쯤 황상께서 술을 따랐다. 술은 찰랑거리며 잔 밖으로 넘쳤다. 넘친 술이 상을 적셔가는데도 병은 더 기울었다. 놀란 타카노는 잠시 보고를 멈추었다. 그분의 기분이 잠잠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보고 중 마뜩하지 않은 부분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역시 그 실수 때문인가.


멈추란 명은 없었기에 애써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그러나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다. 침을 삼켜 건조한 목을 축이지 않으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보고가 끝나자, 황제는 흥건하게 젖은 손으로 잔을 들었다. 


탁-!


상이 쪼개질 듯한 탁음이 났다. 술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황상께서 직접 따른 술이 타카노 앞에 있었다. 


"마셔라."


도저히, 정말로, 차마 잔을 받들지 못하겠다... 이 술을 넘기면, 그것을 기점으로 당장 칼이라도 빼 드실 것 같았다. 타카노가 멍청하게 시간을 버리자 옆에서 타니가 툭 쳤다. 빨리 마시라는 뜻이었다. 
 

"왜. 독이라도 든 줄 아느냐? 우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운 포상으로 내리는 것이다. 어서 마시라."
"망극.. 감사합니다, 도련님."


타카노는 떨리는 손을 주먹쥐어 숨기고는 힘겹게 술잔을 꺾었다.


"쯧쯧. 눈치 좋은 놈과 눈 좋은 놈이 만나 하는 꼴이라고는."
"...저희들의 부주의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그 실수를 탓하심이 틀림없는 듯 하여 정식으로 사죄인사를 올렸다. 타카노가 고개를 푹 숙이자 옆에 있던 타니도 따라했다. 어려서부터 모질게 황궁 예법를 익힌 내공을 타니는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재미있군. 부주의한 줄은 아느냐?"
"송구합니다. 미처 거기에 계신 줄.."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말해 보아라."
"...!!"
"어디 변명을 해 보란 말이다."


말문이 막혔다. 죽었다. 죽은 목숨이다. 그 어떤 대단한 변명을 갖다 붙인들 무엇이 바뀌기나 할까? 평생 행운의 사내로 살아왔던 운은 오늘의 액을 위한 담보물이었던가!!


그 때 황제 내외가 앉은 술상 옆으로 주모가 바삐 지나갔다. 그녀는 실수로 타카노를 쳤는데 대수롭지 않은 충돌이라 생각했는지 넉살좋게 사과하고는 얼른 떠났다. 덕분에 황제와 나머지 무리들은 그들만의 심각한 공기에서 잠시 벗어나 주모에게 눈길을 돌렸다. 주모는 옆상에 거대한 안주접시를 놓고는 손님과 익살스런 농담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비단 그 상만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니라 주막 전체가 왁자지껄했다. 코가 비뚤어지게 마신 어떤 손님은 연극에 나오는 춤을 따라하며 재간을 부리고 있었다. 모두들 그에게 박수를 쳤다. 일행끼리 삼삼오오 모인 다른 손님들도 술과 고기를 나눠먹으며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공연의 여운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너희들이 일을 잘하긴 하였구나."
"....망극.. 과찬이십니다, 도련님."


타카노는 겨우 대답했다. 황제는 팔짱을 끼고 죄인놈들을 차갑게 노려보고 계셨다. 


"오늘 이런 광경들을 목견하지 못하였으면 너희들은 이미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것이다. 오늘부로 아무도 너희를 발견하는 이가 없겠지."


자꾸 어금니가 부딪혔다. 정말 일어나고도 남았을 미래다. 타카노는 공포로 닫히려는 귓구멍을 열어 열심히 황상의 말씀을 들었다. 


"포상은 아쉽지 않게 내리겠다. 너희들도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는 날까지 힘써 노력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쯧."
"...."


...기적이다. 살았다. 살았다!! 다시 그들 앞에 술잔이 놓였다. 이번엔 멀쩡한 것으로 두 잔이었다. 용서의 의미로 내리신 술이다. 빨리 심문을 끝내고 싶은 타카노가 먼저 그것을 마시자, 타니도 힘겹게 따라 마셨다. 그들이 빈잔을 내려놓기도 전에, 황제는 은전을 한 움큼 꺼냈다. 


"너희들이 계산하라. 우리는 시장구경을 더 하다 들어갈테니."
"저, 도련님!"


바람처럼 떠나는 부부를, 타카노는 얼른 불렀다. 황제가 짜증스럽게 소매를 휘날리며 돌아섰다. 


"호, 혹시 귀.. 애기씨를 위한 새옷이 필요하십니까? 속히 구해드리겠습니다."
"뭐라?"


귀비마마를 의식한 권유였다. 평범한 복장을 원하실 게 틀림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기왕 죄를 면하고 포상을 받게 되었으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전께 좋은 인상을 남기는 순발력을 발휘해 보았다.


"필요없다."


물론 결정은 황제가 했다. 새옷이라는 말에 간절한 눈빛을 반짝이던 귀비마마께선 포기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제안이라도 해준 사려깊음에 고마우셨는지 무언의 인사를 남기고 가셨다. 


"...."
"...."


부부가 사라진 주막엔 황제가 자릿값으로 시킨,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술상만 남았다. 타니는 인파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부부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괜찮아?"
"...."


타니의 위로부터 했다. 그의 얼굴이 몹시 붉어져 있었다.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얼굴색이다. 죽다 살아났으니 그럴 만 했다. 이윽고, 건달놈들 입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육두문자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타카노는 허겁지겁 그의 입을 막았지만, 타니는 엄청난 힘으로 타카노를 때려 떨구고는 혓바닥의 자유를 되찾았다.


"망할! 타카노 너!!! 이제보니 순 애송이잖아? 황실에서의 생존법도 모르는 놈이 강운 하나만 믿고 설쳐? 출세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야. 때로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가 되어야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야!!"


유구무언이었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니까지 위험에 빠트릴 뻔 하였으니 뚫린 입으로 사과만 해도 모자랐다. 사실 정말로 경거망동한 쪽은 타니이긴 했다. 그래도 타카노는 책임감을 느꼈다. 미리 황상를 맞을 준비를 해두었으면 이런 실수도 없었을텐데 유동적으로 대처한답시고 총체적으로 안일하였던 게 사고를 불렀다. 타니는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타카노를 반쯤은 답답한 눈빛으로, 또 반쯤은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꽤 오래 눈으로 욕하던 그는, 이내 평소처럼 입으로 욕하기 시작했다.


"하아. 됐다 됐어. 사과 듣기도 지겨워. 그리고 너도 너지만 저분들도 참... 대체 저딴 옷은 왜 입고 계시는 거야."
"쉿! 그만 잊자."
"잘도 잊겠다. 죽기 전에도 생각나겠구만. 그런 곳에서 왜 그딴 걸..."


욕 나오는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비난의 화살을 황제 부부에게 돌리다니 이러다 불경죄로 잡혀가겠다. 타카노는 황급히 그를 말렸다. 


"제발 조용히 해!"
"너나 조용히 해! 그거 알아? 너는 출세가 하고 싶을지 몰라도 나는 그냥 황실이 싫거든. 연극이 끝나면 난 황궁일에 손 떼겠어. 정상이 아니야."


타니는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꽤나 속이 갑갑했던지 황제가 남긴 술로 병나발을 불기 시작했고, 구운 생선을 입에 가득 넣은 채 아귀처럼 게걸스럽게 씹었다. 매우 기분이 예민해 보였다.


"이 일 끝나면 각자 갈 길 가자. 넌 황궁에서 출세를 하든 뭘 하든 네 맘대로 해. 난 그만 할래. 퉤!"


세차게 뱉어낸 생선가시가 타카노의 볼까지 날아와 붙었다. 몹시 불결하지만 면목이 없어 짜증은 못내겠고, 그저 손수건으로 오물을 박박 닦아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잘못을 했는데도 용서해주시고 상까지 주신다잖아. 이건 은혜야. 그런데도 넌 황궁일에 손을 떼려고?"
"하!! 아주 그냥 광신도시구만. 얌마. 사는 게 먼저다. 정신차려. 앞길 똑바로 못보면 순식간에 올가미에 걸리는 곳이 황궁이야. 그런데 한치 앞도 예측 안 된다? 흐르는 물살이 휩쓸려 다니다가 죽겠다는 소리지."


틀린 데 하나 없는 지적에 타카노는 자신감이 하락했다. 그날 미오산에서, 어설픈 정파에 붙느니 차라리 귀비마마 편에 서기로 결심하였더랬다. 지금 돌이켜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알아본 것과 그 길을 실제로 걸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행운에 기대어 만사를 처리할 수는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정말 출세하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는, 고생과 노력으로만 얻어지는 내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다. 물론 농땡이 대장인 그도 요행보단 노력한 시간이 더 길지만, 노력을 했음에도 부족한 게 진짜 문제다.


"너도 눈이라고 달린 게 있으면 저것을 봐."


타니의 말이 타카노의 상념을 깨웠다. 불손한 턱짓이 아니꼽지만 그래도 타카노는 타니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황제 부부가 인형을 파는 상인에게서 귀비 인형을 구입하고 있었다. 타니는 술값으로 낼 은전 한 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제 주머니에 쓸어넣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한 그림이라는 생각 안 드냐? 잠행을 나오신 것까진 알겠어. 그런데 왜 눈에 띄는 차림, 그것도 창기 차림이란 말이야? 대체 왜 눈에 띄는 행위,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음행이란 말이야?"
"...."
"사고는 저분들이 치고, 수습과 책임은 주변인들의 몫이 되는 그 구조가 네 눈에는 안 보여? 너 네가 어떤 구조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면 눈 깜빡할 새 좆돼."


타니는 손가락으로 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너무 과격한 말투와 행동에 타카노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힐난했다. 하지만... 수위가 세서 그렇지 전부 맞는 말이었다.


"당최 이해가 안 가. 귀비마마를 봐. 저건...... 창기의 차림이라고! 말이 돼?"


그 직설적인 타니가 침으로 어렵게 창기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오죽 민망하면 그러겠나. 그렇다. 솔직히 타카노도 동감이다. 분명 황상의 요구 때문이었겠지만, 누가 원했든 정말로 이해가 안 가는 차림이었다.


"그리고, 대체 존귀하신 제국의 황제와 귀비가 왜 시전판 싸구려 인형을 사? 더구나 저건 애들용이잖아."
"기념품으로 소장하실 수도 있지."


아니. 이 또한 타니의 말이 맞다. 그분들이 아이처럼 신나서 구입하기엔 솔직히 너무 조잡한 인형이었다. 물밑 여론전 압승의 전리품이라 의미를 부여해도, 어쨌든 상당히 민망한 물건인 것도 사실인데, 피하기는커녕 소지하시겠다니...


"장신구는 또 뭐람... 하나만 쓸쩍해도 떼돈을 벌 노리개를 치렁치렁... 너무 과하잖아. 저건 과시도 아니라 그냥 이상해 보인다고."


확실히 과하긴 했다. 그런 허황된 치장도 소화해내시는 귀비마마의 미모가 놀라울 정도로. 


"아니, 과하게 치장할 거면 끝까지 과하게 하던지... 뭔 별 희한한 나무패를 달고 있어... 안 어울리게..."
"나무패?"


내심 줄줄이 동조하고 있던 타카노는 나무패라는 말에 의심스럽게 되물었다. 아직 유행이 번지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일부 젊은이들은 작고 납작한 나무통을 노리개처럼 매달고 다닌다. 그것은 향기를 내는 원료를 담아 체향을 바꾸는 용도로 쓰이는데, 고급 원료는 부르는 게 값인데다가, 사용법에 따라 장신구의 역할도 하므로, 잘 만들어진 공예품은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었다. 황제 부부가 비싼 물건을 소지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다만 귀비마마의 향을 덮을만한 것을 황상께서 허락하시다니, 그 점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직접 여쭤본 적은 없지만 타카노는 확신하였다. 귀비마마의 체향을 굳이 바꾸는 것은 절대 황상의 풍이 아니다.


"단 한 군데도 정상적인 데가 없다고. 내가 단단히 미쳤지. 널 따라.."
"타니. 정말 확실해?"


타니의 어깨를 붙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는 더듬더듬 되물었다.


"뭐, 뭐가?"
"나무통으로 된 납작한 노리개였어?"
"어? 응.. 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천부적이라고 할 타카노의 직감이 불길함을 예지했다. 


"호위를 다녀와야겠어."
"뭐? 야 이 미친놈아! 우리 이제 막 살았다. 근데 지금 그분들 뒤를 따라가겠다고?"
"그것이 원래 내 일이야. 넌 여기 있어."


검을 들고 분주하게 채비하자 타니도 젓가락을 내던지고 덩달아 일어섰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데! 이유라도 알려주고 가!"
"그 나무통, 수상해. 없어야 할 것이 귀비마마의 존체에 달려 있다면 당장 말씀드려서 제거해야 해."
"그게 왜? 수상한 물건이야? 그냥 좋은 냄새만 났는데?"
"냄새를 맡았어? 무슨 냄새가 났는데?"
"그냥 단내. 약간... 참나무 향?"


타니는 눈이 좋지 코가 좋은 게 아니다. 그런 코에도 냄새가 닿을 정도면, 약간이 아니라 꽤 짙은 냄새였다는 뜻이다. 실은 타카노도 성과보고를 하는 내내 난데없는 참나무 진액 냄새를 맡았다. 다만 그땐 냄새를 수상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고, 그럴 경황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귀비마마께서 그 향을 풍기시는지 몰랐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두 분은 시장을 구경한다고 하셨다. 대꾸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배웅해 드렸지만, 사실은 만류하고 싶었다. 마지막 상연이 끝나자 상인들은 늘 그랬듯이 손님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장사를 접었다. 장터를 돌아다니는 행인도 확연히 줄었고, 관등놀이를 온 무리도 귀가하는 중이었다. 별 구경거리가 없는 시장이다. 차라리 새벽까지 영업하는 주막이 떠들썩하니 구경할 게 많았다. 그렇다면 두 분께선 썰렁한 시장을 떠나 무언가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가셨음이다. 그리고 근처에 갈 만한 곳은 꽃향기가 그윽하게 나는 극장 뒷편의 작은 수목림 정도. 수목림은 들어가는 입구가 잘 닦여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혹 월삭이나 그믐달이 뜨는 밤이었으면, 너무 어두워 숲에 걸음할 엄두가 나지 않겠으나, 오늘은 보름이다. 그분들이라면 숲에 들어가시고도 남는다. 


정해진 상연표. 사실상 선택지가 하나 뿐인 산책장소. 나무패의 위화감. 수목림. 꽃향기. 참나무 향. 단내......


맙소사.


이건 교묘하게 설계된 덫이다! 그리고 이 덫을 놓은 자는 황제부부를 잘 알고 있으며, 세세한 자취까지 파악하고 있다! 타카노는 황급히 내달렸다.


"야! 어디가?"
"수목림! 횃불 가져와! 최대한 빨리!!"


갑자기 횃불을 달라는데도 삼각성이 충분히 전달되었는지 타니는 즉시 주모에게 달려가 불을 달라고 우겼다. 바쁜 주모가 귀찮아하며 거절하자, 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저런. 설전을 다 지켜볼 여유는 없다! 타카노는 먼저 주막을 뛰쳐나갔다. 타니가 불을 구해들고 알아서 따라올 거라 믿으면서.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