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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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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는 걸 저녁 7시쯤 깨달았다.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생일 축하를 받아 본 적도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입양한 날짜를 몇 년에 한 번 기념해 주곤 했는데 그게 생일은 아니니까. 진짜 태어난 날은 마치다 혼자만 알고 있었다. 그마저도 20대 중반이 되면서 생각하지 않게 됐는데 막상 자신을 챙겨줄 만한 사람이 있게 되니 지금이라도 말해 축하받고 싶었다.

저녁 후식까지 다 먹은 뒤여서 노부와 단둘이 정원에 있었다. 레나와 사치코가 멀지 않은 곳에서 하늘을 보며 종알종알 떠들었다. "당신은 생일이 언제예요?" 남편의 생일을 알아둘 겸, 되물어 오는 말에 오늘이 생일인 걸 밝힐 겸 물었다. "아, 얼마 전에 지났어요. 우리 집은 옛날부터 생일 안 챙겼거든요.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나 일 년에 한 번 날 잡아 잔치 벌이는 거지..." 마치다는 깜짝 놀랐다. 생일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부자여도 생일은 생일이라서 더 기쁜 거 아닌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당신 생일도 모르네요. 언제예요?"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오늘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분위기가 그렇게 돼버렸다. "아... 한참 멀었어요." 오늘따라 하늘에 별도 없었다.

괜히 풀이 죽은 마치다는 부엌으로 가 과일을 깎았다. 그렇게 하면 버리는 게 더 많다면서 레나가 옆에 와 거들었다. "난 나중에 엄마가 되면... 우리 애기 생일 엄청 화려하게 챙겨줄 거야." 이 말에 숨어있는 의미를 레나가 잘도 알아챘다. "혹시 생일... 지났어요? 주인님이 안 챙겨줬어요?" 일부러 가장 큰 사과 조각을 입에 욱여넣으며 말을 아꼈다. 오늘이 생일이란 사실을 말하면 곧장 처량한 신세가 될 것 같았다. 레나는 몇 번이나 생일이 언제셨냐고 물었다. 마지막 조각을 씹어 삼킨 뒤,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했을 때 괜히 목소리가 떨렸다. 확실히 서운했다. 자기는 안 챙기며 살았어도 내 생일은 좀 챙겨 주지. 뭐,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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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이 남편에게 생일 축하를 받지 못한 게 누구보다 안쓰러우면서도 기뻤다. 밤 11시, 주인님이 잠들고 난 뒤 정원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단둘이. 동네 유일한 카스테라 집이 문을 닫기 전에 전속력으로 달려 겨우 카스테라 하나를 사 왔다. 초는 딱 하나. 사모님과 함께 기념하는 첫 생일이란 마음에 하나만 챙겼다.

"레나...! 정말 고마워." 청승맞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만을 위한 촛불도, 태어난 걸 축하해 주기 위한 기다림도 전부 처음이었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옆 마을에 가서라도 더 좋은 걸 사 왔을 텐데... 이것밖에 못 해드려서 죄송해요." 그런 말이 어딨냐며 고개를 세게 젓고 마치다는 입바람으로 촛불을 껐다. 초 심지가 타는 냄새. 본가에서 맡아 본 적은 있었다. 양부모의 친자식인 사토의 생일 때마다 맡을 수 있었다. 쓸쓸함이 그득한 눈동자를 들키지 않으려 잠시 눈을 감았다. 밤바람에 눈이 시린 것처럼. 그리고 입술에 닿는 무언가를, 분명히 입술 같은데 그럴 리는 없을 무언가를 조용히 느꼈다. 눈을 뜨기 무서웠다. 레나의 입술인 거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꿈인 걸까...? 그래, 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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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가 눈을 뜬 건 굉음 때문이었다. 정확히 어느 쪽에서 난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집 안을 봤다. 대청마루를 둘러싼 통유리 안쪽에 노부가 서 있었다. 돌처럼, 산처럼 가만히. 바닥엔 노부가 들고 있었을 소금이의 밥그릇이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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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로 받은 카스테라는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레나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소금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이 제대로 채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마치다는 이 저택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방에 갇혀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태로 두 손목은 등 뒤로 묶였다. 무엇을 이용해 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꼬박 한나절 동안 노부는 방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문밖에서 아무런 소란도 일지 않았다. 내가 귀를 먹었나? 싶을 만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스스로 아- 아- 하는 어색한 목소리를 내보기까지 했다.

제 부인을 지하에 가둔 게 성에 차지 않았다. 지하보다 더 어둡고 외로운 곳에 가두고 싶었다. 고용인과 바람이 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고용인들이 주인에게 꼬리를 치고 어떻게든 팔자 좀 펴보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자신보다 나을 것 하나 없는 그저 그런, 수더분한 계집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화가 난 이유는, 레나와 입을 맞추고 있던 마치다의 표정 때문이었다. 자신과 정사를 나눌 때처럼 쫓기듯 숨가빠 하거나 어딘가 불편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온화하고 편안해 보였다. 좋은 꿈을 꾸기라도 하듯이.

놀랍게도 레나를 해고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마치다를 끌고 지하실로 내려갈 때 레나의 그 표정은, 절절한 그 표정은 노부의 피를 식게 했다. 사모님은 아무 잘못 없다고, 사모님에겐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다 자기한테 하라고, 걷지 못할 정도로 매를 맞아도 좋으니 사모님만은 그냥 두시라고. 노부는 그때 레나를 향해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같잖은 마음을 잘도 키워왔구나." 주제도 모르는 고용인을 제대로 벌하고 싶었다. 내쫓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레나의 가슴 속 깊은 곳부터 태워버릴 수 있는 형벌은 뻔했다. 마치다를 슬프게 하는 것. 하루 만에 관둘 수도, 어쩌면 일 년을 이어갈 수도 있는 이 벌을 레나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며 무너지기를 바랐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