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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04:57



노부가 입을 틀어막고 가까스로 비명을 참아낸 순간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허공에서 나타난 것처럼 갑자기 마치다 케이타의 앞으로 떨어져서 노부와 마치다 케이타를 공격하던 사람을 바닥에 쓰러뜨렸다. 노부는 저도 모르게 저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를 품에 꽉 끌어안으며 몸을 틀었다. 이 사람이 사신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유능한 장수라는 건 알고 있는데도 본능적으로 마치다 케이타를 숨기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뭐... 뭐...."

검은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검은 복면으로 완전히 감춘 남자들이 노부에게 칼을 대려 했던 남자를 꽁꽁 묶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길에서 칼을 든 강도를 잡고 있던 다른 남자들이 검은 복면의 남자들과 잠깐 시선을 맞추고 작게 손으로 뭔가 신호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검은 복면의 남자들이 암살 미수범을 잡고 사라지려 할 때였다.

"그 자들은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다. 감히 나의 반려를 건드리려 하다니 누가 그렇게 목숨이 아깝지 않은지 보겠다."
"네, 전하."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꽁꽁 묶인 암살 미수범을 잡고 다시 지붕 위로 휙 솟아오른 뒤에야 노부는 오늘따라 길에 강도들이 많아서 이 거리가 이렇게 위험했었나 가슴 섬뜩하게 했던 그 강도들이 강도들이 아니라 암살 미수범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오직 마치다 케이타 한 사람을 노린 암살범들이었다. 그냥 정의감이 투철한 일반 백성들인 줄 알았던 이들이 마치다 케이타의 호위들이었고, 그 호위들이 암살 미수범들을 잡느라 바빠서 노부를 노리는 칼을 막지 못했을 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시커먼 남자들이 마치다 케이타의 비밀 호위들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어... 저 사람들..."

노부가 아연한 얼굴로 호위들에게 깔린 암살미수범과 호위들, 이미 빠르게 사라진 비밀 호위들이 날아오른 방향, 그리고 마치다 케이타를 차례로 바라보자, 마치다 케이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품에 안고 있던 노부를 올려다봤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소?"

노부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성인 남자인 노부를 품에 안고 보호했던 왕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노부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하오. 노려도 나를 노릴 줄 알았는데."
"... 아닙니다. 정말 조금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과묵한 왕야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나 신나서 준비했던 나들이 중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침울해진 듯 평소보다 훨씬 시무룩해 보였기 때문에 노부는 둘째 형이 형수와 결혼하기 전 형수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자주 데리고 갔었던 찻집으로 마치다 케이타를 안내하기로 했다. 

"전하께서도 몇 번 드셔 보셨지만, 제 둘째 형수가 다과를 아주 잘 만듭니다."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훌륭했소."
"둘째 형이 혼인 전에 둘째 형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애쓸 때 둘째 형수를 자주 데리고 왔던 찻집이 있습니다. 다과 분야의 준 전문가인 둘째 형수의 마음에도 들 정도로 다과가 훌륭한 곳이죠."

조금 전에 정체 모를 암살범의 칼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섬뜩하고 심장이 쿵쾅대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왕야가 자신이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왕야는 그 급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빈틈없이 노부를 보호해 줬고. 그래서 노부는 격렬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마치다 케이타를 찻집으로 이끌었다. 다점 안으로 들어가서 점원이 안내한 자리로 마치다 케이타를 이끌자 벽에 붙어 있는 다과의 이름들을 한참 보던 마치다 케이타는 무뚝뚝한 얼굴로 노부를 돌아봤다. 

"이름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소."

하긴 곶감단지를 갖다줬을 때도, 곶감단지라는 말을 듣고도 뭔지 짐작 못하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던 걸 생각하면 흔한 다과라도 괜히 멋스럽게 보이도록 요란하게 꾸며놓은 이름들은 못 알아볼 만도 했다. 그냥 전병 하나조차 전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없으니. 그래서 노부는 고심 끝에 고기소가 들어간 짭짤한 월병과 팥이 들어가서 달콤한 양갱, 쑥을 넣어서 만든 쌉싸름한 쑥떡을 주문했고, 각각 1인분씩 따로 포장해 달라고 주문했다. 

마치다 케이타는 다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찻집으로 손꼽히는 곳답게 예쁘고 깔끔한 모양으로 담아 내놓은 다과를 빤히 바라보다가 월병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맛이 다 다르니까 하나씩 드셔 보십시오."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나씩 먹어 보더니 여러 가지의 맛을 번갈아 맛보는 게 더 맛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작은 새처럼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다과 접시를 비우기 시작했다. 맛있는 다과 덕분인지 아니면 최고급은 아니지만 다과의 맛을 죽이지 않으면서도 입 안을 깔끔하게 해 주는 차 덕분인지 노부가 암살당할 뻔했을 때보다 확연하게 나아진 표정이었다. 무표정이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치다 케이타가 동생을 위해서 추가주문을 할 게 뻔했기 때문에 미리 포장을 부탁해 놓았던 다과 함을 건네자 한결 더 기분이 풀린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노부는 이 무뚝뚝하고 다정한 왕야의 마음을 더 풀어주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무사할 겁니다."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혹시 저도 검을 조금이라도 배워둘까요?"

그러니까 노부는 안심하라고 한 말이었다. 나도 검을 배워서 나를 지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나 노부가 검을 배우겠다고 말하자 늘 표정의 변화 없이 무뚝뚝하던 마치다 케이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검은 익히지 마시오."
"... 네?"
"검을 들면 검에 휘둘려 살아야 하오. 그대는 검을 들지 마시오. 그대의 목숨은 내가 지켜줄 테니."
"아... 알겠습니다."

그저 말뿐인 경고로 들리지 않은 것은 검을 쓸 줄 안다는 이유로 검에 휘둘려 살고 있는 산증인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검술에 능하다는 이유로 형을 위한 검으로 지금 15년째 휘둘려가며 살고 있지 않은가. 노부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왕야를 바라보다가 아직 뜨거운 차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사실 저는 어릴 때 형들이 검을 익힐 때도 워낙 재능이 없어서 그만 뒀습니다."
"..."
"왕야께서 꼭 검을 익히라 하셨으면 큰일이었을 텐데 안심입니다."

그렇게 허세를 떨자 왕야의 굳어 있던 입술 끝이 조금 풀렸다. 

"환궁하시기 전에 저희 집에 잠깐 들렀다 가시겠습니까?"
"당연히 들릴 것이오. 그대를 집까지 데려다 줘야지."

무심한 듯 다정한 왕야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노부가 신체 건장한 성인 남자고, 데려다주거나 하는 사람이 없어도 27년간 이 도성에서 멀쩡하게 잘 살아왔다는 건 모른다는 듯이. 형들이나 부모님한테도 못 받아본 그런 대우가 기분 나쁘긴커녕 좋기만 해서 노부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 첫째 형수가 란유족입니다. 란유족을 아십니까?"
"대륙 북부에서 산양과 염소를 치는 유목민족 말이오?"
"네."

대륙 북부에 가 봤냐고는 묻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에 북부에 있는 윤국을 멸망시켜서 대화제국에 흡수시키고, 이제 한 달 보름쯤 후에는 진국을 멸망시키러 갈 사람이니까. 

"몇 년 전에 대륙 전체에 가뭄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유목민족이 우리 대화제국으로 많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들었소."

대화제국은 많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흡수하고 있지만 나라를 일구지 않고 그저 떠도는 유목민족을 부러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저 아직 건드리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은 유목민족에게까지 어떤 조치를 취하지는 않아서 이 죽음의 신은 잘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대륙 전체를 보는 사람이라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때 우리 첫째 형수도 도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음."
"첫째 형수가 여기서 제 큰형님과 결혼을 한 터라 형수님은 도성에 정착하셨지만, 가족들은 다시 북부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가뭄이 좀 나아졌다고 들었소."
"네. 그래서 가족들이 큰 형수에게 건락을 보내줬습니다."
"건락?"

노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전하도 못 들어보셨습니까?"
"못 들어봤소."
"산양이나 염소의 젖을 굳혀서 만드는 것이라 하는데 음... 부드럽고 고소하고 특유의 향이 있긴 한데... 굉장히... 독특하고..."
"... 독특하고?"
"맛있습니다."
"음."
"둘째 형수가 오늘 전하께 가져다드리라고 건락을 넣은 다과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
"집에 두고 왔으니 저희 집에 들르셔서 가지고 가십시오."
"고맙소."

사실 노부는 건락 그 특유의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맛은 있었다. 고소하고 부드럽게 입 안을 휘감는 맛은 좋았으나 향이 묘하게 쿰쿰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맛 자체는 좋았기 때문에 둘째 형수가 그 건락을 넣은 다과를 만든다고 할 때도 말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 왕야는 주면 주는대로 먹고 안 주면 안 먹는 사람인 것 같으니 먹어본 게 많을 것 같지도 않아서 여러 가지를 맛보게 해 주고 싶기도 했고.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대가 준 다과는 모두 맛있었소. 이것도 맛있겠지."

마치다 케이타는 이미 세 종류의 다과를 다 먹었고, 21황자에게 줄 다과가 든 함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다 케이타를 위해 준비한 새 다과가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는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소에는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눌 때 노부가 먼저 일어나기 전엔 그저 멍하게 앉아 있기만 하던 사람이 동생에게 줄 다과가 든 함을 들고 벌떡 일어서는 걸 보며 노부는 웃음을 꾹 참았다. 

역시 너무 귀엽다니까. 





노부가 둘째 형수가 다과를 만들 때 쓰는 둘째 형수 전용 부엌으로 들어가자, 첫째 형수와 함께 건락으로 또 뭘 만들까 고민하고 있었는지 첫째 형수와 둘째 형수는 작게 잘라놓은 건락과 건락을 넣은 다과를 조금씩 맛보고 있었다. 조금 짭짤하다. 그래도 고소한 맛이 같이 느껴지고 식감이 부드러워서 좋다. 떡에는 안 어울릴 것 같다 이런 대화들이 들렸다. 

"형수님."
"왔어, 노부유키?"

노부는 형들과 나이차가 많은지라 형수들도 막내 동생 대하듯 편하게 대했다. 그래서 웃으며 고개를 들던 형수들은 노부의 뒤를 따라오던 마치다 케이타를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등왕 전하께 드릴 다과 어디 두셨어요?"
"어, 여기."

둘째 형수가 서늘한 곳에 두고 소쿠리를 덮어 두었던 건락 다과들을 함에 하나씩 조심스럽게 담는 동안 마치다 케이타는 형수들이 맛보느라고 잘라 두었던 작은 건락에 관심이 있는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첫째 형수는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잘라 두었던 건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깨끗한 접시에 담은 다음 마치다 케이타에게 내밀었다.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전하?"
"이게 건락이란 것이오?"
"네, 산양젖으로도 만들고 염소젖으로도 만드는데 저희 부족에서는 산양젖으로 만듭니다. 우리 부족 고유의 비법이 있어서 냄새도 많이 잡았죠."

마치다 케이타는 작게 잘라놓은 건락을 한 입에 넣고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고, 곧 안 그래도 큰 눈이 평소보다 더 커졌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눈이 워낙 크다 보니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읽히기도 하는 사람이라, 노부가 가만히 눈을 보고 있자 놀람과 즐거움이 가득한 게 보였다. 

"입에 맞으십니까, 전하?"

마치다 케이타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고소하고 짭짤하면서 씹을수록 부드러운 느낌이 나서 정말 좋소."

첫째 형수는 드디어 건락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았다며 집에서 보내 준 건락을 전부 담아 줄 기세였다. 노부도 성의있게 맛있다고 말해준 것 가았는데 첫째 형수의 말에 따르면 다들 자기를 생각해서 맛있다고 해 주고 맛있게 먹어주려고 했던 건 느꼈지만 실제로 별로 안 좋아하는 게 보였다나. 그런데 왕야께서는 진짜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 너무 기쁘다며 건락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왕야가 둘째 형수가 맛보시라고 건네 준 건락이 든 과자도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둘째 형수가 다과를 더 만들어보고 싶다고 해서 마치다 케이타에게는 건락은 반만 주기로 했다. 

입에 꼭 맞는 맛있는 간식을 잔뜩 받아서 동생과 나눠 먹을 생각에 신난 건지 뺨이 조금 아주 조금 발그레해진 마치다 케이타가 형수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돌아나갈 때 당연히 노부도 뒤를 따랐다. 노부는 등왕을 궁까지 데려다 줄 생각이었지만, 궁 앞에는 이미 마치다 케이타를 태워갈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를 부르는 기색은 없었는데 호위한테 비밀 신호라도 준 건가. 

마치다 케이타는 건락과 다과가 든 함을 마차 안에 조심스럽게 실어놓고 노부를 돌아봤다. 

"오늘 위험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건락을 받아서 신나 있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진 것 같아서 얌전히 잘 차고 있던 옥패도 살짝 들어보였다. 

"감사하게 선물도 받았고 즐거운 나들이였습니다."

마치다 케이타는 부드럽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즐거웠소. 허나 그대가 나와 함께 다니면 위험한 것 같으니,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힘들 것 같소."
"그럼 제가 황궁으로 가면 됩니다."
"그럼 내일은 얌전히 궁에 있겠소."
"네, 내일도 제가 찾아 뵙겠습니다. 전하. 전하를 뵈러 가는 길은 항상 기쁘고 설레니 마음쓰지 마십시오."

마치다 케이타는 아무 말 없이 노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귀여운 입술을 조금 움찔거리더니 곧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자주 웃지 않는 사람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웃음은 어딘가 어색했는데도. 그리고 마치다 케이타가 워낙 아름다운 사람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그저 그 아름다운 사람이 어색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기쁘게 웃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해질녘이라 붉게 물들어가는 세상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기쁘게 기다리고 있겠소."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 너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치즈를 한자로 건락이라고 한다카더라

#사신마치다사신의반려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