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7678580
view 2086
2023.08.07 19:28

날조주의 농구ㄹㅇ알못주의





 

 

 

 

 

#이명헌의에이스

 



 

 

아시아컵이 끝났다.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 이명헌은 정우성 없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서 정우성이 누구기에 합류여부를 따지느냐 하면. 대한민국이 배출한 최초의 NBA 리거, 전무후무한 실력의 동양인 포인트가드,

 

그리고 이명헌의 10년차 연인이다.

 

"...다녀왔습니다."

 

이명헌은 수많은 매체 인터뷰와 요란한 뒤풀이 후 홀로 귀가했다. 어두운 집안은 대답하는 이 없이 적막했다. 메달이 담긴 패키지를 식탁에 내려놓자 툭, 하고 무거운 소리가 났다. 벽에는 시계 2개가 서로 반대의 시간을 가리켰다. 하나는 서울에, 하나는 LA에 맞춘 것으로 LA는 이제 동틀녘임을 확인한 이명헌은 공항에서부터 내내 만지작대던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 두 번만에 전화가 연결되고 잠긴 목소리가 넘어왔다.

 

- 형, 축하해요!

 

어디예요, 집에 도착했어요? 고생했어요. 다정하게 이어지는 말에 명헌의 건조한 음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왜 안 왔니, 우성."

 

툭 내뱉은 말에 수화기 너머의 명랑이 바로 가라앉았다. 한숨을 삼키는 소리가 넘어왔다.

 

- ...다음엔 꼭 갈게요.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 우성. 왜 안 왔냐고."

-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 형도 알잖아요.

 

10년. 요즘 같으면 강산이 두 번은 바뀔 시간. 프로농구선수 이명헌은 그 사이 세 번의 국제경기를 뛰었다. 두 번은 주장이라는 감투를 쓴 채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핵심 전력으로 여겨지던 정우성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주장 이명헌의 부름에 두 번 다 불응했다. 2전 0승 2패. 이명헌 평생 처음 세워본 기록이었다. 아니, 애초에 승패를 따질 일이 아니었다. 8년 전엔 그랬다.

 

학연, 지연, 혈연. 한국 사회는 때로 본연의 실력보다도, 그 어떤 교감보다도 조직에서 맺는 사회적 인연을 가치있게 여긴다. 불세출의 에이스와 믿음직한 주장이 농구 명문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사실은 협회가 정우성을 불러올 카드로 이명헌을 써먹을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매사에 공과 사가 분명하길 추구하는 이명헌은 협회 관계자들이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그런 의사를 표명할 때마다 생각했다. 14년 전 인맥이 무려 '국가대표' 포섭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전제의 비논리성을. 그리고 세상이란 논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이 길어지면 위장이 뒤틀리곤 했다. 스트레스에 커피를 들이켰다가 위염이 도져 몸져 누웠던 어느 일요일 저녁, 이명헌은 결국 수화기를 들었다.

 

'우성.'

 

지구 반대편의 정우성은 단 두 음절에서 이질감을 포착했다. 연애가 막 3년차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시차로 인해 연락수단으로 전화보다는 메시지를 선호하던 때였으니. 정우성은 휴대폰을 뺨과 어깨 사이에 끼우고 태블릿에 띄워둔 스포츠 기사를 곁눈질했다. 작게 한숨이 났다.

 

- 명헌이 형. 잘 있었어요?

'응, 우성은.'

- I'm good. 그때 얘기한 슈팅가드 있죠, 오늘 그 친구랑 원온원해서 이겼어요.

'잘했네.'

- 형은 바쁘죠? 기사 봤어요.

'바쁘긴. 똑같지 뭐.'

- 근데 형... 안 그래도 어제 미팅했는데, 이번엔 못갈 것 같아요. 미안해요.

'...그래.'

 

섭섭하긴 했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정우성의 계약서에 잉크도 안 말랐겠다 싶은 시점이었다. 적응하고 자리 잡아야지. 이명헌을 포함해 스포츠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심을 넓게 가졌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아니었다. 정우성이 빠진 국가대표팀 명단이 공개되자 전국이 동요했다. 이명헌은 인간이 국위선양이라는 거창하고 다소 철 지난 단어에 개인의 욕망을 쉽게도 투영하곤 한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정우성의 농구 인생에 대한 평이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그래 적응하고 자리 잡아야지, 하지만 너를 품고 키워낸 이 나라를 위해 다음엔 꼭 오렴~ 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읽고 신문을 집어던진 건 정우성이 아니라 이명헌이었다. 그는 홀로 뇌까렸다. 니들이 정우성을 위해 뭘 했는데.

 

여론이 잠잠해질 즈음, 정우성이 농구 명문 산왕공업고교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헌의 에이스였다는 증언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발언이 나오게 된 과정은 뻔했다. 

 

[나 정우성이랑 고향 같잖아. NBA 입성했을 때 온 마을에 플래카드 걸리고 장난 아니었다. 벽화 그려놓고 농구공모양 악세사리 팔고.]

[Jung은 내 칼리지 룸메이트랑 한 팀이었지, 매 경기 훌륭한 선수였어.]

[내 친구가 중학교 때 정우성이랑 같은 반이었다? 그땐 이지메 당하고 그랬다는데. 인물 났지.]

 

정우성의 동향, 정우성의 대학 동기, 정우성의 중학교 동문. 그가 농구계의 신성이 된 후 누구나 '정우성의 그 무엇'이 되고자 꼬리표를 자처했다. 실은 그 육신의 반경 10미터 내에 접근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하나하나 모여서 대중의 머릿속에 하나의 정우성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금 더 '진짜'같은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돌풍처럼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

 

아 맞다 야, 내 친구가 정우성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 와 산왕? 진짜? 어땠대? - 반에선 좀 차가웠다는데. 농구 하나는 진짜 좋아했다더라. 그땐 귀엽게 생겼고. - 미친, 얼굴 진짜 좆만하던데. - 어, 얼굴이 너무 작아서 잘생긴줄도 몰랐대. - 크큭, 말이 되냐? - 아니 진짜로. 너무 작아서 들여다볼 새도 없었던 거야.

아, 그 얘기 들으니까 생각나네. 우리 학교랑 산왕이랑 경기 했었거든. 응원단으로 가서 봤음. - 오, 근데? - 존나 다 잘해. 근데 난 4번이랑 9번만 보이더라고. 장난 아니었어. - 9번이 정우성? 4번은? - 이명헌이라고, 지난번 아시안게임 때 키 제일 작은 선수 있어. 암튼 그때 난 농구 잘 몰랐는데도 느껴지더라고.

9번은 에이스다. 그것도 4번의 에이스.

 

이야기는 대개 세 명만 거치면 기정사실이 된다. 요즘은 그 속도도 빨라서, 누군가 술자리에서 떠벌린 이야기가 바로 다음날 내 친구가 그렇다 카더라, 하는 소위 '인터넷 썰'로 업로드되고, 그 글을 읽은 유저들의 입으로, 손가락으로 글과 사진과 영상으로 가공되는 데 사흘이면 족했다.

 

그렇게 전해진 설화는 한줄로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 되었다: 정우성이 이명헌의 단 하나뿐인 에이스였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근데 왜 안 왔대?

 

그러한 일련의 구절이 하나의 인터넷 '밈'이 되어 한차례 각종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이명헌은 산왕공고 동창들을 통해 그 소식을 접했다. 그러다 말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안일했다.

 

어느 평일 저녁, 훈련 후 체육관을 나오던 이명헌은 매니저의 연락에 걸음을 멈췄다. 협회장과 저녁식사가 잡혔다는 소식이었다. 올림픽 예선 국가대표 선발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

 

 

 

 

강남 모처의 5성급 호텔.

 

이명헌은 협회장을 의전해서 예약된 일식당에 도착했다. 안내를 받아 프라이빗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니 미리 도착해 있던 이사니 부장이니 하는 협회 인사들이 줄지어 일어섰다. 거창한 인사 후 모두가 착석하자 가이세키 코스가 서빙되기 시작했다.

 

동석한 이들은 모두 한때 농구 깨나 했다는 4-50대 중년 남성들로 지금은 각자 명의로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 수익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부류였다. 덕분에 신변잡기에만 30분이 소요되었다. 고급스럽게 플레이팅되어 나오는 초밥이며 사시미도 대화의 곁들임일 뿐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신경이 곤두섰다. 정우성에 대한 당부를 하려고 부른 것이 자명한데도 도통 본론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충 씹어 넘긴 차가운 날생선이 속을 뒤틀었다. 소화제를 미리 때려넣고 오길 다행이었다. 아들 같아 그런다며 쏟아지는 격려를 빙자한 훈계의 향연을 버티다 못해 화장실을 들렀다 오는 길에 슬쩍 호텔리어에게 식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물으니 그가 안타까운 얼굴로 두 시간짜리 코스임을 알렸다.

 

'거, 산왕 때 정우성이랑은 친했나?'

 

식사가 한 시간쯤 경과했을 때 마침내 협회장이 서두를 꺼냈다.

 

'왜, 유명하더만. 대단했다고.'

 

생선 비린내보다도 거기에 묻어나는 미묘한 도발과 질시가 더 짙었다. 그 대단하신 정우성이 네 에이스였다더니, 어디다 두고 혼자 있느냐는 얕은 무시와 질타. 이명헌은 미지근한 차로 속을 달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꼰대들 잔소리에는 그저 뉘예뉘예 그럴 수도 있지요, 세상만사 모난 데 없이 둥글려 넘어가는 게 그저 최고라는 걸 알고도 남았지만 작금의 사태에는 무어라 입장 표명을 해야 했다. 혀끝에 남은 찻물의 떫음이 가시고도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이명헌은 최대한 언짢은 기색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쓰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예, 아시다시피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전 한 팀으로 뛴 기간이 일 년도 채 안 돼서 어떤 감흥을 붙이기도 민망합니다. 대회에서 합을 맞춰본 것도 두 번 뿐이고요.'

 

그것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덧붙이려는데 협회장 다음으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이사장이 말을 가로챘다.

 

'에이, 그래도 산왕공고잖나. 산왕 단합력이 그거밖에 안 돼? 엉?'

 

한참 전에 씹어삼킨 광어가 목에 턱 걸렸다. 그래, 이래서 내가 바른말을 안 했지. 순간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자니 금가루를 올린 초밥 하나가 협회장의 플레이트를 떠나 넌지시 이명헌의 앞접시에 올라왔다. 이쯤 되면 굽혀야 했다. 이명헌은 난처한 듯, 감사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미소를 꾸며냈다.

 

'...연락 닿는대로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초밥을 입에 넣었다. 서빙된 지 삼십 분이 지난 음식 표면이 과도한 실내냉방으로 건조했다. 협회장은 이명헌이 순한 얼굴로 생선살을 잘근잘근 씹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그래야 우리 이명허이지.'

 

고역스러운 식사로부터 1주 후, 차출 통보가 뿌려졌다. 이명헌은 생애 두 번째 국제대회에 주장 후보로 지명되었다. 자연히 '에이스 정우성'의 수락 여부에 내부 관계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협회장과의 식사 이래로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도 혀끝이 비렸다. 그러나 이명헌은 태생적으로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성미가 있었다. 그는 정우성의 전화번호 위에 손가락을 힘겹게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정우성 없는 올림픽 대표팀 명단이 최종 발표되었다.

 

이명헌은 원치도 않던 스시를 실컷 먹여주신 분들 앞에 단정히 뒷짐을 지고 섰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우성은 제가 불러도 오지 않거든요.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 이명헌의 팀은 올림픽 동메달을 땄다.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

 

 

 

 

저번에는 동메달, 이번에는 은메달. 그럼 그 다음은?

 

공은 둥글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구체를 갖고 하는 스포츠의 경기 결과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연상작용으로 도출되는 게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은 못내 아쉬워했다. 다음 대회 성적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줄을 이었다. 이번에 잘했으니 다음엔 더 잘하겠지. 저번 경기에 놓친 한 번의 리바운드, 한 번의 자유투, 한 번의 레이업 슛을 성공시키면 금메달을 딸 수 있겠지.

 

"인간들아, 그게 됐으면 스포츠토토는 진즉 망했죠."

 

시끌벅적한 이자카야 구석자리, 신현철이 이명헌의 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며 위로했다. 검은 볼캡에 가려진 이명헌의 눈이 신현철의 붕대가 감긴 왼손을 한번 훑었다. 그는 직전 KBL 시즌 부상으로 아시아컵에 합류하지 못한 것에 부채감을 느껴 이명헌의 밤늦은 호출에 망설임 없이 응한 참이었다. 둘은 쓰게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다.

 

"그러게. 근데 마냥 비웃지만도 못하겠다."

 

왜냐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명헌도 그랬으니까. 비이성이 이성을 잡아먹는 걸 느끼면서도 욕심이 났다. 자신이 이끈 팀이 놓친 한 번의 리바운드, 한 번의 자유투, 한 번의 레이업 슛이.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다가도 눈앞에 공과 손들이 왔다갔다 했다. 잔상을 좇아 경기를 복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십 년 전을 되새기게 됐다. 림 아래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날아오르는 두 발을, 프리스로우 라인에서 누구보다 자신있게 뻗는 두 팔을, 림을 향해 누구보다 정확하게 올려붙이는 손끝을,

 

코트 위의 정우성을.

 

"통화했어?"

"어."

"우성이는 뭐래? 엄청 좋아하지?"

"...싸웠다."

 

신현철이 술잔을 꺾다 말고 이명헌을 바라봤다. ...좋은 일에 왜 싸우고 그르냐. 그러더니 정우성과 이명헌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던 비난의 화살을 농구협회에 겨눴다.

 

"운영팀 김 팀장도 문제야. 뭐만 하면 정우성 정우성. 우성이가 뉘집 개냐?"

 

그치. 누가 부른다고 오고 갈 개는 아니지. 그래도.

 

- 이명헌 선수, 에이스 정우성 선수 없이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룬 소감 좀 여쭙겠습니다!

 

이자카야 구석에 틀어져 있던 TV에서 어제 있었던 결승전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술집의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흘러온 인터뷰 음성에 신현철은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날 성싶게 놀랐고 이명헌은 남은 술을 한 번에 털어넣었다.

 

탕, 잔의 빈 바닥이 테이블을 때렸다. 딴 데 가자. 그대로 이자카야를 나오는 두 사람의 뒤로 TV화면 속 이명헌의 대답이 작게 멀어졌다.

 

- ...농구는 팀 경기이기 때문에 선수 한 명의 역량으로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국가대표팀은 모두가 에이스였습니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최고였습니다. 활약해준 선수들께 감사드리고,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스포츠 중계가 나오지 않는 주점이 없었다. 뉴스를 피해 자리를 자꾸 옮기느라 구석진 지하 막걸리집을 거쳐 허름한 호프집에까지 다다랐다. 잦은 이동에 술 먹던 텐션이 떨어지고, 취기에 분위기가 늘어져 이명헌은 무심코 휴대폰 액정을 확인했다가 SNS 알림을 발견했다.

 

[realwoosungjung님이 게시물에 회원님을 언급했습니다]

 

톡, 한 번의 터치로 정우성의 피드가 떴다. 아시아컵 국가대표팀의 활약을 재차 축하하는 간략한 코멘트와 함께--그는 이미 은메달 확정의 순간 요란한 축하글을 올린 바 있었다--학창시절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산왕공고 시절 유니폼을 입고 맨 앞에 이명헌과 정우성, 옆에는 김낙수, 뒤로는 최동오 정성구 신현철이 함께 웃고 있었다. 코멘트에 가장 맨 처음 언급된 건 역시 이명헌이었다.

 

"...속도 좋지. 그렇게 싸우고도."

 

중얼거리는 소리에 신현철이 이명헌의 액정을 곁눈질하고는 굼뜨게 제 휴대폰을 확인했다. 같은 알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야, 이 사진을 우성이가 갖고 있었네."

 

당연하지. 속으로만 대꾸하며 이명헌은 당시 카메라 앵글 밖에 꼭 붙잡고 있던 손을 떠올렸다. 우성의 출국 전 마지막 추억이었다. 땀이 나도록 잡고 다녔던 손이 기억 속에 선명하고도 아득했다. 이제는 덩그러니 손바닥만한 전자기기로만 느낄 수 있는 연인과의 기억에 괜히 맨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휴대폰을 든 김에 마른안주를 질겅이며 무심코 액정을 몇 번 두드렸다. 자신의 계정에 들어가 보면 5년 전 미국 여행 당시 정우성이 찍어준 프로필 사진 아래로 건조한 자기소개가 떴다.

 

lmh_official

이명헌

운동선수

원주 SW 크로노스

 

팔로워 494.9k. 게시물 49개. 공식 일정 외에는 거의 업데이트하지 않는 계정이라 10여 년의 이력이 몇 없는 사진을 통해 압축적으로 전시됐다. 사진 속 피사체는 주로 소속 구단 팀원들, 국가대표 팀원들, 그 외에는 드물게 정사각형 안에 혼자 담겨 있는 자신의 얼굴이었다. 어느 카페에서, 바닷가에서, 레스토랑에서, 야경이 비치는 테라스에서. 사진 하나하나에 추억이 떠올랐다. 이명헌은 그 사진들을 찍어주던 렌즈 너머의 연인을 떠올렸다. 자기가 찍어주고도 누구 애인인지 너무 멋진 거 아니냐며 유난을 떨던 장난스러운 목소리도.

 

그리고 생각했다. 주장 이명헌이 선수 정우성을 부를 수 없다면.

 

이명헌은 술에 취해 더딘 손가락으로 자기소개란에 몇 글자를 더 두들겨 넣었다. 그리고 파란색 체크 버튼을 누르자마자 여태 취기와 싸우던 정신에 스위치를 내렸다. 테이블 위로 고꾸라지는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타각. 켜진 채 바닥으로 떨어진 화면에 업데이트된 프로필 창이 떠 있었다.

 

lmh_official

이명헌

운동선수

원주 SW 크로노스

정우성 남자친구♡

 

 

 

 

 

 

 


슬램덩크

https://hygall.com/559475656


*타싸백업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