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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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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조차 켤 수 없는 차디찬 어둠속에서 오마루는 마냥 숨죽이고 있었다. 잘 수 있을리 없다. 몸을 뉘일 수 있을리도 없다.
하늘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모든게 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부디 벌은 제게 내리시고 제발 타츠야만은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그리해주시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속으로 몇십 몇백번을 빌고 빌며 두 눈이 벌개질때까지 꼬박 밤을 새웠다. 어느새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어렴풋이 새벽빛이 비추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마루의 의식은 선명해져만 갔다. 당장이라도 검을 빼어 쳐들고 신방으로 뛰어들어갈 수 있을만큼.
날붙이보다 시퍼런 눈으로 방한켠에 받들어진 장검을 노려보던 오마루의 시선을 돌리게 한것은 소리없이 열린 장지문 너머의 누군가였다.

"...! 타츠야."

"...오마루님..."

오마루는 저리다못해 감각이 없어지다시피한 다리조차 개의치 않는다는듯 단숨에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후카자와를 품에 안았다. 후카자와 또한 그런 오마루의 어깨에 기대어 한숨을 돌렸다.
그제서야 안심한듯 감겼던 오마루의 두 눈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뜨였다. 무언가 다른, 옅지만 미묘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저를 품안에서 떨어트리는 오마루에 후카자와가 그만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타츠야..."

"..."

대답이 없는 후카자와에 오마루가 다급한 손길로 후카자와의 옷깃을 헤쳤다. 후카자와는 그런 오마루에도 당황하지 않고 얌전히 울긋불긋한 제 목덜미를 내보였다.

"너...! 그자가... 그놈이 기어코...!"

"오마루님, 오마루님...!"

벼락같이 달려들어 장검을 집어드는 오마루의 팔에 후카자와가 매달렸다. 들키지 않았어요, 이 이상 손대지 않으셨어요. 오마루님. 오마루님!

"제가 청했어요!"

"...!!!"

"제가 청했어요 오마루님. 제가... 제가..."

"그게무슨...!"

"제가 그분을... 마음에 품어서..."

그어느때보다 간절하게 오마루의 팔에 매달린 후카자와가 굵은 눈물과 함께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런 후카자와 앞에 주저앉은 오마루가 한참 말을 잃었다.

"마음에 품었다고...?"

"..."

"연정말이냐...? 남녀사이의? 그런 연정...?"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냐...?
오마루는 혼잣말처럼 속삭였지만 후카자와의 귀에는 그 어느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조용히 흐느껴우는 후카자와를 오마루는 그저 충격에 휩싸여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들키지 않았어요 오마루님... 들키지 않았어요..."

"..."

"옷고름조차 풀지 못하셨어요... 그저 체온만 느껴져도 좋다 하셨어요..."

"..."

"나으리께서는..."

오마루님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고... 사무치게 연모하고 계셔요...


-


동이 트자마자 무장을 한 이와모토가 출정길에 올랐다. 새신부는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다 이와모토가 말에 오르기 전에서야 겨우 배웅을 나왔다.

"무운을..."

말끝을 흐리며 이와모토 앞에 허리를 숙인 오마루가 몸을 일으켜 겨우 이와모토와 눈이 마주친 그때였다.

"..."

"..."

"...잘 부탁합니다."

이 자는 다 알고 있었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 나와 결혼한거였어.

싸늘하게 식은 오마루의 눈을 무심한 표정으로 들여다보던 이와모토는 곧 말에 올라탔다. 그는 고삐를 돌려 괜스레 저택을 한바퀴 돌아보는가 싶더니 이내 미련없이 박차를 가해 부대의 선봉에섰다.

"출정이다."

"출정!!!!!!!!!!!"

요란한 수레바퀴 소리와 함께 절도있는 발소리가 지면을 울렸다. 오마루는 고개를 치켜든채 흙먼지사이로 멀어지는 이와모토의 뒷모습을 서슬퍼런 눈으로 지켜보다 돌아섰다.

오마루가 곧장 향한곳은 저택 가장 구석진 별채에 위치한 정원이었다. 그곳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 아래로 한껏 몸을 웅크린채 고개를 파묻은 후카자와가 있었다.

"타츠야."

"...오마루님.."

"내 너를 면천시켜주마."

"...네?"

이제 나에게 메인 너의 삶을 놓아줄게. 오마루는 그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자유야."


-


"제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오마루님."

이와모토의 말에 오마루의 두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잘도 제 앞에서 그 아이를 찾으시는군요."

"..."

"그것도 당당하게."

감히 넘봐서는 아니될것을 탐하여 이 오마루까지 이 속 시꺼먼 판에 끌어들인 주제에, 내가 순순히 그 아이를 내줄것 같아?

오마루의 눈빛을 읽어낸 이와모토는 순간 어이가 없다는듯 두 눈을 부라렸으나, 이내 감정을 누르듯 애써 시선을 내리깔고 몸을 낮춰 무릎을 꿇었다.

"...오마루님께는... 송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

"허나 부디 너른 아량으로 헤아려 주십시오..."

그는 제게 항상 종잡을 수 없는 소낙비처럼 나타나, 저를 흠뻑 적셔 놓고선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갈급하게 하는 이 였습니다.
출정하는것이 정해졌을때는 그저 초연했으나 자꾸만 그가 눈꺼풀 안쪽에 새겨진듯 어른거려, 매일같이 다과점을 찾아보았지만... 그가 닿을 수 없는 이라는것만 실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남은시간이 없었습니다.

"우선 어떻게든...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를 제 울타리 안에 품고싶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마음에 품어서...'

순간 제 머릿속에 겹쳐 울리는 후카자와의 목소리에 오마루는 제 입술을 짖씹으며 굳게 두 눈을 닫았다.
이와모토는 급기야 고개를 조아리며 오마루에게 읍소하였다. 오마루님... 제발... 그렇게 한참동안 숨막히는 정적과 긴장만이 둘사이를 메웠다.

"...장군께서 출정하신날, 저는 곧장 그아이에게 면천시켜주겠노라 말했습니다."

"..."

"어떻게든 장군으로부터 그 아이를 멀리 떼어놓고 싶어서요. 자유를 주면 새처럼 가볍게 멀리멀리 가버릴줄 알았습니다."

"..."

"하지만 그 아이는 떠나지 않았어요. 면천 받고도 3년을 더 머물러있었답니다."

"...오마루님."

"장군을 기다린것이겠죠."

"..."

오마루는 고개를 돌려 창문너머로 흐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하늘이었다.

"3년째 되는 날, 저에게 절을 하며 그러더이다."

"..."

"이제 그만 떠나겠다고..."

그래서인가, 대중없이 눈물이 흘러버린 오마루의 뺨에 보드라운 손수건이 닿아왔다. 이와모토였다.

"면천을 받았다 하더라도 오마루님의 곁을 지키고 싶었을겁니다."

"..."

"제가 아는 그이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와모토의 말에 설풋 웃으며 손수건을 건네받은 오마루가 한동안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후카자와 타츠야."

"..."

"이름입니다. 그 아이의."

"...하..."

어디로 갔는지는 저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작년 정월 즈음 어느 산 깊숙한곳에 있는 암자에서 평안히 잘 지내고 있다며 건너건너 서신을 남긴것이 마지막입니다.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으로 오마루가 품안에서 꺼내든 서찰을 두 손으로 받아든 이와모토가 잠시 벅찬 숨을 고르다 오마루에게 깊숙히 절을 올렸다. 오마루는 고요한 얼굴로 그런 이와모토를 보았다.


-


"장군, 대체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 길었던 귀환의 여독도 풀리지 않으셨을진데...!"

안절부절하는 시종장을 뒤로한채 간단한 짐꾸러미를 말의 양 옆구리에 단단히 채운 이와모토가 훌쩍 말 위로 올랐다.

"찾아야하는 이가 있다. 찾을때까지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장군...!"

"안방마님께서 심려가 크시니 잘 보살펴 드려라."

"장군!"

그야 그러시겠지요! 혼례 올리자마자 전장에 나가 5년만에 돌아오신 새신랑이 하루도 안되어서 다시 길을 떠나신다는데...! 저 같아도 앓아 눕겠습니다요!
다급하게 말을 몰아 멀어지는 이와모토의 등 뒤로 시종장의 원망섞인 쓴소리가 몰아쳤다.


-


"처사님!"

좁은 산길로 동자승 하나가 쪼르르 달려내려갔다. 그 길 끝에는 흰 면보로 눈 바로 밑까지 바짝 가린채 텃밭을 일구는 승복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스님, 그렇게 뛰다 또 넘어지시려구요."

"이번에는 안넘어졌어요!"

명랑한 대답에 남자가 작게 웃으며 다시 손을 바쁘게 놀렸다. 오늘 새벽예불때 또 졸으셨죠? 음... 조오금... 근데 안들켰어요 히히.

"안들키신게 아니라 주지스님께서 봐주신거에요."

"헤헤"

"이 깊은 산중 암자에서 새벽예불 드리는 이 라곤 저랑 스님이랑 주지스님 밖에 없으시잖아요."

참선 하셔야지요.
동자승은 남자의 잔소리가 귀찮지도 않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남자의 곁을 빙글빙글 멤돌았다.

"그래서 좋아요. 예전에는 저랑 주지스님 둘밖에 없었는데... 물론 그때도 좋았지만!"

처사님이 오셔서 지금은 두배, 아니 세배로 좋아요~!
그렇게 어리광부리며 저에게 답삭 매달리는 동자승이 익숙하다는듯 남자는 쥐고 있던 호미를 내려놓고 동자승의 옷에 흙이 묻지 않도록 손을 멀찍이 뻗었다.

"벌써 일년이 다 됐는데 아직도 그렇게 좋으세요?"

"네!"

"저도 스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실때마다 기뻐요."

그럼 자주자주 말해드릴게요! 동자승의 대답에 남자는 두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남자는 일년여전, 첫눈과 함께 이 작은 암자에 나타났다. 그때의 남자는 두 눈 조차도 드러내지고 않고 온 얼굴을 얇은 면보아래 꽁꽁감추고 있었던지라, 동자승은 낯선이가 두려워 그만 주지스님 등뒤로 몸을 숨겼고 주지스님도 남자를 갈곳없는 문둥병자로 여겨 찬찬히 설득시켜 남자에게 하산을 권하려했었다.
그러나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고 눈까지 내리고 있었기때문에 임시로 내어주었던 암자의 끝방은 그로부터 일주일, 한달이 지나도 비워지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처사님이 해주시는거면 다 좋아요!"

"날이 쌀쌀하니 전골을 해먹을까요? 아래께에 버섯군락이 있었던거 같은데."

"그럼 저도 버섯따러갈래요!!"

깡총거리며 제 곁을 맴도는 동자승을 귀엽다는듯 내려다본 남자가 동자승의 파릇한 머리를 흙묻은 손으로 장난스레 문대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우와!!! 진짜 버섯이 한가득~!!"

"어느게 독버섯이고 어느게 먹을수 있는건지는 아셔요?"

"몰라요! 저는 그냥 엄청많~이 딸테니 처사님께서 골라주세요!"

"하하, 네네~ 너무 멀리가시면 안돼요 스님!"

저러다 독버섯만 골라오시는거 아닌지 몰라. 신이나 저만치 달려나가는 동자승을 보고 어렴풋이 웃은 남자가 허리를 숙여 버섯을 따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따서 바짝 말려다가 겨우내 버섯밥도 지어먹고... 국에도 넣으면 좋겠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버섯따기에 푹빠진것이 한창인 와중에, 남자는 뒤늦게 동자승의 인기척이 멀리 사라졌음을 깨달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스님?"

혹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신걸까, 남자는 몸을 일으켜 크게 동자승을 불렀다 스님? 스님! 어디계세요?
동자승의 침묵이 길어지자 남자의 얼굴에 불안이 서렸다. 하필 이럴때 나는 스님의 이름도, 하다못해 법명도 모르는지... 혼란스러운 눈을 한 남자가 동자승이 사라진 계곡쪽을 하염없이 해멜때였다.

"처사님..!"

"스님!!!"

제가 멀리가지 말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길이라도 잃으셨음 어쩔뻔했어요! 놀란마음을 겨우 가라앉히며 한달음에 달려간 남자가 동자승을 품에안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며 사과한 동자승의 작은 손이 계곡가를 가리켰다.

"처사님..."

"...!"

"돌아가신건 아니겠지요...?"

동자승의 손가락 끝에는 너덜한 차림새로 쓰러진 이가 있었다.
눈이 휘둥그래진 남자는 겁먹은 듯한 동자승을 다시한번 꼭 안아준다음 그대로 있으라 이르며 천천히 쓰러진 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괜찮으신가요? 조심스레 짚은 조난자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어 긴장한 남자가 엎드려있던 몸을 뒤집어 호흡을 확인하려했을때였다.

"...!!"

조난자의 얼굴을 확인한 남자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처사님? 동자승이 울먹이기 시작하자 겨우 떨리는 손을 뻗어 조난자의 호흡을 확인한 남자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들어 동자승에게 말했다.

"스님... 주지스님... 주지스님 좀 모셔와주세요...저 혼자는... 혼자는 못옮겨요..."

"ㄴ, 네! 알겠어요 빨리 다녀올게요 처사님! 금방올게요!"

동자승이 다급하게 산기슭을 뛰어올라 멀어지자 그 뒷모습을 잠시 넋놓고 바라보던 남자가 겨우 정신을 차려 조난자의 의식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나으리... 나으리..."

"..."

"나으리... 흑... 나으리...!"

남자가 울음섞인 목소리를 높여 간곡하게 불러도 쓰러진 이는 대답이 없었다.





너무 기다리게 해서 면목이 없음...
ㅅㅌ상의 이유로 가을까지 오기 힘들수도 있어서 써둔데까지만...! 완벽한 막편으로 오고싶었는데 질질끌어서 미안하조... 그냥 프리뷰처럼 봐줘 나중에 뒷부분이랑 개연성이나 설정충돌생기면 지울거라 미리 양해부탁...!
더위들 조심하고!


이와후카 이와훗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