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6267365
view 3508
2023.07.30 18:11
핸드크림.

예전엔 스포츠 타월이나 아대 같은 게 많았던 거 같은데, 얼마 전 잡지 인터뷰에서 가방 속 필수템 공개한 이후로 확 늘었음.
농구선수는 손 끝 관리도 중요하니까 늘 하나쯤 가방에 넣어놓는다고 하긴 했지만...내가 쓰는 건 그냥 보통 바셀린인데. 이런거는 좀.
예쁜 포장에 좋은 향이 폴폴 나는 핸드크림을 들고 고개 기우뚱, 눈썹 한 번 찡그려보다가 어깨 으쓱하곤 일단 가방에 던져넣는 정우성.

“오, 비싸보이는데. 나 한 번 써봐도 돼?”
“그러세요.”

하고 김낙수한테 가방 순순히 열어보이자 김낙수 아직 씰도 안 뜯은 핸드크림 달랑 들고 진짜 뜯는다? 묻는데 정우성 뭐 그러던지 말던지임.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는 폼에 김낙수 더 사양않고 새 핸드크림 개봉해 손등위에 찔끔 짜봄. 낙수는 원래 이런 거 좀 관심 많고 좋아함.
한 여름, 땀에 쩔은 남자 냄새 푹푹한 라커룸 안에 순간 향이 확 퍼지는데, 김낙수가 느끼기엔 꽤 고급스런 무화과향이라 낙수는 오, 하는 사이 인상 팍 쓰는 정우성.

“으, 완전 단 냄새...”
“좋지않냐? 좋은데 왜.”
“맘에 들면 가지세요. 전 이런 거 별로.”

하고 보란듯이 무향 바셀린 꺼내 거스러미 생긴 손끝에 슥슥 문지름. 김낙수 어깨 한 번 으쓱하고 핸드크림 다시 닫아 가방 안에 넣어줘.

“그래도 너 생각해서 고른 선물일텐데 남을 주고 그러냐. 그러지말고 잘 써 봐.”
“아, 좀 그런가. 뭐, 알겠어요.”

입술 조금 삐죽 내밀면서도 순순히 끄덕이는 정우성 머리 한 번 복복 해주고 김낙수 구보 뛰러 나가면서 핸드크림 브랜드 외워놓음.
무화과향이 진득하면서도 너무 달지만은 않은 게 썩 괜찮던데. 발향력도 좋고, 향도 제법 오래 가고, 오.
나중에 나도 하나 살까. 흠, 기억해둬야지.

아침 훈련을 마치고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아서 다른 애들보다 한 바퀴 더 돌고 온 김낙수, 마지막으로 샤워하고 나와보니 라커룸 벤치 아래 무향 바셀린 핸드크림 떨어져 있음.
아까 정우성이 쓰던 그거 같은데, 이 덜렁이가 맘에 안 든다던 무화과향 핸드크림은 낙수가 가방 안에 꼭꼭 넣어준 거 그대로 들고 갔으면서 정작 자기가 쓰는 건 떨구고 간 모양임
김낙수 옷 갈아 입으면서 그거 주워서 정우성 락커에 넣어주고, 물건 제대로 안 챙기냐 이따 한 소리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얼른 체육관 시계 쳐다보고 시간 확인함.
늦진 않았는데 1교시 영어라 잔소리 안 들으려면 서둘러 가긴 해야 할 거 같아.
부실 열쇠 막 잠그고 나가려다 비품실 쪽에서 뭔가 삐그덕? 거리는 이상한 소릴 들은 것도 같은데 확인하고 갈 시간은 없어서 별 생각없이 그대로 교실로 달리는 김낙수.

자리에 앉는 낙수 보자마자 맨 뒷줄에 앉아있던 성구가 대뜸 물어.

“낙수야, 너 명헌이 체육관에서 혹시 봤냐?”
“이명헌? 아니, 아무도 없던데. 내가 부실 문단속 다 하고 왔어.”
“그냐. 얘 또 어디 갔지, 늦으면 영어 지랄할텐데.”
“감독님이 부르신 거 아냐? 오겠지 뭐.”

근데 금방 올 줄 알았던 이명헌...영어시간이 지나고 수학시간이 지나고 문학...화학...오전 시간 다 끝나도록 안 와.
얘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정성구 김낙수 급식실에 나란히 줄 서서 둘이 심각해질 때 쯤 에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나는 이명헌.

“나 껴줘뿅.”
“야야, 너 이거 새치기다, 이명헌.”
“어디 갔다 왔어, 명헌아. 무슨 일 있었어?”
“깜박 잠들었다뿅...”

잠깐 눕는다는 게...하고 눈 부비면서 슬쩍 정성구 앞으로 끼어드는 이명헌, 아니나 다를까 미묘하게 얼굴 부어가지고 애가 좀 피곤해보임.
요즘 바쁘긴 했지, 주장직 맡으면서 한참 인수인계 받으랴, 윈터컵용 새 팀 구상하랴, 훈련 메뉴 짜랴.

“많이 피곤했구나?”
“개피곤뿅...죽겠다용.”

이명헌한테 묘하게 약한 김낙수 저도 모르게 목소리 자상해지는데, 이명헌 그 기회를 안 놓치고 얼른 김낙수 식판에서 소세지 하나 더 집어감.
그러라지 뭐, 색소 들어간 가공식품 그거 건강에도 별로고 김낙수는 원래 그닥 안 좋아함. 애가 힘들다는데 내가 도와줄 건 없고 이거라도 하나 더 먹으라고 해.
남은 소세지 몇 개 더 집어주면서 어깨 한 번 힘줘서 주물러주니까 소세지 옴뇸뇸 입에 쓸어넣다 말고 이명헌 한 번 움찔 허리 작게 뒤틀다 식판에 고개 박고 개열심히 밥 먹기 시작.

오후 수업 끝나고 다시 CA 시작하는데, 오늘따라 유독 컨디션 좋은 듯 훨훨 날아다니는 정우성.
포메이션 이것저것 시험 중이라 중간에 두어 번 팀 구성을 확 바꾸는데 주전들 사이에선 물론이고 벤치멤들 사이에 붙여둬도 그냥 막 혼자 다 해버려.
혼자 득점 막 꽂아넣다가 비주전들 헤매니까 볼배급도 막 옆에 붙어 부지런히 돕다가 디펜스 상황되면 갑자기 또 수비 개살벌하게 하는거임.
수비 상황에서 집중력 곧잘 약해지는 거 때문에 어제도 한 소리 들었던 정우성 어디갔나 싶게 상대팀에서 볼배급 중인 이명헌한테 찰싹 붙어 철벽 방어하는데, 잠깐 앗차 하는 사이 미끄러진건지 바닥으로 쓰러지는 이명헌.

“명헌이형...!!”

정작 넘어진 이명헌은 1초만에 툭툭 털고 일어나 벤치 쪽에서 벌떡 일어선 도감독 쪽으로 오케이 사인 보내는데 정우성 혼자 얼굴 사색됨.

“괜찮아요? 미안해요. 나 때문이죠. 형, 아파요?”
“됐어, 내가 혼자 넘어진 거뿅.”
“아니 그래두요...진짜 괜찮아요? 아픈 데 없어요?”
“괜찮다니까.”

진짜 그냥 넘어졌던 게 전부인지 이명헌 되레 귀찮은 듯 정우성 밀어내고 게임 재개하는데 그때부터 티나게 이명헌 상대로 수비 세게 못 나가고 헤매기 시작하는 정우성...
결국 중반까지 날아다녔던 게 거짓말처럼 느슨한 수비 뚫고 사정없이 패스 뿌리는 이명헌네 팀에 마지막 게임은 역전패 당함
평소같으면 억울해~! 다 이겼는데! 이건 무효야~!! 잔뜩 시끄러울 정우성이 연습게임 진 건 신경도 안 쓰고 귀찮아하는 이명헌 졸졸 쫓아다니면서 음료수 가져다 나르고 땀 닦아주겠다고 성화부리는 거 지켜보다 정성구 진짜 이해가 안 가서 한 마디 함.

“아까 그거 진짜 명헌이 혼자 넘어진 거 아니었어?”
“내가 보기에도 그랬는데.”

쟤 왜 저렇게 오버하냐...김낙수 정성구 나란히 갸우뚱하며 샤워실로 향하는데, 단체 샤워실 들어가보니 그사이 이명헌한테 기어이 한 소리 듣기라도 했는지 어째 얼굴 좀 벌개져서 샤워실 제일 구석자리에 혼자 뚝 떨어져 고개 숙이고 샤워중인 정우성.
반면 평소 쓰던 배치 그대로 최동오 옆자리에서 샤워하고 있는 이명헌 옆 자리로 간 김낙수, 물 흘려 보내기 전에 샤워기 온도 조절부터 먼저 하는데 옆에서 물소리에 약간 먹힌 최동오 목소리 들림.

“어, 명헌아 바디워시 바꿨어? 뭐야? 너 씻으니까 갑자기 좋은 냄새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용비누뿅.”

바디워시 같은 걸 김낙수 말고 누가 쓰냐뿅, 굳이 덧붙이는 말에 김낙수 뭐라 대꾸해주려고 이명헌 쪽으로 고개 돌리는데, 진짜 어디서 맡아본 좋은 향기가 확 끼치는 거야.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 줄줄 흐르고 있는 이명헌 몸...구체적으로는 뭔가...아랫쪽에서 위로 수증기 타고 훅 올라오는 향...뭐임...이거...다리...다리 사이?!?
김낙수 이유를 채 눈치채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먼저 소스라치고 있는데 최동오 얼타는 목소리가 또 이어짐.

“어, 그래? 그럼 이 향은 뭐지...뭐가 막 달달한 냄새가...”
“난 몰라뿅.”
“무화과...”
“어?”

이명헌과 최동오의 고개가 동시에 김낙수 쪽으로 돌아감. 눈이 마주쳤을 때, 동요없기로 유명헌 이명헌의 표정이 약간 흔들린 것 같았던 건 김낙수 기분 탓일까.

“무화과 향이라고 그거...”

동요없기로는 김낙수도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친절하게 향을 짚어주는 동안 이번만은 김낙수도 동요없는 표정 유지가 되었을지 어떨지 자신이 좀 없음.
아침에 기억해뒀던 핸드크림 브랜드 이름 그거 머릿속에서 벅벅 지우기 바빠서...
발향력 진짜 쩌는데, 오. 향 진짜 오래 가는 것도 알겠는데, 오. 평생 사서 쓸 일은 없는 브랜드가 되겠는데, 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