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55289704
view 2950
2023.07.25 01:48
여름 밤 바람이 선선해서 뽈뽈 기어나가는 바람에 산왕물산 최후의 날 찍을뻔한 Ssul

명헌이 보스가 시켜서 동오랑 결혼은 했지만 대등한 관계는 아니라 호칭도 이사님이고 아직 존댓말 쓰고 늘 눈치 보여서 임신했는데 뭐 먹고 싶다고도 못 하고

그렇게 살다가 찾은 유일한 낙이 밤 산책

밤에 한 10시쯤 되면 베란다 창 너머로 고개 빼꼼 내밀고 날씨 체크하는 명헌이
히히 좀 이따 나가도 되겠어용

애기 와이프 밤마다 마실 나가는 거 최동오는 꿈에도 모르겠지

안 그래도 험한 일 하는 사람치고 잠귀 어두운데 요새 일 너무 바빠서 4시간도 못 자고 일찍 잠들고 새벽에 다시 일하러 가는 최동오
명헌이랑 제대로 얼굴 보고 얘기 나눈지도 한참이라...

명헌이는 아침잠 많고 밤에 꿈지럭 거린다고 늦게 자는데 동오 깰까 봐 옆에 눕지도 못하고 작은방 가서 혼자 자기도 하고

그날도 한 12시 반쯤 됐을까 명헌이는 밖에 나가고 새벽에 답지 않게 눈이 번쩍 떠진 최동오

... 애 어디 갔어

빈 옆자리는 사람 누웠던 온기조차 안 느껴지고 머리 벅벅 긁으며 밖으로 나와 보는데

명헌아?

뭐야
적막한 집안

작은방으로 가 보니 이불 펴 놓은 흔적 보고
얘 여기서 자나...
어디 갔어 이 시간에

근데 그 순간 최동오 눈에 들어온 살짝 열려있는 서재

... 서재 문이 왜 열려있지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일러뒀는데...

요새 비밀리에 처리할 일이 많아서 명헌이한테도 서재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 했고
저번에 청소한다고 뽈뽈 거리는 애 끌고 나와서 혼도 엄청 냈는데...

명헌이한테 일단 전화해 보려고 휴대폰 가지러 가려는 참에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

이사님
xx 관련 파일이 유출된 것 같습니다...

뭐?

서재 다시 들어가 슥 훑어보는데

... 이게 왜 열려있지

책상 밑 서랍이 누가 봐도 손댄 흔적.

usb... 설마

관련 파일이 들어있는 usb가 놓여 있는 서랍

야...
야 아니지...

최동오 이명헌한테 전화 거는데

띠리링하며 집 안에서 울리는 벨 소리...

미치겠네

소리 따라 들어가면 작은방에 들어가니 환하게 켜진 휴대폰
거기에 적혀있는 세 글자
이사님

이사님이 뭐냐...

이럴 때가 아니고 일단 애부터 찾자

야 낙수야
애 없어졌다

뭐?

애 없어졌는데 일단 너만 알고 있어
usb 들어있는 서재 서랍이 열려있어...

일단 애부터 찾아야 해
뭐가 됐든 걔 혼자 두면 위험해 지금

알겠다. 일단 내 밑에 애들 풀 테니까 너 뭐 지금 집이냐?

어 일단 나도 밖에 나가볼게

산왕물산 설립 이래 초 비상사태
전원 비상 대기 시키고 낙수가 부리는 애들은 지금 동오 동네에 쫙 깔려서
야밤에 시꺼먼 양복 입은 깡패 새끼들이 옷 안에 연장 숨긴 채 아파트 단지, 공원 샅샅이 뒤지는 꼴이라...

한 30분쯤 지났을까 걸려온 전화 한통

최이사님



이사님 집 근처 수변공원 산책로 따라서 한 20분 거리에 말입니다.
사모님 계시는 것 같습니다.

계시는 거 같은 건 뭔데

그 ...

왜 누구랑 같이 있어?

아니요 그냥 인형 하나 들고 혼자 계셔요

뒷말은 그냥 동오 오면 보라고 흐리는 부하

지켜보고 있어 지금 바로 가

최동오 급하게 차 몰고 그쪽으로 향하는데

쟤 뭐 하냐?
라이터?

그.. 래서 말씀 안 드린 건데 사모님 임신하시지 않았나... 싶어서

여기서 대기해


발 까딱 거리며 라이터 딸깍 딸...깍

저거 내 거잖아?

뭐해 여기서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똥그래지는 두 눈

어...어...

이건 왜
너 담배 피우니?

아 아니용

이거 어디서 났어 내 거잖아

그...
잘못했어용...

화 안내 말해 봐 어디서 났어

이사님 서재...

들어가지 말라 했을 텐데

...원래 쓰던 라이터가 불이 안 켜져서...
이사님 늘 라이터 거기 두셨던 거 같아서용...

한 대 치기라도 할까 봐 잔뜩 움츠러들어서 라이터 건네는 모습에 착잡하기도 전에

저건 또 뭐야

참나

여기까지 나와서 이거 ... 이거 먹으려고

끝이 탄 나무젓가락
그리고 뜯어진 마시멜로 봉지 벌써 한 절반은 먹은 듯하고

야무지게 구워 드셨구만

너 서재에서 다른 거 건드린 거 있어?
다른..거용?

전혀 모르겠다는 눈으로 도리도리

잠시만
어 낙수야

앤 찾았다며

어 같이있어

그 파일 유출은 대충 감 잡은 거 같고 오늘 새벽 한... 4시 전에 그 항만 창고에서 처리할 거야 우성이 보내놨어

어딘데

보스 요새 만나는 사람 쪽에서 작업 들어온 거 같다

참나... 그 우리 집 앞에 애들은 다 퇴근하라 해라...

한숨 푹푹 쉬며 전화하는 동오에 눈알만 또르르 굴리는 이명헌

가자 집에
근데 전화도 안 들고나가고
이 시간에 겁도 없이
응?

일으킨 김에 엉덩이 한 대 찰싹 때려주고

넌 집에 가면 진짜 혼날 줄 알아

밍...

명헌이 주섬주섬 마시멜로 봉지 챙기고 최동오 한 팔에 명헌이가 들고나온 인형 덜렁 안고

얜 뭐 산책 메이트냐
넹... 이사님이 주신거에용

제대로 된 선물도 아니고 한참 인형 뽑기 기계 많을 때 술 먹고 뽑아 온 거
... 이것도 좋다고 데리고 다녀주네

명헌이 눈엔 동오가 잔뜩 화나 보였는지 대답 겨우하고 뭔가 또 꼼지락거리는데
뭐하나 싶어서 한 발짝 떨어져 걷는 애 쳐다보면

그 와중에 마시멜로 굽고 있다

밤에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 너

안 그래용... 그러곤 동오한테 하나 내미는 마시멜로

나 먹으라고?
뇌물 안 통해 넌 집에 가서 잉잉 울겠지 나한테 디지게 혼나고

...으응
더 쭈욱 내미는 팔에 최동오 받아먹어준 담에 명헌이 끌어당겨 어깨에 팔 터억 걸치고

맛있네 날씨도 좋고
나 깨우지

바쁘시잖아용

잠은 언제부터 거기서 잤는데 멀쩡한 안방 두고

깨실까봐...

괜히 머쓱해서 애 머리나 복복복복 쓰다듬고
너두 일찍 자
너 점심때 다 돼서 일어나는 거 모를 줄 아냐 내가

아 그리고
이사님이 뭐냐 이사님이

그럼용...

여보 해봐

...

아 빨리이

이사님 먼저어...

흠흠
여보 내가 신경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해

...
야 너 울어?

아가 나 봐봐 왜 울어
속상했어...

밤늦은 새벽 텅 빈 공원 무심한 최동오 한마디에 꾹 참은 눈물 펑 하고 터져흐르고
그거 꼭 안아서 토닥여주는 최동오

미안해

울음이 잦아들고 동오가 손 내밀면 그거 꼭 잡고 집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집에 도착하고 명헌이 은근 슬쩍 아이 졸려용... 하면서 자러 들어가려는데

어허
너 여기 앉아봐

이잉...

오늘 ... 내가 얼마나 걱정한지는 아시고?

하루 이틀 나간 게 아닌 모양샌데
나 몰래 숨겨둔 다른 서방 있는 거 아냐?

아니에용!

너 나 무슨 일하는지 잘 알잖아
폰도 안 들고 나가고 그 밤에
진짜 위험해 오늘도 뭔 일 생긴 줄 알고 진짜 나 미치는 줄 알았다고오
응?

입 삐쭉 나와서 발만 달랑달랑
괜히 코나 한번 세게 꼬집는데

아얏!

눈물 달랑 맺힌 눈으로
여보오... 명헌이 잘못했는데에 ...이제 그만 혼날래용 졸려어

어쭈

그러자 벌떡 일어나 동오 허리에 손 꼭 감고 여보 자러가용 거리는 명헌이

이제 제법 부른 배가 최동오 제 배에 닿으니까 기분 묘해지고

그래 자러가자

명헌이 안아서 침대에 눕혀두고
오랜만에 같이 눕는 것도 눕는 건데
얼굴 마주 보고 눕는 건 처음이라

...

자자 아가

일 줄일게 저녁에 나랑 같이 나가
밤엔 안돼

네에...

그리고 누가 서재 막 들어가래

죄송해용...



으응

쓰읍 손

명헌이 쭈뼛거리며 손 내밀자
손 끌어모아서 제 손바닥으로 한 대 짜악 내려치고

혼나요 진짜

안 그럴게용...

너 위험한 일 안 만들려고 그러는 거니까 협조 좀 합시다?

네에

손 아퍼용!

까분다
내 손이 더 아프다

맘이 좀 풀렸는지 괜히 떼 쓰는 애 손
입에 갖다 대고 뽀뽀 쪽쪽 해주고 자 안 아프네 이제 코 자자

그 대소동 이후 좀 더 가까워진 두 사람
명헌이의 밤 마실은 이제 지난날의 추억이 됐지만
동오랑 손잡고 저녁 즈음에 나가는 산책이 하루 일과의 마무리로 자리 잡았겠지

동오 이제 은근 선물이랍시고 집에 여럿 사들고 오는데도
명헌이 최애는 그 찌그러지고 별 볼품없는 인형 뽑기 기계 속 인형

이쁜 인형 사줬잖아
그래도 얘가 젤 좋아용



처음 받은 거니까...



동오명헌
산왕 느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