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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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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가 되면 마치다가 모든 호실을 돌며 인원 점검을 한다. 경쟁률이 치열한 기숙사인 만큼 대충 짐만 들여놓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 않는 학생은 퇴실처리 대상이었다. 밤 몇시에 귀가하든 상관 없지만 아침 7시엔 무조건 방에 있어야 한다. 벌점이 쌓이면 다음 학기엔 기숙사에 살지 못하게 된다. 학교와 집이 일정 거리 이상이면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청 받고 있는 기숙사는 매 학기 경쟁이 치열해 그 중에서도 결국 추첨을 했다. 꼭 2학기가 시작되면 벌점 관리를 못해 퇴실하는 학생이 몇 있었으므로 1학기에 탈락했다고 해서 실망하긴 이르다. 1학기 성적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 2학기 공실을 노리면 되니까. 그런데 109호의 스즈키 노부유키는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사장 조카여도 그렇지, 어느 정도 조건은 맞춰야 할 것 아냐. 학과 사무실 직원을 통해 알아 보니 1학기 성적이 형편 없었다. 주소지 역시 기숙사 신청할 만큼 멀지도 않았고. 이런 애들 때문에 정작 제대로 된 애들이 못 들어 오잖아.

501호부터 509호 인원 체크 완료, 401호부터 409호 인원 체크 완료, 301호부터 309호 인원 체크 완료. 2층은 사무실과 직원들이 지내는 호실뿐이라 패스, 101호부터 108호 인원 체크 완료.

-스즈키 학생 안에 있어요? 문 열어요.

7시부터 칼같이 시작하는 인원 점검은 학생들의 협조로 5분 만에 끝냈던 일인데 스즈키가 잡음을 내고 있었다. 7시 7분. 똑똑똑. 아침 마다 인원 점검 있으니 문 열어두라고 규칙 목록에 써있잖아요. 못 봤어요? 안에 있긴 한 거예요? 부재중이면 벌점 1점 추가 됩니다. 마치다의 차분하지만 충분히 열이 올라있는 목소리에 다른 방 학생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왠지 모르게 위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애초에 위신 같은 게 있었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방 주인을 부르려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딸칵, 잠금 장치가 풀리고 방 문이 스르륵 열렸다. 방 안엔 상의를 탈의하고 졸린 눈을 비비는 노부가 서있었다. 얜 바지를 어디까지 내려입은 거야.

-왜요?
-왜요? 왜요라니요? 인원 점검 시간이에요.
-아... 그런 것도 있어요?
-이런 것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으니 내가 얼마전에 뽑아 준 규칙 목록 제대로 숙지해 줄래요? 매일 5분 만에 끝내던 일을 스즈키 학생 때문에 9분이나 걸렸으니 미안한 줄 아세요.
-미안.

노부는 문 밖으로 나와 복도에 얼굴을 비춘 몇몇 학생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쟤들이 아니라 나한테 미안해해야죠.

수상할 만큼 알이 작은 안경과 바짝 넘긴 머리, 비누 냄새, 단호한 말투. 늘 같은 모습이었던 사감이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학생들은 뭔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며 각자 갈 길을 갔다. 마치다가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노부에게 주눅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경영학과 학생에겐 딱히 필요 없을 복근과 긴 다리에 주눅 들었다. 여자들에게 인기 좀 있을 것 같은 얼굴이며 넓은 어깨며, 낮은 목소리까지 전부 마치다를 주눅 들게 했다. 어쩌면 그냥 이사장 조카라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내일부터는 시간 잘 지켜줘요.
-네. 아, 커피 살게요.
-커피요? 커피는 왜요?
-미안하니까요.
-됐으니까 규칙이나 숙지하세요 학생.

마치다는 괜히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2층에 올라갔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