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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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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씻고 나올래?"

네...?메구로의 물음에 미치에다는 그대로 굳었다.

"나 씻는거 느린편이니까 말이야. 슌이 먼저 씻고 나오는게 편하지않을까해서."

아아...그...그런...내가 괜히 이상한 생각을 해서...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듯 샤워실로 향했다. 그런 미치에다가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뜨렸던 메구로는

"저.....이거...이렇게 입는거 맞나요..?가운은 처음 입어봐서..."

막 씻고나와 물기에 젖어있는 미치에다의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처음 입어보는 샤워가운이 어색한듯 쭈뼛거리는 발걸음도, 멋쩍은듯 매듭만 매만지는 움직임도, 하나하나가 천천히 제 시야에 박혀오는 느낌이였다.

"...렌?"

저를 부르는 미치에다의 목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메구로는

"안 씻으세요?저...다 씻었는데..."

"어..?어어...씻어야지."

허둥대며 씻으러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미치에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메구로를 바라보았다.

"슌, 배는 안고파? 간단한 야식이라도 사ㅁ..."

가운의 매듭을 묶으며 나온 메구로는 침대 맡에 걸터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있는 미치에다를 발견했다. 넓은 유원지를 폐장 시간까지 돌아다닌데다, 다른 사람들한테 정체를 들키지않으려고 하루종일 신경도 곤두서고 있었으니 피곤할만도 했다. 슌- 메구로가 부르자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어올린 미치에다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슌, 졸려?"

"아니..요..."

그렇게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졸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기에 메구로는 피식 웃었다. 아니긴.

"그렇게 졸지말고 제대로 누워서 자."

"저 진짜 괜찮은ㄷ..."

그때였다. 침대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서 졸고있던 미치에다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슌, 위험해...!어..."

"아...."

두 사람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침대시트 위로 쓰러진 미치에다는 언제 졸렸냐는듯 정신이 확 깨여 제 위로 쓰러진 이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메구로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것은 대례식 이후로 처음이였다. 이전에는 한없이 차갑게만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는 그의 눈동자는 크고, 깊고, 또...너무 다정했다. 계속 보고있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워서 살짝 벌어진 입술 역시 꽤나 매력적인 호선형이였고, 도톰했다. 그래서였나. 대례식에서 입을 맞출때, 부드럽다고 느꼈던건...까지 생각한 미치에다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메구로 역시, 시야 가득 미치에다의 모습만이 들어찼다. 여직 물기에 살짝 젖은 머리카락도, 목욕 후라 열기에 달뜬 붉은 뺨도, 촉촉해보이는 입술도.

"....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입술이 마르는 느낌이 들고 마른침이 삼켜졌다. 적막이 흐르는 방안은 조금만 심장이 뛰어도 그 소리가 상대방에게 너무 크게 들릴것같았다.

"렌...?"

다시 한번 제 이름을 부르는 미치에다를 내려다보던 메구로는 홀린듯 침대 시트를 짚지않은 반대편 손을 들어 천천히 미치에다의 얼굴을 감쌌다. 메구로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는것을 느낀 미치에다 역시 홀린듯 천천히 눈을 감아갈 때였다.

똑똑-

"주무십니까?"

적막을 깨는 노크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한듯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아무래도 싱글룸이라 이불이랑 베게 하나씩 더 필요하실것같아서요. 더 필요한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아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라는 인사를 끝으로 펜션 주인이 사라진 방 안에는 다시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그....이만...잘까?"

"네..?"

"...피곤하잖아. 내일도 아침부터 움직여야할텐데."

헛기침과 함께 침대에 자리한 메구로의 말에 얼굴을 붉힌 미치에다가 다급한 몸짓으로 제몫의 베게를 집어 품에 안았다.

"아,네! 선배가 침대에서 주무세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다시 선배라는 호칭이 튀어나와버린 미치에다가 제 몫의 이불까지 챙겨들었을때였다.

"으앗..!"

미치에다는 메구로에게 끌어안긴 채 침대시트로 뉘여진 몸에 눈을 크게 떴다. 서...선배 지금 뭐하시는...

"그새 또 선배로 돌아왔네."

"놔주세요 렌."

"얼른 자자 슌. 나도 졸리다."

"이러고 어떻게 자라는거에요."

미치에다는 몸을 살짝 비틀었지만 그럴수록 더 단단하게 감싸안는 메구로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궁에서도 같은 침대에서 잘만 잤잖아."

"황궁에서는 침대가 이렇게 좁지않았잖아요! 자다가 떨어질것같다고요."

"그러니까 안 떨어지게 잘 붙어있어."

미치에다는 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안는 메구로의 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막 씻고나온 메구로에게서는 저와 같은 샴푸향과 바디워시의 향 그리고...아주 옅은 애플민트향이 났다. 아마도 페로몬향이 분명했다. 달콤하고, 시원한, 주인을 꼭 닮은 향이. 어떡해, 이러다가...진짜로 심장소리 다 들킬것같아.

"걱정하지마, 슌."

무슨 걱정이요?자다가 떨어질 걱정..?그거야 걱정 안될 수가 없...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클거야."

"...."

"너한테 결혼하자고 말했을때도, 대례복 입은 널 마주했을때도 그랬으니까 아마 지금도 그럴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말고 자.

저를 끌어안은 채 등을 토닥이는 손길을 느끼며 미치에다는 아랫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런 말을 하면...더 잘 수 없다고요.

"...정말 여기서 먹어도 괜찮아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관의 작은 식당 앞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미치에다에 메구로는 피식 웃었다.

"너 그거 고정관념이야 슌. 나도 식당에서 밥 먹는다고"

"그렇다고해도 렌, 저랑 편의점 가기전까진 삼각김밥이랑 컵라면 먹어본적도 없었잖아요."

삼각김밥 까는법도 모르고 컵라면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하게 만들었으면서. 정곡을 찔린 메구로는 멋쩍게 웃었다.

"갑자기 엄청 배고프다, 슌 얼른 들어가자."

말을 돌리며 딸랑- 녹슨 종소리와 함께 먼저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는 메구로를 향해 못말린다는듯 고개를 젓던 미치에다는 아주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모자랑 안경 아직 안썼는데!

"어서오ㅅ...어...?태자...전하..?"

"에이 말도 안돼. 태자전하가 여길 왜 와?"

이미 늦어버렸다. 당당하게 가게에 들어선 메구로는

"뭐해?들어와."

너무도 해사하게 웃으며 미치에다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으니까.

힐끔-

힐끗-

흘끗-

세상의 모든 곁눈질하는 의성어를 가져놓은듯한 분위기에도 메구로는 아랑곳하지않고 메뉴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수있는건, 평일의 이른 아침 시간이라, 식당의 손님은 메구로와 미치에다뿐이였다는것이였다. 그때였다.

"저...혹시...실례지만...태자...전하...랑 태자비전하..맞으시죠?"

주문표를 손에 든 채 쭈뼛거리며 미치에다와 메구로를 힐끔거리기만 하던 가게의 주인부부가 용기를 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정체를 물어왔다.

"죄송하지만 사람 잘못 보ㅅ..."

"맞아요."

????!?!선배 대체 어쩔려고...미치에다가 놀란 눈으로 메구로를 쳐다보았으나 메구로는 그런 미치에다를 달래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신혼여행 왔거든요. 저희 여기 온거 비밀로 해주시기에요? 아내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부탁 좀 드릴게요.하며 손가락을 입술 끝에 가져다 대보였다. 그런 메구로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리 없는 중년의 주인 부부는 고개가 떨어질듯 세게 끄덕였고 말이다.

"저기...렌, 신경쓰이면 지금이라도 다른곳으ㄹ..."

"왜? 난 여기 좋은데. 조용하고, 여유롭고."

좋다, 여기. 정말 편안해보이는 미소를 짓는 메구로가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저 사람은 그동안 수많은 시선들,관심들에게서 망설임없이 익숙하게 대처할수 있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황태자라는 정체가 밝혀지기 전부터 정치학과의 왕자님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던 메구로가 생각났다. 그는 원치 않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원했겠지. 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메구로도 노력해오고 있었던거겠지.

가게가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듯 가게에서 튼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에 맞춰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메구로의 모습을 미치에다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

"그냥...렌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싶어서요."

"뭐야 그게-"

메구로는 웃었고, 미치에다 역시 작게 웃어버렸다.

"음식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와, 맛있어 보인다. 제 몫으로 나온 국수 그릇에서 고기를 덜어 미치에다의 그릇에 옮겨주는 메구로에

"먹어보면 더 놀랄걸요?"

미치에다 역시 조개살과 새우를 메구로의 그릇으로 옮겨담았다.

"역시...사라졌네요."

거대한 오피스텔 앞에 선 미치에다가 말했다.

"뭐...예상은 했어요. 저랑 할아버지가 살때도 재개발예정지로 등록됐었으니까요."

그래도...직접 눈으로 보니까 피부로 와닿네요. ....이제는 할아버지도, 우리집도 전부 없어졌다는 사실이. 쓰게 웃는 미치에다를 가만히 바라보던 메구로가 미치에다의 손을 잡았다.

"왜 없어, 여기 그대로 있잖아."

"...."

"네가 다 기억하고 있잖아. 할아버님도, 그 집도. 추억들도, 하나도 잊지않고 그리워하고 있잖아."

그리고...

'그러지말고 나랑 놀아줘!! 응??응??'

'히잉...왜애...나랑 손 계속 잡고 가자아-'

'나중에 꼭 다시 만나러 와야해, 알았지?'

...나 역시도.

"....렌?"

"어어...?나 불렀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해요. 피곤해요?"

"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가자, 슌. 기차 시간 늦겠다. 메구로의 말에 미치에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 눈에는 못내 그리움과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도쿄로 돌아가는 신칸센 안에서 메구로가 입을 열었다.

"또 오자, 슌."

겨울방학하면, 또 같이 오자. 메구로의 말에 미치에다가 웃었다.

"경호가 더 삼엄해질것같은데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달리기연습 열심히 해놔."

"그 말은... 또 도망칠거라는 소리에요?"

"역시 둘이 있는게 좋으니까."

아아 내일이면 다시 과제해야하는 현실로 돌아가야하다니. 싫다- 기지개를 펴며 투정하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피식 웃었다.

"학과 수석이 그런 말해도 되는거에요?"

"수석이여도 과제는 싫다고-"

"그래놓고 또 과제랑 시험 전부 에이플 받을꺼죠? 치사해요 진짜."

"그래?그럼 이번엔 대충 할까? 슌이 수석하게?"

"아니요!! 절대 싫어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버린 미치에다가 헙...입을 틀어막고는 커다란 눈을 도르륵 굴리자 메구로는 풉 웃어버렸다.

"그럴줄 알았어. ...이래서 좋아할수밖에 없다니까, 너는."

으으...피곤하다...슌, 너도 지금 잘수 있을때 자둬. 눈을 감고는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오는 메구로에 미치에다는 속으로 탄식했다.

그러니까...그런 말하면...잠 못잔다니까요...




메메밋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