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거 보고싶다.

태대랑 우명 양쪽 다 공개연애 중인 스포츠계 슈퍼스타들인데 어느날 예능 나간 정대만. 

엠씨 둘이서 연예인들 불러다 근황 얘기하는 단순한 토크쇼였는데 이 프로그램은 특징이 하나 있음. 여기 나가면 <의리 테스트>라는 걸 해야 함. 다른 게 아니고 가장 친한 사람한테 오천만원만 빌려달라고 하는 거.

정대만도 예외는 아니라 이 프로에 나온 이상 당연히 이 <의리 테스트>를 해야 했음. 가족 제외 가장 친한 사람을 고르는 게 룰이었는데 정대만 본인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당연히 누굴 고를지 예상했겠지. 공개 연애만 10년 넘게 하고 있는 느바송이었음.

정대만이 예상대로 ‘태섭이’한테 전화 한다고 하니까 엠씨들이 역시나 하고 웃다가 한명이 대뜸 그러겠지.

“아 근데 송태섭 선수한테 하는 거면 인간적으로 패널티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니 왜? 왜요?”

정대만 눈 동그랗게 뜨고 따지려고 하는데 소용 없음. 다른 엠씨도 당연히 엠씨 편 들고 나서겠지.

“아니 정감독님. 송태섭 선수 미국에서 받은 연봉이 얼만데 오천만원을 안 빌려주겠어요?”
“빌려주는 게 뭐야. 송태섭 선수는 오천만원 땅에 떨어져도 안 주울 걸.”

정대만 혼자 답답해서 “와!” 하고 가슴치면서 아니다, 태섭이가 얼마나 검소한데, 여러분이 태섭이를 몰라서 그런다, 항의해보지만 엠씨 둘이 합심해서는 패널티를 걸어버림.

다른 게 아니라 그간 이 의리 테스트에 성공한 사람 중에 1등이 7분 만에 성공한 거였는데 이 시간안에 송태섭한테 오천만원을 빌리란 얘기였음.

“7분 안에 어떻게 빌려요!”

크1블 최고 아이돌 출신, 리그 3위팀 현역 감독이 애처럼 발 동동 구르면서 따지는 거에 엠씨 둘이 깔깔거리고 웃다가 그럼 봐줘서 10분으로 늘려 줌. 사실 이것도 패널티인데 3분 늘어난 게 뭐라고 정대만 또 기분 좋아져서는 자기 핸드폰 갖고 오라고, 당장 성공하겠다고 의지 만만임.

그러고 결국 정대만 핸드폰에 마이크 연결하고 단축번호 1번 눌러서 송태섭한테 전화함.

뚜-. 뚜-. 신호음 가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정대만 좀 긴장되겠지. 뒤늦게 생각난 건데 송태섭 눈치 엄청 빠르거든. 

“아... 근데 태섭이 눈치 되게 빠른데...”

정대만 갑자기 작아져서 눈 또로로 굴리면서 엠씨들한테 속닥거리는데 엠씨들 숨죽이고 킥킥거리기만 함. 송태섭 눈치 빠른 거야 정대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음. 왜냐면 느바송 미국 진출 이후로 다큐멘터리다 인터뷰다 별의 별 매체에서 송태섭에 대해서 씹뜯맛즐 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예리하고 집요한 스타일이었으니까. 거기다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도 농구팀이 송주장 몰카 한 번 해보려고 했다가 개같이 망한 게 유1튜1브에 그대로 박제돼서 800만뷰 기록함. 

“아니, 얘 진짜 눈치 빠르단 말이에요. 내가 살면서 한-번도 얘가 속는 걸 본 적이 없-”

정대만 혼자서 계속 엠씨들한테 구구절절 설명하는데 갑자기 신호음 뚝 끊기면서,

“형?”

송태섭 전화 받음. 그때까지 킥킥거리고 있던 엠씨들 정색하면서 과장되게 양손으로 입 꾹 틀어 막고 정대만 보고 얼른 하라고 손짓으로 부추김. 덩달아 스튜디오 뒤편 화면에는 10분 카운트 다운 시작함. 스톱워치 하필이면 밀리초 단위로 기록되어 있어서 무섭게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데 정대만 초조해져서는 대뜸  
  
“어어, 어 태섭이냐????! 태섭아 나 도, 돈 좀 꿔주면 안 돼?? 한 오천만원만???”

해버림. 

그 꼴 보자마자 엠씨 둘 다 손으로 얼굴 가리겠지. 망했구나 싶어서. 그간 돈 꾸는 연기 못하는 출연자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정대만은 독보적으로 못했음. 거기다 앞에 설명도 없이 대뜸 오천만원 내놓으라는 기세라 볼 것도 없이 들켰구나, 함.

엠씨들이 이번 판은 망한 판이구나 싶어서 <송태섭 선수, 여기 ㅇㅇㅇ프로입니다.> 하고 막 인사하려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송태섭 목소리.

-...형 지금 어디에요?
“나???? 나 지금 밖에.”
-밖에 어디
“그 그냥 밖인데?”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무 일또 없는떼?”

이제는 삑사리 나고 난리 남. 정대만 계속 줄어드는 시간 쳐다보면서 초조해하고 있는데 송태섭 목소리 점점 가라앉음. 

-아무 일 없는데 왜 어딘지 말을 안 해
“그냥... 그냥 묻지 말고 오천만원만 보내주면 안되냐?”
-오천이든 오억이든 다 줄 테니까 어딘지 알려줘요. 걱정되잖아. 형 어딘데. 무슨 일인데.

원래 준다는 대답 나오면 스튜디오에 음악 울리면서 엠씨들이 <여기 ㅇㅇㅇ입니다!!> 하고 호들갑 떠는 게 이 프로 국룰인데 다들 순간 아무 말도 못함. 왜냐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송태섭 목소리가 너무 애타고 걱정하는 게 그대로 보여서. 

“어???? 어?!!!! 너 빌려준다고 한 거지?? 어?????! 지금 빌려준다고 한 거지?!!!”

근데 이와중에 신난 정대만 “들었죠?? 들었죠????? 저 성공이죠?????” 엠씨들 붙잡고 바로 방방 뛰기 시작해서 결국 뒤늦게 피디가 음악 틀고 엠씨들 약간 멋쩍은 목소리로 인사함 <안녕하세요 송태섭 선수> 

여기 무슨 프로고 우리가 오늘 정대만 감독님 모시고 의리 테스트를 했는데, 이런 엠씨들 설명에 송태섭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는지 잠깐 말 없다가 <정대만!!!!!> 수화기 너머에서 사자후 터지겠지.

송태섭 복장 터지든 말든 정대만 신기록 세운 거 기분 좋아가지고,

“야 태섭아 내가 1등이래. 3분 만에 성공해서. 이거 1등하면 한우 준다???”
-아 진짜. 다신 이런 장난 하지 마요.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알았어. 알았어. 너 근데 언제 와? 다음주에 오지? 나 그럼 이거 아라랑 먹어두 돼?”
-먹지마. 한입도 먹지마.

그러는데 송태섭 먹지 말라고 하는 목소리에 이미 애정 질질 새고 있어서 무서움 1도 없는 그런 거 보고 싶다. 

그리고 몇 개월 뒤. 같은 예능에 출연하게 된 이명헌 감독. 가뜩이나 동갑에 같은 대학에 심지어 선수 때는 잠깐이지만 같은 팀에서 뛰기까지 한 정대만이랑 이명헌인데 나란히 크1블 감독까지 하고 있으니 원래도 매스컴에선 둘을 라이벌로 못 붙혀서 안달이었음.

정작 둘은 아무 생각없이 은근히 죽 잘 맞는 친구 사이였는데. 이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라 이명헌한테 굳이 굳이 라이벌인 정대만 감독님이 신기록을 세우신 <의리 테스트>에 이명헌 감독님도 도전하셔야 된다고 부추김. 이명헌 사실 이런 몰카 같은 거 별로 좋아하는 성격 아니라서 웬만하면 거절해보려고 했는데 여기 나온 사람들이 다 했다잖아. 그럼 따지고 보면 잘 안 알아보고 나온 자기 책임도 있어서 알겠다고 도전한다고 함.

“이명헌 감독님이 생각하실 때 정우성 선수 반응이 어떨 것 같아요??”
“우성이요?”

그런데 이명헌 선뜻 대답을 못하겠지. 연애한지 오래 되기도 했고 둘이 워낙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라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서로 돈 꿔달란 얘긴 한 적이 없어서 어떤 반응일지 감도 안 잡힘. 

“아, 어려우신가 본데.”
“근데 저도 정우성 선수는 어떨지 진짜 모르겠어요. 갑자기 돈 빌려 달라 그러면 좀 놀라려나?? 막 무슨 일 난 줄 알고???”
“에이, 정우성 선수 몸값이 얼만데 오천만원에 놀라요. 저는 놀라진 않고 정우성 선수 워낙에 애교가 많으니까 뭐에 쓸지 말해달라고 조를 거 같은데.”
“아 그럴 거 같기도 하다.”

이명헌 엠씨 둘이 하는 얘기 들으면서 양쪽 다 고개 끄덕끄덕하고 있겠지. 정우성 성격에 놀랄 것 같기도 하고. 애교있게 물어 볼 거 같기도 하고. 그런 얘기 듣다가 결국 카운트 다운 시간이 옴. 정대만 경우랑 똑같이 10분에 맞춰진 카운트 다운 화면 보다가 시작 전에 이명헌이 그러겠지.

“문자 먼저 해도 되나요?”
“어 문자요? 근데 문자 보내시면 그때부터 카운트 시작하는데요?”
“괜찮아요. 낮 시간엔 전화보다 메시지를 자주해서. 이래야 더 잘 속을 거예요.”

안 하면 안 했지, 기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야하는 이명헌. 무표정한 말로 독한 얘기하고 결국 정우성한테 문자 보냄. <우성. 나 5천만원만 빌려줄 수 있어?> 그 와중에 길게 쓰면 괜히 꼬투리 잡힐까봐 평소보다도 간단하게 씀. 엠씨들 옆에서 이거 누가 봐도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괜찮겠냐고 하는데 이명헌 어차피 전화 올 거라 통화할 때 잘 말하면 된다고 대답하고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짜면서 전화 기다리는데 3, 4분 정도 있다가 정말 정우성한테 전화 옴.

“여보세요”
-형 방금 문자 형이 보낸 거예요?
“어.”
-뭐예요 형 아닌 줄 알았잖아요~
“나 맞다뿅.”
-하하 명헌이형 맞네

오랜만에 듣는 뿅소리에 정우성 기분 좋은 목소리로 웃더니, 아직 웃음기 남은 말투로 이명헌한테 애기함.

-계좌번호 불러줘요. 매니저형한테 보내라고 할게요

이렇게???? 이렇게 바로????? 엠씨 둘이 옆에서 듣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계좌 부르란 소리에 입모양으로 벙긋벙긋 소리 지르는데. 놀란 건 막상 통화하던 이명헌도 마찬가지임. 이명헌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평소보다 빠르게 눈꺼풀 깜빡깜빡하다가 조금 뒤늦게 물어봄.

“...어디 쓰는지 안 물어봐?”
-음? 물어봐야 돼요?

정우성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묻더니 다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이명헌이 시키는 대로 물어봄.

-왜요 어디 쓰는데요?

문제는 정작 이명헌은 무슨 대답할지 생각도 안함. 이명헌 결국 좀 뒤늦게 떠듬떠듬 대답하겠지.

“...그냥 사고 싶은 거 있어서.”

그 말이 뭐가 웃긴지 수화기 너머에서 정우성 또 하하 웃고 있음.

-뭐 사고 싶은데요?
“그냥... 이것저것”
-형 또 뭐 이상한 거에 꽂혔구나.

무슨 어린애가 오백원 달라고 양손 내민 거 보는 것처럼 귀여워 죽겠다는 말투로 놀리더니, 정우성 어깨사이에 휴대폰 끼고 있는지 소리 약간 멀어지면서 좀 낮아진 목소리로 그러겠지. 

-그래도 좋네.
“어?”
-형이 뭐 사달래서. 형 맨날 뭐 사줘도 싫다고만 하잖아요
“그거야 니가 말도 안 되는 걸 사오니까...”

이명헌이 얘기한 ‘말도 안 되는 거’가 뭔지 엠씨도 시청자도 알 거 같겠지. 그동안 포털사이트 메인에 심심하면 등장했던 정우성-이명헌의 커플 시계, 커플 신발, 커플 가방. 그 억소리 나는 커플템들. 

-다음에 뭐 샀는지 알려줘요. 궁금해.

이명헌이 그러거나 말거나 배부른 사자처럼 만족스러운 말투의 정우성이랑

“어? 어 그래.”

10년 넘게 사귄 정우성 캐해 실패해서 당황하는 이명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