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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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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에 중요한 손님이 와 오늘은 종일 집을 비울 예정이라고 했다. 노부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편하긴 해도 하루 종일 혼자였던 적은 없어 내심 걱정됐지만 소금이가 있으니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안방에 틀어박혀 있는 편이 고용인들과 마주칠 일 없어 마음 편해도 소금이 때문에 거실로 나가있을 수 밖에 없었다. 너는 햇빛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예전엔 나도 그랬는데. 물론 남편 몰래 나가려면 나갈 수 있었다. 문이 잠긴 것도 아니고 두 발이 묶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몰래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왔을 때, 예상보다 일찍 귀가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노부를 생각하면 무서웠다.

결혼하고 3일째 되던 날 마을 전통 축제가 열렸었고 마치다는 오랜만에 당고가 먹고 싶었다. 많이도 말고 딱 하나만. 남편에게 사다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뭔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직 민망해 혼자 돈을 챙겨 나갔다. 당고 하나만 사서 얼른 돌아온다는 게 그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화려한 등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직접 자신을 찾으러 나온 노부에게 손목을 잡혀 질질 끌려간 뒤로 꼬박 이틀을 굶어야 했다. 방 안에 갇혀 잘못 아닌 잘못을 뉘우쳤고, 제대로 알게 됐다. 이 사람은 나를 정말 집 밖에 내보내기 싫구나. 허락 없이 나가면 안 되는구나. 멋대로 외출하면 이렇게 되는 거구나. 그렇게 꼬박 두 달을 집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다가 고용인들 짓궂은 장난에 개울가로 향했다 또 혼난 것이다. 처음보다는 신뢰감이 쌓였는지 방에 가두고 굶기지는 않았지만 혼날 만큼 혼났다. 큰소리로 호통치거나 손목을 세게 잡아 멍들게 하는 것도 무섭지만 마치다가 가장 두려워 하는 건 노부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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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밥도 안 먹고 고양이랑만 노셨다는 고용인의 말에 노부는 약간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외투를 건넸다. 거실로 가보니 마치다가 소파 위에 웅크린 채 잠들어있었다. "여보, 케이." 목소리에 먼저 반응한 건 소금이었다. 마치다의 어깨를 밟고 기지개 켜는 모습에 노부가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 자게 내버려 둬. 발톱도 날카로운 게 어딜 자꾸 밟아." 저리 가라는 뜻인 건 어떻게 알고 먁! 소리를 낸 뒤 소파 밑에 몸을 숨겼다. 부인을 깨워 스프라도 한 그릇 먹이고 싶었는데 어찌나 곤히 자는지 더는 소리 내기가 미안해졌다. 등과 무릎 밑으로 팔을 넣어 조심스럽게 마치다를 안아 올린 노부는 발로 안방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곧장 침대로 향했다. 침대 위에 마치다를 눕히고 문을 닫기 위해 돌아섰을 때, 문 밖에서 안방을 빤히 들여다 보던 고용인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뭐하느냐 묻지도 않고 그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실례했다며 허리를 꾸벅 숙이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침대 위에 눕혀진 마치다를 다른 누군가가 보는 일은 처음이라 그대로 굳어 있었다. 불쾌함을 넘어 불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방 청소 만큼은 고용인을 시키지 않고 직접할 만큼 부부 침실에 누군가 침범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노부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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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소란에 눈을 떴다. 마치다는 졸린 눈을 비비며 창 밖을 내대봤다. 고용인 한 명이 작은 짐가방을 안고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었다. 마을 사람 중 스즈키 저택이나 온천에서 근무하지 않는 이는 농작물을 키우거나 자기 장사를 하는 부류들 뿐이므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놈이 스즈키에게 버려졌을 땐 이 마을을 떠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설마 어젯밤 침실을 들여다 본 것 때문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려 달라며 애원했다. 마치다는 거실로 나가 소금이를 찾아 안고 다락방에 올라가 누웠다. 소금이 몫의 사료를 손바닥에 담아 내밀었더니 뾰족한듯 폭신한듯한 주둥이가 손바닥에 열심히 닿았다 떨어졌다. "엄마도 배고프다. 아빠랑 밥 먹고 올게." 거실로 내려가 5분 정도 기다리니 밖에 있던 고용인들과 노부가 들어왔다. "아, 당신 깼어요? 배고프죠. 어제 한 끼도 안 먹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남편이 제 손을 잡고 일으켜 부엌으로 향하는 동안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고용인들이 죄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다들 저렇게까지 주눅이 든 걸까, 이 사람이 얼마나 크게 화를 냈기에 분위기가 이럴까. 마치다는 남편과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밥을 먹는 내내, 물이나 반찬을 담당하는 고용인 외에 다른 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걸어다녔다. "여보... 무슨 일 있었어요? 웬만하면 안 물어 보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심각한 것 같아서요..." 노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마치다 뺨에 묻은 밥풀을 떼어냈다. "당신은 아무것도 신경 안 써도 돼요. 식사 끝나면 같이 목욕하죠." 남편이 고용인들 앞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해서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그 누구도 마치다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고용인 한 명이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가 욕조에 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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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케이를 똑바로 쳐다 보지도, 뒤에서 몰래 훔쳐 보지도 마세요. 케이가 덮는 이불, 쓰는 수건, 비누... 입는 옷과 속옷까지. 그 어떤 것도 집안일 담당하는 고용인 외에는 손 대지 마세요. 특히 안방은,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 누구도 출입할 수 없고... 문이 열려 있다고 한들 감히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마세요. 먹고 사는 일에 지장 생기지 않으려면.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노부가 했던 말은 고용인들을 확실히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마치다에 대한 반감을 더 크게 키웠다. 쳐다보지도 말라고? 그깟 게 무슨 신이라도 돼? 확 어디 산에라도 데리고 가 나무에 묶어둘까 보다. 마을 사람 뿐만 아니라 산짐승도 다 쳐다보게.

마치다의 일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묘하게 서늘해진 집안 분위기와 점점 더 집요하게 육체 관계를 요구하는 노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그럴 수록 소금이에게 의지하는 이 집 안주인을 보면서 고용인들은 입을 모았다. 사모님이 가장 아끼는 건 바로 저 도둑 고양이놈. 저 놈을 없애 이 집 사모님이 절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 남편 뒤에 숨어 고고한척 하는, 잡초 출신인 저 온실 속 화초가 꼴사납게 꺾이는 게 보고 싶다. 고양이놈을 내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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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오후, 노부는 마치다가 눈물을 흘리며 마당을 거의 기다시피 하는 꼴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갔다. 소금이를 부르는 걸 보니 없어진 모양이었다. "다락방에 있겠죠. 아니면 또 침대 밑에..." 마치다는 아니라며 고개를 젓고 화단을 전부 엉망으로 만들었다. 길게 자란 풀을 잡아 뜯고, 온갖 잡동사니를 들어 내팽개쳤다. 저러다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됐다. "케이, 내가 찾을게요. 당신은 집안을 다시 살펴봐요." 마치다는 계속해서 앞마당과 뒷마당을 뒤졌다. "신발도 안 신고 정말... 그러다 다친다니까요. 들어가요 어서." 내일부터 내린다던 비가 조금 일찍 찾아왔다. 곱게 깔린 자갈길 위로 빗물이 투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싫어요. 분명히 밖에 있어요. 나가서 찾을래요." 들어가랬더니 오히려 대문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에 기가 찼다. 노부는 마지막 경고라도 하듯 마치다의 손목을 틀어쥐고 속삭였다. "내가 찾아줄 테니까 들어가라고..."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힘이 약해 그럴 수 없었다. 고양이를 숨긴 고용인들은 비를 맞으며 실랑이 하는 주인 부부를 보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데리고 올까? 뒷산에 있는 창고로 가서 몰래 데리고 오자. 고양이들은 원래 자주 집 나간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때, 짝! 하는 소리가 마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건 노부였다. "당신은... 날 지켜줄 마음도 소금이를 가족으로 받아줄 마음도 없었던 거죠. 처음부터..." 남편의 따귀를 올려치자마자 손바닥이 얼얼하고 심장이 쿵쿵 뛰어 기절할 것 같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냈다. 내가 지금 쓰러지면 소금이를 찾을 수 없어. 대문 밖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마치다를 노부는 잡지 않았다.






노부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