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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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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으러 간다더니 거기서 더 울었는지 눈이 여전히 새빨간 케이는 노부의 품에 안겨서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류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류세이,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거 먹자."

류세이는 매끈하고 조그만 이마에 귀여운 주름까지 만들며 고민하더니 양 손을 번쩍 들었다. 

"동까스!"

케이는 많이 놀랐을 아이가 체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걸 먹이고 싶어한 모양이었지만 '배가 꼬록꼬록해! 빨리 동까스 먹으러 가요! 꼬록꼬록'하는 걸 보니 체하지 않을 것 같아서 류세이가 제일 좋아한다는 돈까스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케이가 사랑으로 키운 덕분에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서인지 류세이는 회복탄성력도 좋아서 좋아하는 '동까스'를 먹는 동안에는 금세 웃음을 되찾고 발랄해졌다. 노부와 케이는 아직 서로 해야 할 말과 듣고 싶은 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소 어색했지만, 노부의 카레돈까스도 한 조각 얻어먹고, 케이가 주문한 치즈돈까스도 한 조각 얻어먹고 신난 류세이가 내내 꺄르륵 웃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아이의 순진하고 순수한 활기는 어두워진 어른들의 마음도 밝아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노부와 케이도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카레동까스도 맛있고 치즈동까스도 맛있지만 류세이는 그냥 동까스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라고 결론을 내리고 케이가 작게 잘라준 돈까스를 콕콕 찍어먹으며 웃는 류세이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노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라샤또네를 찾았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중고등학생용 어플의 판매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유아용 어플은 꽤 잘 팔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정말로 바빴지만 이치로의 건의로 새로 충원한 영업사원이 엄청난 사교성으로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덕분에 다소 한가해진 게 다행이었다. 

노부의 어머니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허술한 성격은 아닌데, 케이가 정말로 다시 노부를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케이가 떠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왔던 조작 서류를 되찾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케이는 조작된 노부의 검진 서류와 노부와 혼약이 있었던 이의 검진 서류를 가지고 있었고, 노부에게 그 서류들을 보여 주었다. 

허위진단서 작성과 사기... 신고하면 얼마나 살게 될까? 

노부의 어머니는 사기 정도겠지만 허위로 진단서를 작성하게 한 병원장은 허위진단서 작성으로 확실히 처벌을 받게 될 테니 혼자 죽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노부의 어머니를 끌고 들어가겠지. 노부의 이복형들은 노부와 나이차가 많기 때문에 형들이 벌써 회사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병원장 쪽은 자기 아들에게 새로운 혼처를 알아봐 주고 싶어하는 모양이었으니 더더욱. 노부는 케이와 류세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는 와중에도 어머니의 약점이 될 정보들을 모았다. 집안과의 연을 완전히 끊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노부의 어머니는 몇 번 노부를 찾아와서 노부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었다. 노부가 어머니가 있는 도시를 떠난 뒤에도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으니 아마 곧 케이와 다시 만났다는 것도 알게 될 테고, 류세이의 존재도 알게 될 것이라. 노부는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는 두 사람으로 늘어난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위협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했지만, 케이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말랑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케이는 속아서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노부를 버리고 떠난 것에 대해서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지 예전보다 행동이 많이 조심스러웠지만 노부가 다시 케이의 옆에 있어서 얼마나 기쁘고 신나 있는지 훤히 보여서 지난 6년간의 아픔이 다 사라질 정도로 그저 사랑스럽기만 했다. 

"이거 류세이 아직 기저귀 찰 때 입었던 옷인데 어때?"

케이는 지금보다 더 작은 류세이가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그렇게 물었다. 

"너무 귀여워요. 정말 너무 귀여워."

정말로 귀여웠다.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던 시기라 엉덩이가 빵실해서 더더욱. 노부의 입가가 흐믈흐믈해지자 케이는 머쓱한지 귓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아기들이 멜빵바지 입는 게 너무 귀엽다고 했었잖아. 나중에 우리도 아기 낳으면 꼭 입혀 보자고... 그래서."

이제는 기저귀를 뗐기 때문에 류세이가 혼자 화장실에 갈 때 불편하지 않을 옷을 입혀야 해서 멜빵바지를 입힐 수 없지만 기저귀 차던 시기에는 많이 입혀 봤다며 보여주는 사진들에는 정말로 귀여운 멜빵바지를 입고 이제 막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류세이가 아주 많이 있었다. 

"전부 케이가 만든 거예요?"
"응. 내가 만든 건데 다 라샤또네로 출시한 건 아니고. 상품으로 출시한 것도 있고, 우리 류세이 옷밖에 없는 것도 있어."

그것 말고도 노부가 아기나 어린이들이 이런 옷 입고 있으면 귀엽다고 했었던 스타일들은 전부 만들었었는지 류세이의 옷은 전부 노부가 예쁘다고 했던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 스타일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주말에 류세이를 만났을 때도 입고 있던 옷도 정말 예쁘다 했더니 류세이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옷이었다. 노부가 나중에 우리 아기에게 입혀 보자고 했던 옷들을 다 기억하고 하나하나 만들어서 입히고 있었다는 케이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또 가슴에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감정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그럼 요즘은 뭐 준비해요? 어린이 옷 만들어요?"
"아이들 옷인데 류세이 유치원에서 부탁해서 재료값 정도만 받고 해 주기로 한 거야."
"뭔데요?"
"한 해에 한 번씩 학예회를 크게 한대. 합창이랑 합주한다고 해서 합창단 느낌으로 정장 스타일로 만들어주려고. 학예회 끝나도 특별한 날에 몇 번 더 입을 수 있게 좀 무난한 스타일로 할까 하는데 어때?"

케이가 그려놓은 옷은 색이나 패턴이 정장이라기보다 교복 스타일에 가까웠고 중고등학생들의 교복보다 확실히 깜찍하고 앙증맞은 스타일이었다. 단순히 크기가 작아서가 아니라 옷에 붙은 장식들이나 옷의 선이 좀 더 아이다운 느낌이라서 활동하기도 편해 보였고. 

"그 유치원은 정말 운이 좋네요. 라샤또네 대표 디자이너의 옷을 단체로 맞추다니."
"류세이가 다니고 있으니까 재능기부삼아 해 주는 거지."
"학예회가 언제예요?"
"이 날."

케이는 책상 위 탁상달력에 커다랗게 하트를 그려놓은 날짜를 가리켰다. 

"나도 가도 돼요?"
"당연하지. 꽃다발 가져와. 요즘은 유치원 학예회 용으로 인형이랑 초콜릿 같은 거 넣어서 파는 것도 있다더라."
"알았어요. 예쁘게 만들어서 갈게요."
"다행이다. 다른 집들은 다 엄마아빠 다 올까 봐 류세이한테 미안했는데."

류세이는 케이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아주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 게 노부의 눈에도 훤히 보였지만 케이가 류세이에게 가지는 미안함을 이해할 수 있어서 노부는 머쓱하게 귓볼을 만지작거리는 케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같이 가요. 사진도 찍어주고, 학예회 잘 끝나면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러 가고."
"응."

품 안에서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케이의 체온만큼 노부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케이는 노부와의 미래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지만 류세이와의 교류를 저지할 생각은 없는지 류세이가 노부와도 자주 시간을 보내게 해 주었다. 어느 날은 옷 만드는 공장에 방문해야 하는데 방제공장 특성상 아무리 공기정화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먼지가 있을 수밖에 없고 기계가 많아서 위험하기도 하기 때문에 류세이를 노부가 몇 시간 맡아줄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저녁 전에 돌아올 테니까 그 전까지만 봐 주면 돼. 저녁은 같이 먹자. 내가 살게."
"네."
"라샤또네 앞까지 유치원 버스가 오니까 류세이 오면 점심 먹이고 사무실에 앉혀놓으면 혼자 책 보면서 잘 놀 거야. 5시에 류세이가 매일 꼭 챙겨보는 애니메이션 하는데 그거 보여줄 수 있어?"
"네, 사무실에 TV도 있어요."
"직원들한테 방해되지 않을까?"
"고토는 원래 평소에도 일할 때 매일 뭘 듣는지 항상 이어폰 착용하고 있고, 이치로는 아이들 좋아해서 괜찮아요. 나중에 제 사무실에 와요. 인사시켜 줄게요."
"음... 응. 그럴게."

또 귀부터 빨개지는 케이를 보며 이 사람의 마음 속에도 아직 노부가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서 희망이 커졌지만, 아직은 케이와 다시 함께 걸어갈 수 없었다. 미처 완전히 처리해 두지 못한 위협이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아쉽게 동그랗고 예쁜 이마에만 입을 맞췄다. 





며칠 후 라샤또네 앞에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 노부는 버스에서 내려 달려오는 류세이를 받아안으며 물었다. 

"오늘 아저씨랑 밥 먹는 거 들었지?"
"네! 우리 뭐 먹어요?"
"요즘 류세이 채소 많이 안 먹는다고 엄마가 걱정하던데?"

류세이는 노부가 장난치듯 타박해도 히히 웃기만 했다. 

"채소 많이 들어간 카레 먹으러 갈까? 맛있어."
"좋아요!"

케이가 요즘 류세이가 채소를 잘 안 먹는다고 걱정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류세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레 전문점에 들어가서 시켜준 채소 듬뿍 어린이용 카레도 정말 잘 먹었다. 그리고 노부가 류세이가 얌전히 채소를 잔뜩 먹은 이유를 알게 된 건 카레 전문점을 나왔을 때였다. 

"우리 크레이프 먹어도 돼요?"

눈이 반짝반짝하는 게 이걸 노리고 얌전히 채소를 먹어준 것 같아서 빵실한 류세이의 뺨을 콕 찌르자, 류세이는 또 헤헤 웃었다. 

"엄마가 저보고 아저씨 닮아서 크레이프 너무 좋아한다고 그랬거든요. 아저씨도 크레이프 좋아해요?"
"엄마가 크레이프 못 먹게 해?"
"히히."

너무 달아서 못 먹게 하나 싶었지만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아서, 채소를 잘 먹은 상을 주기 위해 크레이프 가게에 데려간 노부는 케이가 왜 자주 못 먹게 하는지 알았다. 어린이가 많은 주택가에 있는 가게이기 때문인지 메뉴에 어린이용의 작은 크레이프도 있었는데 류세이는 그 작은 크레이프에 딸기와 초콜릿을 가득 넣어 달라고 하고, 아이스크림까지 커다랗게 얹어서 행복한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으니까. 

"맛있어?"
"웅!"

입가에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마구 묻히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다 먹고 아저씨 회사에 가면 바로 치카치카해야 돼, 알았지?"
"웅!"

그래서 노부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하는 일탈에 잠시 빠져들기로 했다. 그날 류세이는 노부의 회사에 와서 양치질을 하고 난 후 고토, 이치로에게 인사를 했고, 둘 다 아이를 아주 좋아해서 류세이를 아주 잘 돌봐주었다. 얼마 전에 새로 충원한 영업사원인 타카노는 영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가 웬 아이가 있는 걸 보고 놀라더니 곧 온몸을 던져 류세이와 놀아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고등학생용 어플에 들어갈 컨텐츠를 계약하기 위해서 사무실에 손님이 오기로 했기 때문에 라샤또네에 가지 못하고 사무실에 있던 노부는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류세이'라는 이름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류세이?"

자주 만나서 놀아주지만 한 번도 노부에게 전화를 한 적은 없는 아이였다. 게다가 케이가 유치원에도 비상연락망 두 번째로 노부의 이름을 올려놨다고 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놀라서 전화를 받았을 때. 

- 아빠!
"류세이?"

자기 입으로 노부가 아빠라는 걸 안다고 했으면서도 한 번도 노부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던 아이여서 생전 처음 듣는 '아빠'라는 호칭에 놀랄 틈도 없었다. 

- 어떤 할머니가 나를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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