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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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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는 케이가 정말로 자신을 떠나고 난 뒤에도 왜 그가 떠나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케이가 내세운 이유는 있었다. 무작정 그냥 이혼서류만 내밀었던 건 아니었다. 납득이 되는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거 싫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곳 다 가고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던 네가 나 때문에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 더 보기 싫어. 우린 서로를 망치고 있어.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아마도 노부가 일사병으로 쓰러진 일이 케이의 마음 속 뭔가를 꺾어 버린 것 같았지만, 정말로 고작 일사병이었다. 고작 일사병. 그것 때문에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고? 정말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케이는 떠나 버렸다. 붙잡으려고 했지만 항상 노부에게 져 주던 케이는 돌아서는 순간만큼은 더할 수 없이 독하고 냉정했다. 케이가 떠났다. 케이가 노부를 버렸다. 더 이상 아득바득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도 없기 때문에 회사도 나가지 않고 케이가 떠나 버린 작고 소중한 아파트에 그저 멍하게 늘어져 있을 때 어머니가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와라."

이혼서류를 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바로 찾아온 걸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집안과 연을 끊었다고 해도 계속 노부를 주시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문제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찾아오고 며칠 뒤, 다른 사람이 또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집안 사이에서 노부와의 결혼 말이 오갔었던 모 병원장의 아들은 대뜸 카리브해의 호화리조트 사진을 내놨다. 

"신혼여행은 여기로 하자."
"무슨 헛소리야?"

한때는 이 남자와 친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아주 어릴 때. 그때는 그저 친구였으니까. 그러나 집안 사이에서 결혼 말이 오가고 난 뒤, 그 아이는 정말로 자기가 이미 노부의 배우자가 된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귀찮고 징그러워서 거리를 두게 됐고 아예 연락도 끊은 지 몇 년인데. 

"이제 솔로잖아."
"내가 솔로인데 왜 너랑 결혼을 해? 꺼져."
"네 어머니가 너 이혼시키느라고 고생했다고, 이제 다 됐으니 나랑 결혼할 거라고 너한테 가 보라고 하시던데."
"뭐?"

그래. 갑자기 케이가 왜 떠났는지 납득할 수 없었어. 디자이너로 성공해서 노부 너 꼭 호강시켜준다고 매일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하고 디자인 연습을 하던 케이가. 고작 일사병 때문에 왜 이혼까지 꺼내 들었는지 정말로 납득할 수 없었어. 

"무슨 짓을 했어!"

이 남자는 노부보다 많이 작았다. 노부의 어깨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은 남자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턱을 꽉 쥐자, 남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뭐야! 이거 놔!"
"말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말해! 턱을 으깨버리기 전에."

아무리 노부가 힘이 세다고 해도 사과나 복숭아 같은 것도 아니고 사람의 턱을 쥐는 것만으로 터뜨릴 수 있을 리 없지만, 벽과 노부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남자는 노부가 정말로 턱을 부숴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덜덜 떨면서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저 네 어머니가 힘들게 이혼시켜놨으니 이제 네가 우리 아들과 결혼하면 된다고 하는 걸 들었을 뿐이라고 울었다. 

노부는 그제야 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케이의 눈이 밤새 운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케이를 찾아가서... 협박했나? 아니, 케이는 달콤하고 부드럽게 생겼지만 마음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고 웬만한 협박으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실제로 노부와 케이가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 노부가 출근한 사이 케이를 찾아온 어머니가 케이를 모욕하고 협박했을 때도 케이는 어머니를 냉정하게 돌려보내고 노부에게 담담하게 네 어머니가 찾아왔었다고 말해 주었었다.

[별일 없었어. 그냥 너랑 헤어지라고 화내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그랬어. 난 안 된다고 했지. 노부는 내 거잖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케이의 눈 속에 찰랑거리는 미안함과 슬픔이 보였지만 그래도 케이는 노부를 꽉 끌어안았다. 너는 내 거잖아. 노부. 그렇게 말하면서. 그러니 케이가 웬만한 모욕이나 협박 따위에 노부를 버릴 리가 없는데. 

"아악! 살려 줘! 난 아무것도 몰라!"

분을 참지 못해서 손에 힘이 들어가 버린 모양인지 노부에게 턱이 잡혀 있던 작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노부는 이 비열한 인간의 겁에 질린 얼굴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정말로 살인을 저지를 것 같았기 때문에 남자를 밀어냈다. 그리고 바로 몇 년이나 발도 들이지 않았던 본가로 달려갔다. 노부는 자신의 힘이 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케이를 아프게 할 의도는 전혀 없는데도 가끔 힘조절을 못해서 함께 밤을 보내고 나면 케이의 피부는 온통 얼룩덜룩해지긴 일쑤였다. 어느 여름에 케이가 가디건을 잊고 학원에 갔을 때는 팔에 남은 시퍼런 멍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로 오해받았던 일도 있었다. 그날 밤 케이는 퇴근한 노부의 품에 달려와 안기며 생글생글 웃었다. 

[노부 미안해.]
[뭐가요?]
[우리 학원에 노부 가폭남으로 소문나 버렸어.]
[예?]

난데없는 가폭남이라니, 내가 케이를 때릴 리 없는데 때리고 싶었던 적도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당황해서 쳐다보자 케이는 눈꼬리를 접으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 반팔 입고 갔는데 팔에 멍이 들어 있더라고. 팔 뒤쪽이라서 집에서 나가기 전에 거울 볼 땐 몰랐거든. 학원 사람들이 엄청 놀라서 참으면 안 된다고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는 거야. 아니라고 막 그랬는데 맞은 것도 아니면 왜 멍들었는지 물어보는데 설명을 잘 못 해서. 헤헤...]

그러고보니 전날 밤에도 품 안의 케이가 너무 좋아서 주체하지 못한 탓에 온몸에 멍이 남긴 했을 것이었다. 긴 바지를 입고 나갔을 테니 허벅지에 남은 진한 손자국은 못 봤겠지만....

[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야, 뭐가 미안해!]

아프게 하거나 해칠 의도는 없었다고 해도 어쨌든 온몸을 멍투성이로 만든 건 사실이라 노부가 미안함과 머쓱함을 느끼며 케이를 토닥이자 케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맞췄었다. 

[네가 꽉 끌어안아주는 거 좋아. 나 통째로 삼키고 싶은 것처럼 집착하는 것도 좋아. 너무 좋아.]

지난 밤에도 무리했기 때문에 아직도 온몸이 뻐근할 텐데도 케이는 그렇게 말하며 유혹적으로 웃었었다. 사실이었다. 노부가 케이와 밤을 보낼 때마다 케이의 촉촉하고 야한 목소리와 눈가가 붉어진 채 유혹적으로 휘어지는 눈꼬리는 지나치게 아찔했었고 촉촉하게 달아오른 채로 노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매달리는 케이를 볼 때마다 통째로 집어삼키고 싶어서 움직임이 저절로 거칠어졌다. 그래서 밤을 보내고 나면 늘 케이의 온몸에 멍과 순흔, 치흔이 남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제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날도 노부는 케이의 유혹을 버티지 못하고 이미 온몸이 멍투성이인 케이의 몸을 더 퍼렇게 만들어놓고야 말았었다. 그래서 노부는 상대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어도 상대를 아프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한테 손을 올리는 일은 절대로 없었는데. 

노부는 본가로 뛰어들어가 집을 뒤엎었다. 말 그대로 뒤엎었다. 어머니의 선택을 용납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았다. 노부의 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을 했고 재혼한 부인이 노부의 어머니였다. 노부에게는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이복형이 둘이 있었고 그 둘은 스즈키 그룹에서 착실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전처의 자식들이 회사를 물려받는 게 싫었겠지. 

그 저열한 욕심 때문에. 고작 돈 때문에. 케이를. 

의붓아들들에게 회사가 돌아가는 게 싫어서 벌인 일이다보니 아버지에게는 모르게 한 일이었겠지마 아버지는 노부의 행패로 사실을 알았음에도 딱히 어머니의 행동을 문제삼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됐으니 집으로 돌아와서 학교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오래 전부터 혼담이 오가던 이와 결혼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내가 왜? 누구 좋으라고? 

"다시는 이 집 안에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자식 하나 죽은 셈 쳐요. 나도 당신들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 테니까!"

노부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터뜨렸고 아버지는 노성을 질렀지만, 노부는 평생을 노부를 옥죄고 통제하며 살았던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이 케이까지 빼앗아간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날 노부는 집을 뒤엎어놓고 다시 집을 나왔다. 케이에게 좋은 걸 먹여주고 싶어서,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어서, 편하게 생활하게 해 주고 싶어서, 마음껏 공부를 하게 해 주고 싶어서 아득바득 돈을 벌어야 했으나 이제 케이가 떠났으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노부는 막노동을 뛰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대학에 복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대학을 다니고 창업을 하고 회사를 일으키는 동안에도 케이를 계속 찾았지만 케이는 어디로 숨어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6년이 지났다. 





노부의 회사에서 개발한 학습용 기기와 어플을 홍보하기 위해 노부가 직접 유치원을 방문하기로 예정이 돼 있었다. 유치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유아용 학습 기기와 어플을 제공하고 시범을 보여주기로 한 노부는 며칠이나 동화책 읽어주기나 산수 풀이 등을 연습했지만 아무리 해도 딱딱한 말투와 굳은 표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 나서서 동화책도 읽어줘야 하고, 글자쓰기나 산수풀이도 함께 해 봐야 하니 억지로라도 웃어보려고 했지만 케이가 떠난 뒤로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어서 굳어 버린 얼굴 근육은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결국 노부는 유치원 방문 전날 포기를 선언하고 같이 회사를 창업하고 지금은 부대표 직함을 가지고 있는 동료를 돌아봤다.

"나 안 되겠다. 유치원, 네가 가는 걸로 하자."
"나 내일 여고에 홍보하러 가는데? 그럼 대표님이 여고 대신 가 줄 거야?"

케이 외에 그 누구도 마음에 담아 본 적이 없는데 대시는 많이 받아서 여자들이나 오메가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극히 꺼리는 노부의 얼굴이 굳어버리자, 베타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기로 돼 있는 부대표 쿠니시타는 빙글빙글 웃으며 노부를 도발했다. 

"대표님이 여고 가 주면 내가 유치원 가고, 어때? 바꿀까?"
"집어치워."

그러자 대표 놀리기에 동참하고 싶었는지 어플 개발 책임자인 고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전 오메가 전용 중학교 갑니다! 저랑 바꾸실래요?"
"... 됐습니다."

그래서 노부는 결국 유치원으로 향했다. 하필 유치원에서 요구한 동화는 인.어공주였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때문에 아이들이 인.어공주에 무척 빠져 있다고. 노부는 새로 개봉했다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에선 인.어공주와 왕자가 멀리 모험을 떠나는 결말이라고 듣긴 했다. 하지만 이 어플을 만들 때 제휴를 맺은 출판사에서 출판한 인.어공주 이야기는 인.어공주가 결국 물거품으로 변하는 안데르센의 원작을 담고 있었다. 

노부는 아직도 어머니가 케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기에 케이가 떠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노부가 집 안을 뒤엎고 행패를 부리는 건 용납했어도 어머니에게 손을 대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고 그게 아니라도 노부도 자신을 낳아준 이에게 손찌검을 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노부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을 알자 입을 꾹 다물었다. 케이에게 무슨 소리를 한 거냐고,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몇 번이나 물었지만 어머니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케이는 노부의 어머니가 한 거짓말에 속았을 것이었다. 협박에 쉽게 굴할 사람이 아니니 어머니가 비열한 수를 써서 케이를 속였겠지. 아마도 노부를 좋아하는 케이의 마음을 자극하는 속임수를 썼을 것이다. 그렇게 타의로 헤어지고 만 노부는 인.어공주 이야기가 정말로 싫었지만 홍보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싫은 이야기도 열심히 재미있게 읽어줘야 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학습용 기기를 하나씩 나눠주고 아이들이 책을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끝까지 읽어주고 나자 몇몇 아이들은 영화와는 다른 결말에 충격을 받은 듯 훌쩍거리고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이건 거짓말이라고, 영화에서는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칭얼거리기도 했다. 그때였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된 건 죽은 게 아니야!"

당연히 생전 처음 보는 아이인데도 아이의 얼굴에서는 묘하게 익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는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을 이었다. 

"인,어공주는 공기의 정령이 된 거야."

정령? 요정 같은 거야?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아이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공기의 정령이 돼서 다른 정령들이랑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거야. 우리 엄마가 그랬어."
"왕자님하고는 헤어졌잖아."

어떤 아이가 그렇게 묻자, 아이는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웃었다. 

"영원히 살 수 있게 됐으니까 다른 정령들이랑 사이좋게 살면 되지. 아기 정령도 낳고."

아이들은 인.어공주가 행복해진 걸 기뻐해야 하는지, 왕자를 차 버리고(?) 정령들에게 가 버린 걸 슬퍼해야 하는지 알쏭달쏭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부는 확실히 기분이 나빠졌지만.

인.어공주가 왕자에게 진실을 밝혔다면 둘은 함께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노부는 안데르센이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한 후 인.어공주를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왕자는 분명히 인.어공주가 아닌 다른 나라의 공주를 사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자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지 말고 왕자에게 말이라도 해 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왕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남겨졌잖아. 

당신도... 케이 당신도 무슨 말을 듣고 왜 속아넘어갔든 내게 말이라도 해 주지. 마음에도 없는 말로 나를 밀어내지 말고, 무슨 말을 들었기에 떠나기로 결정한 건지 말이라도 해 주지. 

그러나 노부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벌떡 일어나 있던 그 아이가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었다. 

"저도 물거품 만들고 싶어요. 우리 비누거품 놀이해도 돼요? 선생님?"

아이들이 워낙 웅성웅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이어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음에 보여줄 건 동화처럼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게 아니라 산수풀이였기 때문에 더더욱. 노부가 유치원 교사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교사는 아이들을 이끌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유난히 활기차고 발랄한 그 아이는 유치원의 대장인지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비누거품을 만들며 뛰어다녔다. 노부가 눈에 띄게 발랄한 그 아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교사들과 학습용 기기 관리 등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올 때였다. 비누방울 놀이는 끝냈는지 조그만 얼굴에 땀방울을 가득 매단 아이가 여전히 신난 얼굴로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

교사의 지도 아래 친구들과 함께 귀엽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를 붙잡은 건 그 아이의 그 작고 귀여운 얼굴에서 묘하게 진한 그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뭐야, 아가야?"
"아가 아닌데요! 류세이거든요!"

[너 닮은 아기가 태어나면 류세이로 할 거야.]
[류세이? 유성?]
[응. 그날 우리가 봤던 유성우처럼 아름다운 세상만 보며 자라게 키울 거야.] 

그날의 아름답던 별똥별들 대신 숨이 턱 막히는 슬픔이 가슴 가득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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