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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 04:15
태웅이 백호가 첫사랑이고 백호도 태웅이가 첫사랑일거임. 태웅이 처음엔 누굴 좋아한다는거 자체가 이리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인지 몰라서 한동안 더 넋놓고 다녔을거 같음. 그래도 아무리 사귄다 해도 즈그멍청이 멍청한 행동 보면 화가 나는건 어쩔 수 없어서 사귀고도 투닥투닥 했겠지ㅋㅋㅋ 누가 보면 진짜 사귀는거 맞냐 물을 정도로ㅋㅋ

그래도 아예 변한게 없는건 아닐거야. 백호 딴에는 그래도 태웅이 자기 애인이라고 나름 집에 가면 요리도 해주고 부끄럽긴 하지만 애교도 좀 부리고 자존심도 먼저 굽혀주기도 할거임. 태웅이 그때마다 놀라긴 하지만 자기가 애인이라고 노력하고 자각하는 강백호가 예뻐서 농구 말고도 행복만땅 상태겠지.

근데 이런 완벽한 날에도 한가지 변수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매일 즈그멍청이 옆에 붙어다니는 저놈... 이름이 양호열이던가? 아무튼 그랬음.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하도 붙어다니길래 대체 무슨 사이냐 물었더니 같은 동네 친구래. 같은 중학교도 나왔고 쟤도 따로 나와 살아서 대부분 같이 밥도 해먹는다는거야. 태웅이 이래 보여도 승부욕이랑 소유욕 쩔어서 그거 듣자마자 당장


- 이제 저거 치워.


이랬을듯. 근데 그냥 노발대발 할줄 알았던 멍청이가 태웅이 빤히 바라보더니 답지 않게 진짜 진지하게 화난 얼굴로 그러겠지.


- 야 아무리 너라도 호열이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라. 네가 내 애인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할게 있는거야.


이래서 태웅이도 더 싸우지 않고 넘어갔을거 같음. 차라리 니가 뭔데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이랬으면 작정하고 싸우기라고 하지 저렇게 착 가라앉아선 경고하는 백호 보니까 평소 끼끼거리던 즈그멍청이가 한때 해동중 짱이었다는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더는 건들면 안되겠다는 동물적인 본능이 들어서였겠지.

아무튼 그 뒤로 태웅이는 딱히 호열이 얘기는 꺼내지 않았음. 그저 거슬린다는 티를 팍팍 낼뿐이었지. 그래도 넉살이 좋은건지 양호열이란 녀석은 백호 옆에서 떨어질 줄 몰랐음. 자기랑 멍청이가 사귀기 전이나 후나 매일 체육관에 오는 건 물론이고 멍청이한테 물이나 포카리 따위를 챙겨주고 시합이 있을 때면 꼬박꼬박 백군들이랑 같이 왔지.

학년이 올라가 시합이 많아질수록 가끔 백군들 중 사정이 생겨 한두명 정도는 빠지긴 했지만 양호열만큼은 무조건 왔음. 그리고 언제나처럼 딱 강백호만 보이는 것처럼 굴었지. 그래도 어디까지나 시합이니까 참았음. 어쨌든 경기 보러오는건데 뭐라하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자기랑 즈그멍청이는 코트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는 반면 저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관중석에 앉아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밖엔 없었으니까.

네까짓게 거기서 뭘 할 수 있겠냐. 태웅이는 호열이가 보일 때마다 일부러 더 백호를 도발하고 강백호의 시선과 관심이 전부 저에게 쏠리는 게 무척 만족스러웠겠지. 다만 코트에서 벗어나 교실에 있을땐 사정이 좀 달랐지.

2학년이 되고 태웅이는 이번에도 즈그멍청이랑 같은 반이 안돼서 좀 속상했을거임. 멍청이야 반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어차피 체육관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내내 보는데 뭔 상관이냐고 했지만 멍청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있는 태웅이로선 시무룩한게 사실이었지. 그리고 고작 시무룩했던 감정은 이번에도 호열이가 백호랑 같은 반이 됐다는 걸 알게 됐을 때 폭발했겠지.

오늘 태웅이는 백호랑 같이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음. 1학년때야 같은 반인 호식이랑 다른 반에서 오는 중식이랑 같이 먹었지만 2학년 올라와선 애인도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이랑 먹어야하나? 싶은 생각이어서겠지. 그래서 멍청이한테도 점심시간에 자기 반으로 오라고 말해뒀는데 5분이 지나도록 안 오는거. 태웅인 잠도 안 자고 이 순간만 기다렸는데 정작 멍청이는 안 오니 답답하고 좀 속상하기도 하겠지.


하는 수 없군.


그러고 태웅이 백호 반 찾아가는데 하필이면 제일 먼저 마주한 모습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는 백호 앞에 앉아 가만히 백호 쳐다보고 있는 양호열이면 좋겠다. 물론 그냥 겉으로 볼땐 평범하게 자는 친구 보는 친구의 모습이었음. 하지만 애인으로서 촉이란 게 있잖아?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즈그멍청이를 제일 사랑하는 태웅이로선 그 눈빛이 심상치가 않게 느껴졌음.

딱히 백호의 어딜 만진다거나 이글이글 불타는 눈도 아니었건만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앉아서 가만히 백호를 보는 눈빛은 참 뭐라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애정이 깊어서 태웅이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겠지.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와서 애꿎은 백호 책상 퍽 찰듯. 그럼 흠냐 자고 있던 백호 졸지에 깜짝 놀라서는 펄쩍 뛰었다가 옆에 서있는 태웅이 보고 이게 무슨 새로운 지랄이냐고 팔팔 뛰면 태웅이 아랑곳없이 그럴듯.


- 멍청이 같이 점심 먹기로 한거 잊었냐?


그럼 그제서야 백호도 아 맞다! 하곤 허둥지둥 도시락 꺼내다가 앞에 호열이 발견하고는


- 호열아. 나 깨우지 그랬냐. 너 점심은 어쩌고?


하고 걱정할거임. 그러면 호열이 빵 하나 흔들면서


- 백호 네가 하도 잘 자길래 그냥 뒀지. 근데 오늘 같이 먹을 사람이 있는줄은 몰랐네.


하는거 보고 태웅이 빠직해서 즈그 멍청이 데려가려고 하는데 백호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호열이 보다가 아 내가 말 안해줬냐. 하겠지. 그러면 호열이 태웅이 쪽으로 손짓하고는


- 뭐해. 얼른 밥 먹어. 나는 그럼 옥상간다. 이따가 보자 백호야.


하곤 미련없이 교실 나갈듯. 그러면 백호 한참 호열이 뒷모습에서 시선 못 떼다가 안 먹냐는 태웅이 말에 도시락 까선 우물우물 같이 먹는데 표정이 영 탐탁지 않을거임. 그러면 태웅이 말해보라는 듯이 가만히 쳐다보면 백호가 눈치 보다가 그러겠지.


- 여우. 너랑 먹는거 진짜 좋은데 점심은 그냥 애들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되겠냐.


하는거 듣고 어이없어진 태웅이. 단박에 안돼. 하면 백호 또 뭐? 하고 으르렁거리다가 백호 교실문 한번 보더니 포기 못하고 말할거 같다.


- 여우 너랑은 체육관에서도 보고 연습 끝나면 요새 우리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지 않냐. 근데 호열이 빼면 대남이랑 구식이, 용팔이는 점심시간에 보는게 다라고. 가뜩이나 요즘 연습도 많고 나머지 시간은 다 너랑 있어서 애들보기도 힘든데...


하면서 눈치 보는거 태웅이 솔직히 뭐라고 하고 싶지만 강백호한텐 다른 친구들도 중요하니까. 쟤가 이만큼 나한테 시간 써주고 신경 써주는 것만도 사실 엄청 챙김받고 있다는거 아니까 머릿속은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선뜻 안 나오겠지. 그거 보던 백호 가망없다고 생각했는지 또 혼자 중얼거리겠지.


- 그리고 요즘 너랑만 있다보니, 아니, 너랑 있는게 싫다는 건 아니고 진짜 좋은데 나도 가끔은 애들이랑 놀고싶단 말이지. 가뜩이나 호열이는 너 우리집에 온 뒤론 코빼기도 안 비추니까.


이러는거 듣고 진짜 심기 뒤틀리는데 여기서 허락 안 하면 강백호 대차게 삐지고 그 집에 한동안 제가 아닌 양호열이 들락거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스치자 태웅이 그렇게 하라고 할듯. 대신에 끝나고 꼭 같이 하교하고 집에는 자기만 들이는 걸로 합의보고.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농구도 혼자 할 수 없듯이 연애에서도 모든 걸 다 자기 뜻대로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곤 하나 정도는 양보하겠지. 점심이라해도 양호열 하고 단둘이 먹는게 아니니까. 만약 그랬다면 허락도 안 했겠지만.



아무튼 그뒤로도 호열이는 꾸준히 체육관에 들렀고 그때마다 백호는 손을 흔들며 호열이를 맞이했음. 그리고 태웅이는 꾸준히 소유권 주장을 했지. 그렇게 일여년이 지나다보니 처음엔 호열이랑 같이 하교를 못하는거에 미안해했던 백호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쿠터를 타고 알바하러 가는 호열이를 배웅하고 태웅이랑 같이 집에 가겠지. 그리곤 백호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같이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들거나 때론 사랑을 나눴음.

태웅이는 그런 백호를 보면서 슬슬 미국갈 준비를 하겠지. 미국에 가면 당연히 즈그멍청이도 데려갈 생각이었으니까. 멍청이랑 같이 둘이 사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자기들 사이에 끼어들 사람도 없었으니 일석이조였음. 아무튼 빨리 그날이 오길 바랐고, 시간이 흘러 진짜 그날이 왔음.

그리고 백호와 함께 하는 미국생활은 상상이상으로 좋았지. 고등학생 때도 좋았지만 미국은 언어부터 낯선 나라라 멍청이와 한집에 있을 때면 세상에 단둘만 있는것 같았지. 태웅이는 그게 제일 만족스러웠음. 백호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든 특유의 적응력으로 잘 적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타지에서 같은 나라사람만 만나도 반가운데 애인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안정되겠어. 태웅이도 마찬가지로 백호에게 같은 감정을 느꼈겠지.

백호는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말이 많았지. 어찌나 말이 많은지 그날 대학 수업이랑 연습경기 내용까지 죄다 털어놓았음. 태웅이는 그걸 들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백호가 차린 밥을 먹었고. 그렇게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되다가 어느날 태웅이 백호 등쪽에 못 보던 테이핑자국을 발견하곤 사색이 돼서 이게 뭐냐고 묻겠지. 아무래도 백호 1학년때 등부상 입고 수술까지 한건 태웅이한테도 충격이었으니까. 근데 백호 그거 보더니 아아 하곤 아무렇지 않게 말할거야.


- 아, 전에 연습경기 하다가 좀 넘어졌어. 별거 아니길래 테이프 붙였지.
- 별게 아니라고? 그런 중요한 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 새삼스럽게 뭘. 이미 부상은 그때 다 회복했다고. 역시 재활도 천재!


이러면서 낄낄거리길래 태웅이도 더는 말 못하고 놔뒀음. 생각한 것보다 별로 심각한 건 아닌거 같기도 하고 정말 큰일이었으면 작은 일 하나까지 다 말하는 저한테 이미 말했겠거니 싶어서.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건 어느날 집에 왔더니 누군가랑 심각하게 통화를 하고 있는 백호를 보곤 알아차렸겠지.


- 나 어떡하냐. 저번에 다쳤던 등이 자꾸 아프다. 또 재발했으면 어쩌지?


영어가 아닌 모국어에, 반말까지 쓰는 걸로 보아 편안한 상대인듯 했음. 등 괜찮다며. 근데 저런 중요한 말을 왜 애인인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하고 있는건데? 싶어 걱정이 되면서도 화가 오를 때쯤 들린 이름은 기름을 붓기에 충분했겠지.


- 또 그 재활을 다시 받아야하면 어쩌냐. 나 그거 두번은 못하겠어. 여긴 너도 없잖아. 호열아.


불안한듯 전화선을 베베 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답지 않게 울거 같았지. 태웅이는 절대 여기선 들을리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 이름이 백호 입에서 또 나오자 앞뒤 재볼것도 없이 백호한테 다가가겠지. 그리곤 다짜고짜 전화를 끊자 화를 내는 백호한테 짓씹듯이 말하겠지. 내가 애인인데, 왜 이런 중요한 얘기를 나 말고 니 친구한테 하고 있는건데. 그러자 백호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럴거야.


- 너 걱정시키기 싫었어.
- 뭐?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 그리고 나 재활할 때 서태웅 너는 국가대표였잖냐. 너 합숙할 동안 병원에 가장 많이 찾아온 게 호열이었다고. 내 신발 신겨서 산책가고, 테이핑 해주고, 불안해 할때마다 괜찮다고 해준게 호열이야. 지금도...


그리고 태웅이는 더 이상 백호 말을 듣지 않았음. 백호도 더 말할 수 없었겠지. 그날은 그렇게 하루종일 침실과 거실, 주방 할것없이 뒹굴겠지. 나중엔 백호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잘못했다고 빌어도 놔주지 않았을거임. 태웅이는 그런 백호를 보면서도 갈증이 일었겠지. 좀 떨어뜨려놓으면 아예 못 닿을 줄 알았는데. 대체 씨발 어디까지 해야 그 자식 그림자가 안 닿는 곳이 있을까 싶어서. 그리고 백호 재활때 좀 더 챙기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울거임. 명색이 애인인데, 가장 힘들때 다른 새끼한테 수발들게 한게 어이가 없어서.

아무튼 그날은 그렇게 앵그리하게 끝났겠지. 그리고 한동안 태웅이 삐져서 말도 안하는 백호 달래느라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사과한 끝에 겨우 백호 마음이 풀릴거임. 그렇게 달달하게 화해하고 끝날 줄 알았음.


- 백호야! 아픈 데는 괜찮아?


국내에 있어야 할 양호열이 갑작스레 미국에 찾아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지. 양호열은 백호 등이 걱정돼서 찾아왔다고 했음. 그 전화를 받고 바로 비행기표를 알아봤다고. 그리고 예상보다 더 강백호는 격하게 양호열을 반겼겠지. 타지에서 아주 오랜만에 보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이 걱정돼서 바로 왔대. 어떻게 안 기쁠 수가 있겠냐고. 얼마나 기뻤는지 슬럼가에 숙소 잡아놨다는 양호열 위험하다고 자기가 안방 내주겠다는거 양호열이 말려 거실에서 자는걸로 타협봤음.

태웅이는 그럼 나보고 저 자식이랑 안방에서 단둘이 자란거냐? 생각했지만 너무 기쁜 백호는 그런건 생각도 못했는지 오늘은 호열이랑 거실에서 잘래. 그래도 되지, 여우? 하곤 제멋대로 이불 한 채를 더 끌고오려는거 뒷덜미 잡아채곤 얌전히 안방에 집어넣겠지. 그리고는 거실에 서있는 호열이를 본체 만체 한 채


- 너 빨리 돌아가.


하고는 방으로 들어갈거야. 이쯤되면 알아들었겠거니 싶어서. 하지만 다음날 돌아간 줄 알았던 양호열이 자신들이 뛰는 대학 농구팀 연습경기에 떡하니 구경온 걸 보곤 화가 치밀거임. 놀러왔으면 관광이나 하다가지. 싶던 찰나에 백호랑 얘기를 나누던 호열이가 주변 소음 탓에 잘 안들리는지 뭐라고? 하는 백호의 뒷머리를 끌어다가 귓가에 대고 무어라 하는걸 봤을땐 진심 이성이 나가는 기분이었음.

심지어 그 귓속말을 들은 강백호가 킥킥 웃으며 행운을 빌어달라며 양호열에게 주먹을 내밀고 호열이가 그 주먹에 입을 맞췄을 땐 더 미치는거 같았지. 둘 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과연 한쪽이 장난일까 싶었음. 그리고 마침 타이밍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백호팀의 경기가 시작됐고 호열이는 예전처럼 관중석에서 백호를 지켜봤음.

연습경기라 관중들은 거의 없었고 팀 관계자들과 선수 역량을 체크하러 온 다른 팀 사람들만 관중석에 앉아있었지. 호열이는 그들 중에서도 제일 앞줄 펜스에 서서 턱을 괸 채로 백호를 지켜봤음. 이러고 있으니 꼭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거 같았지.


- 야.


그때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자 언제 온건지 바로 옆에 서태웅이 쳐다보고 있었음. 고등학생 때보다 더 커진 서태웅은 오늘은 뛰지 않는지 져지만 입고 있었지. 뭐, 여전히 잘생겼네. 호열이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음. 그보다 백호를 보는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돌아봤을땐 그 눈은 백호를 보던 것과 완전히 달랐지. 차갑고 무신경하고 심드렁한 눈동자였지만 왜? 하고 나오는 목소리는 꽤 친절했지. 꼭 훈련된 것처럼. 근데 그건 알 바 아니고 태웅이는 딱 용건만 말했음.


- 멍청이한테서 떨어져.
- 뭐?
- 너가 없어도 충분하니까.


많은 감정들이 숨어있었지만 요지는 그거였음. 호열이는 가만히 태웅이를 바라봤음. 여전히 심드렁한 눈이었지. 태웅이 그 눈 보다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을거야.


- 멍청이 애인은 나야.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고 그만 꺼지란 소리였음. 하지만 호열이는 여전히 심드렁해보였지. 꼭 백호가 없을 때 선생님을 보던 것처럼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못 느끼는 얼굴로 오로지 권태롭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태웅이를 보다가 다시 백호한테 시선을 돌릴거야. 그러고는 말하겠지.


- 누가 뭐래냐. 계속해. 그거. 애인.


그러더니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듯 권태롭게 말하겠지.


- 백호가 좋아하니까.


그리고 태웅이 그 말 듣는 순간, 지금껏 애써 무시해오던 양호열의 존재가 심하게 거슬릴듯. 언뜻 백호가 널 좋아하니까 잘 사귀어라 그런 뜻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런 친절한 축하가 아니란 건 아무리 관계에 서툰 태웅이라도 알았음.

양호열은 진심으로 괜찮아보였지. 분명 백호를 보는 눈은 고등학교 시절 엎드려 자고 있던 백호를 바라보던 눈과 같았음. 그 사랑은 진심이었음. 하지만 태웅이는 그 눈에서 사랑 이상을 느꼈지. 어찌보면 이 감정도 사랑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눈에 고요하게 아주 오래 고여있던 감정은 아주 아주 깊었음. 도저히 사랑이라는 짧은 단어론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태웅이는 그때 그 점심시간부터 왜 이렇게까지 양호열이 거슬렸는지 그 정체를 드디어 알아차렸겠지. 양호열은 한번도 자신을 눈에 담은 적이 없었음. 강백호의 애인으로, 가장 친한 친구로 수없이 마주쳤어도 그 눈이 향하는 곳은 오로지 강백호뿐이지 다른 이는 없었음. 설령 그게 강백호가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질투 따윈 없었음. 그냥 강백호가 사랑하니까 놔두는거. 그뿐이었지.


- 아. 백호 골 넣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음. 골을 넣고 자신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백호에게 마주 웃어주는 양호열은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눈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걸 본 태웅이는 결심했겠지.
여기에 있을 때, 저 멍청이랑 반드시, 결혼까지 하겠다고.


- 봤냐? 백호 녀석. 아주 날아다니는 걸.


하지만 그렇다해도 양호열은 여전히 옆에 있을게 분명했지만. 그리고 깨닫겠지. 양호열은 강백호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신들이 어디에 있든 절대 떠날 리 없다고.
그게 강백호한테서 가끔씩 보이는 양호열의 그림자였으니까.







태웅이가 의외로 직진수인에 소유욕 만땅이라면, 호열이는 좀 복흑같아서 너무 좋다... 얘는 알량한 질투심 같은 걸로 백호 옆 안 떠날거 같음. 실로 바다중에서도 대양같은 남자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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