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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5 22:09




마치다가 소아과 전문의가 된 이유는, 굳이 꾸며내자면 백 가지도 꾸며낼 수 있겠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성인을 상대하기 싫어서였다. 물론 아이들을 치료하다 보면 예민한 부모들까지 상대할 일이 많지만 그냥 어른 환자 보다는 아이 환자가 대하기 편했다. 드디어 개인 병원을 차리고 첫 진료를 봤는데 환자는 30세의 남자였다. 가끔 소아과에서 해열제 정도를 처방 받아 가는 성인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 환자는 제대로 치료 받기 위해 온 느낌이었다.

"선생님... 열이 펄펄 끓고 배가 아파요."

"장염일 것 같은데 좀 더 세밀한 검사를 원하시면 사거리에 큰 종합병원이 있어요."

"세밀한 검사는 됐고... 약 좀 지어주세요."

"세밀한 검사가 필요한 나이예요."

"그건 그렇지만..."

소아과 보다는 일반 내과로 내원하라는 말을 빙 돌려 한 것인데 울상을 짓고 배를 쓰다듬는 모습에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이 솟았다. 소아과 침대는 전부 싱글 사이즈라 체격 좋은 남자가 편안히 누워 쉬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그는 처방 받은 약을 먹고 굳이 회복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오후 5시. 퇴근 준비를 하던 마치다는 불 켜진 회복실에 들어가 세상 모르고 잠든 환자를 흔들어 깨웠다.


"스즈키상?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응... 5분만 더..."

"집이 아니거든요. 어서요."

"아침 안 먹어... 그냥 잘래..."

"저기요..."

오늘 내원한 환자가 이 사람 한 명 뿐이라는 사실도 절망적인데 진상짓까지 하다니. 마음 같아선 들고 있던 서류가방으로 내려치고 싶었다. 머리는 너무하니까 어깨나 가슴. 데스크 직원과 간호사도 퇴근을 한 뒤 병원엔 지독한 적막만 흘렀다. 피곤해서 잠깐 눈을 꾹 감았다 떴을 뿐인데 시간은 어느덧 밤 9시였다.

"이런..."

기절이라도 한듯 자고 있는 환자를 다시 한 번 흔들어 깨웠다. 이번엔 별 잠꼬대 없이 스르륵 눈을 떴다. 몇 차례 눈꺼풀이 닫혔다 열리더니 별안간 마치다의 팔뚝을 낚아채 자기 쪽으로 당기는 그였다.

"뭐, 뭐하는 거예요! 이제 정말 일어나세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기나 해요?"

누워있는 사람을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마치다는 어째서인지 잠자코 붙들린 상태였다. 그저 얼굴만 잔뜩 일그러졌다. 팔뚝을 쥔 손아귀에서 힘이 풀려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약만 들어가면 잠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거든요... 저 때문에 퇴근이 늦으신 거죠? 정말 죄송합니다."

싱글 침대와 어울리지 않는 몸을 일으켜 앉은 그는 신발을 구겨 신고 마치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회복실을 빠져나갔다. 개원 첫날 환자가 겨우 한 명 밖에 없었던 소아과 회복실에서 마치다는 얼얼한 팔뚝과 함께 그 사람이 흘리고 간 지갑만 얻을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하고 성가신 하루네."

데스크에 놓인 분실물 바구니에 지갑을 넣으려다가, 괜히 다음날 직원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낯선 남자가 가여워 직접 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서류 가방에 짙은 청색의 가죽 지갑을 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건물 외창을 통해 길 건너에서 걷고 있는 그를 발견했지만 부르기엔 먼 거리였다. 큰소리로 불러젖힐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마지막으로 돈을 쓴 곳이 이 병원일테니 내일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그를 다시 만난 건 병원이 아니라 마치다의 집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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