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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4 23:31
가 보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보고싶은 건 쓰지도 못했네...






어릴 때부터 짝사랑만 주구장창했던 권준호

(농구부만 벗어나면) 키 크고 훈훈하게 잘생기고 능력도 좋아서 인기많은데 본인은 그거 안 믿으면 좋겠다

왜냐면 정작 얘가 좋아한 사람들은 다 권준호 안 좋아했어서... 
헤테로여서,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어서, 애인이 있어서, 그냥 권준호가 취향이 아니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거절당함
근데 또 천성이 다정하고 상냥하다보니 상대가 의도했든 의도치않았든 권준호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동안에는 철저히 을이 되어 상대한테 헌신적으로 대해주거든
막 부담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상대가 좋아할만한 선에서 적당히 자기 애정 퍼붓다가 사그라드는...짝사랑 전문가 권준호

그걸 거진 15년 간 n번을 반복하고 나니 권준호 그냥 이제는 누구 좋아하면 당연히 짝사랑이겠거니 생각함
그래서 뭘 바라지도 않아 그냥 상대한테 맞춰서 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주고 그거에서 행복 느꼈으면 좋겠어
상대한테 같은 마음을 기대하기는 커녕 보답 하나 안 바라고 자기가 다 바치고 해주고 헌신하면서 그냥 그걸로만 만족하는 기묘한 자낮...

상대가 괜찮은 놈들이면 처음엔 고마워하거나 좋아하다가도 권준호의 그 애정과 헌신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 연정이라는 걸 알면 미안해하며 정중히 거절했고 권준호는 혼자 좀 씁쓸해다가 마음 정리하는 정도로 마무리됐는데 
상대가 쓰레기같은 놈들이었을 땐 그런 권준호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가끔은 몸까지도 이용해먹고 난리도 아니라서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 미치려고 한 적도 있을 듯 
근데 그 주변 사람들이 대놓고 준호 못 말린 건 걔네도 다 권준호 짝사랑 대상이었어서 그런 것도 있겠다ㅇㅇ

여튼 그렇게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하고 30살이 된 권준호 
직전의 짝사랑이 권준호한테 이거저거 요구해가며 실컷 이용하다가 결국 청첩장 엔딩 난 상태라 좀 너갱이 나간 상태였을듯
그 시점에 정대만의 4번째 mvp 기념 파티 갔다가 평소보다 술 많이 마셔서 취했는데 그거 이명헌이 수습해서 집까지 잘 데려다주는 걸로 시작하는 어떤 이야기....


이명헌 일단 게이긴 한데 얘의 인생에서 사랑은 농구보다 한참 뒷순위라 별 생각 없었을 것 같음
그러다 정식 프농선수 달고 팀을 몇 차례나 우승시키고 이젠 프로리그 안에서도 제법 고연차 달았을 즈음 슬슬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듯

그 즈음 전대학동기 전자취메이트 현같은팀 정대만이 자꾸 권준호 걱정하는 거 들림 
당연히 이명헌도 권준호랑 안면있고 친한 것 까진 아니어도 필요하면 둘이 밥 한끼 먹는 정도는 할 수 있을 사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한 다리 건너 친해진 사이다보니 그런 자세한 내막을 잘 알진 못했거든

근데 들어보니까 좀 가관임
애가 좀 이상한 티셔츠도 입고 했어도 전반적으로 기도 쎄고 어디가서 지는 장사 할 것 같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다 더군다나 연애 문제라니... 권준호랑 서로 게이인 건 알고 있는 상태라 이명헌 더더욱 갸우뚱 상태됨
이 바닥에서 권준호만한 인물이 몇 없을텐데 걔가 그렇게 을이라고삐뇽? 짝사랑만 한다고삐뇽?

흥미로워하던 와중에 갑자기 같은 팀에 마성지(특: 권준호랑 같은 대학)가 끼어들어서 둘이 공감하면서 얘기하면서 이명헌 급 호기심 맥스 됐겠지
마성지는 뭔데 권준호 얘기에 이렇게 열을 올리나 했더니 정대만도 마성지도 그 문제의 권준호 짝사랑 대상이었던 거면... 
심지어 둘을 좋아한 기간이 제일 길대 
둘다 그래서 권준호가 얼마나 을중의 을이 되는지 잘 안다는 거야
그거 듣고 이명헌 어이없는 와중에도 권준호가 안쓰러워졌겠지
둘다 찐헤테로인거 이명헌도 너무 잘 알거든... 이명헌 딱히 짝사랑 경험이 있거나 하진 않은데 그래도 일단 게이니까 헤테로 좋아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음
그리고 그 둘의 라인업을 보아하니 권준호 짝사랑 상대들 대충 어떤 놈들일지 감이 빡 와서 착잡해진 이명헌...

분명 양기철철 포카리마실 것 같은 열정적인 타입들이겠지... 높은 확률로 헤테로 삐뇽....
권준호 걔는 똑똑한 애가 어쩌다 이런 애들만 좋아해서는삐뇽..... 


그렇게 권준호한테 혼자만의 동정심+호기심max 찍은 이명헌

얼마 뒤 정대만 축하하는 자리에서 꽤 오랜만에 권준호 실제로 만났는데 기억하던 것보다 좀 마르고 얼굴이 축나있어서 당황하는 이명헌...
그래서 원래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얼결에 권준호랑 마주 앉아 상대해주는 이명헌...
마침 그날따라 권준호랑 친한 다른 북산 출신 애들이나 마성지, 최동오같이 안면 있는 선수들 다 다른 테이블에 있거나 늦거나 해서 어쩌다보니 둘이서만 꽤 오래 술 마셨으면 좋겠음

권준호 주량 쎈 편이라 다들 잘 몰랐는데 취하면 좀 넋두리하는 타입이었음
처음엔 농구 얘기로 시작했다가 술병이 늘면서 주절주절 전짝사랑상대(=모브) 얘기 하는데 그 와중에도 걔 여친 있는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텐데... 이러고 있는 권준호...
근데 그거 가만히 듣던 이명헌 무슨 소리냐, 무조건 걔 잘못이다삐뇽 시전함

권준호 잠깐 가만히 있다가 정말 걔 잘못이야? 내 잘못도 있지 않을까? 
너 의대공부어떻게했냐삐뇽. 알면서 속이고 기만한 새끼가 잘못이지삐뇽.
잠깐 눈 깜박거리던 권준호 아하하 웃으면서 그런가, 너는 나한테 답답하다 안하네 명헌아. 고마워. 시전함
ㅇㅇ 권준호 지금 이명헌한테 두근 했음...

근데 그 순간 이명헌, 눈 앞에서 권준호가 얼굴 붉어져서도 단정하게 안경 너머 눈 접어 웃는 모습 보는데
어라삐뇽, 머릿속에서 경고음 울림 
ㅇㅇ 이명헌 짧은 연애 두어번 하긴 했는데 누굴 제대로 좋아하고 그런 적 없어서... 
자기 취향 몰랐는데 단정하고 상냥한 사람이 좋았던거지... 조금 낯간지럽게도 이명헌이 아니라 나긋하게 명헌아, 불러주고 사근하게 웃어주는.
지금까지 몇 년을 봐왔는데 이제와서 이러는 스스로가 어이없는 이명헌....
사실상 처음으로 크러쉬 당해버린 이명헌....

이명헌 급 뚝딱거리는데 권준호도 같이 뚝딱이는데다 얘는 술까지 취해서 모름...
그렇게 얼레벌레 자리 파하고 권준호 끝내 기절하듯 잠들었으면 좋겠다

집이 근처라 차 안 가지고 걸어나온 이명헌 일단 권준호 차에 밀어넣고 대리 부른 다음 한껏 취한 정대만 붙잡고 권준호 집주소 알아냈겠지
그나마 건장한 농선인 이명헌 어찌저찌 권준호 집 앞까지 데려왔는데 비밀번호 물어보니까 웅얼거리다가 숫자 불러주는데
이명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기억력을 저주함 그거 마성지 생일인거 바로 기억나버려서... 
마성지가 했던 얘기도 같이 머리속에 둥둥 떠다님 
자기 구단 옮길 때 준호가 이사까지 해가면서 출퇴근이고 집계약하는 거고 다 도와줬다 했던가
이사한 후로 구태여 한번 정한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거겠지만 어쩐지 속이 쓰렸음

집 안에 들어가서는 더 가관임 
권준호 거실이나 침실은 단정하니 별거 없는데 침실에 딸린 드레스룸엔 전달도 못한, 혹은 전달했으나 아마도 까여서 다시 가져왔을 각종 선물용 쇼핑백으로 가득함
혀 끌끌 차면서 침대 눕히고 잠깐 쳐다보다 안경도 벗겨주고 커튼도 닫아주고 그러고 방에서 나옴

그러고 바로 집 가려다가 또 멈칫해서 잠깐 생각하다가 주방 들어가 생수 한 병 가져다 조심조심 권준호 침대 옆에 놔두고 그러고서야 집에서 나왔겠지
얘도 술 좀 들어간데다 지금 마음이 심란해서 집까지 한시간쯤 걸리는데 그냥 뛰어갔을듯..


아침에 깨질 것 같은 머리 부여잡고 눈 떴는데 무의식중에 손 더듬거리니까 손닿는 위치에 얌전히 놓인 안경이랑 생수병.... 권준호 눈 깜박거리다가 슬쩍 웃고는 물 한잔 마시고 안경쓰고 이명헌한테 연락하겠지

- 어제 고마웠어 명헌아
- 본의아니게 신세졌네
- 밥 한번 살게, 시간 언제 괜찮아?


그렇게 썸...이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3달 지나 이명헌 텅 빈 눈으로 안광꺼진 채 나타나 냅다 정대만 엉덩이 발로 까더니 벤치에 드러누워버림
자기 약혼자랑 통화하던 정대만 억울해서 씩씩대는데 신경도 안 씀...
당연함 오늘로 권준호한테 사귀자는 말 5번째 하고 5번째로 까였음...

'...명헌아, 내가 너 부담스럽게 했어? 그런 의도 진짜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나봐. 안 그래도 병원 일이 바빴어서.. 며칠 연락 못할 것 같아. 너도 다시 잘 생각해보고, 다음엔 편하게 다시 보자.'

씨X 
권준호 뭐가 문제냐삐뇽!!!!









이런 거 보고싶다고....
삽질끝판왕 권준호... 직진끝판왕 이명헌... 근데 둘다 제대로 된 연애 안 해본데다 권준호 삽질의 원인이나 시발점이 본인이 아니어서 해감도 못하고 답답해하는 이명헌... 정대만 마성지 + 기타 자꾸만 마주치는 권준호의 구 짝사랑 상대들(=이 모든 사태의 원흉들) 볼 때마다 황소마냥 자꾸 박치기 하고 싶어지는 이명헌...

준호명헌